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60
74장. 나무 감옥(2)
언젠가 적탑주가 내게 경고했던 세상.
신과 도사가 손을 잡아, 가장 많은 인간을 위한 선택을 거부하면 죄인으로 만드는 세상.
나는 그러한 세상을 입에 담는 청탑주를 마주했다.
-적탑주가 제게 그러더군요. 당신과 내가 손잡은 세상이 두렵다고요. 당신은, 당신이 바라는 세상을 완성하기 위해 권선과 징악이 필요한가요?
-당신이 어떤 말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신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뒤늦게 단군과의 대화를 돌이켜 봐도 떠오르는 것은 그저 신이 될 생각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자신이 직접 그 세상의 신이 될 생각만 없었을 뿐, 그는 정말로 적탑주가 두려워하는 세상을 만들 생각인 걸까?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이군요.”
청탑주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때와는 다르게.”
“그때?”
나는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나를 본 적이 있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그가 간드러지는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으니까.”
“내가…… 당신을 보냈다고요?”
“그와 당신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염라.”
더욱이 알 수 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가늘게 몸을 떨었다.
청탑주는 그런 나를 투명한 안경알 너머로 훑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 환희가 드러났다.
“당신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세상의 한 조각으로, 나를.”
나는 그 기괴한 환희에 무어라 반응하지 못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업경의 권능은 그 넘치는 환희를 내 것처럼 읽어냈다.
나와 단군이 청탑주를 이곳으로 보냈다.
청탑주는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토록 환희하고 있었다.
“대체…… ”
출처를 알 수 없는 환희에 거북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한데 그렇게 물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 질문을 유도하고자 그가 일부러 모호하게 말했다는 사실을.
“그래, 지금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군.”
업경을 통해 청탑주의 희열이 밀려들었다.
“당신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준 것은 다름 아닌 현재의 나였던 거야.”
그는 과거의 자신을 가르쳤던 내가, 사실은 현재의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배웠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언제나 신의 자리에 오르기를 갈망하는 도사의 본능에서 오는 희열이었다.
“당신을 만났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청탑주는 기쁨을 숨기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저 우주가 내가 설계한 미래를 선택하지 않는 것에 절망할 뿐이었지요. 고대하던 역천의 때가 도래하고 청룡의 전설까지 손에 넣었지만 신이 되어 한반도에 군림하는 것은 요원하기만 했습니다.”
“잠깐……!”
나는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그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설마…… 당신, 지금 한반도에 있는 겁니까?”
바리공주나 그림 리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떠올리지 못했을 생각이 떠올리자마자 급속도로 머릿속을 채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탑주는, 과거의 당신은 한반도에서 천부인의 단군과 대립하고 있는 겁니까?”
청탑주는 내가 그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말하지만 내겐 기억이 없다.
그에게는 과거인 일이 내게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것이라 가정한다면, 결국 내 앞에 존재하는 그는 내가 겪을 미래에서 왔다는 뜻이다.
나는 이미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존재들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한 시점에서 둘이 존재하는 자들을 알고 있다.
“그 멍청한 놈은 지금 천부인의 단군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주에게 구질구질하게 빌고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청탑주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단군은 놈을 죽이는 대신 수백 년 전의 과거로 보낼 겁니다. 바로 당신의 옆에서.”
그 대답에 나는 뒤늦게 그가 어떻게 윤회 없이 수백 년을 존재할 수 있었는지 이해했다.
그는 단군에 의해 과거로 보내져 현시점까지 정말로 수백 년을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우주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깨달았지요. 신도, 도사도 결국 우주가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우주가 그런 존재들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 사실을 깨닫고 단군을 찾아갔습니다.”
평온한 어조는 더없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너무도 잔잔하게 밀려드는 평온이 나는 오히려 껄끄럽고 거북했다.
“그때 그는 이미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그의 앞에 서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십수 년 후의 일이었음에도 말이지요.”
“…….”
“동시에 나 역시 알게 된 겁니다. 그동안 시시각각 나와 청탑의 뜻을 꺾어 놓았던 것이 누구였는지를.”
“그런…….”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더 말하지 않아도 나는 과거로 돌아간 그가 단군을 도와 그 시점의 자신을 훼방 놓았단 걸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단군은 적탑주와도, 청탑주와도 협력 관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적탑주는 뒤늦게 미래에서 온 청탑주의 존재를 알고 단군과 대립하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청탑주가 만들고자 하는, 신과 도사가 손을 잡은 세상의 실체를 알고서.
“그럼 천계는 대체 무슨 이유로 숨어든 겁니까.”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
“단군은 이미 하늘의 신화 계승전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왜 당신까지 버그를 일으켜가며 숨어든 겁니까.”
“이 하늘의 기가 필요했으니까요.”
청탑주가 차분히 대답했다.
혼란을 숨기지 못하는 나와 달리 다정하게까지 느껴지는 어투였다.
그 다정함이 신의 머리 꼭대기에 섰다는 만족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이 하늘과 천신들에게 배당된 인과율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은 답을 마저 내놓았다.
과거도, 미래도 알지 못한 채로 혼란에 빠진 내 얼굴을 즐기면서.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청탑주는 그렇게만 말하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신은 그저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기다리라고요?”
“바다에 이어 하늘을 손에 쥐실 때까지.”
“그게 무슨……!”
날 이런 형편없는 몸에 가둬둔 이유를 한발 늦게 깨닫고 그를 붙잡았다.
“이대로 모든 게 다 끝날 때까지 여기 갇혀 있으란 말입니까?”
“어차피 전부 받아들이시게 될 겁니다.”
청탑주가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나는 이미 당신과 그 남자에 의해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잠깐 말을 섞은 것만으로 나는 청탑주가 몹시도 거북했다.
그런데 이런 그를 스스로 내 앞에 보낸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나, 업경은 여전히 그의 말이 진실이라 전하고 있었다.
“흐음, 다만 조금 아쉽군요.”
청탑주는 나를 훑어 내리며 다시 말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당신이 내게 남긴 말. 시간을 거스르기 직전에 미처 듣지 못한 당신의 그 말이 궁금했는데.”
그러더니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그 말은 머지않아 당신이 나를 보낸 후에 들으면 될 일이지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와 함께할 것이라는, 그리하여 언젠가 한반도의 청탑주를 과거로 돌려보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잠긴 말을 남기며.
“그때까지 쉬고 계십시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성큼 방을 나섰다.
“…….”
나는 그가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도 머릿속이 느리게 돌아갔다.
감금당했다는 것을 재차 의식했을 때는 다리에 힘까지 풀릴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탄식처럼 중얼거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청탑주와 단군이 이미 오래전부터 협력 관계였으며, 그들은 이전에 적탑주가 경고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천계를 손에 넣으려 한다고?
또한 미래의 나는 그것을 용인하고 단군과 함께 청탑주를 이 시점으로 보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머릿속이 나사가 빠진 바퀴처럼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다가 멈춰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리를 잠식했다.
“……나가야 해.”
청탑주가 말한 대로 여기서 잠자코 갇혀 있을 수는 없었다.
“나가야 해, 여기서.”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곧장 문고리부터 당겨 보았다.
덜컥!
덜컥!
하나 바깥에서 잠긴 문은 그저 듣기 싫은 소리만 울려댈 뿐 열리지 않았다.
“젠장…….”
욕설을 내뱉으며 문을 노려보았다.
그리 단단한 문은 아니었지만, 이 몸으로 부술 수 있을 만큼 약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다 끝날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하나?”
홧김에 몇 번 더 신경질적으로 문고리를 잡아당길 때였다.
가각!
가가각!
내 행동에 목각인형들이 난폭하게 턱관절을 움직이며 내 주위를 둘러쌌다.
내가 허튼짓을 하지 못하게 막을 셈이었다.
“하아.”
인형들의 위협에 긴 한숨을 내쉬며 방 안을 돌아보았다.
“아.”
맞은편 벽에 창문이 나 있었다.
어두운 와중 커튼까지 친 터라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아마 놓쳤을지도 몰랐다.
“창문…….”
목각인형들의 눈치를 살피며 아닌 척 창문 근처로 다가갔다.
조심스레 커튼을 걷자 유리창 너머로 새벽의 푸르스름한 풍경이 드러났다.
별다른 잠금장치 없이 평범한 창이었다.
“열 수 있어.”
문을 열자 축축한 새벽 공기가 훅 하고 밀려들었다.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놓는 순간 인형들이 경고하듯 거칠게 관절을 딸까닥거렸지만 특별히 나를 붙잡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쪽으로는 도망치지 못할 거라는 뜻인가.”
창문은 내가 충분히 몸을 빼낼 수 있는 크기였지만 기실 그런 식으로 탈출을 시도하기에는 이 방이 지나치게 높은 곳에 있었다.
못해도 10층은 되어 보이는 높이.
체력과 근력이 1짜리인 몸으로는 뛰어내리는 것도, 벽을 타고 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
그럼에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창문밖에 없어 멍하니 밑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던 그때.
“……설마.”
불현듯 내게 깃들어 있는 신수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이곳은 하늘이니 날개 달린 친구를 계속 곁에 두는 게 좋으시겠지요.
그 남자가 내게 신수를 맡긴 이유.
“공군…….”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내 가슴에 손을 올리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공군, 혹시 나와서 도와줄 수 있을까요.”
파아앙!
내 물음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연녹색 신성이 번쩍였다.
펄럭!
하얀 수리부엉이가 듬직하게 날개를 펼치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가가각!
가각!
공군이 나타나자 목각인형들이 다시금 위협적으로 나를 포위했다.
펄럭!
펄럭!
곧장 앞에 나선 공군은 나를 보호하려는 듯 커다란 날개를 펄럭였다.
[ (!) 영웅담 ‘하늘과 바람을 가르는 새’의 효과가 제한됩니다. ]공군을 소환한 내 마력이 고작 1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공격 행위는 불가했다.
내 마력이 0이 된 이상 공군은 여느 때처럼 물리 공격을 막아주거나 적에게 브레스를 쏘는 것은 할 수 없다.
하나 지금은 공군의 커다란 날개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쪽은 괜찮아요, 공군!”
재빨리 창문을 짚으며 공군에게 외쳤다.
“이쪽으로 와주세요!”
공군이 대답하듯 날개를 펄럭이며 창문을 통과했다.
가가각!
가가가각!
공군의 돌발행동에 목각인형들이 창가로, 정확히는 내게로 달려드는 찰나.
“부탁해요, 공군……!”
나는 공군을 믿고 그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펄럭!
커다란 날개가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귀를 스쳤다.
펄럭!
펄럭!
두 발로 내 어깨를 잡아챈 공군이 행글라이더처럼 활강했다.
“정말로…….”
가까워지는 땅을 내려다보며 나는 내게 공군을 보냈던 남자를 떠올렸다.
“정말로 이거 때문에 공군을 나한테 맡긴 거였나…….”
그 남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나무 감옥에 갇히게 만들었으며,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수단 또한 쥐여준 것일까.
[ (!) 해당 영역의 카르마가 당신의 카르마에 반응합니다. ]그때였다.
[ ‘신목이 뿌리 내린 하늘’에 입장하셨습니다! ]– (!) 해당 필드의 등급은 ‘전설’입니다.
땅에 발이 닿기 직전 신화전을 알리는 팝업창이 떴다.
낯선 필드에 떨어졌다는 알림이었으나, 그것이 청탑주의 필드임은 알아볼 수 있었다.
[ ‘태산의 조각’에 입장하셨습니다! ]– (!) 해당 필드의 등급은 ‘전설’입니다.
한데 뒤이어 이어지는 팝업창에는 일순 당황하고 말았다.
태산이라면 십중팔구 벽하원군의 필드가 아닌가.
[ (!) 공간의 지배법칙이 충돌합니다. ] [ (!) 현재 신화전(神話戰)이 진행 중입니다. ]즉, 나무 감옥 바깥에서는 이미 벽하원군과 청탑주가 신화전을 벌이고 있던 것이다.
“어라, 이게 누구야.”
곧 필드에 내려선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낯설지 않은 얼굴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날 보고 있었다.
“대왕님, 걔 도혁이네 신수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