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43
142화 흐룽그니르의 기억(3)
“예언의 대적자여. 지금 네가 이 기억을 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나의 아이를…… 스미르를 도와주거라.”
들려오는 절절한 말에 재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흐룽그니르는 처음부터 내게 자신의 기억을 보여줄 생각이었던 거야. 이미 우르드와 말을 맞춰둔 거겠지.’
우르드의 거울과 노르니르 시스템이 공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흐룽그니르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홀로 남을 아들과 훗날 나타날 예언의 대적자를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대유적.
그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재현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물론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 여기서 분노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터벅. 터벅.
들려오는 거인의 걸음 소리. 어느덧 흐룽그니르가 토르의 앞에 섰다.
“왔군.”
토르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의 망치를 꺼내 든다.
동시에 하늘이 어두워지며 묠니르에 전격의 힘이 스며든다.
츠츳……!
“처음부터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흐룽그니르의 물음이었으나, 토르는 이죽거리며 답했다.
“거인족의 최강을 상대하는데 봐줄 수야 없지.”
“그것참 고맙구만.”
“그럼 시작하지.”
토르의 목소리와 함께.
채앵!
망치와 숫돌이 부딪쳤고, 두 초월적인 존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먼저 선공에 나선 것은 토르였다.
그는 허공으로 빠르게 도약한 뒤, 묠니르를 강하게 아래로 휘둘렀다. 망치에 머문 전격이 재빨리 흐룽그니르를 향해 쇄도했다.
콰르르르르!
흐룽그니르 역시 지지 않고 숫돌을 이용해 전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데미지를 아예 입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묠니르는 거인을 죽이기 위한 목표로 제작된 아티팩트. 아무리 흐룽그니르가 단단한 돌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든 충격을 무효로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크흡!”
흐룽그니르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토르가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흐룽그니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다.
“처음부터 너와는 결판을 내고 싶었지. 흐룽그니르.”
“그래서. 지금은 만족하나?”
“아니.”
토르는 부정하며 망치를 좀 더 견고히 쥐었다.
곧바로 들어 올린 묠니르로부터 한껏 응축된 마력이 터져 나왔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지. 당연한 이야기지 않나?”
츠츠츠츠!
동시에, 하늘에서는 몰려든 구름과 함께 뇌우가 휘몰아쳤다.
이윽고, 매서운 전격이 토르에게로 서서히 응집되더니, 곧 흐룽그니르를 향해 날아들었다.
쿠르르르르! 쿵!
두 번의 연이은 소음과 함께 전격을 막아낸 흐룽그니르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마력에 담긴 숨 막힐 듯한 적의. 재현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격이 다른 싸움이군. 지금의 나로서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애석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르는 강하다.
흐룽그니르 역시 호전하고 있지만, 저 정도 힘으로는 토르를 쓰러뜨릴 수 없다.
“왜 그러나? 그 잘난 돌로 된 심장이라도 내 뇌격은 아픈가 보지?”
흐룽그니르가 몸을 비틀거리며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조금 전, 쏟아진 전격을 막아내느라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무슨 소리지?”
“어째서 죄 없는 이들의 목숨까지 빼앗으면서 더 가지려 하는 것이냐.”
“흠…… 그런 이야기였나. 뭐, 솔직히 말해주지.
나도 잘 모른다.”
토르의 장난기 어린 말에, 흐룽그니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토르가 이었다.
“엇, 화내지 말라고. 진짜야. 나도 이유는 모른다고. 위대한 오딘의 뜻인데 내가 어찌 거스르겠나. 안 그래?”
“평생 아비의 꼭두각시처럼 살겠다는 건가?”
“뭐, 나야 강한 놈이랑 싸울 수만 있다면 어찌 되든 상관없거든.”
토르는 망치를 휙휙 돌리며 덧붙였다.
“지루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나도 하나 묻지.
흐룽그니르. 너는 어째서 나와의 싸움에 응한 거지? 함정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텐데.”
“지켜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흐룽그니르의 떨어지는 답에 토르가 다시 샛노란 전격을 끌어 모았다.
“지켜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이라…… 네게 그런 것이 남아 있던가?
네 어리석은 아내도, 동족도. 거의 모든 녀석들이 관짝에 들어간 걸로 아는데 말이야.”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의 가치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언젠가. 아스가르드는 무너질 것이다.”
“노른 세 자매의 예언…… 그것을 믿는 거냐? 대적자가 나타날 거라고?”
흐룽그니르는 대답하지 않고 숫돌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답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현. 토르도 호전적인 태도를 취했다.
묠니르를 들어 올린 그의 몸으로부터 강대한 마력의 기파가 터져 나왔다.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 네 멍청한 동료들의 곁으로 가거라.”
토르는 솟구친 뇌기를 제어하며 다시 전격을 쏘아냈다.
재현이 베낀 정우민의 전격의 사슬과는 비교조차 민망할 정도의 위압.
츠츠츠츳……!
“흡!”
흐룽그니르가 거칠게 호흡을 고르며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잔여 마력을 모두 통신 마법을 사용하는 데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 순간. 재현에게 흐룽그니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적자여. 들리는가.] [만약 듣고 있다면 명심하라.]콰아아아앙!
토르의 공격을 묵묵히 견뎌내던 흐룽그니르의 몸이 까맣게 물들어간다.
묠니르에 직격하지 않았으나, 스친 것만으로도 저 정도의 상처를 입은 것이다.
아래에서 아버지를 올려다보고 있던 스미르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조금이라도 마력을 아껴서 신체에 둘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상황.
허나, 흐룽그니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죽으리라는 것을.
통신 마법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오롯이 그대다.] [흔들리지 마라.]재현의 두 눈이 차분히 내려앉았다.
적과 싸우던 흐룽그니르는 모든 말을 마친 뒤 토르를 향해 달렸다.
땅을 차 도약하고, 적의 중심부로 빠르게 거리를 좁혀나간다.
허나, 적은 오연한 얼굴로 허공에 뜬 채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치 벌레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토르의 눈은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그에게 흐룽그니르는 그저 사냥감.
혹은 그보다 못한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 예우는 해 주지.”
토르는 그 말과 함께 묠니르를 흐룽그니르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흐룽그니르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정확히 날아가는 망치.
“아버지……!”
아래에서 스미르의 끊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온다.
그러나 흐룽그니르는 멈추지 않고 묵묵히 직진할 뿐이었다.
[스미르에게 미안하다고 꼭 전해주게. 못난 아버지를 원망하라고.]흐룽그니르가 한계까지 마력을 짜내 전해온 마지막 말을 끝으로, 흐룽그니르 역시 자신의 숫돌을 던졌고.
콰창!
허공에 맞부딪힌 두 무기는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토르의 망치가 숫돌을 뚫고 힘을 잃지 않은 채 아래로 날아든 것이다.
묠니르는 가속하며 끊임없이 직진해 흐룽그니르의 복부를 정확히 꿰뚫었다.
“거의 끝났군. 숨만 겨우 붙어 있어. 흐룽그니르. 생각보다 실망이군.”
비릿한 미소. 토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아주 작은, 하나의 이변이 일어났다.
“이, 이건!”
숫돌의 깨어진 조각 중 하나가 정확히 토르의 이마를 향해 날아든 것이다.
파편은 정확히 쇄도해 토르의 이마에 박혔다.
“크헉!”
토르는 피가 흐르는 이마를 짚으며 분노에 차 중얼거렸다.
“흐룽그니르……! 처음부터 이길 생각이 없었군. 이걸 노린 거야. 젠장!”
이제야 알았다.
어째서 방어만 하던 흐룽그니르가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달려든 것인지.
파편을 이용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군.’
놀란 것은 토르뿐만이 아니었다.
“토르의 마력이…… 줄어들고 있어?”
재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재빨리 마력 감지를 이용해 조금 전, 느꼈던 토르의 압도적인 마력을 다시 측정해보았다.
허나, 결과는 전과 전혀 달랐다.
‘토르가…… 약해졌어. 적어도 20퍼센트 이상 마력의 총량이 줄었다. 하지만…… 어째서?’
“흐룽그니르의 숫돌에는 적의 마력을 상쇄하는 힘이 깃들어 있거든요. 그 파편이 마력의 코어 중 하나인 머리에 박혔으니 운용할 수 있는 마력이 줄어드는 것도 당연하죠.”
헬라의 설명 덕에, 드디어 재현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처음부터 노린 거군요. 자신을 희생해서 토르의 힘을 약화시킨 거예요.”
“당신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정확히는 훗날 토르와 싸울 이를 위해서겠지만요.”
재현은 정정했지만, 금세 다시 이어지는 상황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격노한 토르가 지상으로 내려와 쓰러진 흐룽그니르의 앞에 선 것이다.
숨만 겨우 헐떡이는, 사실상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인의 모습.
재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잠시 후. 토르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감히, 거인 따위가 내게 이런 수모를 주다니. 이를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쿨럭!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은…… 아니지. 나는…… 커헉!”
허나, 흐룽그니르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다시 손에 묠니르를 쥔 토르가 흐룽그니르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가슴에 발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흐룽그니르는 저항할 수 없었다.
경기장의 모든 이들이 직감했다. 거인의 목숨은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이를 지켜보던 재현의 입에서 무거운 말이 떨어졌다.
“지랄 맞은 결말이네요.”
“당신이 바꿔야 할 미래이기도 합니다.”
“그러게요. 당신네들은 더럽게도 힘든 운명을 나한테 떠넘겼어요.”
와아아아아아!
바닥에 쓰러진 거인을 보며, 수많은 관객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토르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홀로 버려진 한 거인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만이 흐를 뿐이었다.
스미르.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의 죽음까지 목도하게 된 그의 가슴 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던 무언가가 끊어졌다.
격한 감정의 끝에 남은 것은 그저 칠흑같은 공허와 외로움뿐.
“이렇게까지 해서…… 아버지가 얻은 게 대체 무엇이었습니까.”
들려오는 스미르의 텅 빈 목소리.
재현의 고개가 숙여졌다. 동시에 감정의 격류와 함께 마력이 개방되었다.
타오르듯 번져가는 재현의 마나와 순환하는 아스가르드의 대기.
활성화된 마력이 재현의 손끝 한 점에 모이더니, 이내 방사되며 실의 형태로 흩어진다.
헬라가 차분히 타일렀다.
“재현 군, 마력을 거두세요. 이건 단지 과거의 기억일 뿐입니다. 지금 당신이 마력을 지나치게 끌어올리면 기억 재생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재현이 헬라를 무시하며 옅게 웃었다.
‘그래. 위험하다. 하지만 걸어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재현은 알고 있었다.
허나, 이대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비록 약화되었다고는 해도 토르는 압도적인 강자.
저런 강자와 상대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지름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헬라는 계속해 부연했다.
“지금 당신이 이 기억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도 없거니와, 바꾼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리한 당신이니 잘 알고 있지 않나요?”
“걱정 마세요. 저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뭐, 이미 죽은 녀석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에요. 그냥…….”
아니꼽거든요. 재현은 그렇게 덧붙이며 재빨리 아공간을 열었다.
헬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후. 재현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블랭크 카드였다.
“당신 설마……!”
재현의 행동을 지켜보던 헬라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재현은 카드를 한 차례 빙글 돌리며 말했다.
“토르한테 한 방 정도는 먹여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서요.”
때마침 토르는 흐룽그니르의 숨통을 끊기 위해 묠니르를 들어 올렸다.
재현은 공교롭게도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르의 머리 위로, 묠니르로 옮겨온 뇌격이 고압적인 마력을 끌어내던 그때.
―블랭크 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의! 사용자의 레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등급의 스킬입니다!
―베낀 스킬은 사용자의 등급이 오르지 않을 때까지 완벽히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패시브 스킬 《뇌신의 힘》을 베끼시겠습니까?
“그래.”
재현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