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아버지는 아주 혼란스러운 낯이었다.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백리 세가가 그러면 무림맹 본성으로 가는 건 어때요? 거기 아버지 거처도 있으시잖아요?”
“너는······.”
아버지가 말끝을 흐렸다.
몇 번 숨을 들이쉰 아버지가 한숨처럼 말했다.
“가끔 네가 무슨 생각인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순간 움찔 놀랐다.
큰 의미 없는 평범한 말일 수 있었다.
그저 표면적인 의미로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저 말에 담긴 본의를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내가 갑자기 너무 변한 걸 언급한 것이다.
“······.”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는 거기서 더 캐물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궁금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 나를 믿기에 오히려 묻지 않는 것이다. 내가 만약 말하고 싶다면 언젠가 말할 거라 믿고.
‘하, 정말······.’
나는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저도 아버지가 이해 안 될 때 많아요.”
“음?”
아버지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래도 같이 지내는 게 가족인 거잖아요.”
“······그래.”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래. 너처럼 비밀이 많은 딸을 얻게 된 것도 내 복이구나.”
점차 나를 끌어안는 힘이 강해지다가 어느 순간 쭉 빠졌다.
나는 아버지 품에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다.
“네 말이 옳다. 백리 세가로 돌아가자꾸나.”
“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무척 힘 빠진 목소리였다.
나는 아버지 품에서 벗어나며 일부러 활기차게 말했다.
“저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실 거라고 믿으니까요! 그리고 원래 소중한 게 생기면 걱정이 느는 거랬어요.”
아버지가 미묘한 낯을 했다.
해석하자면 대체 얘가 정말로 뭘 알고 말하는 것인가, 누가 저런 소리를 가르쳤는가····· 정도였다.
“그러니까 몸조심하시라고요. 네? 만신의 연단실의 짐 호위할때처럼 막 싸우고 다니지 마시고요.”
“정말로 별일 없었단다.”
“어떻게, 그 틈을 타서 또 싸우고 오실 수가 있으세요? 남궁 세가에서 아버지만 목 빠져라 기다리는 제가 눈에 밟히진 않으셨어요?
“······.”
아버지가 말문이 막힌 표정을 했다.
처음 저 말을 들은 직후엔 호위라니 이동하는 시간도 다른 이들을 돕는 데 쓰셨구나, 역시 살뜰하시다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점차 서운함이 밀려왔다.
어떻게, 나 혼자 여기 있는데!
한시바삐 오실 생각은 안 하고!
팔괘촌까지 간 다음에 남궁 세가로 돌아올 수 있냔 말이다.
그냥 남궁 세가로 직선으로 왔으면 훨씬 일찍 도착했을 텐데!
아니, 그 행동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저, 조금, 아주 쪼금, 아주아주 쪼오오끔 서운한 것뿐이었다.
나는 계속 타박을 이어갔다.
“앞으론 혼자 다니지도 마세요!
팔괘촌에서 백리 세가로 가실 때도 혼자가 편하다고 훌쩍 가셨다면서요?”
“그땐······”
“아버지가 야율을 보호하겠다고 하셔놓고 가 버리시고! 야율이 거기서 혼자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요?”
“아니, 그건······.”
아버지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음, 연아. 슬슬 천암사로 갈 준비를 해야지 않느냐”
말 돌리시기는.
잔소리를 듣기 싫은 건 어른이고 아이고 똑같았다.
야율 팽개치고 백리 세가에 간 건 솔직히 아버지도 할 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뭐 이제 슬슬 나가 봐야 할 시간이긴 했다.
“그럼 가 볼게요!”
아버지가 인사하는 나를 붙잡았다.
“그······.”
“왜요?”
아버지가 머뭇거리다가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팔괘촌에 들렀다 온 것은 네가 걱정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알아요! 만신의 연구 일지 때문인 거잖아요?”
아버지가 살짝 놀란 눈을 했다.
만약 회귀 전에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아버지가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러셨구나 ······라는 자존감을 땅에 파묻는 멍청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버지는 겸사겸사 남궁 세가도 돕고, 만신의의 연구 일지도 지킬 생각이었을 터다. 혹시나 거기에 내 치료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 드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내 말에 아버지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니까 마치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모양새였다.
왜! 뭐가 웃긴 건데!
“그래. 알겠다. 아주 고맙구나.”
그렇게 웃음을 참아 넘긴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안아들었다.
나는 깜짝 놀라 아버지 목덜미를 껴안았다.
‘뭐지? 소부인께 데려다주시려고?’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버지의 발은 내 방으로 향했다.
‘헉, 안 돼!’
방에 다다랐을 때 나는 발버둥을 치며 아버지 품에서 뛰어내렸다.
“왜 그러느냐?”
급하게 아버지를 막아선 내가 말했다.
“제, 제 방에는 왜요?”
“천암사에 간다며?”
“네! 그러니까 제 방은······.”
아버지가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날이 많이 풀렸다지만 그래도 천암사는 산속에 있으니 추울 것이다. 더 챙겨입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어······어, 제가 골라 입고 나올게요!”
아버지가 이상하게 여기며 바로 손을 뻗었다.
막아선다고 해 봤자 내 키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바로 방문이 열렸고, 아버지는 방에 들어서지도 않은 채 탄식했다.
“방이······.”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방 안을 살폈다.
“도둑이 들었다고 해도 믿겠구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 방은······ 무척 난장판이었다. 정돈하지 않은 침상의 이불은 한쪽 구석에 뭉쳐 있었고, 갈아입은 옷들도 허물처럼 굴러다녔다.
“워, 원래 이렇게 더럽지 않은데요. 그, 급하게 갈아입을 옷을 꺼내다 보니까······.”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떠름했다.
아버지는 내가 외출복을 찾는다고 한바탕 뒤집어엎은 장궤 방향으로 향했다.
가는 길의 탁자에 글자 연습하느라 펼쳐 놓았던 벼루랑 붓도 대충 놓여 있고, 그 바닥엔 먹물 묻은 화선지가 굴러다녔다.
“붓은······ 걸어 놔야지. 이렇게 두면 붓이 상하지 않느냐.”
“······.”
“아니, 대체 이 찻잔은 언제부터 둔 것이야? 여기 차 찌꺼기가······.”
아버지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야율이 그간 널 정말 많이 살펴 줬구나.”
“하하하.”
나 또한 이번에 야율이 자리를 비운 새 깨달았다. 그간 야율이 날 따라다니면서 뒤치다꺼리를 매우 열심히 했었다는 것을.
“이게 바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거죠.”
“어디서 또 이상한 소리를 들어 갖다 붙이느냐?”
아버지는 날 돌아보며 엄정하게 말했다.
“네 방 정도는 너 스스로 정리해야······.”
말을 이어 가던 아버지가 이마를 짚으며 한차례 꾹 눌러 참는듯했다.
“그래. 넌 아직 어리니 네가 정리 정돈이 어려울 수 있지. 시비를 더 두자꾸나. 한 명으로는 이 처소를 감당하기 어렵지.”
“하하, 제가, 제가! 돌아와서 치울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잔소리를 듣기 싫은 건 어른이고 아이고 똑같았다.
* * *
아버지에게 한바탕 혼나고 소부인께 향한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미 출발 준비는 모두 끝난 듯했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함께 가는 듯 보였는데 그 인원의 수에 놀랄 따름이었다.
‘호위 무사에, 하인들에 무슨 절에 놀러 가는데 이 사람들이 모두 같이 간단 말이야?’
모인 수가 거의 서른, 아니 마흔에 가까웠다. 나를 본 소부인이 고상함을 잃지 않으면서 빠르게 다가왔다.
“조금 추워 보이는구나.”
“네?”
소부인은 미리 준비한 듯 내게 흰 여우털 목도리에 모자에 장갑까지 씌웠다.
‘아니, 누가 보면 눈이라도 온 줄 알겠네!’
남궁 세가가 있는 이곳은 겨우내 물이 언 것도 볼 수 없던 늘 영상을 유지하는 곳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가 골라주신옷도 털이 잔뜩 달려 불편한데, 이러다 굴러가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나는 장갑을 꿈지럭거리며 말했다.
“저, 조금 답답해요······.”
소부인이 눈썹을 늘어트리며 속상한 듯 말했다.
“너는 몸이 약하잖니. 고뿔이라도 들면 내 가슴이 찢어진단다.”
“······.”
그래.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음, 그래. 마차 안은 숯을 태우니, 장갑 정도는 벗어도 되겠구나. 내 불편할 걸 생각 못 했다.”
소부인이 축 늘어진 어깨로 내 장갑을 벗기는데 그 모습에 내 가슴이 다 아플 정도였다.
“아뇨. 괜찮아요. 끼고 있을게요!”
“아니다. 불편하지? 내 마음이 앞섰단다.”
“정말 괜찮아요!”
“아니다. 내가······”
그때 갑자기 마차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하고 들어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류청?”
남궁류청이 어서 올라타라는 듯 눈짓했다.
‘아니, 너 안 간다과 했잖아? 얘가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