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8
037화
라세흠은 태어날 때부터 건강했다.
다른 아이들은 돌이 지나야 겨우 걸어 다니는데, 라세흠은 10개월째부터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고, 돌 때는 돌잡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싸돌아다녔다.
그의 신체적인 능력이 탁월한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복싱 동양 챔피언이었던 아버지와 체조 선수였던 어머니.
훌륭한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으며, 누구보다 건강하고 유연하며 강인한 육체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 그 유전자의 성능은 여실히 드러내려 하고 있다.
동식이파 조직원 중 한 놈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운동기구가 모여있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사무실이나, 창고를 본거지로 하는 다른 조폭들과는 다르게, 동식이파 지동식은 헬스장을 근거지로 삼았다.
그만큼 운동에 진심인 남자였다.
“똥식아!”
라세흠 교관이 외치자, 아령을 들고 있던 문신충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다.
커다란 덩치와 비대한 근육을 자랑하는 동식이파 조직원들.
그들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너 뭐라고 했냐? 똥식이?”
한 놈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눈을 치켜떴다.
그의 손에 쥐고 있는 아령으로 언제든 내려칠 거 같은 모습이었다.
동식이파 조직원이 라세흠 교관의 손에 끌려온 놈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라? 이놈은 또 왜 이래? 네가 이랬냐?”
“그럼, 누가 이랬겠어? 오다가 교통사고라도 났을까 봐? 걱정하지 마. 신호 지키면서 왔어. 횡단보도 건널 때는 좌우 살피고 손도 들었다.”
교통법규를 준수했다는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었다.
이런 어이없는 대답이 동식이파 조직원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런, 개……. 컥!”
아령을 들어 올리는 순간, 전광석화 같은 주먹이 놈의 턱을 가격했다.
상식적으로 저 무거운 아령이 들어오는 시간을 기다려 줄 놈이 어디 있겠어?
조폭들은 자기 머리가 나쁘다는 걸, 홍보라도 하는 거 같다.
“썅! 다들 연장 들어!”
헬스장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식이파 조직원들이었다.
아령과 쇠봉 같은 묵직한 것들로 무장한 깡패들이 라세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흠……. 뭐로 해야 하지?”
위기의 순간.
건장한 남자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순간에 라세흠 교관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족발이냐……. 냉채 족발이냐…….”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신중했다.
일반 족발의 쫀득함을 택할 것이냐, 냉채 족발의 알싸함을 택할 것이냐.
다가오는 조폭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진지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휙.
턱을 잡고 고민하고 있는 라세흠에게 조폭 한 명이 아령을 던졌다.
20kg의 무게를 자랑하는 거대한 아령.
그것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데도 라세흠은 여전히 깊은 고민 중이었다.
“씁……. 양념 족발도 당기는데…….”
그렇게 말하며, 날아오는 아령을 턱! 하고 잡았다.
가속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잡고는 대충 빈자리에 던졌다.
“자, 잡은 거야? 아령을?”
“새끼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이런 거나 던지고 있어? 야! 이거 맞으면, 죽어.”
라세흠 교관은 자신이 나름 인간적인 사람이 생각했다.
문신으로 온몸을 도배하고 나쁜 짓을 일삼는 인간들이지만, 아령을 던지지는 않았다.
자기가 힘껏 던지는 순간, 진짜 사람 하나 죽는다.
창창한 30대의 나이에 전과를 만들 수는 없었다.
“한꺼번에 쳐!”
연장을 들고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드는 조폭들.
라세흠 교관은 운동기구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턱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아……. 오랜만에 냉채족발도 당기는데…….”
스무 명이나 되는 깡패들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장충동 족발 메뉴.
그것만이 고민이었다.
“쥐새끼 같은 게! X나 도망치네. 이리 안 와?!”
“뒤에 막아. 몸으로 막으라고.”
“다람쥐야? 뭐야? 뭐 저렇게 뛰어다녀?”
넓은 헬스장을 유유자적하게 뛰어다니는 라세흠을 잡을 수 있는 조폭은 없었다.
발이 빠르고, 공간 지각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라세흠이다.
1년만 체조 훈련을 하면, 메달권도 가능한 인간이었다.
그런, 사람을 잡겠다고 몸부림치는 조폭들이 오히려 애처로울 정도였다.
“썅! 반은 저쪽으로 나머지 반은 나를 따라와!”
딱!
한 조폭이 말하는 순간, 라세흠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반씩 시키면 되지. 소(小)자로 하나씩 시키면 되는 거야. 양념 족발도 시켜서 일반 족발이랑 냉채 족발까지 다 같이 먹으면 되는 거였어!”
누가 보면, 무슨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 같은 표정이다.
메뉴가 정해졌다.
동시에, 장충동 족발을 생각하니 입에 군침이 돌고, 같이 곁들일 소주를 떠오르자, 참을 수 없었다.
으드득.
“빨리 끝내자.”
라세흠 교관의 춤사위가 시작됐다.
***
“주혁아. 왔냐?”
“부장님! 먼저 가면 어떡합니까? 주차할 때까지 기다리라니까요.”
“뭘 기다려. 이런 놈들은 그냥 내 선에서 처리하면 되지.”
주차 자리가 없어서 멀리 주차하고 헬스장으로 올라오니, 가관이다.
라세흠 부장이 스무 명을 때려눕히고 대충 헬스장 기구 위에 앉아 있었다.
“벌써 다 처리한 겁니까?”
“아니. 아직 한 놈, 남았어.”
그러고는 헬스장 안쪽에 사무실을 가리켰다.
커튼이 쳐진 거기엔 사람의 인영이 비췄다.
“아마, 저놈이 동식이 아닐까?”
“그렇겠네요.”
대충 상황을 둘러보니, 견적이 나온다.
자기 부하들이 홀연 단신으로 쳐들어온 라세흠을 처리할 줄 알았는데, 무쌍을 찍어 버리니 겁나서 사무실에 숨은 거다.
대장이 저래서야 쓰나?
전쟁 상황이었으면, 영창이 아니라 즉결 처형감이다.
한 무리의 장이 뒤에 숨어서 사무실 문이나 걸어 잠그고 있다니. 쯧.
“고용주야. 저놈 저거. 데리고 나올까?”
“아니요. 알아서 나올 거 같은데요.”
“응?”
사무실 안에서 뭔가를 준비하는 게 보였다.
기다란 무언가를 이리저리 조립하는 실루엣인데, 많이 본 장면이다.
“이제 나오겠네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근육질 몸의 지동식이 사냥용 엽총을 견착하고 문을 열었다.
“너희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어디서 보낸 프로야?”
우릴 자객쯤으로 오인하고 있나 본데 아니야.
우린, 그저 우리 밥줄 지키러 온 선량한 장사꾼일 뿐이다.
“네가 지동식이냐?”
“그, 그래.”
“그렇구나. 똥식아. 하나만 묻자. 강북 지역에 ‘좋은날’ 들어가는 거 왜 막았냐? 리베이트 안 줘서 식당에 못 들어가게 막은 거냐?”
“부, 부해양조에서 보낸 거야? 일반 기업에서 너희 같은 프로를 보내?”
“묻는 말에만 좀 답해 줄래. 응?”
“이런……. 미친 새끼. 넌 이 총이 안 보여?”
“보이지. 왜 안 보이겠어?”
총구가 나를 향하고 있는데, 안 보일 리가 있나?
그런데, 말이야.
엽총은 총알이 두 발이야.
두 발로 우리 둘 다 맞혀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이런 말을 굳이 해 줄 필요는 없지.
동문서답하고 있는 지동식을 보며, 라세흠이 나섰다.
“아오. 빨리 끝내자. 내가 처리할게.”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이게 뭐 어렵다고. 대신, 너 이거 약속해라.”
“……뭘요?”
“족발 소자, 양념 족발 소자, 냉채 족발 소자. 다 사는 거로.”
“훗. 알겠습니다. 실컷 사 드리죠.”
“오케이. 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라세흠이 총을 든 지동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탕! 탕!
순식간에 발사되는 총알.
평평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면, 한 발이라도 스쳤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긴 헬스장이다.
수많은 운동기구가 자연스럽게 장애물이 되어 주는 고마운 곳.
어지간한 사격 실력이 아니면, 맞힐 수 없다.
퍽!
라세흠이 한 바퀴 돌며 뒷발차기를 펼치자, 경쾌한 타격음이 울렸다.
턱을 정통으로 맞은 지동식의 몸이 한 바퀴 회전했고, 거칠게 바닥과 닿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엥? 한 방이야? 목 근육 좀 있길래 버틸 줄 알았더니.”
부장님. 그 정도로 날아서 뒤돌려차기를 날리면, 멧돼지도 기절할 겁니다.
아무튼, 저 괴물 같은 인간은 ‘적당히’를 모른다.
.
.
한 시간 뒤.
장충동의 한 족발집에서는 아이러니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라세흠 부장은 번갈아 가면서 다양한 맛의 족발을 즐기고 있었고, 나는 소주잔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각 잡고 앉아 있는 남자.
지동식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정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네가 강북 지역의 주류 유통은 도맡아서 하고 있다고?”
“그, 그렇다.”
“말이 짧네. 평생 짧게 말하게 해 줄까?”
“아……. 아닙니다.”
187cm에 130kg는 나갈 거 같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공손하게 답하는 지동식이었다.
그야 괴물 같은 라세흠한테 맞고 기절했으니, 이런 공손함이 나올 수밖에.
“주류 유통은 어떻게 돌아가는데? 너희들이 리베이트 받는 상품만 넣어 주는 식으로 하는 거야?”
“미리 뒷돈 찔러 주는 회사도 있고, 리베이트로 일정 비율 맞춰서 주는 회사도 있습니다. 안 주면, 아예 유통을 못 시키게 막아 버리니까 알아서 챙겨 줍니다.”
참……. 조폭답네.
“부해양조한테도 똑같이 했겠네? 요즘 ‘좋은날’이 대세니까 가서 뒷돈 좀 찔러 달라고 했을 거 아냐?”
“네.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사장이 우린 그런 거 안 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사장이라면, 부해양조 부진용 사장을 말하는 걸 테다.
요즘 서울, 경기 쪽의 유통을 늘린다고 서울사무소에 살다시피 한다던데, 이놈들을 직접 만났나 보다.
미리 나한테 말해 줬으면, 내가 알아서…….
‘아! 아니구나.’
부진용 사장은 내가 조폭들을 잡고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니, 말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의외로 깡과 악이 좋은 사람이네.
깡패들이 쳐들어와서 뒷돈 좀 꽂아 달라고 하면, 무서워서라도 그냥 알겠다고 하는데 부진용 사장은 타협하지 않았다.
회사 운영 능력은 별로일지 몰라도 불의에 타협하는 나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위험할 뻔했어.’
깡패 놈들은 자비가 없다.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윤을 찾아내는 놈들이었다.
동식이파는 몇 차례 더 부진용 사장을 협박했을 테고, 그래도 완고하게 버텼으면 곤욕을 치렀을 거다.
납치, 감금, 폭행 따위의 순서가 이뤄졌을 테니까.
짝!
생각하니, 열받아서 지동식의 뺨을 후려갈겼다.
“…….”
순간, 족발집 안에 정적이 흐른다.
라세흠이 눈치를 보더니, 일부러 큰 웃음을 냈다.
“하하하! 아무리 게임이라도 그렇게 세게 때리면 안 되지. 살살하자. 살살.”
그제야 주의 시선들이 자기 테이블로 돌아갔다.
“눈치 보면서 먹기 싫다. 족발은 다 먹고 패라.”
“네. 부장님.”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어떤 짓을 했을지 보이기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라세흠이 내 허벅지를 잡으며 주의를 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곤죽을 만들어 버렸을 거다.
“어이. 똥식이.”
“…….”
“네가 살아서 이 족발집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야.”
“뭐, 뭡니까?”
그래도 살고 싶은지, 뺨이 아픈 줄도 모르고 즉각 답했다.
“하나는 너희 조직을 완전히 와해하는 거. 아! 물론, 자수도 해야 한다. 이때까지 너희들이 했던 나쁜 짓들 증거들 모아서, 자진 신고해야 해.”
“……!!”
“너희들 해 먹은 걸 생각하면, 최소 열 바퀴는 돌아야 할 거 같은데. 이건 싫지?”
“네. 네! 그렇습니다.”
그럼, 차선책으로 가야지.
“두 번째 방법은 착하게 사는 거다.”
“……?”
“너희들 인프라를 바탕으로 정식 주류 유통 업체를 만들어라. 부해양조 주류만 공급하는 정식 업체로.”
“!!”
‘좋은날’뿐만 아니라, 수많은 주류를 공급할 예정이거든.
그런데, 부해양조의 인프라가 약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이 작업을 너희들이 맡아라.
난 씽긋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할래? 착하게 살래?”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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