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95)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95화
서로 뒤끝 없는 거로
약 3시간 전.
옥스퍼드 마탑 꼭대기 층에, 세 장로가 불려왔다.
어셔, 브랜던, 데미안.
현 마탑에 존재하는 하이 랭커급 라인들.
그들 앞에 다리를 꼬고 앉은 소피아가 차를 홀짝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너희들은 마탑의 마법사이자, 고고한 학자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그것도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마탑의 기둥을 책임지고 있는 자들 아니더냐.”
“…….”
“그런 이들이 고작 대중들 말에 휘둘려, 마탑의 소중한 동맹, 별천지의 험담을 공식적으로 늘어놔? 제정신들이냐?”
담담히 말하는 마탑주의 목소리에는 분명히 노기가 담겨 있었다.
“……그건.”
말끝을 흐린 장로, 어셔가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죄송하다는 말은 이미 했다.
하지만 억울한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이 먹은 소피아는 그 눈빛만으로도 장로들의 감정을 알아챘다.
‘후, 답답한 놈들.’
소피아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린이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도 모르고.’
엘로이즈 아린은 마도세계(魔道世界)의 제4대 마탑주였다.
또한 전 우주에 걸쳐 존재하는 마탑에서 관리 대상 1호로 취급하고 있으며.
역대 전설이자 최악의 마탑주라고도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었다.
마탑주로 즉위하자마자.
모든 장로와 교수들은 물론이고.
마탑까지 태워 버렸다는 역사적인 인물.
그것도 그냥 마탑이 아니다.
무려 마도세계의 마탑이다.
마탑주가 네 번이나 바뀔 정도로 오랜 세월을 발전해온 세계의 마탑이란 말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마탑은 어떠한가.’
소피아가 목이 타는지, 쪼르륵! 차를 더 따랐다.
‘아직 10년 역사도 다 채우지 못하지 않았던가.’
마도세계의 마탑이 성인이라면, 그녀의 마탑은 신생아나 다름없었다.
걸음마도 못 뗀 수준의 신생아.
당장 지금도.
아린의 도움이 없으면 발전이 더딘 상황이란 말이다.
“……너희들의 감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래, 모르면 그럴 수 있지.”
호로록!
입가에 차를 가져가며 말하는 소피아였지만, 그녀의 속은 불같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 개 놈들아.
니네가 알아?
별천지랑 동맹 관계 유지하려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후우.”
결국, 속으로 쉬던 한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장로들이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셔.”
“예, 마탑주님.”
세계 랭킹 74위, 다크 메이지(Dark Mage) 어셔가 답했다.
“우리 마탑은 현재 별천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매월 천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서적 번역본을 받아내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래?
“또한 그것과 별개로 별천지와 우리는 강약을 논할 필요가 없어. 두 집단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 있으니까.”
요컨대 특수부대로 치면 이런 거다.
영국의 대테러 부대 SAS가 강한지, 해병대 Royal Navy가 강한지 줄 세우기 하는 것.
둘은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다.
그 목적과 임무가 다르니까.
“그러하니, 그 자존심은 잠깐 내려두고 먼저 사과…….”
그 순간, 문밖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많은 인원의 목소리였다.
“마탑주님!”
소피아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
장로들을 혼내고 있는데, 감히 누가…….
“장로님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차라리 저희를 벌하여 주세요!”
“이는 저희 교수단의 의지였습니다! 저희가 장로님께 부탁드린 겁니다!”
허어.
소피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대충 수를 세어보니, 마탑 마법 랭커들의 30% 이상이 참여한 듯한데…….
아아, 하늘 높이 솟은 줄 알았던 마탑의 위계가 지하로 처박혔구나.
“이런 깜찍한 놈들이, 감히…….”
쿠구구구…….
분노한 소피아의 몸에서 막대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할 때였다.
“……마탑주님.”
밖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꽤나 오랜 세월이 묻어 있는 목소리.
“으음.”
소피아가 분출하던 기운을 가라앉혔다.
마탑의 주인인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마탑의 이인자.
세계 랭킹 13위, 대장로(大長老) 케이나드.
그에게만큼은 분노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마탑주님.”
“……케이나드.”
저벅.
지팡이를 짚은 대장로가 나섰다.
“아이들이 성급했던 것은 이해합니다. 장로들의 발언으로 별천지에게 무례를 범한 것도 압니다.”
소피아가 답답한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아이들은 그저…… 마탑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을 뿐입니다. 꽤 오랜 기간, 마탑을 위해 봉사했던 아이들이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정말 대중들 말처럼 붙여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그동안 마탑은 마법에 있어서 홀로 독주했지요.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경쟁은 서로를 발전시킵니다. 서로 더 좋은 결과를 내놓기 위한 과정을 유도하며, 양측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지요.”
“그래서, 애들 다 데리고 가 별천지를 치자?”
“그런 말이 아닙니다, 마탑주님.”
케이나드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그저 교류의 장을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으음.”
소피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이들은 고사해도, 케이나드의 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녀는 장담할 수 있었다.
케이나드가 없었다면, 현재의 마탑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컨대, 별천지의 김진아 같은 존재랄까?
“……다른 장로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좋습니다!”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바입니다!”
“그쪽에서 서적을 주는 만큼, 우리도 전투 기술들을 전수해 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호 좋은 것이지요!”
어셔, 브랜던, 데미안이 옳다구나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전투 기술 전수는 개뿔.’
우리 신생아라니까.
쯧.
소피아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이 어린 개구리들도 아린의 위대함을 한번 느껴보긴 해야 한다.
느끼는 만큼 더 성장할 테니.
그리고 솔직히.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우리 마탑 마법의 위치는 어느 수준일까?
엘로이즈 아린이 키우는 마법사들을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마탑 마법사들의 랭킹이 높다지만, 상대는 엘로이즈다.
마법 문명의 급이 다른 존재.
“내일이 서적 가져다주는 날이었던가?”
적당히 채비한 소피아가 장로들과 교수들을 거쳐, 문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
* * *
“마탑주가요?”
마탑주가 직접 오고 있다는 말에, 김진아는 속으로 당황했다.
마탑 쪽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
좋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먼저 시비를 건 게 우리 쪽 애들이니까.
“무슨 일일까요?”
김진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일단, 마탑주는 무릉도원 입장이 허가되어 있다.
동맹 관계이기에, 장로급 이상 인사들은 전부 「드엘 공방」 포탈에 등록시켜 놓았다.
‘설마 직접 따지러 온 건가? 아니면, 정말 대중들 말대로 한판 붙어보려고?’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서신이 아닌, 직접 대면으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민감한 문제라는 뜻이니까.
“길마님?”
김진아가 고개를 들어 주동훈을 바라봤다.
편안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길마님을.
아니, 지금.
나만 걱정하는 거야?
“뭐, 차라리 잘되었죠.”
“예?”
“어차피 연락하려던 참이지 않았습니까? 직접 온다는데, 우리야 땡큐죠, 뭐.”
“…….”
맞다.
맞는데.
‘하긴.’
김진아는 새삼 길마님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깨달았다.
무려 세계 랭킹 7위.
그 천하의 마탑주가 온다는데도 태평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본래 같았으면, 저기 저.
도하랑이랑 에밀리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우웅!
공간의 흐름이 일렁이더니, 스윽! 하며 익숙한 모습의 여성이 등장했다.
“하이, 주동훈.”
마탑주였다.
그녀의 편안한 인사에, 길마님도 웃으며 맞이했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은 아니지. 지수룡 때 봤었으니. 아, 부길마도 반가워? 우린 자주 보지?”
“반갑습니다, 소피아님.”
김진아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함과 동시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일전에 있었던 길드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아냐, 아냐. 우리도 잘한 거 없으니, 그건 서로 웃어넘기자고. 거기다 틀린 말도 아니었잖아?”
마탑주와 도하랑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움찔!
어깨를 흠칫 떤 도하랑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에밀리 역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일전에 마탑 출신이었던 그들은 당연히 마탑주와 구면이었다.
랭커가 집단을 옮기는 게 흔치 않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불편한 것은 당연한 일.
저벅.
김진아가 그 사이로 발을 옮겼다.
길드원들이 잘못한 것과 별개로, 이런 불편한 기류는 부길마인 자신이 끊어줘야 했다.
“……그래서, 어쩐 일로 직접 행차하신 건가요?”
동시에 조심스레 물었다.
마탑이 별천지의 도움을 받고 있다지만, 별천지 역시 마탑의 도움을 받는다.
게다가 마탑은 빅3.
대우해 줘서 나쁠 건 없다.
“그래그래, 인사는 이쯤 하면 됐으니, 본론을 꺼내는 게 좋겠지.”
“…….”
“서로 시간 끌 것 없으니까.”
마탑주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마탑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야.”
“입장이라 하시면?”
“솔직히 하랑이가 했던 말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야. 엘로이즈 아린은 위대한 마법사고, 난 그녀와도 주동훈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김진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마탑주가.
이렇게 자세를 낮춘다고?
아린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소피아는 세계 랭킹 4위다.
아린은 세계 랭킹 7위의 소환수에 불과하고.
마탑주가 다시 빙긋 웃었다.
“그러는 의미에서 제안할까 해. 정말 대중들의 말대로 마탑과 별천지끼리 한번 붙어보는 거야. 친선 교류 느낌으로.”
“……예?”
김진아가 저도 모르게 대꾸했다.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친선이라 해도, 길드와 길드의 대결이다.
수많은 대중이 볼 테고.
보지 못하게 막는다고 하더라도, 원래 발 없는 말이 천 리까지 간다고 하지 않던가.
지는 집단은 막대한 이미지 타격을 입을 것이다.
빅3를 넘어 넘버 원 길드를 꿈꾸는 김진아가 원하는 상황은 절대 아니란 말.
‘게다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별천지와 마탑이 아니다.
정확히는 마탑주와 아린의 대결이다.
부가적으로는 서로 언쟁이 있었던 마법사들의 대결.
결국, [어떤 집단의 마법이 더 대단한가?]가 주제였으니까.
‘아린이가 대단한 건 알지만…….’
스켈레톤이 세계 랭킹 4위의 마탑주를 이긴다?
그건 아무리 통찰력 높은 김진아로서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저 제안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거절해도 좋아, 진심이야. 조금 전 말했다시피, 나는 주동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거든.”
“…….”
눈을 좁힌 김진아가 소피아의 의중을 파악했다.
그러고는 판단했다.
‘저건 진심이야.’
속임수가 아니었다.
거절했을 시, 쪽을 주려는 수작도 아니었고.
정말 진심으로 조심스레 제안하는 거였다.
‘그렇다면.’
김진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 김진아가 입을 열려고 할 찰나.
“그거 좋은데요?”
에?
길마님?
김진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확실히 재밌겠네요. 길드전이라.”
흐어억?
눈을 부릅뜬 김진아가 말리려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이는 마탑주와 길마의 대화다.
여기서 말을 끊으면, 길마님의 지위가 무너진다.
김진아는 부길마로서,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김진아 : 길마님!] [김진아 : 안 돼요!] [김진아 : 절대 안 돼요!]물론, 채팅으로는 열심히 조졌지만.
“오, 콜이야?”
소피아가 의외라는 듯 웃었다.
“역시 주동훈이야. 시원시원하네. 대신 기한이랑 대진표는 너희가 짜. 괜히 대중들 말처럼 마법사끼리 붙일 필욘 없어. 내가 별천지를 존중하긴 해도, 마탑의 대한 자부심이 없는 건 아니거든.”
그녀의 답에 김진아가 속으로 손뼉을 쳤다.
‘그래!’
차라리 그거다!
마법이 아니라면, 승산이 보인다.
별천지에는 길마님도 있고, 광전사(狂戰士)도 있고, 뇌명(雷鳴)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뇨, 아뇨. 그럴 순 없죠. 주제가 마법 대결인데.”
[김진아 : ?] [김진아 : ?????] [김진아 : 길마님????]김진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니, 설마.’
동시에 예전 기억이 났다.
연회를 열었을 당시, 본인과 맥주 한잔 걸치며 했던 말.
– 솔직히 이해가 안 가요. 우리 아린이가 마탑주보다 훨씬 센데, 왜 랭킹이 이 모양이지?
설마 그게 진심이었다는 말이야?
“호오, 그럼?”
“마법사들 대결로 해요. 저희 길드에 저 포함하면 마법사 넷이니까. 마탑도 아무나 넷 보내시면 되겠네요.”
“진심이야, 주동훈?”
“마탑주님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어차피 친선 교류일 뿐이라고.”
“……그렇지만.”
말끝을 흐린 소피아가 이내 아무렴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좋아. 굳이 내가 말릴 일은 아니지. 그럼 서로 뒤끝 없기다?”
“콜이요.”
김진아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