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
9화
* * *
고 총관이 돌아간 후, 약재를 하나하나 살피는 아버지의 낯빛이 매우 밝았다.
이와 달리 내 가슴은 무거웠다.
‘천명금혼단을 주시다니.’
어차피 먹어봤자 소용도 없는데.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시험하시는 건가?’
거기다가 아버지는 또 별말씀이 없었다. 당장 먹으라고 채근하실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그래도 기분 좋으신 모습을 보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저리 좋으실까?’
티를 내지 않으려 하셨지만, 아버진 나를 마주할 때마다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나만 보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심각한 얼굴을 해대니, 과거의 난 아버지가 날 무척 싫어한다고 느꼈다.
거기다 집안엔 온통 내가 아버지의 명성을 더럽혔고 아버지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데려다 놨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니 애만 두고 집에 돌아오지도 않는 거라고.
처음엔 나를 데려온 것에 그저 감사하게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고 얼굴 몇 번 비치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었고······.
그때 상념을 깨는 소란이 들렸다.
“그거 나 줘 보라니까.”
“안 돼. 지금 정리하고 있는거야. 왜 이래? 아, 안 된다니까!”
당금이었다.
당금이 물품을 정리하던 여종에게서 거의 강탈하듯 뭔가를 빼앗아갔다.
여종은 어쩔 줄 모르며 내 눈치를 보았다.
그런 여종에게 당금이 윽박지르듯 말했다.
“뭐야? 왜? 참나, 그냥 구경도 못 하니? 괜찮죠, 아기씨?”
난 아직 이쪽 상황을 모르는 아버지를 힐끗 보았다. 괜히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 여기서 별일은 없겠지.
내게 아버지가 날 싫어한다고 가장 많이 속살거렸던 자가 당금이었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틀어지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한 사람이랄까.
당금은 심지어 손버릇도 나빴다.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귀중품이 없어 괜찮았다.
하지만 커 가면서 아버지가 이것저것 선물을 챙겨 주셨다.
백리 세가 공자인 아버지가 특별히 챙겨 준 물건들이었다. 당연히 값어치가 상당했다. 구하기 힘든 귀물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당금은 별로 좋은 물건이 아니라고 아버지께서 나를 얼마나 무시하면 내게 이런 것들만 보내느냐며 거짓말을 해 댔다.
그러면서 뒤로는 귀중품들을 빼돌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아버지께 걸렸다. 훔친 패물을 자랑하다가 들킨 것이다.
아버지께 들킨 그 자리에서 당금은 내가 자신에게 가지라고 준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곤 나한테 와 살려 달라고 엉엉 울고 빌고 난리를 쳤다.
“죽일 거라고요!”
“서, 설마······ 패물 하나 훔쳤다고 죽이기까지야. 그런데 당금, 네가 별로 귀한 물건이 아니라지 않았어?”
“지금 그게 중요해요?”
“아, 아니······. 귀한 게 아니니까 별로 화내시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무가잖아요! 아가씨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런 곳은 처벌이 더 잔혹하다고요.”
“······.”
지금은 헛소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당시엔 나보다 오래 백리 세가에 살았던 당금의 말을 믿었다.
“살려 주세요, 아가씨. 살려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반짝 눈을 빛낸 당금이 언제 울었냐는 듯 꿍꿍이속을 줄줄 말했다. 그리고 사실 관계를 물으러 온 아버지께 말했다.
“제가 당금에게 선물로 준 거 맞아요, 아버지.”
“알아보니 네 몸종이 판 네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은데 그걸 다 네가 준 거라고?”
“아······.”
한두 개가 아니라니?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당황한 내가 당금을 바라보자 당금이 제대로 말하라는 듯 눈을 부라렸다.
“······네. 제가 준 게 맞아요.”
“······알았다.”
그때 실망하시던 눈빛이 아직도 선명했다.
“앞으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차라리······ 아니다. 네게 준 것이니 네 것이지.”
아버지와의 사이가 더욱 소원해진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고 나서 당금은 내가 아버지의 선물들이 마음에 안 들어 버렸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다시 떠올리니 열이 확 치솟았다.
‘아니, 아니야, 그래도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아직 훔치지 않았는데 미래의 도둑이라고 쫓아낼 순 없는 거니까.
이제 훔치게 두지도 않을 거였다.
“잠깐, 그 옥패 줘 봐. 우와, 이 옥패 진짜 좋아 보인다.”
딱 봐도 색이 곱고 균일한 것이 최고급 옥으로 만든 것이었다.
제멋대로 가져간 옥패를 한참 만지던 당금이 갑자기 나를 돌아보았다. 반질거리는 눈동자에 탐욕이 가득했다.
“아가씨 이 옥패, 저 주세요.”
“······.”
나는 말을 잃었다.
물건을 정리하던 여종도 당금을 미친 사람 보듯 바라봣다.
하지만 당금은 자신이 뭘 잘못했냐는 듯 매우 뻔뻔하게 날 보았다.
“이렇게 많은데 하나는 저 주실 수 있잖아요? 아가씨 때문에 이렇게 매도 맞았는데!”
당금에게 할아버지의 선포 정도론 전혀 소용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매 맞은 것도 내 탓이라 생각하는데. 당연한가?’
과거 백리 세가에 홀로 남은 난 외로웠다. 어리숙하게 당금을 믿었고 아버지를 멀리했다.
‘등쳐 먹기 딱 좋은 호구란 거지.’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잠깐 기다려 봐.”
당금이 희희낙락거리며 옥패를 소맷자락으로 닦았다. 분명 기다리라 했음에도 이미 자기것이라도 된 것처럼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하인들 또한 내가 선선히 내줄 것 같으니 자신들도 어떻게 하나 얻고 싶어 눈을 빛냈다.
뻔히 보이는 속내들을 뒤로하고 나는 기다렸다.
잠시 후, 마당 한쪽에서 약재함과 장부를 한참 살피던 아버지가 무척 기쁜 기색으로 다가왔다.
“연아, 연아! 아버님이 보내신 약재가 확실히 더 좋구나. 저 약재들로 네 약을 지어야겠다. 괜찮겠지?”
“물론이죠. 제게 말하지 않고 쓰셔도 돼요.”
“네가 받은 것이지 않으냐.”
“아버지랑 제 사이에 그런게 어딨어요? 그런데 아버지.”
아버지가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보았다. 난 당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금이 저 옥패를 달라고 그러는데 줘도 될까요?”
“뭐?”
순간 아버지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리고 옥패를 다른 하녀들에게 자랑하던 당금이 화들짝 놀라 나를 돌아봤다.
“저 때문에 매를 맞았으니 옥패를 가지고 싶대요. 하지만 이 선물은 모두 할아버님이 주신 거잖아요? 제가 멋대로 하면 안 될것 같아서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너 때문에 매를 맞다니?”
아버지가 제 귀를 의심하는 얼굴로 당금을 보았다.
당금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당금 곁에서 알랑거리던 하인들도 숨 막힌 얼굴로 서둘러 떨어졌다.
“무, 무슨 소리예요, 아가씨! 제가 언제 그랬어요?”
난 오히려 당황스럽다는 듯 당금을 보았다.
“응? 네가 그랬잖아. 이렇게 많으니 하나 줄 수 있지 않겠냐고. 나 때문에 매 맞았다고······ 아침부터 상처때문에 너무 아파서 쉬어야겠다고······.”
“아기씨!”
당금이 버럭 소리친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아버지가 조용히 내 앞을 가로막았다.
더는 당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서리가 내릴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 낮추지 못할까. 연이가 어리다지만 네가 모셔야 할 사람이거늘, 어찌 함부로 목청 높이는 거지?”
“고, 공자님, 그, 그것이······.”
“그리고 어머님의 처벌에 불만을 가지는 것도 모자라, 주인의 물건을 이리 뻔뻔스럽게 탐내는 건 내 일생 처음 본다. 네가 연이 몸종이 맞느냐? 누가 보면 네가 주인인 줄 알겠구나!”
아버지의 일갈에 당금이 깜짝 놀라 고개 숙였다.
당금이 제멋대로 구는 걸 마치 남 일 구경하듯 방관하던 하인들도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재빠르게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아버지가 재차 화가 치솟은 건 당연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치 방자하구나. 넌 오늘 해가 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반성하도록 해라! 그리고 너, 넌 저 아이가 제대로 벌을 수행하는지 지켜보거라!”
불같이 호령한 아버지가 무려 ‘한 손’으로 날 안아 들고 몸을 홱 돌렸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보이는 마당엔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