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아쉽게도 박광훈의 경호원을 빌리진 못했다.
자기도 바깥에 나돌 때는 경호원이 있어야 한다나.
나도 큰 기대 없이 말한 거라 상관은 없었지만.
저벅.
부장님과 함께 로비로 내려가자, 조병철이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뒤에 서 있는 김정우를 한번 쳐다보고선 그쪽으로 다가갔다.
“자네 얘기는 잘 들었네. 인상 깊더군.”
“예. 감사합니다. 근데 말입니다. 유나 씨한테 무슨 소리를 한 겁니까?”
“으음?”
“명함도 주고 갔다던데.”
내 말에 조병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내가 꿍꿍이속이라도 가지고 유나한테 접근한 것 같나?”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그리 생각하는 건 이해하네만, 오해야. 오해.”
“오해라고요?”
미심쩍다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조병철이 솔직하게 털어놨다.
“내 손녀딸이 자네랑 나잇대가 비슷해서, 혹시 한번 이어줘 볼까 하는 마음에 자네 험담을 좀 했어. 미안하네.”
“그게 무슨……. 나더러 그걸 믿으란 겁니까?”
그런 것 치곤 내가 하고 다녔던 좋지 못한 일을 까발린 듯한 모양이던데.
“사과를 받아 주겠나.”
“……이번은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유나 씨에게는 접근하지 마십쇼.”
“쩝. 알았네.”
조병철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다는 이야기는 그게 끝인가?”
“예. 뭐…….”
그렇게 돌아가려는데, 한 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조병철의 뒤에 경호원처럼 서 있는 김정우.
저놈은 항구에서 우리와 맞붙었는데, 그때는 진심으로 선생을 없애 버릴 생각으로 전력을 다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선생의 대리인이니 뭐니 하고 나서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놈이 조병철한테 쓸데없는 말을 하기 전에 입단속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부장님이 말씀하셨던 거랑 다른 게 수상하단 말이지.’
부장님이 말하길, 김정우가 선생 따까리는 지쳤다면서 실종된 걸로 쳐달라 하고 사라졌댔다.
그 상황에서 민지훈과 친분이 있다고 한 조병철의 밑으로 들어갔다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김정우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내 뒤에서 부장님이 눈썹을 팔자로 만든 채 노려보고 있는 것도 한몫했을 거다.
‘안 되겠다.’
나는 바로 조병철에게 말했다.
“실장님.”
“음?”
“뒤에 있는 사람, 경호원입니까?”
“아, 그래. 둘은 이전에 안면이 있던 사이라고 들었네.”
“맞습니다. 혹시 괜찮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두 사람도 할 이야기가 있겠지. 그러게.”
조병철이 흔쾌히 허락했다.
김정우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갑시다.”
“크흠.”
나는 김정우을 데리고 조병철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조병철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척.
“저기요.”
“어. 후배님.”
“부장님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에 퇴직할 거라고 하셨다던데. 왜 여기서 마주치는 건지 모르겠네요.”
내 추궁에 김정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튀다가 걸린 겁니까?”
“어허. 튀다니……. 근데 맞는 말이긴 하다. 난 꼼짝없이 선생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허, 참.”
어이가 없네.
“그래서, 선생이 시켜서 저 양반 밑으로 들어갔습니까?”
“뭐, 그렇지. 근데 진짜냐?”
“뭐가요.”
“선생이랑 한편이라는 말. 진짜냐고.”
김정우가 의심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솔직히 그때 다 죽일 것처럼 사람들 끌고 온 것 같던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둘이 편을 먹은 거야?”
나는 그 물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알면 뭐가 달라집니까?”
“어?”
“자세한 건 비밀입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고.”
“허.”
김정우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지만, 그냥 녀석을 데리고 다시 조병철에게 돌아갔다.
“얘기는 끝났나?”
“예. 용건은 끝났으니, 전 이제 가 보겠습니다.”
“그러게나. 난 잠시 앉아서 쉬다 가야겠네.”
“다음에 뵙죠.”
그렇게 허허 웃는 조병철과 날 노려보는 김정우를 뒤로하고 나섰다.
그때, 뒤에서 조병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최근에 해외로 자주 나가더군.”
“……?”
“너무 적을 많이 만들지 말게.”
그 말에 잠시 멈칫했던 나는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어차피, 적은 이미 차고 넘쳤다.
* * *
DS컴퍼니.
원래는 대표를 필두로 여러 사업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최근에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수뇌부 다수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임원들은 각자 맡은 사업체가 있었기에 조금 휘청했지만, 체계가 잘 잡혀 있던 덕에 손해가 생기진 않았다.
그런 DS컴퍼니의 새로운 대표, 헨리 가필드는 본사 최상층에서 유리창 바깥으로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걸 보고 살았던 건가.’
H 이사라고 불리던 남자, 헨리는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발아래에서 지나다니는 이들을 내려다봤다.
똑똑.
그러던 그의 상념이 비서의 노크에 끊겼다.
“들여보내.”
그 말과 함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내부를 한번 슥 둘러보더니, 슥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감회가 새로우시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헨리는 말끔한 인상의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일단 앉지.”
두 사람은 가운데 놓인 소파에 마주 앉았다.
물끄러미 눈앞의 남자를 살피던 헨리가 피식 웃었다.
“요즘은 좀 괜찮나? 물에 빠졌다 건져진 것 치곤 안색이 꽤 좋아진 것 같은데.”
헨리의 농담에 선생, 민지훈이 건조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습니까.”
“아, 닥터 리도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하더군. 외부인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DS컴퍼니의 계열사 중 하나, DS바이오테크.
화학물질과 생체 기술을 연구하는 곳으로, 의약품이나 신체 보조 장비 등을 개발한다.
이번 쿠데타로 DS바이오테크를 담당하던 임원이 사망했기에, 선생의 조력자인 이윤종 박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내부적으로 불만이 없진 않았지만, 이윤종 박사는 대가로 기술을 무상 제공했다.
헨리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원래도 랩을 운영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아마 금방 적응할 겁니다.”
“그렇군.”
물론 거기엔 선생의 입김도 크게 작용했다.
헨리로서도 쉽게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의 사람이 요직에 앉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DS 내부에서 충돌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흘러나갔을 거야. 그리고 이것 때문에 청부를 맡기는 고객이 줄고 있는 상황이지.”
“존스의 수완이 워낙 뛰어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이전 대표의 이름을 들은 헨리가 미간을 좁혔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어쩐지 그를 축출한 일이 원인이라는 것처럼 들렸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닐 거다. 그쪽을 도맡아 하던 제이콥이 없어진 이유가 크겠지.”
“아직 행방은 찾지 못한 겁니까?”
끄덕.
헨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범인이 누군지는 알아도, 제이콥이 어디 있는지 찾아낼 방법이 없어.”
“이주혁이 미국까지 와서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습니다.”
헨리는 선생이 제이콥을 배제하는 게 나을 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만약 CCTV에 이주혁의 얼굴이 찍히지 않았다면, 그는 선생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헨리는 선생의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이콥의 일은 그렇다 쳐도, 사사건건 간섭하고 DS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대놓고 하는 건 아니었지만, 헨리는 선생의 목적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서로 이용하기 위해 맺은 동맹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천하의 예언자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닌가 봐?”
날카로움이 담긴 말에, 선생은 말없이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제이콥이 살아 있진 않겠지. 그럴 거면 애초에 공격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단 말이지.”
“뭐죠?”
“우선, 이주혁은 미국에 도착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아서 총을 구했어. 그것도 대체로 쉽게 구할 수 있는 피스톨이 아니라 SMG를.”
제이콥의 회사에 남아 있는 탄흔은 진작 조사해 봤다.
총기의 출처를 추적할 순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대강 몇 명이었는지, 어떤 경로로 침입했는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주혁의 일행은 대여섯 명. 하지만 건물 내부의 흔적은 침입자가 최소 열 명 이상이었다고 알려 주고 있어.”
“…….”
“그 말은 즉.”
헨리가 싸늘한 투로 말했다.
“미국 내에 이주혁의 조력자가 있다. 이게 내 결론이지.”
“타당한 추론이군요.”
“그래서 말인데, 선생. 그 조력자를 좀 찾아 줘.”
요청을 들은 선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내가 왜?’라고 하는 듯한 느낌에 헨리가 꿈틀대는 얼굴 근육을 피며 덧붙였다.
“만약 찾게 되면, 선생이 원하는 걸 하나 들어주지. 가능한 선 안에서.”
“뭐…… 좋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승낙이 돌아왔다.
꿈틀.
“웬만하면 생포해 달라고.”
헨리는 선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뇌까렸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릴 테니까.”
* * *
며칠 뒤, 헨리는 서클의 회의에 참석했다.
정기적으로 모든 인원이 참석하는 대회의는 아니었으나, 안건이 있다면 중간중간 작은 회의가 열리곤 했다.
한 세력이 안건을 내면, 거기에 관해 의견이나 정보가 있는 세력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자발적이라고는 하나, 안건이 나온 이상 대부분은 얼굴을 비춘다.
이 자리에서 오가는 말도 유용한 정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연결하겠습니다.”
회의가 열리는 장소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보통은 중대한 사안이 아닌 이상 화상으로 진행한다.
각자 활동하는 나라가 다른 탓이었다.
삑.
비서가 컴퓨터를 조작하자, 헨리의 앞에 놓인 커다란 모니터에 불이 들어왔다.
여러 개로 나뉜 사각형 속에 있는 각각의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헨리는 예의상 감사 인사를 건넸다.
“바쁜 와중 참석해 줘서 고맙습니다.”
-알면 안건부터 하지.
헨리의 미간이 꿈틀했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해 보니, 삼합회의 노인네였다.
대놓고 헨리를 무시하는 태도였지만, 뭐라 제지할 순 없었다.
이전 대표였으면 아무리 삼합회의 수장이라 하더라도 쉽게 대하지 못했을 터.
헨리는 들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슥.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헨리의 눈짓에 자료화면을 띄웠다.
한 남자의 얼굴이 모두가 볼 수 있는 화면에 등장했다.
-이 자는?
-선생을 죽인 자군.
-이주혁인가.
-죽인 건 아니지 않나?
헨리는 어수선해진 그들에게 용건을 설명했다.
“이 자가 우리 DS컴퍼니의 인원을 공격했습니다. 그는 시체도 발견하지 못했고.”
-흠.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선생을 조력하던 마테오. 기억하십니까? 필리핀의 거부.”
-아, 알 것 같군. 선생 물주 아니었나? 얼마 전 인터폴에서 수배를 내렸다던데.
“그것도 이주혁의 소행입니다.”
이건 선생에게 전해 들은 정보였다.
“그리고 이번엔 DS컴퍼니를 건드렸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헨리는 맥을 끊고 들어오는 노인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이주혁은 서클에 속한 이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흠.
“그래서 이 자리에서 요청합니다.”
스윽.
손가락을 치켜든 헨리가 조용히 읊조렸다.
“이주혁을 생포하는 사람에게, 큰 보수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