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9)
69화
‘기문진식을 이용했다고 듣긴 했지만
······.’
바깥과 전혀 다른 온화한 기운에 차갑게 식었던 귀와 뺨이 간질거렸다.
나는 뺨을 문지르며 얼떨떨하게 들판을 걸었다.
창궁관은 남궁 세가의 폐관 수련장이었지만, 정확히는 남궁 세가와 제갈 세가에서 함께 만든 것이었다.
10대 세가 중 하나인 제갈 세가는 독보적인 위치의 가문이었다.
제갈 세가의 무공도 뛰어났지만, 그보다 더 인정을 받는 것은 지략.
제갈 세가가 없었다면 무림맹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무림맹을 세우고 천마신교를 몰아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곳이 제갈 세가였다. 그리고 제갈 세가는 대대로 무림맹의 군사 자리를 역임하면서 천하 제일 세가를 노렸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지금은 무척 쇠락했다.
이제 규모로만 따지면 백리 세가만도 못했다. 당연히 10대 세가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지 않는가?
그간 쌓아 온 이미지가 워낙 공고하고 특징이 강하다 보니 쇠락했음에도 사람들은 제갈 세가를 계속 10대 세가로 여겼다.
하여튼 그 제갈 세가가 한창 전성기일 때, 남궁 세가와 손을 합쳐 만든 곳이 이 창궁관이었다.
선선히 부는 바람과 밟히는 풀과 흙의 감촉이 환상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소설에서 남궁류청이 천마신교의 기문진식에 갇혔을 때가 있었다.
분명히 동료들과 함께 있었는데 순식간에 떨어지며 전설로 취급되는 요괴들의 습격을 받았고, 실제로 다쳤다.
‘그걸 보면 이런 걸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지.’
나는 호숫가에 멈춰 섰다.
그리고 물결치는 수면에 손을 담갔다. 진짜 물의 감촉이었다.
‘진짜 신기하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다시 눈을 뜨자 수면에 선명해진 금색의 눈동자가 비쳤다.
분명 처음 서하령에게 들키고 난 후 동경으로 확인했을 때는 밝은 갈색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련을 하면 할수록 점점 확연한 금색이 되어 지금은 짙은 금색에 가까웠다.
대충 내가 다루는 자연지기가 많아질수록 눈 색이 선명하게 바뀌었다.
이게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수면에서 고개를 들고 주변을 훑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 눈까지는 못 속이네.’
이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지기의 흐름이 전혀 달랐다.
인위적인······ 보자마자 이질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자연지기의 농도가 훨씬 짙었다.
‘수련을 위해 만든 곳 답네.’
이런 곳에서 수련하면 확실히 빠르게 내공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나무 등걸에 앉은 난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했다.
솔직히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었다. 내가 하는 건 진짜 운기조식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왠지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아 그렇게 앉았다.
나는 평소 연습하던 대로 내가 다룰 수 있는 자연지기들을 가늠했다. 그리고 오른손에 조금씩 자연지기를 모았다.
곧이어 손바닥의 상처 부분이 참을 수 없이 간질거렸다. 상처가 빠르게 치유되고 있어서였다.
내공이 고강한 무인의 회복력은 일반 사람들보다 월등했다. 이처럼 자연지기를 이용해서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남궁 세가 의원이 내 치유 속도에 감탄한 이유였다. 더 빠르게 할 수도 있었으나 눈에 띄지 않게 조절했다.
‘이제 눈치 볼 것 없겠지.’
그렇다고 마법처럼 한 순간에 낫게 해 주고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럴 수 있었으면 만신의가 거기서 그렇게 돌아가시진 않았겠지······.’
개인의 치유력 플러스 알파인 것이다.
그래서 목숨이 간당간당하거나 이미 수명이 다해 선천지기가 소모된 사람에게는 자연지기를 퍼부어 준대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상처는 문제 없었다.
비슷하게 소생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자연지기로 도와준다면, 다른 곳에선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도 살릴 수 있었다. 그가 만신의라고 불린 이유였다.
나는 머리끝의 힘까지 짜내 할 수 있는 한 모든 기운을 모았다.
눈을 뜨자 메추리알 크기의 기운이 내 손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현재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자연지기의 양이었다.
‘이 정도면 남궁류청의 내공보단 적고 서하령의 내공보단 많나?’
농고가 높아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잡념이 들어선 순간 겨우 모은 기운이 흩어졌다.
“아!”
아쉬움에 다시 붙잡으려 했지만 한번 흩어지기 시작한 기운은 마치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자연지기 안에 녹아내렸다.
뭐, 그다지 상관은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최대로 쓸 수 있는 양을 가늠하려 든 것이니.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집중하여 주변의 자연지기를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두통의 조짐에 눈을 떴다. 시계가 없으니 얼마나 지났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밖에서 확인했을 땐 내가 자연지기를 움직일 수 있는 시각이 1각(15분)이었지.’
1각동안 서하령보다는 많고 남궁류청보단 적은 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공이 강함의 척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준이 되는 것 중 하나는 맞았다.
‘이거 뭐, 양도 문제지만 내가 쓸 수 있는 시각도 늘려야 해.’
처음에 고작 1, 2분 움직이고 쉬어야 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여기서더 집중하면 두통이 심해지고, 무시하고 더 한다면 코피가 흘렀다.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적어도 반 시진(1시간)은 족히 쉬어 줘야 했다.
‘좀 쉬자.’
나는 띵한 머리를 붙잡고 소부인이 챙겨 주신 보자기를 풀었다.
여러 물건들이 나왔다. 그중에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당과.’
폐관 수련장에 들어가는데 과자를 챙겨 주다니.
보통 이런 곳에선 맛없고 영양만 따진 벽곡단을 먹으며 수련에 집중했다.
절로 손이 뻗어 나갔다. 하나 쥔 채 신나게 야금야금 먹던 난 어느 순간 멈췄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궁 세가와 제갈 세가의 기술을 집대성한 수련장.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체력도 길러야 하고, 자연지기도 수련해야 하고······.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었다.
심지어 이것이 옳은 방향인지 정답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당과나 먹으며 시시덕거리고 있다니.
‘누가 보면 다 끝난 줄 알겠네.’
나는 목덜미를 매만졌다.
사람이 참 간사했다. 평온한 생활을 조금 했다고 이렇게 풀어지다니.
회귀 후 다시 온 기회에 감사하던 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하던 나는 어디 갔는지.
당과를 내려놓은 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죄송해요.’
그리고 곱게 싸여 있던 당과를 모두 들어 호수에 던졌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무리하더라도 코피 좀 흘리고 피 좀 토하는 것밖에 더 있겠어?’
심지어 창궁관에는 치료 공능도 있다니 좀 다쳐도 금방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해 나가는 것밖에 없었다.
* * *
보름 후, 창궁관을 잠갔던 빗장을 빼는 소리가 들렸다. 보름이 지나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봉문을 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면서 나가지 않았다. 그게 오늘로 이레째였다.
‘더 있고 싶다.’
나는 호수에 담근 발을 첨벙거렸다.
남궁완 아저씨가 원한다면 보름보다 더 머물러도 된다고 말해 주시긴 했다.
하지만 정말 폐관 수련을 위해 들어온 것도 아니니, 너무 오래 나가지 않으면 걱정할 터였다.
백리 세가에도 폐관 수련장이 있긴 했다. 백영유동이란 곳이었다. 내공 폐인이던 난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동굴로 알고 있었다.
‘다음엔 거기도 가 봐야지.’
나는 남은 미련을 털며 일어났다.
옷자락을 정리하던 나는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꽉 들어찬 하얀 새살.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미묘하게 당기는 느낌이 남긴 했지만, 움직임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
‘아, 이제 남궁류청 놀리는 것도 끝이네.’
여러 상념에 잠긴 채 문을 열었다.
먼저 차가운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고 뒤이어 새카만 어둠이 날 반겼다.
“응?”
밝은 곳에 있던 눈은 갑작스러운 어둠에 적응하지 못했다.
놀라서 주변을 살피던 나는 쏟아질 듯 가득한 하늘의 별을 보고 안도했다.
‘아, 뭐야, 밤이었어?’
무심코 당연히 낮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바보 아냐? 근데 그럼 어떻게 돌아가지? 내가 야밤에 대숲을 빠져나갈 수 있으려나?’
덜컹. 등 뒤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추위에 옷자락을 한 번 더 여미며 앞으로 향했다. 일곱 걸음 정도 걷자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그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나는 꽉 감았다 뜬 두 눈을 마구 문질렀다.
익숙한, 아주 익숙하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윤곽.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겨우, 겨우 단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아버지?”
“······연아!”
한달음에 높은 계단을 넘어온 아버지가 나를 꽉 껴안았다.
늘 약향에 뒤덮여 있던 아버지의 향기. 실제 감촉.
“아버지.”
“그래, 연아.”
“아버지.”
“그래.”
“······아버지.”
그 목소리를 듣는데 왜 안도감이 드는지.
‘내가 정말로 무사했구나.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