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0)
60화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남궁류청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꾹 다물었다.
“왜 부른 거야?”
조금 기다려 준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남궁류청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몇 번 입을 달싹이다가 갑자기 홱 몸을 돌렸다.
“공자?”
남궁류청은 옷자락을 펄럭이며 내게서 황급히 멀어졌다.
‘뭐야? 할 말 있어서 부른 것 아냐?’
그렇게 내 앞에서 멀어진 듯했으나, 기운을 보는 내 눈에는 아니었다.
빠르게 걸어가던 남궁류청이 누각 뒤편, 나무 벽 너머에 멈춰섰다.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오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때 야율이 말했다.
“누구야?”
“아, 넌 처음 보겠네. 남궁공자.남궁완 아저씨의 아들로 이름은 남궁류청.”
“아, 그 싸가지.”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남궁류청 아직 안 갔는데!
‘설마 들었나? 고작 나무 벽인데 들었겠지!’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하.하.하. 그렇게 못된 애는 아냐. 나한테 조금 서운한 게 있나 봐.”
야율은 무심하게 말했다.
“너는 나도 데리고 다니잖아.
걔가 잘못했겠지.”
“······.”
믿음에 고맙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야율이 입을 연 순간 우뚝 멈춰섰던 기운이 다시 누각에서 멀어졌다.
왠지 성난 느낌이라면······기분탓일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한 야율을 보며 쓰린 속을 달랬다.
그래. 야율이 뭘 알겠어······?
들은 사실만 얘기한 거겠지.
* * *
남궁류청이 벌을 다 끝내고 사당에서 나왔으니, 서하령과 함께 하는 수련도 다시 시작한다고 하였다.
오랜 연습이 드디어 빛을 볼 때가 된 것이다. 서하령은 전날부터 부쩍 긴장한 모양이었다.
‘고작 대련인데 뭘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왠지 피로한 기색이기에 넌지시 물어보자 전날 잠도 잘 못 잤다고 했다.
서하령이 내게 말했다.
“나 꼭 이길게.”
“응. 할 수 있어.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 져도 상관없어.”
내가 서하령을 도와준 것은 내 눈의 능력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꼭 이기지 않고 남궁류청을 당황하게 만드는 정도이기만 해도 충분했다.
서하령은 주먹을 꽉 쥐며 눈을 빛냈다.
“아니야! 네가 이렇게 도와줬는데, 꼭 이길 거야!”
“······으응.”
이렇게까지 열심인데 내가 잘 못 알려 준거라든가, 효과가 없는 약점이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천하태평이던 나도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다.
연무장에 들어서자 이미 준비를 모두 마친 듯한 남궁류청이 보였다. 그리고 이번엔 연무장에 사람이 꽤 있었다.
남궁 세가 무사로 보이는 자도 있었고, 남궁류청의 몸종도 있었다.
심지어 나와 서하령의 시비도 따라 들어왔다.
‘저번 일 때문이겠지.’
남궁류청이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나를 쭉 훑어보고 말했다.
“백리 소저가 왜 여깄어?”
“내가 데려왔어.”
남궁류청이 인상을 찌푸리고 소리쳤다.
“수련하는데 외부인을 데려오다니!”
“여, 연이는 외부인 아냐! 내가 초대한 거라고!”
남궁류청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여기 너 혼자 수련하나 보지?”
“······.”
남궁류청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웬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서로 수련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문의 검법을, 비기를 노출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만약 성인이 이런 식으로 남의 수련을 구경하러 온다면 검법 훔치러 온 도둑으로 취급받아 칼 맞기 딱 좋았다.
또한 함께 하는 수련이었다.
서하령 혼자이면 모를까, 남궁류청도 함께 하는 수련이니 당연히 상대방의 동의부터 받아야 했다.
서하령이 부루퉁하게 말했다.
“하지만 남궁 세가 손님이잖아! 같이 수련하면 어때서!”
“같이?”
남궁류청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목검도 없고 심지어 수련복 차림새도 아니었다.
“구경이겠지.”
“······.”
“나는 내 수련을 구경거리 삼을 생각 없어.”
서하령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연이는······!”
나는 서하령의 말을 자르며 나섰다.
“남궁 공자의 말이 맞아.”
“연아······.”
서하령이 내 옷자락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듯 꽉 쥐었다.
“그래서 남궁완 아저씨께 이미 허락받았어.”
서하령이 반색하고 남궁류청이 나를 노려보았다.
“······맘대로 해.”
남궁류청이 홱 몸을 돌렸다.
서하령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아. 후, 그런데 연이 넌 그걸 언제 물어본 거야?”
“어제. 그리고 남궁 공자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앞으로는 조심해.”
“알았어······.”
수향문주의 딸이었으니 수향문에서야 제멋대로 굴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래. 이제 가 봐.”
나는 멀어지는 서 소저를 보며 연무장에 적당히 자리 잡았다.
내 뒤를 따르던 시비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남궁 공자님이 저렇게 밀리는 건 처음 보았답니다.”
의아하게 뒤를 돌아보자 시비가 웃는 눈을 한 채 말을 이었다.
“저희 도련님이지만 워낙······ 하여튼, 또래 분들은 당해 내질 못했거든요.”
하긴, 애늙은이 같으니 일반적인 또래들이 상대가 안 되는 건 당연했다.
나야 회귀했다지만, 남궁류청은 회귀한 것도 아닐텐데 참 여러모로 대단한 아이였다.
손목에 보호대까지 꼼꼼하게 감은 서하령이 긴장한 얼굴로 연무장 중앙으로 향했다.
내가 알려 준 약점은 큰 게 아니었다.
둘 다 아직 어려서 아버지나 남궁완처럼 검기를 쓴다든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두르거나 그러진 못했다.
둘 다 순수하게 초식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남궁류청이 특정 초식을 이어서 사용할 때 잠시 나타나는 허점을 알려 준 것이었다.
남궁류청이 쓰던 초식만을 사용하는 건 서하령의 실력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새로운 초식으로 상대하기엔 서하령의 실력이 남궁류청과 비교해 일천해서······ 대충 쓰던 것만 쓴다는 말에 가까웠다.
‘그래도 서하령을 압도하는 게 대단하지.’
남궁류청이 서하령과 수련하는 걸 귀찮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본인은 서하령에게 배울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막말을 하고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남궁류청은 지금 서하령을 무시하며 같은 초식만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가르쳐 준 약점이 나오는 초식을 쓸 때까지만 기다린다면 서하령에게도 승산이 있었다.
남궁류청과 서하령이 목검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대련이 시작하고······ 나는 당황했다.
‘남궁류청, 갑자기 왜 이래?’
지금껏 남궁류청은 모두 10초식을 넘지 않는 선에서 서하령을 상대했다.
10초식이 뭔가? 3초식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갑자기 뭐라고 해야 할까, 서하령을 봐주면서 상대하기 시작했다.
서하령도 당황했는지 검 끝이 잠시 흔들렸다.
그 찰나의 순간 서하령의 목을 찌를 듯이 들어오는 걸 서하령이 가까스로 막아 냈다.
“뭐 하는 거지?”
매서운 눈빛이 집중하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서하령이 당황해 검을 내리고 사과했다.
“미, 미안.”
나는 또 놀랐다.
평소의 남궁류청이었다면 서하령이 흔들린 순간 가차없이 검을 날려 버렸을 터였다.
목에 검이 겨눠져 패배하는 것보다 검을 놓치는 게 검사로서 더 자존심 상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얌전하게, 적당히 봐주면서 정신 차리도록 도와주다니?
‘쟤 남궁류청 맞아?’
서로 잠시 떨어져 숨을 고르던 남궁류청과 눈이 마주쳤다.
남궁류청이 혀를 차며 고개를 틀었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모습에 할 말이 없었다.
“······.”
뒤에서 시비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백리 소저, 음, 그, 너무 상심치 마세요.”
“하하하.”
역시, 이건 백 퍼센트 야율이 내게 한 말을 들은 것이다.
다행히 서하령도 남궁류청의 배려(?)에 빠르게 적응하며 남궁류청과 검을 주고받았다.
처음 서하령이 연무장에 왔을 때는 너무 긴장해선지 거의 퍼렇게 보일 정도의 낯빛이었는데, 검을 주고받을숙록 붉게 달아오르며 점점 신난 기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래서야 그동안 연습했던 건 못 써먹었다.
‘뭐······ 무슨 심경의 변환지는 모르겠지만, 남궁류청이 마음을 고쳐먹고 잘 지내보려고 한 거면 그게 더 좋은 거니까. 나는 이만 돌아갈까?’
남궁류청의 반응으로 보아 내가 여기에 계속 있으면 오히려 그의 성미만 건들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남궁류청이 그 초식을 선보였다.
내가 알아차렸듯 서하령도 알아챘다.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휘두르는 검이 3분의 2쯤 올라오는 찰나의 순간, 어깨와 목덜미 사이의 미묘한 틈.
그 순간만을 몇 번이나 연습한 서하령의 목검이 그 틈새를 향해 전심전력으로 찔러 들어갔다.
“······!”
그리고 나는 서하령의 목검에 담긴 힘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목검이래도 저렇게 강한 힘으로 목덜미를 맞으면······!”
워낙 집중해서인지 남궁류청이 서하령의 공격에 놀란 듯 눈을 부릅뜨는 모습까지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내 눈에 특이한 움직임이 잡혔다.
눈을 부릅뜬 남궁류청의 몸속에서 내공이 맹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팔로, 그리고 자신이 쥔 목검을 향해 상앗빛 기운이 뻗어 갔다.
‘설마······!’
목검에 목을 찔리기 직전, 아슬아슬한 순간 내공의 보조를 맏은 남궁류청의 목검이 서하령의 목검을 쳐 냈다.
남궁류청이 바짝 치켜든 턱을 스치듯 서하령의 목검이 비껴가고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콰직!
남궁류청의 목검이 부러지며, 하필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아니, 왜 이리로 오는건데?’
누구이지 모를 경악한 외침이 들렸다.
“소저!”
“소저!”
다행히 내게 쇄도하는 목검의 궤적이 선명했다. 여기서 고개만 살짝 틀면 피할 수 있는······
‘아차! 시비 언니!’
내 뒤에 시비 언니가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간 연습한 대로 주변의 기운을 최대한 손으로 모으고, 날아오는 목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목검을 잡았다.
“······!”
주변에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도 놀랐다.
‘이게 되네?’
쳐 내기만 해도 선방이라 생각했는데 이걸 잡다니.
물론 무리하긴 했는지 손바닥이 찢어질 듯 아팠다.
털썩, 내 뒤에 있던 시비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