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255)
제262화
262화
“늪지의 뱀······.”
산봉우리에 오르기 직전.
가파른 경사 대신 뜻밖에 드러난 평탄한 지형을 본 정현은 저도 모르게 이번 게이트의 이름을 읊조렸다.
산중에 있으리라고는 쉽사리 믿기지 않는 넓은 늪지가 펼쳐져 있었던 탓이다.
“뭐랄까, 게이트 안이라고 하기엔 상서롭네요. 상서롭다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시다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말했다.
“게이트만 아니라면, 어울리는 것 같네요.”
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서롭다는 말이 잘 쓰이지는 않지만 제법 어울렸다.
둥글게 펼쳐진 늪지와 그 일대를 운치 있게 둘러싼 소나무들.
마주 보는 방향에 솟아오른 봉우리와 그 위의 커다란 달.
늪지인 탓에 습기가 많아 흰 달빛이 방울방울 흩어지는 것까지, 현실적인 풍경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이곳에 그 소리를 지른 놈이 있다는 말이죠?”
와타나베가 묻자 요시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상 이곳이 보스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는 곳은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
‘늪지 속에 잠겨 있나? 아니, 그렇다기에는 좀 얕은 것 같은데.’
늪지의 깊이를 육안으로 가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전체적인 지형을 고려해 볼 때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가장 깊은 곳이 허리 정도 올까 싶은 수준.
거기다 중간중간 크고 작은 바위들이 놓여 있어 거대한 보스 몬스터가 숨어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고작해야 이제껏 상대했던 일반적인 뱀 정도가 살 만한 곳이었다.
정현은 늪지를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손을 수면에 가져다 대려 했다.
“잠시만요.”
그때, 다카하시가 앞으로 나섰다.
“몬스터에 독이 있었던 걸로 봐서 늪지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정현은 요시다의 통역을 듣고 순순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뭐든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었다.
예와 같은 자세를 취한 그녀의 몸에서 ‘파마의 영역’이 발휘되었다.
치이이-
그리고 수면에 닿은 영역에서는 독이 타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와, 이 미친놈들.’
게이트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까지 벌여 놓았을 줄이야.
정현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넓은 늪지에 독을 풀어놓았다?
다카하시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녀가 없었다면 치유 특성 헌터를 최소한 전위와 같은 수로는 데려와야 했을 터다.
군데군데 물에 닿지 않고도 디딜 만한 바위들이 많이 있긴 하다지만 보스 몬스터와 격전을 벌이는 가운데 어찌 밟을 땅을 골라 다닐 수 있겠는가.
“다카하시 씨가 계셔서 다행이긴 한데······.”
“이 넓은 늪을 어떻게 다 정화하죠?”
정현이 황당하다는 어조로 말끝을 흐리자, 요시다가 그 뒤를 이었다.
정현의 생각도 그와 같았다.
어림잡아도 축구장 하나의 넓이에 비견될 만한 크기의 늪지였다.
고작 반경 10m 정도의 ‘파마의 영역’을 활용해 전부 정화하는 것은 지나친 여유였다.
보스 몬스터가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었거니와.
‘그런데 진짜 보스 몬스터는 어디 있지?’
몬스터의 특성상 자기 집에 들어와 헌터들이 활동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늪지가 정화되는 와중에도 보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현의 감각 끄트머리에서 어물쩍거리던 일반 뱀들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
그러나 정현은 이내 미세한 변화를 느꼈다.
‘아니, 이건······.’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미세한 변화가 아니라 지극히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무릇 지극한 도는 형상의 바깥을 포함하므로 보아도 그 근원을 볼 수가 없으며, 큰 소리는 천지 사이에 진동하므로 들어도 그 울림을 들을 수가 없다.
대격변 당시 소실된 옛 종에 쓰인 글귀라고 했던가.
너무 큰 움직임이기에 기척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 정현조차도.
“저기!”
정현이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넓게 펼쳐진 늪지도, 혹은 어떤 경계선도 아니었다.
그 너머, 그저 배경으로만 생각했던 거대한 지형.
바로 산봉우리였다.
다소 뜻밖의 방향과 거리에 헌터들이 갸웃했으나 이윽고 그들은 정현이 가리킨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세상에······!”
“저게 무슨······.”
산봉우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산봉우리를 휘감은 거대한 흐름이 서서히 그 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그건 흐름이었다.
어떤 움직임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으로 표현해야 옳았다.
우지직-
산에 듬성듬성 솟아 있던 아름드리나무들이 그 흐름을 버티지 못하고 꺾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달에 닿아 있는 산꼭대기에서 형체가 드러났다.
꼭대기에서 더 솟아올라 마침내 달의 일부를 침범해 버린 그것은 거대한 머리였다.
‘용?’
‘참회의 탑’에서 헤츨링을 본 정현조차 순간적으로 그렇게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용이나 드래곤이라기엔 지나치게 매끈한 형태였다.
그 거대한 크기를 빼고 이야기한다면 이제까지 그가 숱하게 잡아 왔던 뱀과 유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경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런 미친······.”
정현조차도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풍경.
달을 집어삼킬 듯 솟아오른 거대한 머리를 중심으로 하나둘, 같은 형태의 머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넷······.
“오로치······.”
자그마치 여덟 개의 머리가 등장하고 나서야 경악의 행진은 가까스로 멈추었다.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다카하시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일본의 신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머리 여덟 달린 거대한 뱀, 오로치.
일본인들이 보기에 그 상상 속의 괴물을 떠올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한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정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 저건-‘
지나치게 거대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감을 잃게 만든다.
흔히 보아 왔던 개미라도 100m 크기로 눈앞을 지나간다면 그것이 개미인지 지옥에서 도래한 재앙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눈에 익은 동작이라도 크기가 지나치게 크다면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 마련이었다.
산을 휘감았다는 비현실적인 규모에 잊고 있었지만 저 동작만 놓고 보면 확실히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이곳의 뱀들이 내려찍는 공격을 하기 전에 머리를 잔뜩 치켜올리는 패턴.
그리고 저 높이에서, 저 크기의 대가리가 내리꽂혔다간-
“피해!”
정현이 비명처럼 경고했다.
비록 피하라는 한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급박한 경고라는 본질마저 알아듣지 못할 리는 없었기에 헌터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현의 경고다.
이번이 함께하는 첫 사냥이었지만 그에 대한 믿음이 어느덧 확고히 자리 잡은 상황이었기에 보일 수 있는 반응 속도였다.
‘칫.’
파티가 대피하는 현황을 살피던 정현은 혀를 차며 한 곳으로 몸을 날렸다.
“아!”
그가 향한 곳은 다카하시가 서 있는 곳이었다.
그녀를 담당하는 이는 와타나베였지만 힐러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S등급이라 한들 몸이 온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와타나베의 힐이 갑자기 끊긴 상황에서는 그녀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완벽하게 공격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챙겨야만 했다.
뜻하지 않게 타인에게 몸을 맡긴 그녀가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남들의 몇 배에 달하는 장비를 지고, 제 몸보다 큰 배낭을 메고, 심지어 자신까지 챙겨 든 것이라고 하기엔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그 놀람은 곧 깨끗이 지워지고 말았다.
‘산이······ 무너지고 있어.’
그녀의 감상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홉 개의 봉우리가 그들이 서 있던 늪지를 향해 일거에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껏 정현이 손쉽게 뱀을 죽이는 걸 보며 6레벨 게이트치고는 다소 쉬운 난이도가 아닌가 싶었다.
지금은 정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이걸 6레벨 게이트의 보스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순간,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인간이 태풍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인간이 해일, 지진, 홍수, 화재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이기는 것은 우선 싸울 수 있는 다음에야 논할 문제였다.
적어도 너무 거대한 크기 때문에 생물로는 보이지 않는 여덟 머리의 뱀은 차라리 자연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자연이 원래의 자연을 덮치는 순간.
콰과과과과과······.
다카하시의 정신은 아득히 먼 곳으로 날아가는 듯했다.
아마 그녀와 함께하는 다른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리라.
“다들 정신 차려!”
그녀를 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 것은 정현의 목소리였다.
그에게 안기다시피 한 상태였기에 목소리는 귓전을 때리다시피 했다.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늪지에서 터져 오르는 막대한 양의 물과 흙이 정현의 등과, 그가 미처 가리지 못한 그녀의 팔다리를 때리고 있었다.
치이이이-
창졸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미처 ‘파마의 영역’을 해제하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저 많은 양의 독기를 품은 물을 고스란히 맞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다들 여기로 모이세요! 어서 여기로!”
정현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파티원들을 불러 모았다.
난리통에서 그의 목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요시다가 근처에서 넋이 빠져 있던 와타나베를 잡고 ‘파마의 영역’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본 사토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독성이 그리 세진 않은 것 같은데.’
정현은 가까이 다가온 요시다의 방어구를 살폈다.
미처 늪지의 물을 피하지 못한 그는 상당히 많은 양의 물을 덮어쓴 상태였다.
“와타나베 씨, 어서 치유!”
“ㄴ, 네!”
연기를 피워올리며 타들어 가던 피부에 순식간에 새 살이 차올랐다.
방어구에 남은 흔적과 피부의 상처로 보아 독은 산성을 띠고 있는 듯했다.
다행히 일반적인 독의 성질이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가 되었다.
이 정도라면 정화 없이 노출되더라도 주갑이 꽤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을 듯했다.
단순한 부식 작용에 듀라한의 갑옷이나 헤츨링의 비늘이 녹아내릴 리 없다.
‘문제는 저게 도대체 뭐 하자는 놈이냐는 거지.’
이제까지 대형 몬스터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학을 뗄 정도로 만나 왔던 정현이다.
그러나 눈앞의 놈은 이제까지 정현이 본 어떤 몬스터와 비교해도 궤를 달리할 만큼 거대했다.
심지어는 ‘참회의 탑’ 9층의 헤츨링과 비교해도 그랬다.
8개의 머리를 받치고 있는 목의 길이만 해도 대략 20m, 그 아래의 몸길이는 무려 80m는 될 법했다.
총 100m가 넘는 무지막지한 동체가 하얀 달빛 아래 고고히 모습을 드러냈다.
“쉬이이잇-”
“저게 혓바닥이야, 이불이야.”
8개의 입에서 들락거리는 혀를 본 정현이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절망에 빠진 얼굴로 보스 몬스터를 눈에 담고 있던 요시다가 그 말을 듣고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농담 자체가 웃겼다기보다는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웃겼다.
“······?”
일본인 헌터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요시다가 다시 표정을 바로 하고 물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정현으로서도 딱히 바로 떠오르는 공략은 없었다.
“잘 모르겠지만 해 봐야죠.”
탁탁-
그때, 정현은 별안간 어깨에서 느껴지는 두드림에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아! 실례했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아직까지 다카하시를 감싸고 있었음을 깨닫고 황급히 풀어 줄 수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눌려 있었기에 잠시 가쁜 숨을 내쉬던 그녀는 큼큼, 헛기침을 한 뒤 뭐라 말했다.
“다카하시 씨도 도움을 주고 싶답니다.”
“네? 하지만 전투는······.”
“치유를 오래 받아서 몇 발은 가능할 것 같다는군요.”
상상 이상의 보스 몬스터를 앞에 두고 절박함에 무리를 무릅쓰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몸 상태에 여유가 생긴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결의가 엿보이긴 했다.
‘이러면 계약 위반이긴 한데.’
다카하시가 전투에 참여하는 경우는 조금도 상정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저딴 보스가 나오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참회의 탑’ 이후로 오랜만에 게이트와 시스템이 자신을 죽이려고 작정한 채 덤벼들고 있다는 짜릿한 감각이 정현의 전신을 울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으레 정현의 마음은 오히려 평상시보다도 더욱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힘을 좀 빌리겠습니다.”
정현의 대답이 요시다를 통해 전해지자, 다카하시가 밝게 웃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있는 힘껏 싸우겠습니다.”
사토와 와타나베 역시 다카하시와 마찬가지로 눈에 결의가 깃들었다.
물밑에서 자존심 싸움을 벌이던 파티의 뜻이 합쳐진 것은 좋았으나, 도대체 저 덩치 커다란 놈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일단 해 보면 알겠지!’
정현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자세를 바꾸어 곧게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덟 쌍의 노란 눈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