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꿈동산(4)
윤우영이 다쳤다.
“소독약, 소독약 남은 거 있어?”
“상처가 너무 커. 소독한다고 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어쩌다 이런 거야?”
“그게….”
호빈 대신 나갔던 수색이 문제였다.
최근 수색팀은 더는 식량을 찾을 수 없는 거점을 기준으로 조금씩 더 먼 곳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다만 그들이 자리 잡은 거점이 근처에서 가장 멀쩡한 지대였다.
그리고 그만큼 그 밖의 지대들은 한때 몇 톤짜리 차량이 지나가도 멀쩡할 정도로 단단했던 콘크리트 바닥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약해진 지반 근처에는 무너진 건축물이나 위험한 유리 파편들이 잔뜩 있었다. 수색을 갈 때면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워 조심하던 구간이었다.
“건물 잔해 앞쪽 땅이 갑자기 꺼졌어. 우영이 형이 선두라서 다른 사람은 안 다쳤는데….”
미처 피하지 못한 윤우영은 그대로 넘어져 땅바닥에 섞여 있던 유리 파편에 찔려버리고 말았다.
“오늘 우영 씨가 수색하는 날 아니지 않아?”
“호빈이가 요즘 너무 피곤해하는 거 같다고 대신 간다고….”
원망은 호빈에게로 쏟아졌다. 하필 그 대신 수색을 나갔다가 다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동안 호빈이 남들보다 자주 수색을 나가느라 쉬는 날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우영이 의식이 있었다면 그게 왜 호빈 탓이냐며 화를 냈을 일이었다.
그가 다친 것은 누가 봐도 단순한 사고였고, 그전에도 종종 약해진 지반으로 인해 작게 다치는 일은 있었다.
그만큼 윤우영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쳐 의식이 없었고 사람들은 누구에게라도 원망할 구석이 필요했다.
호빈을 향한 배척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호빈이? 아, 싫은 건 아닌데 걘 좀….”
“걔 혼자서도 잘 다니잖아. 혼자 가라고 해.”
“혼자 수색 나가서 가지고 오는 양 보면 수색하는 거 같지도 않던데 굳이 데리고 가야 돼?”
호빈이 남들보다 자주 수색을 나가느라 쉬는 날이 부족했다는 점을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듯, 왜 그가 가져오는 식량이 적은지, 왜 근래 호빈이 피로를 호소했는지 등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수색조는 로테이션이잖아요.”
“그러면 민수 씨도 혼자 다니실래요?”
“혼자 다니니까 양이 적겠죠. 호빈이 걔가 얼마나 열심인데. 데리고 나가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거예요.”
그나마 중간 역할을 하던 혜인이 적극적으로 호빈을 변호한 탓에 대놓고 그를 핍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와 별개로 윤우영의 상태는 날로 악화되어 갔다.
단순히 소독만 한다고 치료될만한 상처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수색을 함께 나가지 않으려고 하거나, 호빈이 근처를 지나갈 때면 말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는 등 치졸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어? 저놈들 강진호 쪽 아니야?”
“오늘은 우리가 수색하는 날인데…. 이쪽 구역 수색 누구야 오늘?”
“가만있어봐…. 아, 민호빈! 그놈이다!”
“그 새끼 설마 저쪽으로 넘어갈 생각인가?”
“가보자. 만약 그러면 저놈 때문에 우영 씨가 다쳤다고 말해 줘야지.”
그러다 그 치졸한 방식이 좀 더 악랄하게 변한 것은 평소 호빈을 고깝게 보던 태인이 강진호 패거리가 호빈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였다.
“아…. 씨발, 이 새끼 진짜 뚝심 하나만큼은 대단하네. 아니 학습 능력이 없는 건가? 왜 매번 처맞으면서도 매번 혼자 다니냐?”
“너 이렇게 쥐꼬리만 한 식량 가지고 돌아가도 저쪽에서는 지랄 안 하냐? 우리 쪽 같으면 퇴출이야 퇴출.”
강진호 패거리는 낄낄거리며 호빈을 조롱하다 적선하듯 식량 몇 개를 던져주고 자리를 떠났다.
“…….”
그들이 떠나고 호빈이 익숙한 일인 듯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 남은 식량을 챙기는 걸 본 수색팀 중 누군가는 질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너….”
그 목소리를 들은 호빈이 근래 들어 드물게 당황했다.
“너 여태 이런 식으로 수색을….”
그나마 정상적인 덕호가 말문이 막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너 그러고 다닌다고 우리가 불쌍해할 줄 알았나 보지?”
“형! 말이 너무….”
그러던 중 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우리한테 알리지도 않고 혼자 처맞으면서 식량 챙겨오면, 우리가 뭐 아이고 고귀한 희생을 하고 계시는군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냐고.”
당황했던 호빈의 안색이 빠르게 굳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그는 식량을 마저 챙긴 뒤 수색팀을 지나쳐 텐트로 향했다.
“민호빈!”
무시당한 태인이 화를 내며 호빈의 어깨를 잡았다.
“윽.”
조금 전에 얻어맞은 부분을 제대로 건드린 탓에 호빈이 앓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비틀었다.
“이 새끼가 내 말을 무시해?”
“형, 진정 좀 해요.”
호빈이 원망스럽긴 해도 적어도 이 상황에서 누가 비정상인지 판단할 정도는 되는 덕호가 태인을 말리려 했다.
“야, 냅 둬. 냅 둬.”
그러나 이내 다른 일행이 역으로 그를 제지했다.
“아니 그래도….”
“민호빈 저 자식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어. 저 자식만 아니었어도 우영 씨가 그렇게 다치진 않았을 거라고.”
“솔직히 그건 사….”
원망스러움과 별개로 그건 엄연히 사고라는 사실을 입에 담기도 전에 태인이 씩씩거리며 호빈을 다그쳤다.
“민호빈!”
호빈의 입에서 무기력한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아….”
더 이상 상황을 설명할 기운도, 그럴만한 의욕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계속되는 강진호 패거리들의 폭력도 이제는 공포를 넘어서 귀찮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태인이 그런 한숨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한숨을 쉬어? 하, 처맞는 거 어지간히 좋아하나 보지?”
호빈의 죽은 눈동자가 태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지금까지 저렇게 화낼 힘과 의욕이 남아있는 태인이 신기할 정도였다.
“치고 싶으면 쳐요.”
상대를 도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이제 와서 한두 번 더 얻어맞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호빈이 무기력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구부정한 어깨와 팔은 언제 반듯했었냐는 듯 늘어져 있었다.
“치고 싶으면 쳐요? 그래. 내가 쳐 주마.”
태인이 호빈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태인은 제가 멱살을 잡았음에도 호빈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호빈은 여전히 무기력한 눈으로 태인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실에 자존심 상한 태인이 팔을 휘두르려던 순간, 그의 얼굴로 빗방울이 뚝 떨어졌다.
“어, 비다.”
태인 뒤에서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보던 덕호가 소리쳤다.
“비, 비 온다!”
그들이 거점에 자리 잡은 이후로 정말 오래간만에 오는 비였다.
“태인 형, 빨리 돌아가요! 우영이 형이 비 오면 빗물 받아놔야 한다고 매번 말했잖아요.”
태인을 말릴 건수를 잡은 덕호가 얼른 그를 재촉했다.
“돌아가면서 빗물 담을 통도 찾아봐야 하고. 빨리 가요!”
“나도 웬만하면 말리고 싶지 않은데 이번엔 덕호 말이 맞아. 또 언제 비가 올지 모르잖아. 식수도 거의 떨어졌고.”
“칫.”
일행의 말에 태인이 거칠게 손을 풀었다.
잡는 대로 잡혀있던 호빈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땅에 주저앉았다.
“얼른 가요. 얼른.”
덕호가 호빈을 슬쩍 본 뒤 일행을 재촉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 * *
그날 밤. 여전한 빗속에 윤우영이 정신을 차렸다.
“호빈이…는?”
호빈을 제외한 모두가 윤우영을 보기 위해 모여있었다.
“호빈이… 좀… 불러줘….”
갓 받은 빗물로 입을 축인 윤우영이 호빈을 찾았다.
“나… 다쳤다고 호빈이한테 뭐라고 한 건 아니지…?”
윤우영이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질문에 모두가 시선을 피했다.
대놓고 뭐라 한 적은 없어도 그 못지않게 따돌린 탓이었다.
“우영이 형….”
오늘 호빈이 그들 일행뿐만 아니라 강진호 패거리들에게도 핍박받는다는 걸 알게 된 덕호가 말을 삼켰다.
적어도 죽을 뻔한 상처에서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형.”
그사이 혜인이 호빈을 불러왔다.
호빈은 누워있는 윤우영 앞에 앉아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호빈아.”
“네. 형.”
윤우영이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호빈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밝고 의욕 넘쳤던 호빈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네… 탓 아니야….”
윤우영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단언했다.
“그건 그냥… 사고였어.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다칠 수 있는….”
깨어나 지금까지 그 짧은 순간 만에도 그가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모든 원망이 호빈에게 향해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알지…?”
그러나 호빈은 그런 윤우영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누가 괴롭히면… 내 옆에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윤우영이 다시 눈을 감았다.
놀란 호빈이 소리를 질렀다.
“형!”
“진정해 호빈아. 다시 잠든 거야.”
혜인이 호빈을 제외한 모두를 내보냈다.
“왜 저 자식은 그냥 두는데?”
“우영 오빠 말 못 들었어요? 누가 괴롭히면 자기 옆에 있으라잖아요.”
태인이 호빈을 가리키며 짜증을 내자 혜인이 그 손을 내리치며 대꾸했다.
“지금 나랑 우영 오빠 빼고는 다 호빈이 괴롭히는데. 그럼. 뭐. 우영 오빠 깨워서 사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호빈이 괴롭혀요. 하고 고해성사라도 할 거예요?”
그 말에 태인이 입술을 깨물며 천막을 나갔다.
“우리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혜인이 다시 정신을 잃은 윤우영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말했다.
“글쎄요….”
“우영 오빠는… 힘들겠지?”
“…….”
호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그날 밤, 윤우영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