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60)
023. 얼음과 불의 전쟁(2)
4.
바그라티온은 제2서부군 중에서도 정예병력 2만 가량을 추려 요새를 나섰다.
본래 규모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뮈라 그 녀석의 행적을 끝까지 추격하라 했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코리트니아 마을로 응원군을 이끌고 나왔을 때.
대응 방법과 이동 방향에서 이질감을 느낀 바그라티온은 은밀히 저들의 뒤를 쫓았다.
그 결과 드네프르강 상류 근방에서 얼쩡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폴레옹이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누군가 지휘권을 잠시 위임받은 건가?’
너도나도 왕이니 원수니 한 지역의 패자니.
이런 식으로 한 자리씩 나눠주는 바람에 나폴레옹 본인이 아니라면 군을 통제하는 게 쉽지 않았으리라.
그때 장교 하나가 보고를 올렸다.
“사령관님. 조금만 더 가면 뮈라의 기병대로 추정되는 병력이 보일 겁니다. 어찌할까요?”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접근해라. 가능하다면 포위망을 형성해서 배수진을 치도록 유도하는 게 좋겠지.”
바그라티온은 그와 동시에 주변 장교들로부터 의견을 구했다.
“뮈라를 상대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
“저들이 작심하고 도망친다면 뒤쫓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단번에 제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만만한 자가 아닙니다. 불확실한 뮈라를 믿기보다는 분명 새로운 군대를 보내 작전을 수행하려 들 겁니다.”
“드네프르강을 넘어 배후에서 혼란을 야기하고 급소를 치려는 거로군.”
평소에도 부관들의 얘기를 듣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열기 속에서 한 줄기 냉정함을 찾으려 노력하니 그동안 놓쳤던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단순히 눈앞의 전투에서 이기는 게 다가 아니다.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전장까지도 고려하는 것이야말로 사령관의 역할일지니!’
생각을 정리한 바그라티온은 장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뮈라를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저들이 나폴레옹의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전공에 눈이 먼 자는 그 자리에서 즉시 징계를 내릴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어둑한 밤.
바그라티온이 먼저 보병들을 앞으로 보내 포위망을 형성하는 사이.
강가에 도착한 뮈라는 모스크바 방면으로 쭉 뻗어있는 대로를 바라보며 고뇌에 찬 표정을 지었다.
“후우. 이제 뭘 어찌해야 하지?”
무작정 이곳까지 달려왔으니 이탈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7천 명도 채 되지 않은 무리를 바라보던 부관은 간곡하게 설득을 시도했다.
“장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폐하께 돌아가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끙. 정말 그러는 수밖에 없나.”
아무런 전공도 세우지 못하고 다부에게 항명까지 했으니 쉽사리 용서받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뭔가 좋은 수가 없을까? 내 인생에 남은 행운이라고는 나폴리의 왕이 된 게 고작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요행을 바라며 우물쭈물하는 사이.
저 멀리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앙! 히이이잉!
“장군! 습격입니다.”
“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주변을 경계하기는커녕 패잔병처럼 웅크려있기만 했으니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횃불 사이로 비치는 러시아군의 모습을 살핀 뮈라는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다들 퇴각하라! 포병 진지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그간 전장에서 굴러먹은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는지 적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 정도는 쉽사리 알아차렸다.
하지만 뮈라의 명령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장군! 대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
나폴레옹이 이끄는 본대와 합류하려면 바그라티온 쳐놓은 그물을 뚫어야 했다.
그러나 뮈라는 지난날 코리트니아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말았다.
‘고작 농노들한테도 질질 끌려다녔거늘. 과연 작정하고 펼친 방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차라리 보병 방진만이었다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막대한 피해를 보더라도 기동력을 이용해 빙 둘러 가거나 억지로 뚫고 지나갔을 테니까.
하지만 적들은 기병, 포병까지 갖춘 완전체 부대라는 게 문제였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뮈라는 결국 극단적인 발상을 떠올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우리는 강을 넘어 모스크바로 향한다.”
“네? 아니, 그게 무슨,…..”
“폐하라면 분명 저 간악한 러시아군을 물리치고 모스크바까지 입성할 것이다. 그러니 먼저 가서 앞길을 닦아놓는 것이다!”
“……”
적들을 피하고자 적진 깊숙이 들어가겠다니.
이 무슨 황당한 발상인가!
문제는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난장판이라는 점이었다.
“뭣들 하느냐! 우리는 반드시 공적을 세우고 말 것이다! 지금은 승리를 위한 일 보 후퇴일 뿐이다!”
궤변으로 장교와 병사들을 다독이던 그는 확신이 없었는지 선발대를 먼저 보내놓고 나서야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나마 수심이 얕은 곳을 골라두었기에 익사하진 않았으나 물에 들어간 이상 과녁판으로 전락해버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퍼엉! 으아악!
말과 병사들의 시체를 밟으며 간신히 건너편에 도착한 뮈라는 충혈된 눈으로 바그라티온을 노려보았다.
“이익! 다음에 다시 만나면 기필코 복수해주마.”
하지만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그의 가슴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대로 모스크바까지 간다고 한들 한 줌의 병력으로 버틸 수 있을까? 게다가 폐하께서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는데. 차라리 나폴리로 돌아가 왕위라도 지키는 게 낫지 않나?’
원 역사에서도 뮈라는 러시아 원정이 실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폴레옹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반골의 기질이 물씬 흘러넘쳤다.
5.
뮈라의 기병대가 궤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도저히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평지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기에.
‘설마 그 녀석이 거짓으로 고한 건 아닌가?’
배신을 막기 위해 수하들에게 온갖 친족, 인척과 혼인을 주선해왔던 나폴레옹이었다.
심지어 뮈라는 그의 여동생과 결혼까지 했거늘.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뮈라! 감히 네놈이 나를 배신하다니!”
나폴레옹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의 마음을 돌리러 나선 다부와 네 원수는 막사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하아. 결국 명을 따르는 수밖에 없나.’
‘끙.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세 개의 군단으로 이루어진 5만 병력은 요새를 향해 돌진했다.
“먼저 주변 마을부터 싹 다 밀어버린다. 그런 다음 바로 요새로 진격한다!”
포니아토프스키가 이끄는 중앙군은 형식상 남겨놓은 러시아군을 쫓아 보내며 무식하게 돌격을 감행했다.
여기에 네와 다부의 군세가 좌우로 밀어닥치니 그 위세는 천지를 진동시킬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전황은 점점 프랑스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적의 공격이 날아든다! 성벽에 바짝 붙어라!”
“으아아아!”
요새를 사이에 두고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당연하게도 양 군대의 대포에서 쏘아진 포탄이었다.
사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날아든 그것은 각각 성벽과 보병대를 향해 날아가 굉음을 터트렸다.
나폴레옹 밑에서 숱한 전투를 치러본 지휘관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해자 안으로 들어가라!”
“포격이 닿지 않는 곳으로 기어들어 가라고!”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찌어찌 성벽 밑에 바짝 달라붙은 병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벌 꺼. 사다리도 안 주고 무작정 달려가라고 해?”
“이게 무슨 지랄이야!”
나폴레옹은 과감하고 결단력 있으며 때때로 비범한 발상을 떠올려 적들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심지어 전면전을 벌이면서도 의도적으로 전선(戰線)을 늘려 혼란케 만드는 전술은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아군에게도 갑작스럽다는 게 문제였다.
’후우.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적들의 후방을 기습했다면 좋았을 것을. 뭐가 그리 폐하를 조급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바르클레이의 제1서부군과 교전을 벌이는 와중.
자꾸만 요새 방면을 힐끗거리던 다부는 속이 타는지 연신 침을 삼켰다.
성벽 바로 앞 해자에 들어가 버둥거리는 병사들은 언뜻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야지! 몸이 가벼운 자들에게 지지대를 만들어주어라. 동료들의 어깨를 딛고 올라가는 거다!”
급한 대로 포니아토프스키가 소리를 질러댔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성벽이 흔들릴 때마다 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병사들은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조준 좀 잘해라 새꺄! 하마터면 맞을 뻔했잖아!”
“거기 돌 부스러기 좀 그만 떨궈! 싹 다 뒤지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살아서 나가면 보자. 내가 네놈 모가지를 따버리고 말겠다!”
“저 폴란드 놈은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그렇게 폴란드어와 프랑스어로 이루어진 욕설이 폭음과 함께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나폴레옹의 구상과는 다르게 전투는 점점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그 사이 1개 군단을 이끌고 나선 레니에르는 뮈라를 대신하여 드네프르강을 넘을 적당한 지점을 찾느라 바빴다.
그 역시 수시로 오가는 보고를 통해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절대 좌절하지 않았다.
‘폐하께서 본대를 이끌고 저들의 배후를 치는 순간! 러시아군은 궤멸을 면치 못할 것이니!’
그러나 그것도 잠시.
레니에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왜 바그라티온이 여기 있는 거야?’
6.
“우리가 이겼다!”
“더러운 프랑스놈들! 썩 꺼져버려라!”
병사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 와중.
바그라티온은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진정시켰다.
“모두 닥쳐라! 아직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웬 소란이냐?”
그는 결코 한 번의 승리에 취하지 않았다.
뮈라의 기병대를 궤멸시키자마자 그들의 뒤를 쫓는 대신 오히려 철저히 덫을 놓는 데에 집중했다.
“우리의 역할은 저들의 전력을 최대한 깎는 것이다. 모두 진형을 바꿔 다가오는 프랑스군을 상대할 준비를 해라!”
“사령관님……”
수하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과거 수보로프 대원수의 휘하에 몸을 담았던 장교들은 바그라티온에게 그 위대한 전설을 겹쳐보았다.
‘역시 수보로프 대원수님께 사사 받은 장군답구나!’
‘나는 진즉부터 믿고 있었다고!’
그 결과 사기가 충만해진 제2서부군은 레니에르의 군대를 맞아 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콰앙! 콰아앙!
스몰렌스크 요새 위에서 가져온 대포들이 연달아 불을 뿜는 사이.
바그라티온의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어딜 그리 도망가려고 하느냐!”
그 말에 레니에르도 질 수 없다는 듯 맞받아쳤다.
조금이라도 사기를 끌어 올리려는 발악에 가깝긴 했지만.
“곧 나폴레옹 폐하께서 네놈들을 덮칠 것이다. 이번 전투에서 주력 부대를 잃는다면 러시아는 프랑스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겠지. 네놈은 두렵지도 않나?”
그 말에 바그라티온은 섬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폴레옹도 많이 늙었군. 이젠 이런 위협밖에 못 하는 건가?”
“뭐, 뭣이?”
“니콜라이 전하께서 버티고 있는 한 러시아의 미래는 영원토록 찬란히 빛날 것이다. 나는 그분의 검이 되어 네놈들을 단죄할 뿐이니! 모두 죽여버려라!”
“와아아!”
탕! 타탕! 콰아앙!
사방에서 탄환과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라니에르의 얼굴에는 진득한 절망이 배어 나왔다.
‘저 무식한 녀석이 어떻게 이런 계책을 준비해놓은 거지? 정말 배후에 니콜라이 황태자가 있었단 말인가!’
친히 전장에 나선 나폴레옹보다 모스크바에서 한량 짓이나 하고 있을 니콜라이가 더 우위에 있다니.
라니에르는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장군! 지금이라도 후퇴하시지요. 폐하께서 계획하신 마지막 한 방을 위해서라도 병력을 보존해야 합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오. 전령을 보내 알리는 것보다 최대한 거칠게 싸우는 것이 오히려 소식을 빠르게 알릴 수 있을 것이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장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정작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라니에르는 전장의 열기에 머리가 익어버렸는지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스몰렌스크 전투의 승기는 어느새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갔다.
요새에 폭격을 가하는 동안 나폴레옹은 점점 지쳐만 갔다.
“어째서 라니에르에게 연락이 오질 않는 것이냐!”
“사람을 보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벌써 세 번째 전령을 보낸 나폴레옹의 참을성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본대를 소집해라. 내가 직접 전장에 나서야겠다.”
요새에서 사투를 벌이는 병사들까지 합치면 모두 20만 명!
이번 전쟁의 승패를 가를 승부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