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dicate the world to my Russia RAW novel - Chapter (95)
038. 유럽을 새롭게 설계함(1)
1.
워털루 전투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웰즐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영국에선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며 유럽 역시 나폴레옹에 견줄 만한 명 지휘관으로 치켜세우는 분위기였으니까.
심지어 당대 최고 음악가 중 하나인 베토벤이 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웰링턴의 승리’라는 교향곡을 만들기까지 했으니.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잘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제2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웰즐리는 천생 군인이다. 정치적 감각이 부족한 탓에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걱정이 많겠지. 이런 상태에서 무작정 정치판에 가봤자 남한테 휘둘리기나 할 테고.’
나는 웰즐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중들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닐세. 워털루 전투에서의 패배가 퍼져나가기 전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낫지 않겠나?”
미영전쟁이 흐지부지 끝나버린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은 지금.
미국에 관한 화제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리라.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웰즐리는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소?”
“잘 알고 있겠지만 아메리카 대륙은 넓다. 그리고 미국은 끝없이 영토를 확장하며 힘을 키워나간 덕분에 어느덧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지.”
“으음.”
웰즐리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헐값에 매입해 영토를 두 배 이상 늘린 게 시작이었던가.’
북아메리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루이지애나는 엄청나게 광활한 땅이었다.
그 안에 잠들어있을 광대한 자원과 지리적 이점을 생각하면 속이 절로 쓰려왔다.
여기에 이번 전쟁을 통해 평소 눈엣가시였던 원주민들을 몰살하다시피 했으니.
미국은 영토 확장의 야욕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낼 게 뻔했다.
“하지만 영국이 차지한 캐나다 지역과 동맹국 스페인의 영토, 여기에 러시아령 아메리카와 미약하나마 원주민들의 힘까지 더해진다면. 서부로의 확장을 저지하고 점령한 지역을 온전히 장악할 수 있겠지.”
그 말에 웰즐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북서부 끄트머리에 있는 혹한의 땅 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거요?”
작금의 알래스카는 꽝꽝 얼어붙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볼 수 없는 애물단지였다.
거주하는 사람도 겨우 천 명을 넘길까말까 했던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거 정보가 느려도 한참 느리군.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민병대 십만 명이 알래스카에서 해안을 따라 밑으로 쭉 내려가는 중이다. 지금쯤 개척마을을 세우고 대륙 중심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겠군.”
“그게 정말이오?”
웰즐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내가 연애질이랑 회의만 한 줄 알았어?
이런 것도 전부 다 지시를 내려놨다고.
“빈 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수많은 러시아 백성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시아와 아메리카로 향했네. 이들 중에는 공장을 짓고 자원을 캐낼 전문 인력도 포함되어있으니 자리만 잘 잡는다면 영국과 교역도 가능할 테지.”
그 말에 웰즐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러시아가 아주 작정했구나. 그나마 대립보다 협력을 내세운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더 이상 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조금이나마 수출을 늘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의 실세, 니콜라이 황태자로부터 이런 제의를 끌어낸 내게도 좋은 평가가 내려지리라.’
빠르게 계산을 마친 웰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본국으로 돌아가 건의해보겠소.”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기대하지.”
웰즐리를 떠나보낸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우, 성공인가.’
원 역사에서 러시아는 영국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알래스카를 포함한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미국에 팔아치우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국과 손을 잡고 미국을 견제하며 북아메리카 서부 지역을 야금야금 먹어 치울 예정이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였다.
‘근데 여기서 끝내면 조금 아쉽잖아?’
나중에는 영국보다도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될 미국이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제대로 밟아주는 게 현명하겠지.
‘어디 보자, 남북전쟁이 터진 게 언제쯤이었더라. 시기를 앞당겨서 내부 분열을 유도하려면 미리 변수를 계산해놔야 하는데.’
아직 급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고민해보지 뭐.
지금은 유럽을 안정시키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퍼트리는 게 우선이니까.
내 러시아에 세계를 바친다.
이 원대한 계획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2.
웰즐리와 나폴레옹이 미리 손을 써놓은 덕분일까.
벨기에 브뤼셀에서 파리로 향하는 길은 어떠한 문제도 없이 순탄했다.
총포류를 압수당한 프랑스군은 생각 이상으로 관대한 대우에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매 끼니에 고기가 나오다니.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러게. 어째 프랑스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먹는 것 같단 말이지.”
복지는 먹을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난 전쟁 동안 팔지 못하고 남은 재고를 싹 털어온 나는 그걸 전부 프랑스 패잔병들에게 풀어버렸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처럼 그걸 거부하는 병사는 없었다.
“어? 그 침낭 어디서 났어?”
“저기 가면 보급품이라고 주던데? 러시아산이라고 해서 뭔가 싶었는데 품질이 아주 좋더라고.”
“나는 옷을 좀 받아왔는데 영국제보다 더 좋더라. 꺼슬꺼슬한 느낌이 별로 없던데?”
어찌나 프랑스군이 편하게 지내는지 시샘하여 몰래 뺏어 쓰는 동맹국 병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홍보 하나는 제대로군.’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부터 시작했으나 경공업 등 고차원적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산업은 발 빠르게 따라잡고 있었다.
그러니 한번 써보고 만족함을 느끼면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러시아에 대한 저항감이 없어야 일반 백성들도 선뜻 받아들일 테니까.’
프랑스 시장에 진입할 때 영국이 로비를 택했다면 러시아는 자발적인 관심을 유도할 예정이었다.
나는 조금 전 합류한 쿠즈민을 불러 물음을 던졌다.
“내가 파리를 떠나기 전 내렸던 지시를 기억하고 있느냐? 준비가 잘 됐는지 궁금하구나.”
그에 쿠즈민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답했다.
“물론입니다, 전하. 곡도 잘 뽑혔을뿐더러 미리 보내주신 가사까지 잘 입혀놓았습니다.”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브뤼셀에서 출발한 수십만 군세는 파리로 향하는 도중 대부분 흩어져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것은 프랑스에 다시 주둔하기 위해 찾아온 수천 규모의 불청객들이었다.
저 멀리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깃발이 보이자 파리 시민들은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이고, 기어이 또 왔구먼.”
“전쟁에선 이겼다는데 대체 항복은 왜 한 거야?”
그들이 보기에 동맹국의 군대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짓밟고 구체제를 부활시키려는 악의 무리였다.
그러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부대가 파리 시내를 행진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이겼다! 또다시 승리를 거두었도다!”
“와아아아!”
물론 그들도 반발을 사지 않기 위해 조심하기는 했다.
하지만 승리에 취한 병사들의 환호성과 탐욕스러운 눈길은 파리 시민들에게 심한 모욕감을 주었다.
‘빌어먹을 놈들!’
‘누구 하나 건드리기만 해봐라.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그런데 쿠투조프와 쿠즈민, 막심이 앞장선 주프랑스 러시아군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성문 앞에 다다른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진열을 갖추었을 무렵.
어디선가 악기를 든 사람들이 몰려들어 연주를 시작했다.
“어어? 이 음색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저기 좀 보게. 전부 파리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잖은가!”
국왕의 행차, 국가의 예식 때 사용하던 웅장하고 화려한 선율은 프랑스의 혼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위에 러시아 병사들의 투박한 목소리가 입혀지기 시작했다.
러시아, 신성한 강대국이여,
러시아, 사랑하는 우리의 조국이여.
강인한 의지, 위대한 영광!
당신 곁에서 영원히 빛나리라!
전생의 소비에트 찬가와 러시아 국가를 적당히 개사한 노래는 러시아 민속 동요를 부르듯 서툴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전형적인 프랑스식 선율이 노래에 맞게 조금씩 변주를 이루더니 여태까지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한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이건 고도로 숙련된 연주자가 아니라면 보일 수 없는 신기(神技)였다.
‘연습을 많이 했나 보군. 내가 원하는 그림이 그대로 나왔잖아.’
러시아의 장기 중 하나는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문화, 제도 따위를 재해석하여 러시아만의 개성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제국에도 위대한 음악가들이 여럿 탄생하는 만큼 그들에게 큰 영감이 되리라.
‘지금은 프랑스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문화예술 방면의 소프트파워는 이렇게 서서히 발전하는 게 보통이니까.’
게다가 파리 시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아…… 러시아는 진정으로 프랑스를 예우해주고 있구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 주둔했던 러시아 부대도 참 친절했었는데. 그게 거짓이 아니었나 봐.”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날 것처럼 흉흉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 그들의 눈에는 러시아인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올랐다.
마차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폴레옹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럴 수가. 고작 노래 하나로 파리의 민심을 사로잡았단 말인가.’
곁에 있던 나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러시아가 유럽의 질서를 주도하는 한 프랑스가 다시 전란에 휩싸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주권과 문화도 되도록 유지하게 해드리죠.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마지막 미련까지 없애버리겠다는 듯 철저한 일 처리를 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조차 나보다 우위에 있었단 말인가. 이 녀석이 살아있는 한 내가 다시 집권하는 건 불가능하겠구나.’
나폴레옹은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래, 알겠다. 지금으로선 네 제의를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겠구나. 그나저나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거지?”
“아마 몇 년 정도는 시베리아 한복판에 머물러야 할 겁니다. 그 이후에는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죠.”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 나폴레옹을 두려워하는 나라들이 넘쳐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반쯤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쩌면 주변국들의 감시를 피해 아시아, 개중에서도 극동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훗. 농담이 과하군.”
나폴레옹은 한 시대를 제패했던 정복 군주들의 일대기를 좋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넘보았던 알렉산더 대왕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나한테 책까지 줬잖아.
‘나폴레옹이 키워낸 인재로 동방을 제패한다? 이거 그림이 그려지는데.’
뭔가 엄청난 상상이 떠올랐으나 의식의 뒤편으로 넘겨버렸다.
아직은 머나먼 시기의 일이었으므로.
“그럼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오늘이 파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터이니 한껏 음미하십시오.”
마차에서 나와 바깥바람을 쐬고 있을 즈음.
나는 오스트리아 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자, 이제 유럽을 정복하러 가볼까.’
내 표정이 어찌나 의미심장했는지 세르게이가 물음을 던져왔다.
“빈에 가면 샤를로테 공주께 정식으로 고백하시겠군요.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 봅니다?”
야, 샤를로테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 질문을 날리는 거야?
의도적으로 답변을 피한 나는 적당한 얘깃거리를 입에 올렸다.
“세르게이. 내가 유럽연합을 창설한 이유가 뭔 줄 아느냐?”
“음. 유럽을 안정시켜 혁명이나 전쟁이 발발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는 게 아닙니까?”
세르게이의 말은 원 역사에서 러시아가 부르짖었던 신성동맹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건 허울뿐인 장식에 불과했으니.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을 걸 목표로 삼을 순 없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많다. 먼저 나는 유럽 전역에 산업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산업화를요? 그럼 제국에서 기술까지 지원해주겠다는 겁니까?”
“그래. 대신 러시아에 직접 와서 일정 기간 이상 머무르도록 해야지. 각국의 인재들이 러시아를 거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여러 목표 중 하나라니.
그렇다면 두 번째, 세 번째 목표는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세르게이의 시선을 받은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산품 제조에 필요한 표준을 러시아를 중심으로 통일하고, 산업화에 필수적인 석탄, 철강 등 수많은 원자재를 루블화로 구매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된다면 러시아가 유럽연합의 실질적 수장이 되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