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99)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400화
진짜 1등
누군가에게는 주군, 또 누군가에게는 마스터.
교수님, 주인님, 주인 등등으로 불리는 자.
주동훈이 사라진 자리에.
마침내 열 구의 스켈레톤이 모였다.
예전처럼 백골(白骨)의 모습이 아닌, 폴리모프된 절대자의 모습을 하고서.
“그래.”
뼈십이.
아니, 만술(萬術) 노인이 정적을 깨며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 노인을.
모두가 숨죽인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구나.’
‘확실히 그때 봤던 대로야. 뼈일이보다 세.’
‘심지어 각성한 주군보다도 살짝 위다.’
대다수 스켈레톤이 노인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특히.
‘괴물…….’
태양창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창을 부여잡았다.
백무흔도 감당이 안 되는데, 이제는 만술 노인까지…….
‘어찌 성좌가 되어서도 입지가 줄어드는 것 같군.’
태양창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가 앞으로 수천 년을 발전한다 해도 만술 노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무렴 턱도 없을 거다.
왜냐.
자신이 발전하는 동안, 만술 노인의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이기 때문.
“끌끌, 이놈들아.”
노인이 혀를 차며 웃었다.
“네놈들은 처음 각성하면 서열을 가리는 습성이 있었지?”
아아.
이곳에 있는 모든 스켈레톤은 자연히 깨달았다.
뼈십이.
노인이 서열을 논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약간의 위화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가슴속에서부터 흥분이 치밀어올랐다.
만술 노인이 누구던가.
자신들이 제대로 각성하기 전부터 가르침을 내리던 스승 아니던가!
심지어,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보다도 위에 있는 스승이었다.
“에이.”
아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술 할아버지. 우린 원래 그런 습성 없었어요.”
“맞아요.”
엘드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제가 알기론 카덴 씨랑 다나 양이 각성했을 당시 드미르가 먼저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엔 그런 거 없었던 거로 알아요.”
백무흔과 태양창의 갈등이 있긴 했지만.
그건 서로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었으니, 예외라 볼 수 있다.
“끌끌, 그러냐?”
만술 노인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언제 생긴 지 모를 목검이 부드럽게 잡혔다.
“재미없구나. 육체를 얻은 기념으로 한판 놀아보려 했더니.”
씨익.
올라가는 노인의 입꼬리가 왜인지 모르게 무서웠다.
“하, 하하하.”
태양창이 웃었다.
“서열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백무흔?”
“맞지.”
백무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노인과 시선을 마주했다.
“저는 어르신을 인정합니다.”
“호오?”
“주군께서 존경하시는 분을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노인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놈들아.”
“예, 예?”
“말씀하십시오.”
백무흔과 태양창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말은 바로 해야지. 태양이 놈이 말했던 ‘서열이 어디 있냐’는 말은 틀렸다. 서열이 여기 떡하니 있지 않으냐. 설마 네놈들 눈에만 보이지 않는 건 아니겠지?”
“…….”
“…….”
노인이 하는 말의 의미는 단순했다.
주동훈이 1순위.
자신이 2순위.
즉, 지금까지는 기존 수하들이 서열을 재정립하려 했다면, 이번에는 굴러들어 온 돌이 서열을 재정립하려 하는 셈이다.
“혹시 만족스럽지 않다던가, 기분이 살짝 아니꼬운 사람 있느냐?”
우우우웅!
노인의 기세는 조용했다.
하지만, 거친 기세와 다른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후우웅!
그에 맞추어 부는 바람이, 수하들의 뜨거워진 가슴을 차갑게 식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은 불타는 승부욕마저 얼어붙게 했다.
“없지?”
노인이 칼을 바닥에 툭툭 건드렸다.
“그럼 다들 준비하자. 시작해야지, 훈련.”
그러고는 열망 어린 눈빛으로 허리를 곧게 폈다.
“네놈들 주인보다 못한 실력으로. 주인을 지킨다고 말할 순 없지 않으냐. 설마 그 정도 실력으로 만족할 생각들은 아닐 거라 믿으마.”
각성하자마자 훈련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만술 노인이었다.
* * *
HNN의 생방송이 끝났다.
주동훈의 랭킹만 미지의 단계로 놓고서, 모든 것이 발표된 것이다.
각국은 랭커의 수를 집계하며, 세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재차 확인했고.
새로 랭커에 떠오른 헌터들은 영웅급 대우를 받으며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 세계 랭커 발표식의 주인공은 명실상부 별천지의 몫이었다.
권 자매를 포함한 전 멤버가 랭커에 입성했을뿐더러.
이제 열 명의 하이퍼 랭커 중 별천지 소속만 5명이었다.
주동훈, 장대웅, 플로아, 기소율, 맷 제랄드.
이렇게 말이다.
[결국 송곳은 주머니를 뚫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Big3 위, 1황의 존재 탄생.] [별천지, 경악스러운 결과! 하루 만에 세계 최고의 집단으로 탈바꿈!] [세계 하이 랭커들, ‘별천지에 입단하는 것이 제 꿈이자 기연.’] [비랭커도 별천지에 가면 랭커가 될 수 있는가? 대다수 랭커들. 긍정적인 대답.] [주동훈 몇 위일까? 여론조사 결과 1등 35%, 2등 65%] [마탑주, “스켈레톤 마스터는 대단한 인물”]…….
방송이 끝나는 동시에, 수많은 기사가 양산되어 퍼져 나갔음은 물론이요.
다큐멘터리나 헌터 특집을 만드는 PD와 작가들은 별천지 멤버들의 정보를 얻으려고 재빠르게 돌아다녔다.
이제부터 어떤 방송이든 ‘별천지’ 이름 석 자면 시청률은 보장되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크하하하하핫!”
“우하하하하! 아저씨! 나 웃고 싶은 거 참느라 죽을 뻔한 거 알아?”
“크하하핫! 너도 그랬냐? 나도 그랬다! 하하하핫!”
무릉도원으로 막 복귀한 별천지의 멤버들이 시원하게 포효를 터뜨렸다.
웃음을 참느라 뒤틀린 얼굴 근육을 거칠게 풀어냈다.
“으아아아아! 흐아아아아!”
“내가 랭커다! 하이 랭커다! 내가 랭커라고오오오오오!”
신나게 돌아오는 멤버들을.
“우와아아아아!”
“만세!”
“별천지 랭커님들 멋있어요!”
무릉도원 주민들도 환호성을 내지르며 받아주었다.
높은 등수의 랭커가 된 것도 자랑스럽지만, 사실 그들은 안다.
저들이 얼마나 힘들게 훈련했는지.
입가에 웃음이란 없었으며, 간혹 볼 때면 웬 거지새끼들을 보는 줄 알았었다.
방송에서는 점잖게 있었지만, 지금 저렇게들 포효하는 것도 다 이해가 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도 별천지가 이렇게 자랑스럽고, 결과가 가슴 벅차도록 대견할진대, 당사자인 저들은 어쩌랴?
아마 차오르는 흥분에 정신이 아득해져 있지 않을까?
소리를 지르는 것은 광전사와 뇌명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도 두 팔을 하늘로 활짝 펼쳤다.
“다들!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너무 멋졌어요, 우리!”
“마왕군 애들 표정 봤어요? 당당하던 어깨 쪼그라드는 모습이 어찌 그렇게 웃긴지. 하하핫!”
“크하핫! 전 이렇게까지 결과가 좋을 줄 몰랐어요. 세상에 하이퍼 랭커가 다섯이라니! 이게 말이나 된답니까?”
“이게 다 길마님 덕입니다!”
“맞아요! 길마님 없었으면, 이런 기분 평생토록 못 느껴보고 살았겠죠?”
일반인들 입장에선 포스 넘치는 랭커임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수한 아이처럼 기뻐하는 멤버들.
그 모습을 김진아가 흐뭇하게 쳐다봤다.
‘이게 집단이지.’
이게 바로 자신이 꿈꾸던 집단이었다.
하나의 공동체.
누구나 들어오고 싶을 정도로 강하지만,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곳.
가족보다 더 진한 가족.
그녀의 가슴 속에서 이상하고도 묘한 감정이 뿜뿜 차올랐다.
이게 그건가?
과거 경제학자 매슬로우(Maslow)가 말했던 마지막 5단계 욕구.
‘자아실현 욕구.’
그래.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길마님.’
주동훈 덕분…….
“어맛!”
혼자 흐뭇해하던 김진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길마님?”
자신에 눈앞에.
미소 짓고 있는 주동훈의 신형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
면접 대기 중인 배지민과 변승태와 함께 말이다.
“후, 훈련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아직도 가부좌 틀고 앉아서 식은땀만 흘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여튼.
[길마님]이라는 김진아의 목소리에, 다른 멤버들 역시 고개를 획 돌렸다.“동생?”
장대웅을 필두로.
“왔구나, 동생!”
“이놈의 주인 새끼! 사람들 걱정시키더니, 드디어 일어난 거야? 아, 그나저나 우리 봤어? 우리 결과 봤냐고!”
“길마님 오셨습니까! 성과는 얻으신 겁니까?”
“우와아아! 길마님!”
“절! 절 받으십시오! 다 길마님 덕에 오른 랭킹입니다!”
멤버들이 격하게 환영하기 시작했다.
물론.
“근데 길마님 이번에 랭킹 몇등이십니까?”
“……1등? 2등?”
원초적인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런 멤버들을 바라보며.
“다들.”
주동훈이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 *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변승태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별천지?’
저기 하하호호 웃고, 서로 장난치는 자들이 모두 자신보다 아득히 높은 랭커다.
그야말로 정예라 할 수 있는 자들.
저기서 가장 낮은 랭킹이 32위, 아녜스이니 말 다 했지.
‘저런 곳에.’
내가 면접을 보는 거라고?
들어갈 수 있을지는 커녕, 면접이나 볼 수 있을까?
길드도 체급이란 게 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별천지는 [랭커라면 지원서 정도는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길드였다.
그런데 지금은?
랭커는커녕.
웬만한 하이 랭커도 굳이 받지 않을 것 같은 포스를 풍겼다.
이제 그냥 살아 있는 전설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크하하핫! 그래! 다들 궁금해하는데, 시원하게 말해줘라! 몇 등이야? 동생이니까 당연히 1등이겠지?”
“아저씨. 또 현실감각 떨어지는 소리 하네? 1등은 여태껏 한 번도 자리를 내준 적이 없어. 아무리 주인이라 해도 1등은 무리지!”
“웃기지 마라. 플로아! 동생은 네가 아냐! 내 동생에게 한계란 게 있을 것 같냐? 크하핫!”
‘길드 마스터’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 같지만, 눈빛만큼은 존경을 한가득 담은 자들.
‘나도.’
변승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들처럼 될 수 있을까?’
처음이었다.
어떠한 집단에 먼저 소속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옆에 있는 배지민을 보아하니,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원래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
배지민이 이 집단을 향해 내뿜는 감정은 분명 경계가 아닌 호감이었다.
하여튼.
“잠깐, 잠깐, 잠깐, 잠깐!”
등수 발표를 요구하는 멤버들 사이로 김진아가 나섰다.
“제가 먼저 들을게요!”
두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그 어떤 보석도 저 눈동자만큼 반짝이진 않을 거다.
또한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양손을 심장 위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자, 어서 말해주세요, 길마님.”
김진아가 간절하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이룰 거 다 이뤘다.
근데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잘 완성된 김치찌개에 파로 고명을 만들어 올리면, 더 완벽해 보이는 것.
‘이왕이면…….’
제발.
1등이어라.
주동훈의 앞까지 걸어간 김진아가 양손을 모아 자신의 귀에 가져다 댔다.
속삭여 달라는 뜻.
“끌끌. 저래 봐야 의미가 있나?”
광전사가 껄껄거렸다.
“맞지.”
플로아도 동조했다.
“어차피 표정에서 다 드러날 거면서.”
멤버들은 김진아의 습성을 잘 알았다.
평소에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깔끔하게 일 처리 하는 철두철미한 여제 느낌이라면.
길마님과 관련된 일에는 그냥 평범한 소녀가 되어버린다.
어떨 땐 불같이 화내고, 또 어떨 땐 저렇게 감정이 풍부해지는…….
그런 그녀의 귀에.
길마님이 뭐라 뭐라 속삭인 것은 그때였다.
그 모습을 모든 멤버들이 침을 삼키며 바라봤다.
“…….”
그리고.
김진아의 반짝거리는 눈이 두 배로 커진 채, 그대로 굳어버리는 걸 보는 순간.
“저, 정말이에요?”
“정말이냐?”
“진짭니까?”
“1등?”
“……실화야?”
모든 멤버들의 입에서 경악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비공식 1위 발표.
그것이 무릉도원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