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58)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158화
44장 습격(1)
레제로 중앙 광장 근처에 존재하는 인적 드문 카페.
그러한 카페 안에는 은발의 여인을 비롯한 용사 일행, 그리고 맞은편에는 엘리시스를 필두로 한 라트 용병단이 앉아 있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잠시 맞은편의 엘리시스를 바라보던 여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담담하면서도 왠지 모를 그리움이 담긴 목소리.
그 알 수 없는 감정에 엘리시스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지금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해야 할 일이라면…….”
“보답. 제가 꼭 자격을 증명하고 보답해야 할 사람이 있어요.”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
그것도 어쩌면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구명지은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
말을 끝낸 후 곧바로 입을 다무는 엘리시스의 모습에서 굳은 의지를 보았기 때문일까.
여인은 더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 다음에라도 생각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도록 해. 마음만 먹는다면 너의 신이 나에게 인도해 줄 거야.”
“네, 이해해 줘서 감사해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이던 엘리시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번 바라본 여인이 곧바로 몸을 돌려 카페를 빠져나갔다.
“동료 얻기 힘들다~ 그치?”
“다음에 다시 보았으면 좋겠군.”
그런 여인의 뒤를 따르는 레인과 거인.
그렇게 그들이 전부 카페에서 나간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아…… 진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옆에 있던 라트가 호들갑을 떨며 입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있는데도 느껴지는 압박이 장난 아니던데?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제안을 거절한 거야 엘리?”
“멍청아, 자신들이 용사와 그 일행들이라잖아. 너 같으면 처음 보는 사람이 그렇게 소개하면서 같이 가자는데 믿고 따라가겠냐?”
“아니요.”
그런 라트의 말에 엠버가 핀잔을 주자 엘리시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믿어요.”
은발의 여인을 본 순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여인이 바로 용사라는 것을.
특별한 근거나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마치 꿈속의 목소리를 들을 때처럼 느껴지는 확신에 가까운 감각.
엘리시스는 그것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닌 몸에 흐르는 천사의 피로 연결된 ‘누군가’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느껴지던 본능적인 이끌림까지.’
본래의 자신이었다면 여인이 함께하자는 말을 꺼낸 순간 수락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
“다만 정말로 먼저 해야 할 게 있기 때문이에요.”
바로 시온 아그네스 황자 때문이었다.
예전 안겔로쉬 영지의 일 이후로 엘리시스의 마음속에는 항상 빚이 존재했고 그 빚을 갚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이었으니까.
‘물론 어떻게 갚아야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시온 황자가 말했던 자격은 어느 정도 갖춘 것 같으니 이제는 그를 찾아가도 될 것 같았다.
이제 시온 황자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엘리시스의 눈동자 안에서 기대가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덜컥!
카페의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성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갑자기 성기사들이 무슨 일이지?”
귓가로 들려오는 엠버의 중얼거림.
그때 잠시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던 성기사들이 엘리시스를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엘리시스 디자이어 님 되십니까?”
곧이어 그녀의 앞에 멈춰선 성기사 중 한 명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예? 예…….”
엘리시스의 대답에 더욱 밝아진 얼굴로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성기사.
“빛의 교단 3급 성기사 알폰스라고 합니다. 잠시 성녀 후보 자격으로서 교단으로 동행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 성기사의 입에서 고양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제국의 수도 휴브리스 근교에 존재하는 자그마한 호수.
그런 호숫가 바로 옆에 세워진 조그마한 카페 안에서 시온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쏴아아!
구름에 가려 어두운 하늘로부터 조금씩 쏟아지며 호수의 표면에 잔잔한 파문을 만들어내는 빗줄기.
시온은 화창한 날보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을 더 선호했다.
이런 날에는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기가 더 수월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거기에 이렇게 향 좋은 커피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였다.
“크, 먹을 때마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괜찮단 말이야. 왜 진작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을까?”
그런 시온의 옆에서 리우시나가 연신 탄산이 가득 들어간 에이드를 들이켜며 감탄을 내뱉었다.
예전 건국제에서 처음 맛본 이후로 중독이라도 된 것인지 그녀는 그 뒤로 물을 제외한 모든 음료를 마실 때 항상 탄산이 섞인 것만을 주문했다.
그런 탄산의 맛이 궁금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짹!
시온의 어깨에 앉은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서리 정령이 빨대를 하나 물고 오더니 리우시나가 마시던 에이드 컵에 꽂아 넣고 쪽 빨았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째애액!
충격이라도 받은 듯 서리 정령이 눈을 크게 뜨며 날개를 위아래로 빠르게 휘젓기 시작했다.
마치 못 먹을 것을 먹은 것처럼 캑캑거리는 정령.
짹! 째재재잭! 째잭!
그렇게 한동안 캑캑대던 정령이 날개 끝으로 리우시나를 가리키며 따지듯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그런 정령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게 왜 내 탓이야? 마시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마셔 놓고. 하여간 예전부터 성격 이상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깐.”
자기랑 상관없다는 듯 뻔뻔한 얼굴을 한 리우시나가 에이드를 한 번 쪽 빨며 입을 열었다.
짹재잭!
“뭐? 내 성격이 더 이상하다고? 그게 무슨 소리일까?”
짹짹!
“그래? 한번 물어볼래? 주인! 주인이 볼 때는 누가 더 이상해?”
짹!
그 말과 함께 약속이라도 한 듯 리우시나와 서리 정령의 고개가 동시에 시온에게로 홱 돌아갔다.
물론 시온의 입장에서는 오십보백보였다.
“더 이상 시끄럽게 하면 둘 다 빗속에서 싸우게 해주지.”
“…….”
그 말에 비로소 조용해지는 둘의 모습에 시온은 다시 찻잔을 들어 올렸다.
다음 목적지인 ‘인과의 탑’이 세상에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시온이 이렇게 근교의 숨겨진 카페에 방문할 정도로 여유를 부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가봤자 어차피 들어갈 수 없으니까.’
인과의 탑이라 불리는 지상 최고의 던전을 만든 자들은 최대한 많은 존재가 안으로 들어오길 바랐다.
그렇기에 탑의 개방에 일종의 유예 기간을 두었다.
그쪽에 달라붙은 모험가들과 마법사들이 탑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아내고 그 정보가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될 때쯤 자연스럽게 열릴 터.
그때까지는 가봤자 손가락만 빨 테니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준비를 하는 게 나았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실제로 연대기에서도 인과의 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정확히 일주일 후에 열렸던 것으로 시온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전에 이 녀석의 마지막 조각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직도 리우시나와 눈빛으로 무언의 다툼을 벌이고 있는 서리 정령을 바라보았다.
서리 여왕의 권능 조각은 이번에 향할 인과의 탑에서 무척이나 중요하게 쓰일 물건이었다.
시온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열쇠였으니까.
‘더 이상 우로보로스 쪽에서 찾기를 기대하는 건 힘들어.’
이미 시온 자신에게 조각 세 개를 뺏겼기에 그쪽에서도 굳이 나머지 하나를 찾으려고 노력하진 않을 터.
티에리와 아일린에게 지시하는 등 다른 방법도 강구하고 있었지만, 단시간 안에 찾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조각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연대기에도 나와 있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굳이 전부 모으지 않아도 조각들이 열쇠 역할을 할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
‘불완전하긴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시온은 고개를 돌려 황성 쪽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인과의 탑으로 향한다면 황성을 또 비우게 되겠지만, 시온의 눈에 별다른 걱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재앙 토벌로 얻어낸 ‘세계 회의’의 주도권, 그리고 3황자 에녹과 4황자 우테칸을 격멸하고 탈취한 온갖 세력과 이권들로 인해 이미 황위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특별한 일없이 시간이 흐른다면 황위에 오르는 것은 시온 자신이 될 터.
이미 귀족들 사이에서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정리는 완벽하게 해놓는 게 좋겠지.’
시온은 그 생각과 함께 2황녀 이벨린과 5황녀 디에나를 떠올렸다.
이 둘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것이 있었다.
‘다만 루브리오스 쪽은…….’
그때였다.
짤랑!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카페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로브를 쓴 한 명의 인영.
카페 전체를 통째로 빌렸기에 더는 손님이 없어야 정상이었지만, 그 인영을 바라보는 시온의 눈은 평온했다.
‘드래곤도 말하면 온다더니.’
저 사람을 이곳으로 부른 것이 바로 시온 자신이었으니까.
“나는 따뜻한 우유를 넣은 홍차로 한 잔 주지.”
시온을 향해 다가오던 인영이 그 말과 함께 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것은 태양 빛 같은 황금색 머리카락과 수려하기 그지없는 얼굴.
바로 1황자 루브리오스였다.
* * *
“차 맛이 무척 좋구나. 수도에도 이 정도의 밀크티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있었을 줄이야.”
리우시나와 주인마저 밖으로 내보내고 둘밖에 남지 않게 된 카페 안.
잠시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찻잔을 기울이던 루브리오스의 입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온, 너는 밀크티가 우리 빛의 교단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에…….”
“날 보자고 한 이유부터 말하도록 해. 내가 잡담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오랜만에 보았음에도 여전히 끊이지 않는 그의 말을 잘라내며 시온이 입을 열었다.
그와 함께 서로 마주치는 시온과 루브리오스의 눈동자.
그 순간, 1황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온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으니까.
‘저번에 보았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압박감이 시온의 나른한 눈으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선황제가 살아 있었을 적 그의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의문이 속에서 차올랐지만, 루브리오스는 그 의문을 억누르며 본론을 꺼냈다.
“……레제로에 있는 본단에 방문했었다지.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전부 전해 들었다. 정말 큰일을 해주었더군. 일단 다시 한번 교단을 대표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구나.”
처음 그에 관한 이야기를 교단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루브리오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빛으로부터 지정을 받은 것부터 교단 안에 숨어 있던 마족들을 솎아내고 봉인지를 탈환한 것까지.
그 전부가 교단 전체를 뒤흔들 만한 내용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하나하나 몇 시간에 걸쳐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루브리오스는 일단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자, 자신이 시온을 찾아온 이유부터 말했다.
“본단에 숨어 있던 마족들을 네가 전부 밝혀내고 정리했다지.”
“맞아.”
“그럼 혹시…… 시온 너는 빛의 교단뿐만 아니라 황성 안에도 마물들이 숨어 있던 것을 알고 있었느냐?”
일단 질문을 하긴 했지만, 루브리오스는 시온이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자신의 막냇동생은 이미 수면 밑에서 그들과 전쟁을 치르는 중일지도 몰랐다.
그런 1황자를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온이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
시온의 대답에 차갑게 굳어지는 루브리오스의 얼굴.
“그럼 나에게 말해다오.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1황자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어쩌면 제국 전체가 전복될 수도 있는 상황.
거기에 더해 그는 신성한 빛의 의지로만 가득 차야 할 제국에 불경한 마의 존재가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루브리오스에게는 이 일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했다.
“그러지,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무엇이지?”
시온의 말에 의문 어린 눈으로 묻는 루브리오스.
그 순간,
“황위를 포기해, 그리고 내 밑으로 들어와.”
예전 선황제의 장례식에서 그가 시온에게 했던 말.
그 말이 이번에는 시온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