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아무 생각 없이 비무장에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야율이 진기를 유형화할 때마다 그 구조를 유심히 살폈다. 진기 구조부터 검기, 그리고 그 몸을 두른 호신강기까지. 아주 세밀하게.
그리고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내 공력으로 야율의 진기에 충격을 주었다. 야율의 진기 구조를 뒤흔든 것이다.
한 번으로는 불가능하다면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결국, 이렇게 누적된 충격에 야율의 진기가 그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내려 쥐고 말했다.
“버티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을 텐데.”
“······.”
‘하, 짜릿해!’
나 심보가 못된 건가?
입꼬리가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올라갔다.
물론 지금 야율이 나를 약간 봐주고 있기도 했다.
몰아치며 공격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살초를 내게는 휘두르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에게 살초를 휘두르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본래사초를 잘 쓰지 않는 편이었고, 야율은 본래펼치는 검의 초식마다 살초가 묻어 나왔다.
나는 방긋 웃어 보였다.
“걱정 마. 내가 이래 봬도 주화입마에 관해서는 아주 빠삭하거든.”
“······.”
야율은 입술에 핏자국을 묻힌 채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안 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네가······.”
그러고는 또다시 말을 멈췄다. 몇 번 말을 하려다가 다시 무표정한 낯이 되었다.
금새 야율은 평소 늘 두른 무기질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점차 검붉은빛의 눈동자 색이 채도가 높아지듯 선명해졌다.
「이 수까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전음하는 야율의 주변에 검붉은 기류가 은은하게 번져 왔다.
완벽히 나뉘진 않았지만, 왼편은 흑색에 가까웠고 오른편은 적색에 가까웠다.
그그그극.
「······보이고 싶지 않은 수면 그냥 안 보여 줘도 되는데. 」
「궁금해서.」
야율의 입술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핏자국과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네가 어떻게 막을지.」
야율의 양팔을 타고 흑빛 기운과 적빛 기운이 각각 검에 맺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흑룡과 적룡이 검을 타고 올라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전음이 들려왔다.
「조언하자면, 막을 생각 말고 피해.」
야율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야율이 휘두른 힘 자체는 전혀 강대한 느낌이 없었다.
이게 절기라고?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움직임만큼은 매우 기이했다.
두 기운, 흑룡과 적룡은 서로의 꼬리를 물 것처럼 맹렬히 싸우는 듯한 모양새였다. 마치 서로 간에 흡수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저런 기의 운용 방법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공격이 날아오는 찰나 간에 수많은 사고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 기운을 갈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는 검을 옆면으로 틀어쥐었다.
하얗게 빛나는 내 검이 야율의 기운과 맞부딪쳤다. 그리고 닿는 순간.
내 진기가 훅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검에 맺혔던 검기를 흡수하여 광망조차 순간 사라질 정도였다.
‘이게 뭐야?’
검기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황급히 복구하였으나 빨아들이는 힘은 전혀 줄지 않았다.
심지어 내 진기뿐이 아니었다. 주변의 자연지기마저 더 게걸스럽게 흡수하며 조용히 파괴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방식.
‘어떻게 해야하지?’
야율의 손을 떠난 공격. 그렇다면 내가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해야지.’
야율이 기운에 정신을 집중한 순간.
“흡!”
절로 신음이 나올 정도로 머리가 깨질 듯한 아픔이었다. 폭풍우 속에 머리를 들이민 기분이었다.
츳! 츠읏! 츠츳!
야율의 기운들은 내가 자신들의 고삐를 쥐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날 선 기운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으며 발광하는 말의 고삐를 간신히 쥐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건 막을 수 없다.
폭풍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건 더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꼈던 이 기운이 끼칠 영향도.
‘돌았나? 이런 걸 여기서 날려?’
제어를 포기했다. 대신 주변의 기운들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고삐의 방향을 틀었다.
울컥 속에서 무언가 치솟는 걸 억누르면서, 그대로 비스듬히 쳐냈다.
대각선 방향의 하늘로 내가 막아낸 야율의 기운이 높게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파지지직.
허공으로 날아간 기운은 이렇게 사라질 생각 없다는 듯 부풀어 올랐고.
금안에 이를 중심으로 허공에 마치 호수에 돌을 던져 만든 듯한 동심원이 퍼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마치 공간이 휘어지는 느낌이었다.
“오.”
나는 재빨리 검막을 펼쳤다.
쿵!
······콰아아아아앙!
마치 벽력탄 다발이 터진 듯한 무지막지한 충격파에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으아악!”
“몸을 숙여!”
우지끈!
뭔가 무너지고 박살 나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살려 줘!”
“아악!”
본래 비무 대회를 관장하다 눈먼 공격이 날아가는 경우는 꽤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한 맹원들도 있었으나 모든 공격을 다 막아 줄 수는 없었다. 다치는 이들도 왕왕 나왔으나, 이런 일은 생각 못 했을 터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 속에서 검막을 거두었다.
팟!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파편들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귓가를 스치는 광풍에 모든 소음이 차단될 정도였다.
난반파된 비무대를 박차고 내달렸다.
예기치 못한 충격에 비무장은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겨우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충격파에 박살 난 비무대의 흙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너덜거리는 검은 무복의 청년 목덜미에 새하얀 검이 닿아 있었다.
누군가 외쳤다.
“이겼다! 백리 소저가 이겼어!”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충격파보다 더 크게 귓전을 때리는 듯한 함성이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며 소리쳤다.
“내가 뭘 본 거지?”
“이런 비무가 있던가? 내 대대손손 전할 게 생겼군!”
“백리 소저! 이쪽 한 번만 봐 주시오!”
흥분한 관중과 달리 무림맹 사람들의 표정은 그러지 못했다.
붉은 차양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연신 수염을 쓸어내리거나 심각한 얼굴로 누간가와 전음을 주고받는 듯 보였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있었다. 나와 야율의 실력이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의 패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너무나 선명하기에.
심판관은 어디 갔는지 공손방 총사가 비무대에 올라와 소리쳤다.
“백리 소저 승! 이번 천하제일 비무 대회의 우승자는 백리 세가의 백리연 소저요!”
하지만 공손방 총사의 목소리는 아직도 퍼지는 함성에 묻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야율의 목에 겨누웠던 검을 천천히 거두었다.
입가의 핏물, 흐트러진 진기를 뺀다면 야율의 모습은 나에 비하면 멀쩡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자신의 공격이니 당연히 알겠지. 이런 피해가 있을 줄. 그렇다고 해도이런 공격을······.’
생각이 가닥가닥 끊어졌다. 누군가 내 뇌를 주물주물 빨아낸 느낌이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것이 검을 거두는 행동도 그냥 수없이 연습한 대로 움직인 느낌이었다.
그때 비무장에 올라와 있던 공손방 총사가 갑자기 질문했다.
“······혹시 둘이 아는 사이오?”
나는 잠시 야율을 바라보았다가 답했다.
“그냥······ 미친놈이에요.”
“······아. 음. 그렇구려.”
공손 총사가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미묘한 분위기 속에 홀로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상황에 웃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야율이었다.
나는 저것 보라는 듯 관자놀이 옆을 집게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빙글빙글 돌렸다.
공손 총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둘 다 이만 내려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소. 잠시 후에 우승 수여식이 있을 것이오.”
고개를 끄덕인 순간 주르륵 코 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상 코피였다.
소매로 콧날을 누른 다음 점혈했다. 코피를 흘리는 지도 모르고 쓰러지던 어린아이는 이제 없었다.
서 있기 피곤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잠시 시야가 비틀 흔들린 순간 양팔이 붙들리는 느낌이 느껴졌다.
“괜찮으냐?”
“괜찮아?”
왼쪽에는 아버지 오른쪽에는 남궁류청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둘이 올라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야율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둘 다 나를 신경 쓰느라 야율은 전혀 신경 쓸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길에 남궁류청이 나를 붙잡은 손을 놓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괜챃아. 조금 쉬면······.”
말하던 중간 울컥 속에서 핏물이 치솟는 느낌에 입을 꾹 다물었다.
남궁류청이 말했다.
“남궁가 전각에 좋은 요상약이 있어. 가져다줄게.”
“신경 써주어 고맙구나. 허나, 백리가에도 요상약은 충분하네.”
그때 또 언제 올라왔는지 모를 남궁완 아저씨가 남궁류청을 보며 사납게 웃었다.
“네가 지금 그쪽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아주······ 두고 보자.”
주먹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하는 것이 분명 한 대 때리고 싶은데 보는 사람이 많아 체면상 참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무대를 내려오는 사이 야율 또한 어느새 비무대 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