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쿵-!
둔중한 소음이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이 울렸다.
나는 어서 말하라는 듯이 제갈화무를 바라보았다. 천마의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제갈화무가 갑자기 내게 천마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을테니까.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제갈 세가가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천마는 본래 가난한 농가의 자식이었어. 평생 죽을 때까지 쟁기만 쥘 운명이었지. 그들의 부모가 도적들에게 죽기 전까진.”
“저런.”
나는 전혀 안타깝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제갈화무가 물었다.
“그 도적들이 누구였다고 생각 해?”
“글쎄. 세상에 널린 게 도적 아닌가?”
지금 이 천마대총도 털어 버리려는 도적들이 강호인의 탈을 쓰고 몰려오고 있지 않은가? 따지자면 나도 다를 바 없었다.
제갈화무가 말했다.
“사실 도적의 탈을 쓴 강호인이었어.”
“······.”
“난세가 벌어지면 강호인들이 도적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지. 배운 게 검밖에 없는 자들은 먹고사는것도 검으로 해결하려 들잖아?”
“······.”
“어느 추운 겨울 날, 검을 든 스무명의 사내들이 농가에 쳐들어 와 식사를 마련하라고 했지. 농가의 아낙네는 가지고 있는 식량을 털어 식사를 마련했어. 그렇게 떠나고, 보름 뒤에 또 찾아왔지. 아낙네는 또 식량을 털어 식사를 마련해줬어. 그런데 얼마 뒤 검을 든 다른 사내들이 찾아왔지. 그들은 괴롭히는 자들을 막아줄 테니, 대신 식량을 달라고 했지.”
쳐들어온 놈들이나 지켜주겠다는 놈들이나 농부들에겐 똑같이 도적이었다.
“결국, 보름 뒤 처음 찾아온 도적들이 또 찾아왔고, 이젠 이듬해 파종을 위한 씨앗뿐이라 음식을 드릴 수 없다고 거절했지. 그러자 돌아온 건 새파란 칼날이었지. 그들은 남은 씨앗까지 다 털어먹고 떠났어. 아직 열 살 난 애를 내버려두고.”
접선을 펼친 제갈화무가 노래하듯 말을 이어갔다.
“쌀알 한 톨 생산 못 하는, 자원이나 축내며 검이나 휘두르는 비생산적인 폭력배들. 검 좀 휘두룰 줄 안다고 제 입과 몸에 걸치는 모든 걸 생산하는 자들을 짓밟지. 대체 자기들이 뭐라고?”
“······.”
“살아남은 천마는 운 좋게 무공을 익혔고, 오성도 뛰어나 빠르게 강해졌지. 하지만 그는 무공을 익힐 수록 허무하다 느꼈어. 마침내 천하제일인이 되었으나, 허무감은 더 깊어졌지.”
“어째서?”
“같은 노력을 해도 누구는 강해지고 누구는 실패해. 천하제일인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문도, 내공도, 노력도 아니야. 재능. 오로지 타고난 재능 하나로 모든 게 갈리지. 대체 누가 재능을 정하는가? 누가 강자를 정하고 약자를 정하는가?”
“······.”
“이건, 불공평하다.”
“······”
“안 그래?”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단전 폐인이었을 때 당하였던 수많은 무시.
숨 쉬듯 나를 후려치고 버러지를 보듯 멸시하던 자들.
제갈화무가 말을 이었다.
“천마는 그런 세상을 증오했어. 불공평한 세상. 불쌍한 약자들. 그 증오가 발목을 잡았다고 할 수도 있고 스스로 포기했다고도 볼 수 있지. 그렇게 천마는 우화등선을 목전에 두고 다시 인세로 내려왔어.”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천마가 그런 이유로 우화등선을 포기했다고?
오늘 들은 말 중에 제일 믿을 수 없는 말을 꼽자면 이말이 될 터였다.
제갈화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마성교를 세우고 자신을 천마라 칭하였지. 순식간에 천하를 일통한 그의 목적은 단 하나.”
“······.”
“무공 하나만 믿고 위세를 부리는 것들. 살육과 폭력을 일삼는 자들을 없애는 것.”
제갈화무가 목소리를 죽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강호인들을 모조리 말살하고, 세상의 무공을 모조리 불태우는 것. 그게 천마의 목적이야.”
어이가 없어서 잠시간 말을 잃었다.
이어서 천천히 분노가 차올랐다.
“그러니까 네 말은 천마는 정신 나간 놈이다?”
접선을 접은 제갈화무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얼마나 깊은 사연이 있는가 했더니. 고작해야 이런 이유였다니. 대체 왜 결론이 이렇게 나나?
하지만 소름 끼치는 목표이기도 했다.
모든 강호인을 죽인다?
모든 무공을 없앤다?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표를 지녔으니 미치광이가 되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그래서 강호인들에게 제 부모가 죽었으니 저는 다 죽이고 다녀도 된다는 건가?”
심지어 무공을 익힌 자만 죽인 것도 아니었다.
저 미치광이 같은 계획에는 나처럼 단전폐인이 되어 전혀 무공을 익히지 못한 이들의 무수한 희생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무공이란 게 전혀 없는 세상에서도 살아보았다.
하지만 그 세상도 돌아가는 건 다를 바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뉘는 보이지 않는 계급들. 그리고 피할 수 없었던 폭력.
‘거기서 나는······ 나는······.’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하던 희미한 기억 속에서 갑자기 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중독된, 내공의 흐름을 막아버리는 독.
무공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독.
나는 깨달음을 얻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 독을 만들었구나?”
제갈화무가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독의 존재를 알았을 때, 나는 마교가 왜 그런 독을 만들었는지 의문을 가졌다.
독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할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독을 만든 천마마저 당할 수 있음에도 왜 독을 만들고 해독제를 만들지 않았는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은 해독제가 없다는 천마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찾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해독의 방법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데 천마의 목적이 제갈화무의 말처럼 모든 강호인의 말살, 무공의 소멸이라면.’
그렇다면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해독제는 없었다. 천마는 해독제를 만들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빌어먹을.”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왜······!’
다시 분기가 치밀었다.
그런 독을 만들어서, 하필! 하필 한 짓거리가 내 아버지를 중독시키는 거라니!
단언컨대 내 아버지만큼 무공으로 약자를 지키려고 한 자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천마는 그냥 미치광이나 다름없었다.
제 목적을 위해서 제가 가장 혐오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마 저는 이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미치광이들은 늘 그런 식으로 자기변호를 하곤 했으니.
그래도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분명 천마는 이리 말했다.
-너만 없다면 백리의강은 내가 어떻게 방해하든 끝내 독을 해독하여 내 앞길을 막아섰지.-
-그 외에는 한 번도 해독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해독에 성공할 방법은 있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희망을 걸었다.
한 발 더 가까이 내게 다가온 제갈화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천마의 목적에 동의한 게 바로 나, 우리 가문이었지.”
순식간에 생각에서 빠져 나와 말했다.
“뭐라고?”
“왜 너도 나와 천마가 기억을 대대로 물려받는 게 무척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 있잖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강대한 적이 상대하려다 보니 비슷하게 닮아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제갈 세가는 현재 마교에게 가장 견제를 받고 실시간으로 죽어 가는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제갈화무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네 생각이 맞아. 내가 기억을 물려주는 것과 천마가 계속 살아가는 방법. 둘 다 같은 방식이야. 같은 술법을 쓰고 있지.”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제갈화무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이걸 역천의 술법이라고 칭했지.”
하늘을 거스르는 술법.
강호인의 말살이라는 터무니없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한 힘도 필요했지만, 긴 세월도 필요하다는 게 요지였다.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이 왔다.
제갈화무가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 어떻게 멀쩡해 보이는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제갈화무의 말대로 그가 마교를 세우는 데 공헌했다면 천마대총의 위치를 아는 것도, 천마대총에서 주는 이 기이한 힘을 흡수하는 것도 모두 말이 되었다.
또한, 왜 천마가 제갈세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멸문시키려고 했는지도.
“그래서? 왜 천마와 갈라진 거야?”
제갈화무가 접선을 쥔 채 천마대총을 둘러보았다.
“처음 천마의 계획에 찬동했던 가주는 생각했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뭘? 부작용 때문에?”
제갈화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천마가 변했거든.”
“······.”
“악을 근절하고자 더 큰 악을 만들어 냈구나. 크게 후회했지.”
천마가 변한 게 아니고 깨달은 거겠지. 강호인을 죽이고 무공을 없앤다는 계획이 얼마나 미친 목표인지.
나는 속으로만 그리 생각하고 제갈화무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천마를 배신하고, 무림맹을 만든 건가?”
“내가 천마를 배신한 게 아니고 천마가 나를 배신한 거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이놈이나 저놈이나. 미친놈들 뿐이로군.
초대 제갈 세가주도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다. 제갈화무가 왜 제갈세가를 싫어하고, 조롱하는 듯한 태도로 살아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천마가 왜 천마대총의 위치를 퍼트리는 나를 내버려 두었는지, 왜 제 교도의 목숨에 관심 한 자락도 없이 방치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모든 강호인을 몰살하겠다는 목적을 지닌 천마에게는 제 교도들 조차 그저 잠깐 쓰는 버리는 패였을 뿐, 결국 없애 버려야 할 종자로 보였을 것이다.
지금 천마대총 앞에서 무림맹과 마교가 충돌해 많이 죽으면 죽을 수록 천마는 제 목적을 이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마교도들이 그렇게 외치는 마교천하는 백도는 물론 마교도들이 모조리 죽어버린 세상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