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이, 이기어검.”
누군가 중얼거렸다.
공중에 떠 있던 도가 사내의 목덜미를 점차 파고들었다. 살결을 살짝 누르다 이내 핏, 실선이 그어지고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
적막 속에서 사내는 숨조차도 내쉬지 못했다.
챙, 챙, 챙. 흑도들이 검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흑도들 너무 객잔 손님들을 보았다. 아닌 척 힐끗거리던 이들은 이제 아주 부릅뜬 눈으로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들에게 말했다.
“마저 식사하세요.”
시선들이 일제히 탁자로 향했다.
하나 젓가락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관심을 끄라는 의미였으나, 이걸로 충분했다.
흑도 한 놈이 급히 말했다.
“저희는 그저 의뢰를 받았을 뿐입니다. 여자 남자로 이루어진 일행을 잡아서 데려오면 큰 사례를 하겠다고!”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점소이를 향해 손짓했다.
“거기, 잠시 이리로.”
“저, 저요?”
거기란 소리에 점소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쳤다. 붉게 부어올랐던 뺨과 눈은 벌써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있었다.
점소이는 정말 자기를 부른 사실을 알고 잔뜩 겁에 질린 채 주춤주춤 다가왔다.
“왜 맞았나?”
“손님, 아니, 대, 대협의 객실이 어디냐고 물어봐서 그건 왜 물어보냐고 했다가······.”
“하.”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사내를 보았다. 내 웃음에 덜덜 떨었다.
“마땅한 질문을 했을 뿐인데 질문 좀 했다고 사람을 그렇게 개패듯 해?”
“······.”
“뭐 해?”
나는 점소이를 향해 눈짓했다.
“사과 안 해?”
그 순간 사내 뒤쪽의 흑도 놈이 욱하는 낯으로 점소이를 노려보았다.
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탁자 위 통에서 젓가락을 꺼내 집어 던졌다.
일부러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경악한 흑도 놈이 눈을 질끈 감는 것과 동시에 젓가락이 그의 눈앞에 멈춰 섰다.
놈이 감았던 눈을 뜨로 젓가락을 확인하자마자 털썩 무릎 꿇었다.
“죄송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줄줄이 점소이에게 사과했다.
챙그랑.
허공에 떠 있던 도와 젓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함부로 도망가려 들지 않았다.
놈들의 자백으로 그들이 근방의 흑교방이라는 흑도 놈들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교가 건 현상내역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마교가 현상금을 건 것은 내가 천라지망을 탈출한 직후였다.
그리고 저놈들이 멍청해서 혹은 내 비무 대회나 천라지망의 소문을 듣지 못해서 잡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알면서도 제정신을 잃을 만큼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마교는 돈이 매우 많았다.
‘아무리 돈이 많다지만 그래도 이건······.’
삼대는 무슨, 이 정도라면 한 지역의 왕이라도 될 수 있을 금액이었다.
내게 이 정도의 현상금이 걸렸다니.
심지어 마교가 직접 마교라는 이름을 걸고 공언했다.
문파의 이름을 걸었을 경우 그건 명예와 직결되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한 바를 지킨다.
미치광이 종교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천마성교가 제 교의 이름을 걸었으니 그 돈을 준다는 건 믿어도 좋았다. 눈이 돌아가는 것도 당연했다.
흑도는 당연하고 정사지간의 문파들조차 안면 몰수하고 나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용모파기도 신경쓰지 않은 채, 무공을 익힌 남녀 일행이면 일단 끌고 갔다.
남녀 일행이 무엇인가? 그냥 여자 한 명만 돌아다녀도 일단 검문하려 들었다. 이미 작은 촌의 객잔까지 살피던 눈이 있어 일단 잡고 보려 들지 않았는가.
흑교방놈들이 특히 멍청해서 이번에는 쉽게 넘어간다고 치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입을 막는 건 불가능해.’
흑교방을 비롯해 이 객잔 사람들을 몰살하는 게 아니라면 오늘이 지나기도 전에 내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퍼질 것이다.
그러면 이 근방에 나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곤란한데.’
마교만이라면 그래도 도망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어마어마한 현상금이라면 흑도는 당연하고 정사지간의 문파들, 심지어는 관까지 은밀하게 협조할 것이었다. 그야말로 돈으로 만든 천라지망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 흑도면 하오문과도 연관이 있겠지?”
개방이 백도의 정보 단체라면 흑도에게는 하오문이라는 정보 단체가 있었다.
“그, 그게, 하오문과 줄이 있을 정도의 규모는 아니라.”
나는 탁자 위의 젓가락 통을 쥐었다.
“정말 기억 안 나?”
사내가 재빨리 말했다.
“저희가 경호하는 주루에 하오문과 연결된 사람이 있습니다.”
“종이랑 붓 있나?”
고개를 끄덕인 나는 점소이를 향해 물었고, 점소이가 후다닥 붓과 빈 장부를 뜯어 내밀었다.
“······.”
“······.”
침묵의 시선 속에서 나는 종이에 먹으로 무언가를 쓱쓱 그려 내려갔다. 내가 뭘 적는지 궁금한 표정이었지만 감히 살펴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적어 내려간 걸 사내의 품에 던지듯 넘겼다.
“당장 하오문에 가서 이거 주고 내가 말하는 대로 전해. 하오문이라면 내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테니.”
“마, 말씀하십시오.”
“마교가 나를 잡으면 주겠다는 현상금의 정체는 천마대총의 보물이고, 그들이 내게 고액의 현상금을 건 이유는 내가 전설로 내려오던 천마대총의 위치를 천마지보에서 알아냈기 때문이라고.”
“······.”
흑도 놈들의 멍청한 표정이 매우 웃겼다.
적막에 잠긴 객잔 안에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적은 게 천마대총의 위치를 적은 지도라고.”
* * *
투두두두두두둑 –
썰물 빠져나가듯 손님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객잔은 고요해졌다.
다시 굵어진 빗줄기가 지붕에 세차게 부딪히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내가 쫓아낸 것이 아니다. 내 이야기를 엿들은 객잔의 사람들이 한시라도 빨리 소식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떠난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다급하게 달려 나갈 때유일하게 가만히 있던 기척에게서 살짝 잠긴 듯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여간 착하다니까.”
나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 보았다.
“보물 지도도 직접 그려주고 말이야.”
다 알면서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흑교방은 하오문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퍼진 소문을 듣고 달려온 이에게 뺏기면 다행, 운이 나쁘다면 그대로 죽임당하고도 남았다.
하오문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없을 수도 있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목적은 소문이 퍼지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그걸 흑교방 놈들이라면 모를까, 야율이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야율을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몸은?”
야율이 미미하게 웃었다.
“누가 도와줬는데. 괜찮아.”
피를 토한 야율을 보고 처음에는 기겁했고, 다음에는 걱정했고, 상황을 깨닫고 난 후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금제를 건드리다니!
심지어 뭐 제대로 다 말하지도 못했다. 금제를 깨트리지도 못했고. 그냥 자살시도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야율이 정신을 차리면 제대로 화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순한 눈을 보니 차마······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숨을 쓸데없는 데 걸지 마.”
“쓸데없······.”
“한 번만 더 금제를 건드려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굴면 네가 죽든 말든 버려두고 나 혼자 갈 거야.”
야율이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네가 그럴 수 있을 리 없다는 속내가 읽혔다.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가늘게 접힌 눈이 기뻐 보였다.
“하여간 착하다니까.”
모르겠다. 정말.
정말 야율을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여기서 떼어 놓는 게 나았다.
그가 제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나는 알지 않는가?
그러니 지금이라도 제대로 마음을 접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곁에서 떨어질 바에는 죽어 버리겠다는 자를 내가 어쩔 수 있겠는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1층으로 내려왔는지 모를 야율이 내 손을 살짝 쥐었다.
“나는 괜찮아.”
그래. 변명이었다. 나도 혼자서는 외롭고 무섭고 버거웠다.
“후우······.”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