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
10화
* * *
처소로 들어온 아버진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듯 했다.
방을 산만하게 왔다 갔다 하다 자리에 앉아 서책도 펼쳤으나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내려 놓았다.
“평소에도 저런 태도였느냐? 아니, 되었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짚고 말했다.
“연아, 이 일은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저 아이가 벌을 받은 건, 자신이 맡은 일에 소홀하여 그런 거니. 알았지?”
죄책감이라니?
내가 절대 가질 일 없는 감정에 난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말을 이어 가던 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꽉 다물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속이 매우 답답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그때 누군가 기척을 내며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저어······ 도련님.”
아버지의 몸종인 언두였다. 예전부터 아버지를 모시던 자로 늘 아버지 곁을 따라다녔다.
이번에 처소 하인들이 모두 벌을 받을 때도 언두는 아버지를따라 중앙당에 있었기에 연루되지 않았다.
“가주님께서 주신 사례품 목록을 다 정리하였습니다. 어디다 가져다 놓을까요?”
“약재는 내 처소에, 나머진 연이 처소······ 아니, 잠시 기다려라.”
“예.”
언두는 약간 당황한 듯했으나 반문없이 물러갔다.
나 또한 무슨 일인지 의아하게 아버지를 보았다.
“연아.”
아버지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아 나와 시선을 맞췄다.
“내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무척 진지한 분위기에 나도 무슨 말을 할지 긴장하여 아버지를 보았다.
한동안 날 바라보던 아버지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내 처소에서 같이 지내지 않겠느냐?”
“네?”
“물론 네가 괜찮다면 말이다. 강요는 아니다. 내 처소는 넓으니 네가 지낼 방 정도야 바로 마련할 수 있다. 그, 보통 아이는 열 살 정도가 돼서야 부모와 다른 처소로 독립한단다. 너와 내 처소가 안뜰을 사이에 둔 정도로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건물이지 않으냐? 원래 네 나이라면 양친과 같이 지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내가 널 데려왔을 당시 날 어색해할 것 같아 부러 다른 처소를 내어 달라 부탁한 것이지.”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보았다.
뭐, 랩 하시나? 아버지가 이렇게 멈추지 않고 말씀하시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처소에 있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가까울수록 내가 널 살피기에도 좋고 너 또한 몸이 안 좋으니······.”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듣던 난 서둘러 아버지의 말을 잘랐다.
이러다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좋아요!”
“······좋다고?”
“네! 좋아요.”
그게 뭐가 불편하다고 저렇게 긴장해 물어보는지. 왠지 웃음이 터졌다.
눈을 깜빡이던 아버지 얼굴에 점차 화색이 돌더니 아버지가 날 끌어안았다.
그 따뜻한 품에서 난 마음껏 웃었다.
* * *
짙은 자색의 비단옷을 입은 나이 지긋한 노부인이 편하게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고운 색 다홍빛 치마를 입은 귀여운 여자아이가 간식을 먹으며 어린 시동과 놀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지 마라. 저녁에 입맛 없을라.”
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광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알리는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마님, 의란 아가씨가 오셨습니다.”
“리리야, 유모랑 잠시 나가 있거라.”
내내 곁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노부인의 말에 아이와 시동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곧이어 백리의란이 날듯이 들어왔다.
“어머니! 들으셨어요? 아버님이 백리연 그 애한테 선물을 내리셨다는 거!”
“들었다.”
“대체 아버님도 갑자기 무슨 변덕이신 거죠? 대체 왜 갑자기 그 애를 챙겨 주냔 말이에요!”
“목소리 좀 낮추거라.”
“온갖 귀한 것들도 다 보냈다는데! 제가 노리던 흰 담비털도 백리연 그 애한테 줬대요! 하, 분명 제가 가지고 싶다고 고 총관한테 넌지시 얘기까지 했는데!”
노부인은 평온한 얼굴로 찻잔을 들었다.
“다 너 때문이지 않으냐. 네가 중앙당
앞에서 그런 모습만 보이지 않았으면 그 아이가 눈에 띌 일이 있었겠느냐?”
“하지만 어머니······!”
손을 들어 딸의 말을 막은 부인이 말했다.
“의강이 돌아왔으니 너도 앞을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거라.”
입을 비죽인 백리의란이 물었다.
“의강 걔는 언제까지 있겠대요?
설마······ 계속 머무는 건 아니겠죠?”
“수하들이 아직 오지 않은 걸 보면 다시 돌아가겠지.”
“후우, 다행이네요. 집안 시끄럽게 하지말고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아 참, 맞아! 의강이 오늘 백리연 몸종을 본보기로 무릎 꿇려 놨다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래요?”
백리의강은 평소 하인들에게 너그러운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직접 내린 벌.
심지어 가주의 변덕으로 아직 주시하는 시선들이 많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백리의강의 행동이 백리 세가에 퍼지는 데는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벌을 내려요? 기가 막혀서.
완전히 어머니 체면에 먹칠하는 거잖아요!”
안주인이 직접 행한 교육이 얼마나 모자랐으면 백리의강이 몸종에게 또 화를 내느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벌써 들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대로 두실 거예요?”
“의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어미보고 먼저 나서라는게냐?”
노부인이 백리의란을 탐탁지 않다는 듯 흘겨보았다.
“더군다나 때린 것도 쫓아낸 것도 아니다. 고작 버릇없는 몸종을 무릎 꿇렸을 뿐이지. 내가 나서면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것이야.”
직접 나서기엔 너무 하찮은 일.
차라리 저런 몸종은 딸 곁에 둘 수 없닥 쫓아냈으면 몸종 교육도 제대로 못 한다며 다그치고 멍철하고 욕심만 많은 몸종을 새로 보내면 됐다.
하지만 의강은 그 몸종을 그대로 두고 딸만 자기 처소로 데려 가버렸다.
핑계는 완벽했다. 아직 백리연의 몸이 좋지 않으니 곁에서 직접 보살피겠다며.
아픈 딸을 본인이 직접 보살피겠다는데 손쓸 구석이 없었다.
심지어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였다.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다면 자립심을 핑계로 억지로 처소를 독립시켰을 텐데, 그도 불가능했다.
“그럼 그냥 둬요? 그 망할 계집애 때문에 중앙당에서 혼나고, 어머니 체면도 말이 아니고. 아버지는 요새 절 본체만체 한다고요!”
“그러게 내 다른 사람들 앞에선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면서 왜 아직도 그리 가볍게 굴어?”
타박에 입술을 질끈 깨문 백리의란이 노부인에게 바짝 다가붙었다.
“그래도 어머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
탁자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부인이 이내 입을 뗐다.
“표와 악이를 데려오자꾸나.”
“애들을요?”
“그래.”
“하지만 시가에 보낸 지 얼마 안 됐는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아이들 앞에선 네 체면을 지켜 주실 거다.”
“아버지가 정말 그래 주실까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있으면 무공도 배울 수 없는 폐인 따위 곧 잊어버리실테지.”
* * *
아버지 품에 안긴 난 화사하게 핀 정원의 꽃들을 구경했다.
쾌청한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이마를 쓸어갔다.
난 아버지 목을 느슨히 붙잡은 채 발만 까딱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 발로 걸어본지가 언제지?’
쓰러진 이후로 아버지가 내 발이 땅에 닿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극성이었다.
‘그 정도는 아닌데 말이야.’
연못가에 아버지와 내 그림자가 보인 순간부터 붕어들이 몰려들었다.
난 소매에서 종이 포장을 꺼내 꼬물꼬물 풀었다.
“많이 먹어!”
붕어 먹이를 고루고루 먹을 수 있도록 팍팍 뿌려 줬다. 최근 아주 게으른 삶을 사는 내가 유일하게 하는 일이었다.
전생에는 이 근처엔 발도 딛지 않았다. 이런 정원의 연못은 관리하는 사람도 따로 있다. 붕어밥 주기 또한 그저 유희일 뿐이었다.
연못과 함께 어우러진 이 정원은 백리 세가 정원중에서도 손꼽히게 아름다웠으나 이곳은 고모의 처소와 가까웠다.
어릴 적 여기서 고모를 마주친 후 그 뒤로 한 번도 온 적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 백 최고.’
난 아버지 목을 꽉 끌어안았다.
“왜 그러니? 추워?”
“아뇨! 그냥 좋아서요.”
아버지의 표정이 누군가 본다면 화났다고 해도 될 만큼 굳어졌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그건 아버지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하는 표정인 걸 알았다.
“뭘 벌써 나가떨어져? 백리 세가가 이 정도밖에 안 돼?”
“다음! 아무나 나와! 뭐야 왜 아무도 안 나와? 없어?”
소년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기왓담을 넘어왔다.
나는 그 순간 깜짝 놀라며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봤다. 이 시점에선 아직 들려선 안 될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