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나는 어둠에 잠긴 허공을 바라보다가 사당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내 할아버지 산수연에 왔을 때 벌어진 일, 기억나? 명 오라버니가 갑자기 주화입마에 들고, 내가 오라버니를 도와 운기조식하는 내내 네가 지켜줬잖아.”
“그랬지.”
맹회에 참석하려다 급하게 돌아 온 할아버지는 더는 외부인들이 그 사건에 간섭하지 못하게 막았다.
아버지와 절친하 친우의 아들이더라도 결국에는 외부인.
야율과 서하령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외객들의 처소를 좀 더 바깥으로 옮긴 후, 소문이 새어 나가는 것을 엄중하게 막았다.
“명 오라버니가 그렇게 된 건 나 때문이야.”
남궁류청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말도 안 돼. 그건 네 고모가······!”
받아치던 남궁류청이 아차 싶었는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명 오라버니를 주화입마에 빠트린 것 자체는 고모가 한 짓이지.”
“······일부러 알아본 건 아니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머물던 외객들은 가내에 소란이 벌어진 정도로 알았지만, 남궁류청은 소란의 중심에 있었다.
처소를 옮기고 더는 엮이지 않았더라도 뒤에 벌어진 일을 보고 어찌 된 일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눈치가 있다면 말이다.
“나는 내가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 이미 고모가 범인인 걸 알고 있었어.”
남궁류청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 도저히 증거를 잡을 수 가 없었지.”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내원, 그러니까 안살림은 할머니의 권한이었고 할아버지는 이를 존중했다. 시비와 하녀들은 할머니가 단단히 관리하고 있어서 전혀 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할아버지는 내게 관심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조금이나마 신경을 썼더라면. 됐다.’
모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증거가 없었더라도 방도가 없었던 건 아니야. 후일 할아버지가 나를 아끼시게 되고, 그때 말 했더라면 내 말을 무시하지 않으셨겠지. 증거를 찾지는 못하더라도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못하게 고모를 엄중히 감시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애초에 고모가 다시 이런 일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네가 원하는 게 뭐였는데?”
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내공 폐인으로 만들고 아버지를 괴롭게 했으니 나와 똑같은 고통을 맛봐야지 않겠어?”
“······.”
“그래서 일부러 고모를 계속, 계속 자극했어.”
나는 살짝 미소 지었다.
“고모가 한 번 더 똑같은 짓을 저지르도록.”
남궁류청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모의 목표가 명 오라버니가 될 줄이야.”
“그럼······ 네 탓이 아니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오라버니를 부추겼거든. 고모와 대립하도록. 내가 상대하긴 귀찮았으니까. 내가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고.”
백리명과 함께 고모를 자극하면 고모가 더 쉽게 돌아 버리리라는 계산도 존재했다.
그런데 제갈화무가 고모의 칼끝이 향하는 방향을 바꿔 버릴 줄이야.
“명 오라버니는 재수없고 얌체같고 염치도 없는 인간이지. 언젠가 된통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렇게 되길 바란 건 아니었어······.”
내공 폐인이 된 것은 아니라지만······ 백리명은 이제야 간신히 10여 년 공력을 회복했다.
이제 백리명의 나이는 서른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제야 10대초반의 공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평생 죽을 만크 노력하더라도, 앞으로도 그가 주화입마에 빠져 잃어버린 차이는 극복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명 오라버니가 이리 되었으니, 할아버지는 이제 아버지께 가주직을 물려주실 생각이셔.”
나는 고개를 들어 남궁류청을 보았다.
“아버지 자식은 나뿐이고.”
남궁류청의 낯빛이 굳었다. 아마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기 때문일 테다.
“나는 백리 세가를 떠날 생각이 없어.”
“······.”
“그리고 류청, 너는 남궁세가의 유일한 후계자지.”
소부인도 마흔이 넘었고, 내가 아는 한 남궁류청에게 동생이 태어나는 일은 없었다.
“류청, 넌 남궁 세가를 떠날 거야?”
남궁류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궁 세가와 백리 세가의 거리는 정확히 재어볼 수 없지만, 최소 1000리가 넘고 2000리는 채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남궁완 아저씨 두 분은 절친이다. 하나 몇 년간 그 두 분이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있던가?
무공을 익혀 운신이 그나마 자유롭다 하더라도 큰일이 아니라면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먼 거리인 것이다.
지금 남궁류청이나 나나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아직 가문의 일을 제대로 물려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궁류청의 인상이 점차 일그러졌다.
아마도 남궁류청도 알고 있으리라, 현실적인 어려움을. 하지만 별로 자세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아니면, 내가 가문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남궁류청의 턱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것이 보였다.
침묵하던 남궁류청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너는······ 넌 알고 있었어? 내가 널······ 널······.”
남궁류청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은은한 촛불 아래에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좋아하는지?”
남궁류청이 갑자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터질 뻔했다.
곧이어 남궁류청은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말했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거, 언제부터 알았어?”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나도 잘 몰라.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남궁류청을 보며 농을 치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게다가 너는 숨기는 데 재능없어.”
남궁류청이 뭔가 짜증이 난 듯 고개를 살짝 틀었다.
나는 살짝 미소지으며 물었다.
“그러는 류청, 너는?”
“······.”
“언제부터 날 좋아하는 걸 알았는데?”
“······.”
입을 꾹 다문 모습이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한테 질문해 놓고서는?
시선을 피하던 남궁류청이 갑자기 다시 나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날 피한 이유가 내가 널 좋아해서라고? 서로의 가문때문이라는 거야?”
나는 천천히 끄덕였다.
아이의 풋사랑 정도라면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떨쳐 낼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지 않나.
게다가 만나지 않는 사이 다른 인연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저 친우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모습을 보아 역시나 가망 없는 일이었지만.
“그럼 네가 날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 남궁완 아저씨도 소부인도 날아 네가 이어지길 바라는 걸 뻔히 알면서, 다 모른 척 하고 너랑 만나고 웃었어야 한단거야?”
“······.”
남궁류청이 급소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내게 잘해 준 남궁완 아저씨께도 소부인께도 못 할 짓이었다.
“네가 산수연에 왔을 때, 할아버지와 남궁완 아저씨가 너와 내 혼담을 나누던 거. 알고 있었어?”
“······산수연에 갈 때는 몰랐어. 하지만 백리세가에 머물다가 알게 됐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 갔다.
“할아버지와 남궁완 아저씨 두 분은 이미 얘기를 거의 다 끝낸 상태였더. 두 분이 맹회에서 만나고 마지막으로 조율한 뒤 남궁완 아저씨가 내 아버지께 혼담만 넣으면 되는 상황이었지.”
남궁류청이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거기까진 몰랐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도 나중에 알게 된 거야.”
만약, 고모가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할아버지가 맹회에 참석하셨을 테고, 할아버지가 맹회에서 돌아오시고 나서 바로 혼약식을 치르면 돌이킬 수 없게 끝이었다.
‘뭐 마교도의 습격이 중간에 있긴 했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니 이를 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처음 남궁류청과 혼담이 오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놀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았을 때······ 과연 내가 진심으로 반대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때 내심 그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그래서 극렬하게 반대하지 않은 것이다.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되면 어쩔 수 없으니까, 라고 핑계를 대며 받아들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류청, 마교가 맹회를 습격한 일을 제외하고 한번 생각해 봐.”
남궁류청이 무슨 말이냐는듯 나를 보았다.
나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산수연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넌 어쩔 거야?”
남궁류청이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냐는 듯 바로 답했다.
“그야 당연히 막아야지.”
나는 은은하게 웃었다.
“나는 안 막아. 명 오라버니가 독이 든 영약을 먹도록 둘 거야.”
“······!”
“류청, 청아. 나는 시간이 되돌아간대도 똑같이 행동할 거야.”
왜 막나? 고모를 잡아넣을 수 있는 기회를 왜?
백리명? 백리명이 당한 일은 불쌍하고 안쓰럽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어긋나게 된 남궁류청과의 혼담? 그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알아들었을 남궁류청을 향해 다시 한번 못 박았다.
“너와의 혼담은 내게 그만큼의 가치가 없어.”
상처받은 마음이 역력히 드러나는 표정.
그렇게 저 모습을 보는 걸 피하고 싶어서 돌고 돌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내가 널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야.”
나는 남궁류청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하지만 너만큼 좋아하진 않아.”
남궁류청이 침묵했다.
남궁류청이라면, 내 말뜻을 모두 이해했으리라.
처음 내가 말한 것이 내가 가문을 떠날 생각이 없는 이유에 대한 것이라면······.
두 번째는 감정의 깊이의 문제였다. 호감이 있긴 하지만 그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가 고작 나를 향한 호감으로인해 중요한 걸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사랑을 주는 만큼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이와 이어지기를 바랐다.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밤.
바람에 나뭇잎들이 스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어딘가 열린 창문으로 스며든 바람에 내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남궁류청의 손등을 간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