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심지어 지금은 죽은 동호방주에게도 전혀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태고 진인이 말을 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천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낸다는 걸? 무림맹은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이를 다시 수습할 시간도 주지않고 공격했다면 쉽게 쓰러트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일세.”
“아니요. 그렇게 쉽진 않았을 거예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를 죽인다면 더 귀찮은 대적자가 나타날 거라 여겨 살려 놓았듯이, 어떠한 계획이 있었을 터.
“음? 빈도의 의견에 이렇게 정면으로 반대하는 이는 오랜만일세. 당돌하구먼.”
아차차.
태고 진인이 보기에 나는 새파랗게 어린 아이일 터. 그런데 정면으로 부정하듯 말했으니 기분나쁠 수도 있었다.
여기서 말을 잘해야 한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태고 진인을 바라보았다.
“제 할아버지도, 남궁 세가주님도 계시고, 게다가 여기 이렇게 태고 진인님도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데 백도 무림이 쉽사리 무너질 리가요?”
태고 진인이 웃음기 남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부친을 닮은 줄 알았더니 또 이런 걸 봐서는 전혀 아니로구먼.”
확실히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역시 세상에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설사 천하 제일인이어도 말이다.
문득 태고 진인 옆의 제갈화무와 눈이 마주쳤다.
제갈화무는 살짝 미소 짓고는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의례적인 태도였다.
“천마의 부상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거라네. 격에 입는 부상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다시 태고 진인을 바라보았다.
“격이요?”
“무의 극을 추구한 끝에 무엇이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우화등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태고 진인이 살짝 흥미로운 듯 나를 보았다.
“세가 출신의 사람이 이리 답하는 건 처음 보는구나.”
솔직히 나도 그동안 전설에 가까운, 택도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더랬다. 천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격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어떤 것을 말하는 건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내가 본 천마는 전혀 사람 같지 않았다. 죽지 않고 시간을 돌리고······. 그 어떤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천마가 신선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충 그에 준하는 좐재가 아닐까.
그리고 정말 신선이 있다면 하늘에서 천마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얽매고 있는 그 자들이 신선이 아닐까.
그냥 내 생각일 뿐이었다.
“천마의 목표는 우화등선일까요?”
“그건 빈도도 알 수 없군. 다만 우화등선을 위해서는 속세의 미련을 떨쳐내야 한다 배웠다네. 허나, 그간 천마의 행동은 속세에 관심이 아주 지대해 보이지 않던가?”
“······그랬죠.”
“천산염제가 쇠락하고 있다 하여도 천하 절대 고수로 꼽히던 이였네. 그이가 죽음을 각오했는데 천마라도 쉽진 않았을 걸세.”
태고 진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근 100년을 살아오며 느낀 것은 세상에 영원불멸이란 없다는 거라네.”
“그러니까 태고 진인의 말씀은······ 천마도 쇠락하고 있다는 건가요?”
태고 진인이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그러니 더 이해가 안 되지 않는가? 쇠락하는 천마가 제 격에 타격을 입었음에도 자네 하나를 처리하지 않고 물러 가다니. 고작 얼굴 한번 보자고? 일의 경중이 맞지 않지. 천마만 손해 보는 일이란 말일세.”
태고 진인이 허공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천마가 어린아이의 성품과 자질에 감복해 제 손해를 감내하고 살려 둔다? 터무니없는 얘기.”
“······.”
“분명 자네가 살아 있는 게 천마에게 이득인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네. 그래서 궁금했네. 자네를 살려 둔 이유가 무엇일지.”
그때 갑자기 제갈화무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보니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태고 진인이 진지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모르겠군.”
갑자기 팽팽하던 방 안의 긴장감이 맥없이 풀렸다.
태고 진인이 싱겁게 웃었다.
제갈화무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백리 소저는 앞으로 천천히 확인할 수 있으실 테니, 그럼 오랜만에 만난 친우와 할 얘기가 있는 저를 위해 이만 자리를 비켜 주시지요.”
제갈화무가 태연하게 태고 진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지금 보니 제갈화무의 안색이 아까보다 더 창백해진 것이 피로해 보였다.
태고 진인이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픈 사람에게 비키라 할 수는 없으니 빈도가 나가야지 별 수 있겠나?”
“살펴 가십시오. 배웅은 안 합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얼떨떨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몸이 좋지 않다고 한들, 제갈 세가주라고 한들, 태고 진인에게 이렇게 말해도 되나?
태고 진인과 제갈 세가주의 연배 차이가 몇인데. 태고 진인이 혼인했다면 제갈 세가주만한 손자가 있을 연배였다. 제갈화무의 태도는 누가 봐도 불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태평한 태도로 방을 빠져나가던 태고 진인이 방문 앞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아 참, 백리 소저, 내가 맹에 있는 건 아직 비밀이니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고 진인이 방을 빠져나가고 잠시 후 방은 조용해졌다.
나를 돌아보고 방긋 웃은 제갈화무가 제 옆으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차도 안 내줬네.”
태고 진인에게 말하는 말투와 비교해 확연히 부드러워진 어조였다.
나는 창백한 안색을 보고 말했다.
“피곤하면 다음에 얘기해.”
“여전히 상냥하네. 괜찮아. 너를 만나기 전에도 계속 회의가 있어서 조금 피곤한 거니까.”
나는 좀 전까지 태고 진인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제갈화무가 내 앞의 찻잔을 치우고 새 찻잔을 내왔다.
“마지막으로 본 게 3년 전인가?”
“그쯤 됐지.”
서로 간 근황을 간단하게 주고 받고 난 후, 나는 바로 물었다.
“천마지보, 내가 봐야하는 이유라도 있었던 거야?”
제갈화무가 긍정하듯 투덜거렸다.
“하여간 노친네 눈치는 빨라서는······. 이제 우승하는 수밖에 없겠네. 본인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여기나 봐.”
“노친네라니, 말이 좀 험하잖아. 그리고 내가 왜 그걸 봐야 하는데?”
“궁금해?”
나는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궁금하면 우승해서 확인해, 라고 말하면 가만 안 둔다.”
“······.”
제갈화무가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말을 돌리듯 말했다.
“천마가 왜 무림맹을 습격했다고 생각해? 무당파는 뭐 때문에? 그냥 세력을 약화하려고?”
무당파는 당시의 습격으로 장문인이 크게 다쳤다.
제자들도 상당수 부상을 당했고, 다음 장문인이 될 거라 생각한 가장 유망하던 후계자는 다시 는 검을 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뒤로는 더 알아볼 수 없었다. 무당파가 봉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번 비무 대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네 말은 천마가 천마지보를 찾자고 무당파를 습격했다는 거야?”
제갈화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어가는 제갈 세가를 습격한 이유 또한 그게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서지. 겸사겸사 내가 죽으면 모두 사라질 제갈 세가의 서고 또한 불태워 버린거고.”
그런데 결국 태고 진인이 가지고 있었다니.
나는 의아해 물었다.
“몇 번이나 회귀한 천마가 천마지보가 어디 있는지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제갈화무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천마가 회귀한다는 사실을 아는데 매번 같은 곳에 천마지보를 숨겨 두겠어?”
“······.”
그게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제갈 세가가 천마와 그 오랜 세월 다툴 수 있었는지 새삼 또 알게 되었다.
그게 어떤 방법이었든, 제갈 세가는 천마가 알아내지 못하도록 천마지보를 매번 다른 곳에 숨겼고, 이번에는 곤륜파의 태고 진인에게 숨겼다는 말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내가 물었다.
“태고 진인이랑···· 가까운가봐?”
서로 농담을 나누고 축객령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는 것을 보아 깜짝 놀랄 만큼 친밀해 보였다.
“내 조부와 가까웠거든.”
제갈 화무가 가볍게 웃었다.
“태고 진인은 내 친부와 친조부까지 다 만난 적 있으셨거든. 태고 진인 정도 되는 고수라면 사소한 습관, 말투 같은 걸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지. 눈치도 빠르니.”
나는 미간을 좁혔다.
“태고 진인께서 제갈 세가의 비밀을 아신다는 말이야?”
“정확히는 모르지만, 태도를 보아선 나를 내 조부, 선선대 제갈 세가주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친우가 그리울 나이시지 않겠어? 맞춰 드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
제갈 세가주는 기억을 대대로 물려받는다.
제갈화무는 그 물려받은 기억들의 봉인을 푸는 것을 무척 경계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제갈 세가로 돌아간 이후 제갈화무는 두 번에 걸쳐서 폐관 수련을 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친밀하게 대하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 맞은편에 있는 제갈화무가 내가 알던 제갈화무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니까. 조심하도록 해.”
“아, 뭐라고? 잠깐 못 들었어.”
제갈화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가 살짝 웃었다.
“너도 알다시피, 천마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하늘의 감시를 피해야 하기에. 그렇다면 한 번의 움직임에 최대한의 이득을 얻으려 들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천마지보가 함께 있는 이 비무대회. 이건 천마가 함정이 있는 걸 알면서도 올 수밖에 없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미끼니까.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응.”
과거 나는 백리의란을 잡아내기 위해 내 스스로를 미끼로 쓰려고 한 적이 있었다.
제갈화무는 이를 원치 않아 교묘하게 백리의란의 목표를 백리명으로 바꿨다. 그리고 지금은 천마를 끌어내기 위해 나를 미끼로 쓴다고 말하고 있었다.
태고 진인이 제갈화무를 그의 조부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되레 반대였다.
더는 그가 내가 알던, 누이의 죽음을 씁쓸하게 여기고 선대의 기억들을 물려받은 사실을 혐오하던 제갈화무가 아니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기억은 하고 있으려나?’
내게 고백했던 일들.
차라리 잊는 게 피차간에 좋은 일이었다.
‘이렇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제갈화무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