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나도 이제 늙었다 진짜… 족발 대 자를 두 끼씩이나 먹고.”
백수 생활 일주일인 철민에게 해가 뜨는 오전 5시는 한창 활동할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먹다 남은 족발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곤 여느 때처럼 컴퓨터를 켰다.
블로그 포스팅, 영상, 리뷰 전문 사이트 할 것 없이 영화 리뷰를 즐겨 보는 그는 사실 정작 진짜 영화는 즐겨 보지 않는 편이었다.
“10분이면 결말까지 다 볼 수 있는데 뭐하러?”
여태 그가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채 10편도 되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영화 리뷰를 즐겨 본 탓에 결말까지 알고 있는 영화는 제법 많아 주변 사람들에게는 꽤 영화광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부산 영화제 시작할 때가 됐는데… 아, 개막했구나.”
영화에 대해 아는 척하기를 즐기는 철민은 오늘도 영화 리뷰를 보기 위해 자주 가는 영화 리뷰 사이트 에 접속했다.
“무비라는 결말 포함된 리뷰가 없는 게 좀 아쉽긴 한데….”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영화라 할지라도 내용 스포일러는 물론 결말까지 다 알려주는 개인 블로그와 달리 는 리뷰에 결말을 공개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최근엔 규제가 조금 풀려 개봉 2년 이상 된 영화의 결말은 함께 포스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갓 나온 영화들은 최대한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선에서 포스팅된다.
그럼에도 의 유저가 많은 것은 애초에 영화를 보는 것보다 영화의 내용과 결말만 알고 아는 척하기를 즐기는 그와 달리 영화 애호가들은 스포일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대충 보고 결말 찾아봐야지.”
드르륵―
하지만 여전히 2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철민은 게시글을 최근 업로드 순으로 정렬한 뒤 열심히 마우스 휠을 굴렸다.
개중 끌리는 제목의 한 게시글을 발견한 철민은 자연스럽게 조회 수를 확인했다.
업로드 1시간 전, 조회 수 2864. 새벽에 업로드된 것을 감안해 보면 꽤 높은 조회 수였다.
“오, 무글 님 글이구나.”
무글은 영화 자체를 보기보다 영화 리뷰를 즐기는 철민도 글을 볼 때면 종종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철민이 깊게 고민하지 않고 게시글을 클릭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개요: 범죄, 스릴러 / 한국 / 123분 / 미개봉 (2021 개봉예정)
감독: 송계나
출연: 한주석, 주훈진, 이이정
*영화 특성상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줄거리를 최대한 배제하였습니다.*
“범죄 스릴러 좋지.”
짤막하게 소개된 출연 배우와 장르를 확인한 철민이 제대로 리뷰를 읽기 위해 휠을 좀 더 아래로 굴렸다.
평소 좋아하는 주훈진 배우님과 한주석 배우님의 신작. 게다가 개인적으로 최근 눈이 가는 배우인 이이정 배우의 조합에 오랜만에 미드나잇 패션 티켓을 예매했습니다.
여러분, 리뷰 시작 전에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꼭 보세요!
그럼,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정의로 돌아간다, 혹은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 시작 전 제목을 보고 영화의 제목이 결말을 스포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라니. 누가 봐도 주인공, 즉 정의의 승리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영화를 다 본 지금, 이 영화의 제목이 어째서 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옳은 이치’ 그리고 ‘돌아간다.’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요.
의 각본을 맡은 송계나 감독은 사실 별로 익숙하지 않은 분입니다. 다만 감독의 이름보다 각본을 보고 영화를 고르는 한주석 배우님의 선택이신 만큼 이번에도 봐줄 만하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이었죠.
그러나 은 이런 감독이 어째서 여태 무명 감독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단순히 봐줄 만한 영화를 넘어 스릴러 영화의 장점을 전부 살린 소름 끼치는 영화였습니다.
*줄거리
거대 범죄조직을 쫓는다는 의의는 좋았으나 3년째 무실적이나 다름없는 전담 A팀. 결국, 상부에 의해 해체가 결정 나게 되고, 이에 반발한 재한(훈진)은 자신의 힘으로라도 조직의 보스 A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치기어린 마음으로 쫓기 시작한 A를 파면 팔수록 도중 걷잡을 수 없는 진실에 노출되는데….
은 흔히 말하는 믿고 보는 배우가 두 명이나 참여한 영화입니다. 배우가 무조건적인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본은 하겠지. 라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이렇게 좋은 배우를 이렇게밖에 못 쓴다고?’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뻔하고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곧 이 역시 감독의 의도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중략)
영화 내에 눈에 띄는 배우는 총 세 명입니다. 당연하게도 한주석 배우와 주훈진 배우. 그리고 신인배우인 이이정 배우.
한주석 배우의 경우 영화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 내 어른으로서, 그리고 경찰 간부로서의 존재감을 오롯이 내보이는 연기였습니다.
주훈진 배우 역시 따로 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훌륭한 배우입니다.
평소 진중한 성격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신경질적이고, 다혈질이고, 앞뒤 가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것을 위해 달려드는 열혈 형사 역할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소화해 냈습니다.
지난번 GV를 통해 주훈진 배우를 실제로 보지 않았다면 배우의 원래 성격이 이렇지 않을까 착각하게 될 정도였습니다.
다만, 저는 이 영화의 진정한 키 포인트는 다름 아닌 이이정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영화 리뷰의 제목을 ‘신인의 신, 新이 아닌 神이었나?’로 정한 이유 역시 이이정 배우의 연기가 정말로, 너무, 심각하게 놀랍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꼭 이 영화를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씀드리진 않겠지만, 이이정 배우가 감정을 느끼는 연기를 하는 장면에서 저는 오히려 저 스스로의 감정에 의구심을 품게 될 정도였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다못해 머리카락과 눈물마저 연기하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소름 끼치는 장면들이 정말 많습니다.
사심을 섞어 말하자면, 어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아져 이이정 배우의 연기와 영화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중략)
끝으로, 한주석 배우는 원래 좋은 신인배우를 종종 발굴해 내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지만, 감히 이번에는 원석이 아닌 다이아몬드 그 자체를 발견한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단연코, 영화 하나를 위해 미드나잇 패션 티켓을 구매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 역시 이 리뷰를 마치고 의 재관람을 위해 미드나잇 패션 티켓을 재구매할 예정이니까요.
― 결제하시겠습니까?
무글의 글을 읽다 홀린 듯 비밀번호를 누른 철민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오래전에 다 돌아간 전자레인지 속 족발은 다시 식어버렸지만 철민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친! 영화 값보다 왔다 갔다 하는 기찻값이 더 들겠네.”
영화제는 부산, 철민의 거주지는 서울. 정신없이 미드나잇 패션을 예매하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었다.
“아 그냥 환불해야겠다.”
어차피 곧 개봉될 거, 정 보고 싶으면 개봉 후에 영화관에서 보면 되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그는 티켓을 취소하기 위해 다시 사이트로 들어갔지만 망설이던 그는 결국 티켓을 취소하지 못했다.
‘단연코, 영화 하나를 위해 미드나잇 패션 티켓을 구매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 영화 하나를 위해 전체 티켓을 사도 아깝지 않을 거라니. 무글의 호언장담이 너무 머릿속에 깊게 박힌 탓이었다.
“에이, 그냥 이 김에 부산 여행이나 하고 와야겠다. 간만에 영화에 돈 쓰네 진짜.”
생각지도 못한 지출을 한 철민은 끝까지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잠들었지만, 그가 잠든 사이 에 대한 리뷰가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했다.
└ ksks***: 와 오늘 이거 같이 본 사람 중 한 명이 무글 님이었구나. 숙소비 아낄 겸 밤새려고 본 영화인데 진짜 너무 소름 끼쳐서 뒤에 두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 qorh***: 이이정 배우 때부터 팬이었는데 볼 만한가요?
└ ksks***: 네 진짜 추천합니다! 근데 같이 따듯한 느낌은 절대 아니에요. 스포 읍읍 이라서 말은 못 하는데 와… 진짜
└ wjsn***: 미나패가 제대로 일한 거 한 오 년 만인 듯ㅋㅋ 솔직히 처음엔 주훈진 배우 영화가 미나패? 이러면서 똥 취급도 정도껏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진짜 개쩜.
영화 애호가들이 대거 포진되어있는 ‘무비라’에는 무글, 즉 윤정뿐만 아니라 같이 영화를 본 소수의 관객들 역시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꽤 팬층이 있는 윤정의 극찬과 불호 없는 댓글들에 무비라의 사람들은 조용히 영화를 예매하기 시작했고, 조용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예매 열풍은 결국 한 게시글과 함께 종료되었다.
[미나패 지금 매진된 거 맞음? 진짜? 3층까지 싹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