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9)
59화
* * *
남궁류청이 도망쳐 버렸으니, 자연히 수련은 끝났다.
내 처소로 돌아가려는 나를 서하령이 쫓아왔다.
“나 네 처소 구경시켜 줘!”
“별로 볼 거 없는데. 어차피 남궁 세가에서 내준 방이라. 손님 방은 다 비슷비슷하겠지.”
“그래도!”
“아침에도 왔다고······.”
그때 내 눈에 서하령의 손목이 보였다.
“그래. 가자.”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갔을 때 네 처소 구경하고 싶었는데, 네가 자는 거야. 거기다 그 남자애가 날 계속 째려봐서, 그래서 조금 기다리다가 나왔어.”
원래 집주인이 자고 있는데 멋대로 들어오면 안 된단다······.
말하는 사이 처소에 거의 도착했다.
중문을 넘어간 나는 놀라 멈춰 섰다.
“야율?”
나를 배웅할 때 모습 그대로였다. 어제도 이러고 기다리더니 오늘도 기다린 모양이었다.
야율이 내 옆의 서하령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무심결에 옆을 돌아보자 서하령이 내 등 뒤로 숨어 있었다. 하지만 서하령이 나보다 키도 덩치도 더 컸기에 별 소용은 없었다.
“어······ 둘은 아침에도 봤지?”
야율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살짝 입을 열었다 닫더니 먼저 휙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 팔을 부여잡은 서하령의 손등을 두드리며 앞장섰다.
“들어가자.”
처소에 들어와 두리번거리던 서하령이 말했다.
“되게 어두침침하다.”
“내 눈때문에.”
내 방은 창문마다 짙은 남색 천으로가려 들어오는 빛을 줄이고 있었다.
“되게 잠 잘 올 것 같아.
아! 이래서 네가 늦게까지 자는 구나?
게으름벵이!”
“······아직 여독이 안 풀려서 그런 거거든.”
“여독이 뭐야?”
“여행으로 생긴 피로?”
내가 눈가리개를 풀자 서하령이 신기하다는 듯 가리개를 가져가 살폈다.
“이거 쓰면 괜찮아?”
“응.”
“나도 써 볼래!”
“······그 전에 손목부터 보자.”
“뭐? 나 괜찮아!”
나는 무시하며 서하령의 손을 잡아당겼다. 야율이 잡아 생긴 손목의 멍이 아직도 선명했다.
내가 서하령을 내 처소로 데려온 이유이기도 했다.
‘시비가 시중들다가 보기라도 하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볼 것이었다.
그런 내 속셈을 전혀 모르는 서하령이 말했다.
“맞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연이 어는 그 시비가 소부인한테 말했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나는 야율에게 손목을 찜질한 준비물을 부탁하고 서하령을 보았다.
“너 어제 나랑 같이 있었잖아.”
“그랬지.”
“그리고 새벽에 나 보러 왔고.”
“맞아.”
“그리고 수련하러 가고.”
“맞아!”
서하령이 말을 재촉하듯 나를 보았다.
이 정도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제 나랑 늦게까지 같이 있고, 새벽같이 찾아오고 바로 수련 갔는데, 네가 소부인을 뵈러 갈 시간이 어딨겠어? 거기다 너는 안 했다고 말했고. 그러니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 중 한 명이 말했겠거니 한 거지.”
입을 쩍 벌린 서하령이 반짝이는 눈으로 날 보았다.
“너 똑똑하다.”
“뭘, 이 정도 가지고.”
내 말에 서하령이 웅얼거렸다.
“그런데 남궁공자는 왜 내 말을 안 믿었을까?”
“글쎄······.”
뭐라고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서하령이 잠시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
“내가······ 수준에 안 맞아서 그런 걸까?”
남궁류청 이 자식!
애 한테 대체 왜 그런 말을 해서!
어제 일은 없었던 척 태연하게 굴어도 바보도 아니고 상처받은게 그리 쉽게 잊힐 리 없었다.
그 기운 넘치던 아이가 시무룩하다 못해 땅을 파고들것 같았다.
나는 이 어색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어서 야율이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내가 실력이 없어서, 싫은가봐.”
“다음에 네가 이겨서 콧대를 눌러줘.”
눈가가 붉어진 서하령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너도 봤잖아.”
“맞아. 봤지.”
이 말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한 내가 말을 이었다.
“남궁 공자 약점도.”
“약점? 그게 무슨 소리야?”
서하령이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았다. 다행히 당장 울 것 같은 기색은 사라졌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뺨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남궁 공자가 특정 초식을 쓸 때 방어가 비는 부분이 있더라고. 거길 공략하면 아마 한 번은 이길 수 있지······”
서하령이 내 말을 자르며 소리쳤다.
“뭐? 그런 게 있어?”
“음, 확실하진 않지만······.”
“알려 줘! 알려 줘!”
“알려 줄게. 근데 지금은 일단, 손목 찜질부터 하자.”
타이밍 좋게 야율이 대야와 수건을 가지고 들어왔다.
서하령이 손목을 내밀었다.
“빨리, 빨리 해! 그리고 꼭 알려 줘야 해!”
나는 서하령의 손목에 뜨거운 수건을 올려놓고 손목을 들여다 봤다.
정말 말 그대로 들여다본 것이다.
연일 혹사당한 서하령의 손목은 기맥이 꽤 뭉쳐 있었다.
나는 만신의의 연단실에서 보았던 대로 기맥이 뭉친 부분을 꾹꾹 누르는 척하면서 기운을 미약하게 흘려 넣었다.
그때 갑자기 서하령이 내 눈을 찌를 듯 손가락질했다.
“연아 너······!”
“왜?”
서하령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어? 아닌가? 아닌데? 분명 금색이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방금 눈동자가 금색이었어!”
“금색이라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어리둥절해서 경대가 있는 방향을 보던 난 순간 만신의를 떠올렸다.
내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만신의의 눈동자가 얼핏 금색으로 보였었다.
‘설마, 그럼 그때 내가 본 게 착각이 아니란 말이야?’
서하령이 야율을 향해 말했다.
“너도 봤지! 봤지? 분명 금색이었어!”
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야율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야율이 서하령을 향해 툭 내뱉었다.
“이상한 소리.”
“아니야! 진짠데!”
서하령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지만, 야율은 관심없다는 듯 바로 고개를 돌렸다.
* * *
이날 이후 서하령과 남궁류청의 수련도 중단되고 한동안 남궁류청을 볼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남궁류청은 그날 일로 결국 사당에 갇혀 예의범절에 관란 책 한 권을 모두 베낄 때까지 나오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고 했다.
폭풍같이 몰아쳤던 것과 달리 평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서하령의 수련을 도와주고, 내 기운을 다루는 수련에도 집중했다. 그리고 그날 서하령이 본 금색 눈동자는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능력, 정확시 주변의 기운을 내의지대로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 색이 바뀌었다.
‘다행이지. 야율이 눈치 빠르게 모른 척 해줘서.’
서하령은 그때의 일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린 듯 보였다.
연습에 몰두하던 나는 슬슬 두통의 조짐이 보여 바람을 쐴 겸 호숫가로 산책을 나왔다.
기운을 다루는 것에는 집중력과 체력 둘 다 영향을 미쳤다.
호숫가 근처 2층 전각에서 흘러나온 빛이 호수의 표면에 반짝였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어둠에 잠긴 연꽃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야율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머리 아파?”
“아니, 눈부셔서.”
내 곁에는 시비뿐만 아니라 야율도 함께 있었다. 처소에만 있으면 답답할 것 같아 함께 나왔다.
가장 큰 이유는 야율이 내가 외출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날 기다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가장 들켜선 안 되는 가문에 있는 것이니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겠지.’
불안하면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어지는 거고.
‘뭐, 이 시간에 여기는 사람이 없으니까······.’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한 사람이 나타났다.
남궁류청이었다.
‘이제 사당에서 나온 건가?’
호숫가로 다가오던 남궁류청이 나를 보곤 발을 멈췄다. 그리고 나는 남궁류청의 얼굴을 보고 놀란 빛을 감췄다.
‘살이 빠졌잖아?’
사당에서 벌을 받은 일이 힘들긴 했던 모양이었다. 해도 보지 못했는지 볕에 보기 좋게 그을렸던 피부도 뽀얗게 변해 있었다.
순간 안쓰러운 감정이 들었다.
벌이라지만 어린아이가 몇 날 며칠을 해도 못 보고 갇혀서 책만 보고 있어야 했다니.
나는 남궁류청을 향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안녕. 오랜만이네.”
“······.”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인사 대신 당장 죽일 듯이 쏘아보는 시선이었다.
얼굴을 긁적인 나는 재도전을 했다.
“산책 나온 거야?”
“······.”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음, 제대로 미움받았나 보네.’
그리고 생경했다. 저번 생의 남궁류청은 내게 무척 친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남궁류청에게 냉담하게 굴었다. 미래를 아는 나는 남궁류청과 엮이는 순간 온갖 모욕이 내게 쏟아질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엮이고 싶지 않았다. 무시하기도 여러 번, 상처를 주기 위한 모진 말도 내뱉었다.
하지만 남궁류청은 그 모든 걸 참아내며 끈질기게 나와 교류하려 들었다.
분명 소설에선 백리연을 스승의 딸이라 어쩔 수 없이 도맡은 짐덩어리 정도로 취급했는데, 소설과 전혀 다른 태도에 그가 정말 남궁류청이 맞는지 몇 번이나 의심했었다.
어쩔 수 없지. 뭐, 화해는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그럼 나는 갈게. 편히 산책해.”
빠르게 포기한 내가 그대로 몸을 돌릴 때였다.
“잠깐.”
남궁류청이 나를 불러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