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 * *
부드러운 밤바람이 이마를 스쳤다.
나는 달빛에 의지해 연못가를 걸었다.
내가 지금 머무는 객잔은 예전에 남궁완 아저씨를 찾으러 왔을 때 머물렀던 객잔이었다.
당시 그 객잔은 폭삭 무너져 원래 형태를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근처 붙어 있던 다른 건물들도 일부는 무너지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더라도 이미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나는 객잔 주인에게 그 자리를 사고 무너진 객잔과 붙어 있던 건물을 앞, 뒤, 옆으로 다섯 채 정도 함께 샀다.
그리고 사람을 서른 명 정도 묻어도 티도 안 날 것 같이 깊게 파였던 구멍을 연못으로 만들고, 연못을 중심으로 건물을 새로게 올렸다.
이룹는 객잔으로 일부는 다원으로 만들었다.
나는 연못가 한쪽의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통로를 지나 담 안쪽의 작은 별원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달빛 마저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서 미약한 향내가 풍겼다. 나는 황동 촛대를 쥔 후 불을 붙였다. 삼매진화의 수법이었다.
밝아진 안에는 위패가 보였다.
이곳은 사당이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천산염제를 위한.
여기에는 막개의 위패도 함께 있었다.
막개는 후일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내부인의 소행 같았는데 그 이상은 개방 내부의 일이라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막개가 마지막으로 보낸 전서구는 아버지에게 무림맹의 움직임을 경고해 주는 내용이었다.
시기가 조금 늦었지만, 아버지를 도와주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사당을 세웠으니, 자손도 없고 개방에서 위패를 세워 줄 일도 없는 막개의 위패를 함께 놓았다. 이를 어찌 받아들였는지 대개는 이 사당을 자주 오가며 자신이 관리인인 것처럼 굴었다. 그 뒤로 우리에게 무척이나 협조적이었다.
나는 먼지 한 톨 찾아볼 수 없는 사당을 둘러본 후 향에 불을 붙여 꽂았다.
“바로 찾아왔어야 했는데 일이 있어서 조금 늦었네요.”
그간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악양에 온 지 열흘 만에야 겨우 사당에 올 수 있었다.
“원래 그 동안은 여기 객잔에 손님이 거의 없었거든요.”
백리 세가가 뒤에 있다는 소문 덕에 악양의 흑도 눈치를 보는 이들은 이 객잔에 오기를 꺼렸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동호방주를 쓰러트리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근방의 백도 문파나 세가에서 축하한다며, 혹은 정말 동호방주를 내가 상대했는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방문하였다.
거기에 백리 세가와 거래를 터보려는 상방이나 표국 사람들까지 드나들기 시작했다.
파리만 날리던 객잔에 갑자기 손님이 몰려오니 이때를 대비한 준비도 부족한 것이 많았고, 이를 아니꼬워하는 일부 흑도들과 소란도 약간 벌어졌다.
며칠간 이래저래 바쁘게 뛰어다녔다.
잠시 침묵하던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야율은 천마가 데려갔대요.”
진법 안에서 우리와 헤어졌던 남궁류청과 야율은 조금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생문을 찾아 빠져나왔다.
하지만 운이 나빠도 무척 나빴다고 할까······ 하필 나오자마자 그들을 맞이한 것은 수평선이 펼쳐진, 동정호였다.
그렇다고 다시 진법 안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
남궁류청 일행은 배를 타고 일단 악양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동정호에는 우리를 습격했던 마교도들을 실어 날랐던 동호방 놈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남궁류청과 야율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천마가 그들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동호방주도 아는 게 없었다. 천마가 자신이 탄 배에 있던 동호방도를 모조리 죽였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타오르는 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천산염제와 야율의 관계는······ 뭐라고 할까, 일반 사제 관계라고는 볼 수 없었다.
야율은 천산염제를 스승으로 존경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친네, 영감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라기도 몇 번이었다.
천산염제도 야율이 불손하게 생각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천산염제는 야율을 구하러 왔다. 그리고 나 또한 구했다.
“꼭 ······ 찾아 올게요.”
그 말을 마친 순간이었다. 나는 가까이서 느껴지는 기척에 입술을 깨물었다.
사당을 나가기엔 이미 기척이 사당 문 앞까지 와 있었다. 나는 감탄하면서 동시에 탄식했다.
끼익, 스산하게 느껴지는 경첩소리에 느리게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남궁류청이었다.
남궁류청은 아버지께 급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 거짓이 아닌 듯 다원과 객잔의 일을 거들며 머물렀다.
“안 잤어?”
남궁류청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태연하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널 찾아왔지.”
“·····.”
본전도 못 찾은 질문이었다.
남궁류청이 빈정거리듯 말했다.
“누구 얼굴 보기가 참 힘들어서 말이야.”
나는 표 나지 않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처세술을 익히긴 했지만, 여전했다.
나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답했다.
“무슨 소리야? 매일 같이 식사했잖아.”
한끼 정도 늘 같이 식사한 건 사실이었다. 다만 꼭 아버지가 함께 한 자리였을 뿐.
남궁류청은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는지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른 말을 했다.
“동호방주에게 야율에 관해 물어봤다고 하던데.”
“맞아.”
“동호방주는 중간에 쫓겨나서 어떻게 됐는지 정확히 모를 텐데. 차라리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남궁류청의 입꼬리가 조소하듯이 위로 올라갔다.
“아니면 나한테 질문하기도 싫었던 건가?”
“······.”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너한테 그때 상황을 물어봤잖아. 그런데 넌 제대로 된 설명은 없이 미안하다고만 했고.”
별다른 설명 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하는 서신을받고 내가 뭘 더 어쩔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 남궁류청도 거의 죽다 살아난 상황이었다.
“맞아. 그랬지.”
남궁류청은 위패를 바라보며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천마가 나타나 우리를 공격하던 동호방도, 그리고 남궁세가의 호위들도 모두 죽였어.”
동호방주 놈. 방도들을 두고 도망칠 때부터 알아봤다. 위지백 맹주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걸.
천마가 동호방도를 살육했어도 항의할 생각도 없이 재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쳤으리라.
“그리고 천마가······ 야율에게 몇 가지 안부를 묻던데, 처음 만난 게 아닌 것 같더군. 서로 무척 잘 아는 것 같았어.”
“뭐?”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이게 무슨 소리야? 천마랑 야율이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고?
‘그럴 리가.’
이번 생의 야율의 행적은 내가 안다. 분명 그는 천마를 만난 적 없었을 텐데 어떻게······.
나는 믿기지 않아 물었다.
“네가 착각한 거 아냐?천마가 혼자 아는 척 한 거일 수도······ 있잔항.”
남궁류청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건 아닌 것 같았어. 마치 너랑 따로 대화를 나눌 때 같았거든.”
내 침묵에 남궁류청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둘이 나눈 대화는 정확히는 못들었어. 당시 동호방도 놈들 독에 당해서 내공으로 해독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
“그리고 천마가 야율에게 말했어.
남궁류청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나를 죽이라고.”
“뭐?”
“그럼 야율은 살려 주겠다고.”
“······.”
“나만 없다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남궁류청이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네 생각엔 그게 뭐일 것 같아?”
“······모르겠어.”
뭐지? 전혀 예상 가지 않았다.
남궁류청이 죽으면 야율이 얻을 수 있는 것? 야율이 원하던 것?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그래서, 야율이 뭐라고 했어? 설마······ 설마······.”
남궁류청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이야기해나갔다.
천마는 야율에게 남궁류청을 죽이라 종용했고, 야율이 이리 대답한다.
“그렇게 말해 놓고 내가 남궁공자를 죽였다고 말하고 다닐 거 아닌가?”
“하하, 내가 말한다고 믿어 주겠느냐? 이간질한다 여길테지.”
“······일리 있어.”
그렇게 답한 야율은 남궁류청에게 다가와 –
“하지만 네 말대로 해 주기 싫어.”
이 말과 함께 남궁류청을 배에서 밀어버렸다고.
“네가 하는 제안이 내게 좋은 일일 리 없잖아.”
나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들은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남궁류청은 기다릴 생각이 없는지 바로 말을 이었다.
“왜 서신으로 말을 안 했냐고? 처음에는 이 얘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고는 널 직접 마주 보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찬물을 끼얹은 듯한 느낌에 천천히 정신이 들었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오른 손으로 왼 팔꿈치를 얼마나 꽉 붙잡고 있었는지 정신을 차린 지금 팔이 아플 정도였다.
“아무래도 거리가 머니까. 보기 힘들지.”
“휘주 근처까지 와 놓고 그냥 돌아갔잖아.”
휘주는 남궁 세가가 자리한 곳이었다.
남궁류청이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적잖이 실망하셨지.”
“당시 일이 좀 바빴어.”
“그래. 그렇다 치고. 그럼 악양에서는?”
“악양?”
“그래. 네가 처음 동호방을 공격했을 때, 마침 나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 네 이야기를 듣고 황급히 갔어. 널 도와주려고. 그런데 내가 와 보니 넌 이미 돌아 갔더군.”
“그건······ 네가 오는 지 몰랐으니까. 우연히 어긋난 거야.”
“연아, 난 바보가 아니야.”
지금껏 계속 싸늘하게 날 서 있던 어조가 바람의 미풍처럼 부드러워졌다. 나를 달래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자꾸 날 피해? 아, 이것도 내 착각인 건가?”
남궁류청이 자조하듯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금세 사라졌다.
“아니면,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어?”
“······.”
“그렇다면 미안해.”
“······.”
“이유를 알려 줘. 고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