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는 역할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추리 예능. 그 추리 대상에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 역시 포함되기 때문에 본인의 모든 증거품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네 맞아요.”
이정은 우선 그 스크랩북이 재영의 것임을 인정했다. 일기장과 달리 단순한 기사 스크랩북이란 게 다행이었다.
“여기 나온 김 모 씨는 돌아가신 김 회장님이시고요?”
“네. 부모님은 전부 돌아가시고, 저도 죽을 뻔했던 사고였는데 삼촌이 살인 청부 용의자로 지목되니 어린 마음에 스크랩해 뒀던 것뿐이에요. 진짜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벌써 15년 가까이 된 일 인걸요.”
자신의 증거품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처음 방을 탈출할 때. 방을 나온 후에는 다른 방들을 수색하기 바쁘니 정작 자신의 물건을 알아볼 시간은 현저히 적었다.
애초에 범인이기 때문에 증거품들을 숨긴 이정과 달리 범인을 찾아 탈출하기만 하면 된다 생각했던 탓에 아예 제 물건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었다.
기현이 잭나이프를 보고 놀란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스크랩북 어디 있었어요? 버려야지 하다가 잃어버려서 버리지도 못했는데.”
“이거요? 장롱 틈 사이에 있었는데.”
“아, 방 정리하다가 그쪽으로 빠졌나 보네.”
캐릭터 설정집에 적혀 있던 설명인 것처럼 막힘없는 그의 대답에도 민아가 조금 찝찝한 듯 말을 흐렸다.
“흐음… 그래도 회장님이랑 문제가 있긴 했네요.”
“여기에 지금 김 회장님하고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니. 다른 사람들은 다 금전적인 문제인 거 같은데 재영 씨만 개인적인 이유인 거 같아서요. 어떻게 보면 부모님 회사도 김 회장님한테 뺏긴 거고.”
그녀가 날카롭게 파고든 맹점에 모두의 시선이 이정에게 향했다.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직 미성년자였으니까 어쩔 수 없었죠. 그래서 이렇게 물려받으려고 일하고 있는 거고요.”
재영이 자식이 없는 김 회장의 유력한 후계자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회사가 목적이었다면 굳이 김 회장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그건 또 그렇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려받을 회사만을 중심으로 생각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론이었다.
“정말 회사 때문이라면 제가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김 회장님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김 회장을 살해한 이유가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닌 부모님의 복수 때문이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는 교묘하게 ‘회사’를 대상으로 자신에게 동기가 없음을 피력했다.
“암암리에 후계자로 이름 오른 지금 저로서는 김 회장님을 죽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는걸요.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회사도 못 물려받을거고요.”
물론 제작진에서 받은 캐릭터 설정집에는 이와 관련된 대사나 심리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순전히 이정이 재영의 상황을 이용한 것뿐. 진실이라곤 조금도 섞이지 않은 거짓말이었지만 다른 멤버들에게 그것을 판별한 능력 같은 건 없었다.
“하긴, 김 회장을 죽여놓고 회사를 못 물려받으면 말짱 도루묵이지.”
“그럼 역시 범인은 돈 때문인 걸까요.”
지적받은 한 가지를 대놓고 말함으로써 다른 한 가지를 완전히 숨길 수 있었다.
‘위험할 뻔했네.’
만약 사람들이 멤버들이 이정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면 단박에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 넥타이를 숨길 수 있었던 게 운이 좋았어.’
스크랩북도, 일기장도 민아의 보험증서, 박 사장의 잭나이프처럼 의심 증거 중 하나일 뿐이었기에 급조한 거짓말로도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단점은… 덥다.’
― 탈출까지 30:00
― 질의응답 파트 2 종료까지 05:00
“음, 일단 질의응답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예상 투표 한번 하고 수색 파트 3 준비할까?”
마지막 수색 전 예상 범인 투표. 어디까지나 참고 조사로 이후 남은 30분 동안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투표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잠시 후, 각각의 득표수를 확인한 멤버들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 진짜 아니라니까!”
“박 사장님 저 찍으셨죠? 나도 진짜 아니에요!”
“하….”
박 사장 두 표, 박민아 두 표, 그리고 이현재 한 표. 익명 투표인 탓에 누가 누굴 뽑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재영이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표를 받은 세 사람이 서로를 의심했지만 진짜 범인은 이미 자연스럽게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어 아무리 서로를 의심해봐도 진짜 범인이 되는 일은 없었다.
‘아직 확실하게 몰리는 사람은 없네.’
다만 수색 파트 3에서 추가 증거가 나올 수도 있으니 판세가 아직 확실치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 탈출까지 29:58
― 수색 파트 3 종료까지 29:58
그리고 시작된 마지막 수색 파트. 이제는 서로 의심하며 범인을 찾기보다 함께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범인 찾아도 여기서 못 나가면 패배 처리되는 거 알죠?”
“범인도 끝까지 숨겨도 여기서 못 나가면 지는 겁니다.”
정체를 숨긴 범인도, 범인을 잡고 싶은 다른 사람들도 제한시간 내에 탈출하지 못하면 모두 패배였기에 이정 역시 열심히 나갈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나가는 문도 번호키니까 아까 방에서 나올 때랑 똑같이 4자리 수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보다 쉬웠던 개인 방 탈출과 마찬가지로 달력에 표시된 날짜 중 하나가 비밀번호일 것이라 예상한 인영이 거실에 있던 달력을 전부 다 가져왔다.
“달력이 3개씩이나 되네요.”
“이거 전부 다 한 번씩 입력해보면 안 돼?”
“그러기엔 일정이 너무 많아요. 표시된 일정도 다르고요.”
한 달에 적으면 두, 세 개, 많으면 열댓 개의 일정 일 년 12달, 총 3개의 달력임을 생각해 보면 일일이 입력해보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개인 방이 각자와 연관 있는 일정들이었으니까 거실은 김 회장님과 관련된 일정 아닐까요?”
“근데 이것 중에 뭐가 김 회장님 달력인데?”
각기 사용하는 주인이 다른 듯 각각의 일정이 표시된 달력이지만, 그렇다 해서 달력별로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그걸 알아봐야지.”
멤버들은 이제 제법 익숙하게 흩어져 각 달력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별거 없네.”
“진짜 별거 없네요.”
― 탈출까지 19:16
― 수색 파트 3 종료까지 19:16
벌써 세 번째 수색. 이제는 익숙한 방들과 거실을 헤집어 보아도 새로운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재를 다시 한번 찾아볼까요?”
범인을 찾기 위해 두세 번 반복해서 수색했던 각자의 방과는 반대로 딱 한 번밖에 가지 않은 서재.
“역시 거기 밖에 없겠죠?”
이정의 말에 모두가 김 회장의 시체가 있는 서재로 향했다.
“와… 그나마 솜 인형이라 다행이지 진짜 징그러울 뻔했네.”
인영이 서재 바닥에 눕혀져 있는 김 회장 시체 역의 인형을 손으로 콕 찔렀다.
“에헤이, 시체 만지지 맙시다.”
“앗, 넵.”
“그러고 보니까 서재가 재영 씨 방보다 크네요. 조카인데 좋은 방 좀 주지.”
서재를 둘러보던 인영이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어? 그러게요. 안방도 엄청 넓던데 굳이 서재까지 이렇게 컸어야 했나?”
재영이 김 회장의 아래에서 그다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이정은 그들이 더 깊게 생각하기 전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어릴 때부터 쓰던 방이라 익숙해서요. 그 방도 그렇게까지 작은 건 아니고. 그것보다 시간 없어요. 빨리 뒤져봐요.”
“헉, 진짜 이제 15분밖에 안 남았네?”
다행히 크게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닌 듯 이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상기시키자 다들 서둘러 서재를 헤집었다.
“딱히 눈에 띄는 건 없는데….”
그러나 서재 어디에서도 달력과 비교되는 물건은 없었다.
“재영 씨, 여기 책장 막 뭐 누르면 금고 나오고 그런 건 없어요? 조카니까 알지 않나?”
“서재는 저도 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박 사장님.”
“그냥 혹시나 한 거지 참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마땅한 물건은 없으니 기현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정에게 물었지만, 인영의 핀잔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으, 도혁 씨 거긴 아까 찾아봤잖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시 찾아본 거죠.”
“누가 봐도 아닌데 꼭 그걸 붙잡고 있어야겠어요?”
설상가상 처음부터 도움이 되지 않았던 도혁은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을 탄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며 오히려 인영의 속을 태웠다.
“저 미니 테이블 서랍은 뒤져 봤어요?”
“무슨 서랍이요?”
그 난장판 사이에서 묵묵히 서재를 훑던 이정의 눈에 문득 서재 중앙의 미니 테이블이 걸렸다.
“이거요. 이거 열리는 거 아닌가?”
“그냥 통짜 아니에요?”
“아닌 거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원목으로 된 미니 테이블이지만 자세히 보면 얇게 그어진 선이 있었다.
“잠깐만요.”
이정이 미니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힘껏 밀었다.
“어?”
그러자 원목인 줄 알았던 테이블의 상판이 주르륵 밀려나며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서류 봉투가 나타났다.
“여기 달력 또 있어요!”
거실에 있는 것과 똑같은 달력이었다.
Case File ― 1
질의응답 파트 2 1차 투표. (투표자 공개 Ver.)
이재영 (이이정) 0표
박영식 (남기현) 1표 (수아)
박민아 (수아) 2표 (최도혁, 이이정)
이현재 (최도혁) 2표 (정인영, 남기현)
류지윤 (정인영) 0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