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5)
95화
* * *
하루가 다르게 날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가벼운 외출복 차림새의 나는 한쪽에 꽂아 두었던 동백꽃이 예쁘게 피어난 가지를 들고 일어났다.
소부인이 피어난 모양이 예쁘다며 방을 장식하라고 시비를 시켜 가져다준 것이었다.
먼저 야율의 방으로 향했다.
야율의 방은 살풍경했다.
정말 필요한 물품 외에는 없는 방이랄까.
이곳에 머무르는 아이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온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제 돌아오려나.’
천산염제가 야율을 데리고 간 지 벌써 일주일째였다.
아버지께 말하고 데려갔다는데······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야율이 없으니까 허전했다.
‘익숙해진다는 게 이렇게 무서워.’
야율이 천산염제와 함께 완전히 내 곁을 떠나게 된다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았다.
나는 빈 화병을 하나 찾아 동백 꽃 가지를 꽂아 넣고 곧장 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아버지 방도 비어 있었다.
아버지 방은 매우 깔끔했다.
시비가 한 명뿐이기에 각자 방은 스스로 정리했는데, 침구까지 정리정돈한 모습이 아버지의 성품을 보여 주었다.
화병을 놓을 적당한 곳을 고민할 때였다. 탁자 아래로 떨어져 보이지 않았는지, 치우지 못한듯한 서신이 눈에 띄었다.
몸을 수그려 서신을 집어 들던 난 멈칫했다
‘백리 세가에서 온 서신이잖아?’
아버지가 이렇게 대충 관리했다면 중요한 내용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읽어 내려갔다.
역시, 그저 빠른 귀환을 요청하는 독촉장이었다.
‘하긴 슬슬 갈 때가 됐지.’
그런데 왜 말씀이 없으시지?
‘이 서신 받은 지 좀 되지 않았나?’
아버지가 내게 석가약에게서 온 서신을 건넬 때 가지고 계신 걸 봤으니까 날짜로만 따지면······.
손으로 날짜를 꼽고 있을 때였다.
달칵.
“연아?”
등 뒤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차림새는 무엇······ 아, 그래. 천암사에 간다고 한 날이 오늘이구나.”
나는 뒤를 돌아보며 들고 있던 서신을 내밀었다.
“아버지 여기요. 소부인께서 동백꽃 가지를 주셔서 놓을 곳을 찾다보니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아버지가 고개를 슬쩍 기울이곤 내가 내민 서신을 확인했다.
“고압구나.”
아버지의 시선이 화병에 닿았다.
“가지가 뻗어 난 모양이 좋구나.”
“그쵸? 정말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 방에 두고 싶었어요.”
“왜 네 방에 두지 않고?”
“그냥 여기 두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어디에다 두려고?”
“어디에다 두는 게 좋을까요?”
아버지와 꽃병을 놓을 곳을 한참 이야기하다 결국 서탁 근처로 결정했다.
“천암사는 소부인과 단둘이 간다 하였지?”
“네. 남궁 공자한테도 물어봤는데, 안 간다고 했대요.”
당연히 안 간다고 할 거라고 여겼기에 소부인도 나도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소부인이 너를 많이 신경 써주시는구나.”
“헤헤, 좋으신 분 같아요.”
잠시 동백꽃을 감상하던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았다.
“연아.”
나를 부르고도 한동안 말이 없으셨기에 재촉하듯 말했다.
“말씀하세요.”
“남궁 세가에 남는 건 어떠냐?”
“······네?”
남궁 세가에 남으라고? 뭔지, 저번 생에는 이런 말씀 없었는데······?
동시에 여러 가능성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버지, 가문에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무 일도 없었단다.”
나는 더 걱정되었다.
내가 모르는 새 뭘 잘못했나?
내 태도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럼 혹시 제가······
가문에 누를 끼친 게 있나요?”
“아니! 너는 아무 잘못도 없다.
그런 생각 말거라!”
아버지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 반응에 다소 안도하며 더 의아해졌다.
“그럼 왜요? 제가 왜 남궁세가에 남아야 해요?”
아버지가 잠시 눈을 내리떴다가 입을 열었다.
“네게 여기 생활이 잘 맞는 것같아 물어본 거란다.”
“아······.”
“완이 네가 좀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아저씨가요? 하하, 그거 감사하네요.”
가슴 한쪽이 따스해지는 기분이었다.
남궁완 아저씨와의 관계도 확실히 많이 변했다. 전에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밀하다고 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돌아가야죠.
언제까지 신세만 질 수는 없잖아요.”
“신세라고 생각하지 말라더구나.”
“그래도 멀쩡하게 집이 있는데 저희가 백리 세가로 돌아가지 않고 남궁 세가에 머물면 사람들이 어찌 보겠어요?”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따위 신경쓸 필요 없다.”
세간에 이름 높으면서도 그 평판을 전혀 신경 안 쓰는 것이 정말 아버지다웠다.
말씀은 이렇게 하시더라도 정말 남궁 세가에 남을 수는 없었다.
내가 남궁 세가에 남으면 여러모로 백리 세가에서 압박이 들어올 것이다.
가문 내에서 아버지와 형제들간의 진실이야어떻든 간에 일단 겉으로는 화목함을 표하고 있었다. 그 화목의 중심은 큰아버지인 것처럼 꾸미고 있었고.
그런데 멀쩡한 집을 두고다른 가문에 의탁한다?
분명 가족 간에 사이가 얼마나 나쁘면 저러느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그 불화설은 큰 아버지의 통솔력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 테고, 큰 아버지는 제대로 체면을 망치게 될 것이다.
솔직히 큰 아버지의 체면 따위 나와 전혀 상관없었다.
망칠 수 있다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그렇지만.
“돌아갈래요.”
“좀 더 고민해 보지 그러느냐?”
“아니에요.”
나를 잠시 바라보던 아버지가 내 의지가 바뀌지 않으리라고 느껴졌는지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그래. 네 뜻이 정녕 그렇다면 알겠다.”
잠시 침묵하던 아버지가 다시 운을 뗐다.
“하지만 정말 괜찮겠느냐?”
나는 고개를 갸윳 기울였다.
아버지가 고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백리 세가가 그다지 네게 편한 것 같지 않아서······ 나는 다만 네가 그곳에서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구나.”
나는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낯빛도 남궁 세가에 있으면서 만이 좋아졌다. 훨씬 더 웃음도 많아졌고 늘 걱정스럽게 나를 보는 것 또한 줄었다.
‘그렇구나.’
단숨에 이해했다.
아버지가 왜 내게 남궁 세가에 남자는 제안을 했는지 가슴 깊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바라보는 내 모습이 저럴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가기에 더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 도망치는 걸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버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말하려무나.”
아버지가 살짝 긴장한 낯을 했다.
그 얼굴을 보자 나도 긴장했다.
땀이 찬 손을 보이지 않게 옷자락에 슬쩍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백리 세가가 남궁 세가보다 편하냐고 묻는다면······ 불편하진 않아요.”
남궁류청에 서하령. 친우라고 해도 될 귀여운 아이들.
남궁완 아저씨, 소부인, 수향문의 제자들, 심지어 심 부관부터 수문 무사들까지 나를 존중해 주고, 아껴 준다.
걸핏하면 나를 때리던 고모와 나를 괴롭히던 쌍둥이들, 이를 방조하던 큰아버지와 사촌 오라비.
내 이름이 들리는 것조차 싫어하던 할머니와 내게 무관심하던 할아버지.
“솔직히 남궁 세가가 편하고 즐겁기도해요.”
당연히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그래도 제 집은 아니잖아요.”
“······.”
“백리 세가가 제 집이잖아요.”
나는 천천히 오래전부터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집이 불편하면 집을 바꿔야죠.”
아버지가 눈을 부릅떴다. 탁상을 짚고 있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것이 보였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아버지와 눈을 마주했다.
“아버지도 당당한 백리 세가의 일원이잖아요.”
“······너 그게 무슨 뜻······.”
“백리 세가를 바꿔야죠. 누구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도롹.”
아버지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버지는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연아 너······.”
“도망치지 마세요.”
도망쳐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상관없었다.
나는 눈과 귀를 모두 막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지낼 수 있었다. 저번 생에 그랬던 것처럼.
야율에게 갑자기 죽임당하는 일만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냥 그렇게 쥐 죽은 듯이 조용히 평생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할지라도, 아버지는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이었다.
가문을 모른 척하고 세상에서 눈을 돌리고.
그게 가능한 분이셨다면······ 이렇게 살고 계시지도 않겠지.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처음에는 아버지를 살려 아버지 그늘 아래서 나도 평안하게 살아보겠다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더는 그 처음의 목적을 떠올리지 않았다.
목적, 목표가 아닌 그저 마음으로, 진심으로 아버지가 행복한 삶을 바라게 되었다.
“저는 아버지가 어떤 선택을 하셔도 따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