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7)
97화
* * *
나는 얼떨떨하게 마차에 올라탔다.
남궁류청이 들고 있던 책을 탁 덮었다. 치우며 책 제목이 살짝 보였는데, 병법서 같아 보였다.
“왜 이렇게 늦어?”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아니이······ 네가 안 간다고 했잖아.”
“마음이 바뀌었어.”
그래. 뭐, 그렇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남궁류청이 소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도 이상한 장난 치지마시고 타세요.”
이상한 장난이라니?
의아하게 바라보자 남궁류청이 무심히 설명했다.
“어머니 수법이야. 속상한 척하면서 마음의 빚을 지워서 원하는대로 하시는 거.”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동시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럼 소부인이 속상해하시는 모습이 연기였어? 아니, 근데 또 그걸 어머니 앞에서 다 말해?’
그 말이 진실이었는지 소부인은 약간 당황하면서도 못마땅한 기색을 살짝 내비쳤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관리하며, 속상하다는 듯 우수가 깃든 얼굴로 말했다.
“류청, 너는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하니? 연아, 전혀 아니란다.”
“속지 마.”
소부인이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아니, 남궁류청 쟤는 자꾸!
“가만있어!
예쁜 얼굴 찡그리시게 하지말구!”
남궁류청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보았다.
나는 방긋 웃으며 소부인을 향해 말했다.
“어서 올라오세요!”
* * *
천암사로 가는 길은 매우 편안했다.
겉으로 봤을 땐 그리 화려하지 않은 마차였다. 하지만 내부는 널찍하니 세 사람이 타고도 여유로웠고, 방석을 여러 겹 깔아 놓아 매우 푹신했다.
심지어 마차 중앙에는 환기까지 신경 쓴 정교한 난로까지 있었다.
난로의 온기에 마차 창문을 열어도 크게 춥지 않았다.
나는 바깥을 구경하며 소부인과 담소를 나눴다.
그런 나와 달리 남궁류청은 가는 내내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냥······
편하게 집에서 보지 왜 따라온 거야?’
나는 남궁류청을 바라보다 물었다.
“류청, 멀미 안 나?”
“안 나.”
“그래.”
좋겠다야. 마차에서 책이라니.
난 멀미 때문에 꽤나 고생했는데.
만신의의 연단실에서 영약을 주워 먹은 후, 멀미는 거의 사라졌다.
그렇다 해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재밌어?”
“응.”
“······그래애.”
우리를 지켜보던 소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연아, 올 때 표정이 좋지 못하던데 무슨 일이 있었니?”
“올 때요?”
“처소에서 왔을 때 말이다.”
“아! 혼났어요. 아버지께. 정리정돈 못 한다과요.”
어쩔 수 없이 말투가 살짝 불퉁하게 나왔다
소부인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정리 정돈?”
“네.”
“시비가 일을 제대로 못 한 모양이구나. 내 다른 사람으로 바꿔 주마.”
나는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뇨! 아뇨. 잘해 주셔요. 그······ 각자 방은 본인이 정리하기로 했거든요.”
“어머, 공자께선······ 그리하시는구나.”
소부인이 신기하다는 듯 말하며 남궁류청을 보았다.
“우리 청이는 먹도 스스로 갈아본 적 없을 텐데.”
청이는 소부인이 류청을 부를 때 쓰는 아명이었다.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아명에 손 하나 까딱 안 한다는 말까지.
‘그야말로 그림 같은 부잣집 도련님.’
어휴, 이래서야 나중에 강화에 나와서 고생하는 게 당연할지도.
내 시선에 남궁류청이 뭘 보냐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먹 갈 줄 알아. 내가 할 필요가없는 일일 뿐이지.”
“아니······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렇게 쳐다봐 놓고서는. 웃기지 마.”
“눈치는 빨라서······. 책이나 계속 봐.”
내 말에 소부인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마차를 채웠다.
입을 가리며 겨우 웃음을 거둔 소부인이 말했다.
“사이가 정말 좋구나.”
남궁류청이 소부인을 힐끗 보더니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부인은 살짝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류청이 분명 처음에는 안 간다고 했었단다. 그런데 오늘 준비하며 너랑 간다는 얘기를 듣더니 갑자기 간다고 하더구나.”
책을 들여다보던 남궁류청의 손가락이 움찔 움직였다.
아니, 하하, 그랬어?
나는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남궁류청을 바라보았다.
남궁류청은 마치 대화를 못 들은 것처럼 책에 얼굴을 박로 절대 고개를 들지 않았다.
* * *
아무리 가까운 절이라도 자동차도 없는 이 시절에 성내에서 산속의 절까지는 한 시진(2시간)은 넘게 가야 했다.
신나게 구경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마차가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던 머리가 어딘가에 기대졌다.
그렇게 한참 달게 자다 어느 순간 천천히 정신이 들었다.
마차 바깥에서 도란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에 들어선 이후로 거의 듣지 못한 소리니 천암사에 당도한 모양이었다.
“깼으면 일어나.”
머리맡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응? 머리맡?’
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미, 미안!”
언제 남궁류청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었다.
‘설마, 침은 안 흘렸겠지?’
입가를 닦는 손에 다행히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제때 일어났구나. 거의 도착했단다.”
아니, 소부인 제가 이렇게 자고 있으면 깨워 주시지 그러셨어요!
“내 깨우려 했는데, 청이가 그냥 두라 하더구나.”
“어······ 고마워.”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 혀를 찬 남궁류청이 구겨진 옷자락을 정돈했다.
마차에서 내리자 은은한 향불냄새와 시린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확실히 공기가 더 차가웠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길게 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암사는 규모가 큰 사찰은 아니었다. 먼저 예불을 드리러 온 사람들도 있었으나, 수가 적어 번잡한 느낌은 없었다.
소부인을 알아보았는지, 사찰에서 직위가 꽤 높아 보이는 승려가 직접 맞이하러 나타났다.
서로 간단히 안부를 묻고는 바로 대전으로 들어갔다.
소부인을 따라 향불을 올리는 남궁류청의 모습이 퍽 익숙해 보였다.
소부인에게 1년에 두어 번 억지로 끌려온다 들었다. 아마도 그게 남궁류청의 거의 유일한 외출이 아니었을까?
절을 마치고 소부인이 자신을 기다린 듯한 승려를 보고 말했다.
“류청, 연이에게 이곳을 안내해주거라. 어미는 얘기 좀 하다 가마. 시비와 호위는 꼭 대동하고.”
“알겠습니다. 가자.”
나는 앞서는 남궁류청을 따라가다 대전 입구쯤에서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멈춘 기척에 남궁류청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내 시선이 닿은 곳을 보았다.
화사한 차림새의 소녀들이었다.
대전을 가득 채운 향불 향 사이 달달한 분내가 살짝 맡아졌다.
소녀들은 손에 점괘가 적힌 길쭉한 막대를 하나씩 들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궁류청이 이를 보고 물었다.
“너도 하려고?”
“아니, 그냥······ 그래, 해볼까?”
내가 바라본 이유는 그냥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즐겁게 들려 무엇 때문인가 궁금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남궁류청을 본 순간, 갑자기 그의 점괘가 궁금해졌다.
나는 남궁류청의 미래를 대략 알지 않는가? 과연 그걸 점괘가 어떻게 풀이할지 궁금했다.
‘뭐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소녀들이 떠나고, 남궁류청이 점괘가 들어있는 흑색의 죽통을 집어 들었다.
“자, 뽑아.”
여기서 나는 내껀 관심없고 내가 궁금한 건 네 점괘라고 말하기도 모호했다.
나는 그냥 고맙다고 웃으며 죽통을 받아 들었다.
이곳의 점치는 방식은 죽통을 흔들어서 점괘가 적힌 막대를 하나 뽑아내는 식이었다.
건성으로 흔들자 막대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남궁류청이 몸을 숙여 점괘를 집어 들어 주었는데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왜 그래? 별로야?”
“네가 봐 봐.”
점괘를 바라본 난 고개를 기울이며 막대를 뒤집었다. 앞뒤 모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깨끗했다.
“뭐지? 잘못 들어가 있던 건가?”
왜 하필 뽑아도 이런 걸······.
“다시 해 봐.”
두 번 해도 효용이 있는 건가?
아니면 애가 너무 건성으로 뽑은 건가?
이번엔 진심을 담아 관음상을 향해 절까지 올렸다.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안은 채 다시 한번 죽통을 흔들었다.
하지만 진심을 너무 담은 걸까.
이번에는 두 개가 연달아 무릎위로 떨어졌다.
“앗, 뭐야!”
망했다고 생각하며 점괘를 집어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