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56)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156화
43장 보상(1)
모든 전투가 마무리되고 하루가 지난 뒤.
저벅, 저벅.
은발의 여인은 레제로의 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탕! 탕!
“어이! 석재 좀 더 가져 와! 이쪽부터 손 봐야겠어!”
“기다려! 여기는 기반이 무너졌어. 빨리 보수하지 않으면 2차 피해가 발생할 거야.”
여인의 시야에 들어오는 도시 이곳저곳을 보수 중인 사람들의 모습.
그런 사람들의 낯빛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어제 일어났던 수많은 전투로 인해 도시는 거의 반파되다시피 했고 인명 피해 또한 무지막지했으니까.
레제로가 생기고 난 뒤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도 많이 잃었을 테니.’
낯빛이 밝으면 그게 이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낯빛이 어두운 건 도시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
그녀의 뒤를 따라오는 레인과 투르잔 또한 어제 이후로 입을 꾹 다문 채 넋이 나간 듯 멍한 눈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달랐다.
‘아마 어제 보았던 마지막 전투 때문이겠지.’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영역이 존재하고 그 영역이 넘어가는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어제 도시의 하늘에서 일어났던 신화적인 격돌.
그 격돌이 저들에게는 영역 밖의 일이었으리라.
용사인 여인 자신조차 그 전투를 보는 동안 한 번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생각보다 더 충격이 컸나 보네.’
여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투르잔 쪽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는 레인보다도 더욱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거인.
세계 최강자 중 한 명이라 불리고 있었고 실제로도 정상급의 무력을 지닌 그였다.
그렇기에 겉으로 표를 내진 않지만, 자부심도 대단했을 테고.
그 자부심이 어제 이후로 철저하게 박살 났을 테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다.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으니까.’
어차피 저러한 충격은 나중에 사대공이나 마왕을 마주했을 때 느껴야 할 것들이었다.
그것을 이번에 미리 느꼈으니 다음에는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터.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좌절하고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었지만, 여인의 머릿속에 그런 걱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동료들이었다.
그렇기에 겨우 이런 걸로는 무너질 리 없었다.
‘그나저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단 말이야.’
여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타천사 베리알을 격멸한 존재를 떠올렸다.
한 손에 검을 든 채 마치 노이즈라도 낀 듯 흐릿한 외관을 지닌 존재.
단지 그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찬물을 온몸에 끼얹은 것처럼 전율이 돋는다.
‘분명 그 존재는 시종일관 베리알을 압도했어.’
중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타천사의 봉인이 전부 풀렸지만, 그러한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베리알이 마지막에 펼쳐낸 ‘무너지는 하늘’을 단번에 지워내던 그 힘이란!
그것은 용사인 자신이 이번 생 전체를 바쳐 매달려도 닿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경지였다.
‘다시 이오와를 만나거나 신탁을 받게 된다면 한 번 물어봐야 하나?’
그 정도의 격을 가진 존재라면 분명 이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터.
그렇기에 정체를 알아야 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얼마나 더 걸었을까.
“찾았다.”
어느새 빛의 도시 중앙 광장에 도착한 여인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사람은 광장의 중앙에서 신성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는 금발의 여인.
바로 미래의 성녀가 될 엘리시스 디자이어였다.
* * *
빛의 교 본단에 존재하는 개인 연무장.
보통 때라면 2급 이상의 고위 성기사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 교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외부의 인물이 서 있었다.
차분히 눈을 감은 채 심연보다 깊은 어둠을 주변으로 퍼뜨리고 있는 남자.
바로 시온이었다.
화아아악!
우주를 그대로 축소해 놓기라도 한 것일까.
어느새 연무장 전체를 가득 메운 어둠 속에서 그 숫자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운, 성단, 은하를 이룬 채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별들.
하지만 그 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스스-
반짝이는 별들 한가운데에서 나타나는 이질적인 느낌의 검은 별.
그런 검은 별이 주변에 존재하는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으니까.
하나로는 모자랐던 것일까?
다른 곳에서도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빨아들이는 속도를 올리는 묵성(墨星)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렇게 총 다섯 개로 늘어난 검은 별들이 다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후욱!
그러한 검은 별들과 그 바탕이 된 새카만 흑성하의 어둠이 모조리 시온의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곧이어 숨을 길게 내쉬며 천천히 눈을 뜨는 시온.
그런 시온의 눈 속에는 방금 모든 빛을 집어삼켰던 검은 별 다섯 개가 원을 그리며 휘돌고 있었다.
‘이제 5성.’
시온은 자신의 안에서 새롭게 열리는 또 하나의 세계를 느끼며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크로노스의 물음을 이용하여 본래의 힘을 잠시 사용했던 탓이었을까?
시온은 타천사와의 전투를 끝마친 직후 자신의 흑성하가 5성에 다다르는 것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거의 부서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즉시 빛의 교 본단의 개인 연무장을 빌려 그 안에 틀어박혔고 조금 전에야 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올랐어.’
시온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어렸다.
아직 본래의 힘을 되찾으려면 한참 멀었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제국 내에서는 거의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
예전 시온 자신이 재현했던 이벨린 아그네스의 힘에 필적할 정도.
‘이걸로 ‘인과의 탑’을 정복할 최소 조건은 갖췄다고 해야 하나?’
이제 정말로 나타날 시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다음 목표를 시온이 떠올릴 때, 퉁퉁!
연무장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시온의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사제 한 명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더니 입을 열었다.
“성하께서 전하를 만나 뵙길 원하십니다. 지금 바로 가시겠습니까?”
“그러지.”
그에 예상했다는 듯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 시온이 곧바로 연무장을 나섰다.
봉인지를 탈환하기 전 시온 자신은 교단의 고위 인사들 앞에서 정체를 밝혔고 그렇기에 어찌 보면 이 만남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빛의 교단은 제국에 속해 있었고 때문에 제국의 지배자인 황족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저벅, 저벅.
일정한 속도로 교단 최심층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사제.
시온은 그런 사제의 뒤를 따르며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의 뛰다시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
어제 일로 인해 엄청난 희생을 치렀기 때문인지 그런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대주교들을 비롯한 사도까지 죽었다고 했었나?’
아마 본래대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그리고 그것은 빛의 교단뿐만이 아닌 레제로 전체가 똑같을 터였다.
그때,
“‘천멸자’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낸 건 있나?”
“그럴 리가. 어제 그 전투 이후로 곧바로 사라져 버린 존재를 어떻게 알아내겠는가.”
시온의 귀로 주변을 지나가는 성기사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천멸자(天滅者).
봉인에서 풀려난 타천사를 격멸한 존재를 칭하는 말이었다.
누구는 빛의 신이 보낸 사자라고 했으며 누구는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수호자라고 했지만, 정확한 정체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중 누구도 천멸자가 시온 자신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긴 짐작할 리가 없지.’
딱 맞춰 모습을 보이지 않은 부분이나 사용하는 힘이 비슷한 것 등 몇 가지 단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의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힘과 격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으니까.
천멸자는 어느 정도 신성까지 획득했던 베리알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 주었다.
거기에 비해 시온 자신의 강함 또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주 안이었다.
애초에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말.
그때,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성하께서는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듯 걸음을 멈춘 사제가 앞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그에 시온은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스륵-
별다른 소음 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문.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건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자그마한 서재였다.
주인의 성격을 나타내듯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과 의자는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그 밖의 물건들은 꼭 필요한 것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앉아 있는 한 명의 노인.
시온은 저 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교황 시메온 자카리아스.’
세계에서 가장 큰 교세를 떨치는 빛의 교단의 지배자이자 루미너스의 대리자라고 불리는 존재.
“어서 오시지요, 시온 전하.”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시온을 향해 자리를 권하는 교황.
그런 노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듯 주름들이 깊게 패어 있었다.
막대한 신성력으로 충분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을 보니 무척이나 소탈한 성격인 것 같았다.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시메온이 권한 자리에 앉은 시온의 입에서 바로 질문이 흘러나왔다.
그에 교황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겉치레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화법은 그가 익히 들어왔던 시온 황자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으니까.
“제국의 황족이 빛의 교 본단에 방문했는데 마땅히 제가 나서서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통은 대주교나 특급 성기사 정도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긴 하지만 시온 전하는 황족 중에서도 특별하시니까요.”
아마 시온 자신이 루미너스에게 지정과 신탁을 받은 걸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일에 관해서도 얼굴을 보고 직접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시메온이 시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비록 결과적으로 타천사가 풀려나오긴 했지만, 시온 황자 덕분에 봉인이 풀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 일에 마역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으니까.
더불어 교황은 시온 황자가 교단을 도와 봉인지를 탈환해 준 것 또한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말로만?”
그에 피식 웃은 시온이 교황을 향해 물었다.
“물론 아니지요. 전하께서도 만족하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상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자신감 있게 대답하는 시메온.
그에 시온이 말하기 전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전에 빛께서 내리신 보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빛의 신이? 신탁이 또 내려온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연무장에 계실 때 저에게 신탁을 내려 뜻을 전하셨지요.”
그 말과 함께 시온을 바라보던 교황의 눈동자가 묘한 빛을 띠었다.
빛의 교가 창립된 이후로 지금까지 자신들이 모시는 신이 이렇게 직접 신탁으로 보상을 언급하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었으니까.
아니, 처음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시온 황자는 이미 그전에도 여러 신탁을 받았으며 여태까지 초대 교황밖에 경험하지 못했던 강림마저 겪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하나조차 구경하지 못하는 것들을 한 사람이 이토록 짧은 시간 만에 전부 겪을 수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잠시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떠올리던 교황이 다시 시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빛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약속한 것은 처음 무기가 존재했던 장소에 두었다.’라고.”
“그렇군.”
시메온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단번에 알아들은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서 처음 자신의 무기가 존재했던 장소.
그 장소는 오직 한 곳밖에 없었으니까.
“그럼 이제 너희 교단의 보상도 들어볼까?”
그 장소를 떠올리며 슬쩍 웃은 시온이 곧바로 다음 주제를 꺼냈다.
하지만 그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생각하듯, 아니 망설이듯 잠시 시온을 바라보는 시메온.
곧이어 그런 그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온 전하, 죄송하지만 저희가 드릴 보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교황의 눈이 기이한 빛을 띠기 시작한다.
마치 예전에 보았던 1황자 루브리오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눈빛.
“말해봐.”
그런 시메온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시온이 대답하는 순간,
“시온 전하, 당신이 ‘천멸자’십니까?”
교황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물음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