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02
202====================
43. 합작
역시나 이곳 지부장도 따로 부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라야의 누구라면 설마 그곳의 총괄 지부장인 탁스 두겐을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은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기는 해도 애초에 허드렛일 수준이라 실력 운운할 상황이 아닐 텐데. 묘하게 불안해지는 소개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이제까지 만났던 지부장들의 실태를 생각하면 이게 정상인 것 같기는 하다만.
잠시 더 기다리자 속속 집행자들이 도착한다. 역시나 페스타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꽤 많은 집행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룬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데크나드입니다. 미엘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헬라에요! 미엘님, 화장품 뭐 쓰세요? 피부가 너무 고와요!”
“모르드 바 워입니다. 종결자와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는 족족 이런 식으로 힐 데 마그처럼 미엘에게 지극한 관심을 표할 뿐, 상대적으로 진이나 유아는 그저 미엘의 동행이라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자존심이 쓸 데 없이 강한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어떻게 보면 푸대접이라고 할 수 있는 대응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일. 그러나 진이나 유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차라리 미엘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쪽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느끼는 것이라면, 자신들과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미엘이 이토록 집행자들 사이에서 유명인이었구나 하는 것 정도.
어떻게 보면 이곳 헤트라는 집행자들에게 있어 손꼽히는 파밍 장소이고, 그만큼 한창 성장하는 집행자 꿈나무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서 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있어 최상위 3계급에 속하는 인물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은 경험일 테니까. 굳이 비교하자면 막 게임을 시작한 쪼렙 유저들이 방송 등으로 유명해진 세계 정상의 최상위 랭커를 만난 기분 아닐까.
그렇게 미엘이 다른 집행자들에게 환대를 받는 동안, 형진은 헤트라 지부장 힐 데 마그에게 다가가 은밀히 말을 건넸다.
“실은 문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잠시 귀 좀.”
“…”
왜 이러나 싶었는지 힐 데 마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형진이 말한 대로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실은… 여기 유아는 집행자가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페스타 메시지를 받아서 함께 오게 되었는데,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네? 어, 그게…”
“아, 물론 유아는 저나 미엘이 집행자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공포와 죽음께 동행해도 괜찮은지 여쭈어 주셨으면 합니다.”
힐 데 마그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집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을 보면 신분을 드러내거나 하는 일을 삼가라는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예외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더구나 이미 집행자라는 사실을 밝힌 상태고 이렇게 스스럼없이 페스타에 동행 하고 있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는 공포와 죽음께서도 그런 사정을 묵인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즉, 이것은 지부장 독자의 판단으로 결정 내리기에는 상당히 애매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알겠습니다. 여쭈어 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공포와 죽음은 어딘가의 호구신처럼 자기 신도를 아무렇게나 버려두는 신이 아니라는 사실.
힐 데 마그는 잠시 눈을 감고 손을 엇갈려 맞잡은 채 마치 기도하는 듯한 모습으로 잠시 있는가 싶더니, 눈을 뜨며 바로 형진에게 답했다.
“공포와 죽음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녀의 능력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소중히 하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역시 공포와 죽음. 어딘가에서 늘 지켜보고 있는, 그래서 때로는 관음증으로 오해받을 정도의 신답게 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유아의 능력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공포와 죽음쯤 되면 그녀가 신녀라는 정도야 당연히 알고 있을 테니 아마도 그런 부분을 지적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혹시라도 심각한 중상자가 나왔을 경우라도 그녀의 힘이라면 금새 완치가 가능할 테니까.
어쨌든 조금 떠들썩한 상견례가 끝나자 집행자들은 마그 남매의 인솔을 받으며 페스타가 벌어진 장소로의 이동을 시작했다.
“꽉 잡아.”
“네.”
곧바로 다채로운 이동스킬이 발동하며 집행자들은 빠른 속도로 눈 덮인 대지를 주파했다. 형진은 유아를 공주님처럼 안은 채로 그들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 움직였다. 유아를 제외하고도 지금 여기 모인 집행자만 11명. 다른 이들의 실력은 잘 모르겠지만, 이동 스킬을 다루는 수준으로 봐도 평균은 되는 느낌이다. 하기야 이 얼어붙은 대지를 돌파해 헤르타까지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어림없겠지. 이 정도 전력이라면 솔직히 공성전을 벌여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집행자들의 인해전술이라니, 언데드들로서도 억울한 일이 아닐까 싶다.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말씀하십시오.”
이게 이동 스킬이 맞나 싶은 특이한 방법으로 이동하고 있어서 말을 걸기조차 애매하다.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높이 훌쩍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답을 하는데도 첫 마디만 가깝게 들리고 뒤의 단어는 멀리 들리는 것이 마치 도플러 효과 실험을 하는 듯한 기분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서도 지면에 발이 닿을 때는 소리는커녕 땅울림 소리조차 나지 않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처음 집결지에 도착했을 때도 이런 식으로 왔었던 건가.
“헤르타 인근에서 페스타가 자주 일어난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글쎄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지금 저희가 향하고 있는 곳이 과거에 엄청난 대전쟁이 있었던 곳이라는 얘기가 이 지방 전설로 남아 있기는 합니다. 흔히 망자의 대지라고 하는 곳인데, 땅에 소금기가 강해서 일반적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페스타는 주로 그곳에서 일어나곤 하지요.”
“쿡.”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형진의 품에 안긴 유아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웃고는 스스로도 놀랐는지 얼른 입을 가렸지만 이미 빵 하고 터져버린 뒤다.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이렇게라도 어여쁜 레이디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저로서야 영광이지요.”
하지만 곧바로 옆에서 달리고 있던 여동생으로부터 태클이 들어온다.
“여자 손 한 번 잡아 본 적도 없는 노총각 주제에 말은 번지르르 해요.”
“끙. 동생아. 거기서 꼭 그런 말을 해야겠니?”
덩치나 외모가 좀 이질적이긴 하지만 저 정도로 성격이 좋은데 여지껏 여자 손도 못 잡아봤다니 조금 믿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돈이 떨어져서 왔다고 했던가. 집행자라면 공포와 죽음께서 알아서 잘 챙겨주시니 어지간해서는 돈이 궁할 일이 없을 텐데.
그런 형진과 유아의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지부장이며 그의 여동생인 힐 데 마그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성격 좋고 능력 좋으면 뭐해요. 돈 생기면 전부 도박에 들이 붓는데.”
“아…”
그제서야 형진과 유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여지껏 여자와 인연이 없었던 것이 바로 납득이 된다. 더불어 살짝 차오르기 시작했던 호감 역시 금새 수그러든다. 도박 중독이라니, 그런 거라면 여자에게 기피 당해도 할 말 없는 일이다.
할은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나 도박 끊었어.”
“말이야 맨날 끊었다지. 그래놓고 때 되면 항상 여기로 기어들어오는 건 뭔데.”
“…”
동생의 잔소리에 할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페스타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를 묻는다는 것이 할 데 마그의 약점을 끄집어내는 결과가 될 줄이야. 모르긴 해도 여동생이 이곳에서 지부장이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남매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모른 척 외면하며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화살표가 가리키는 지점에 가까워졌다.
[전투 준비!]오빠와 투닥거리던 힐 데 마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한 모습으로 다른 집행자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질주하던 집행자들은 곧바로 각자 무기를 꺼내들고 전투를 준비했다.
“저건…”
형진의 품에 안겨 있던 유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새하얀 평원 위에서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자의 군세라고 하면 보통 망자들이 군대처럼 모여든 모습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고유명사로 쓰이면 수많은 악령들이 하나로 뭉친 형태의 상급 언데드를 뜻하는 말로 바뀐다. 지금 망자의 대지에 나타난 것은 바로 후자의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이것의 발생은 어떻게 보면 던전의 그것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죽음의 기운과 망자의 영혼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하나로 결집되어 유의미한 형태의 언데드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망자의 군세 또한 내부에 핵이 존재하며, 그 핵을 파괴하거나 핵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도록 조치하면 망자의 군세는 자연스럽게 다시 파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집행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망자의 군세에 대적하는 방법이다. 집행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못한 자들을 공포와 죽음의 이름 아래 본래 가야 할 곳으로 보내는 것. 따라서 단순히 핵을 파괴하여 망자의 군세가 흩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고 있는 망자의 영혼 전부를 죽음으로 인도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쉽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적게는 수백, 많으면 수천에 이르는 망자의 영혼들을 모두 죽음으로 인도하는 일이니 솔직히 상상만으로도 질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누가 봐도 번거롭고 까다로운 일이지만, 집행자들로서는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이 망자의 대지라는 장소에서 죽음을 당한 자가 얼마나 엄청난 수였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지금 전투에 돌입한 집행자들의 모습으로 봐서는, 망자의 군세라는 이름의 상급 언데드가 출현한 것이 드문 일이 아닌 듯 보인다. 그것은 다시 말해 망자의 군세가 등장할 때마다 집행자들이 나서서 그것을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겨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이 이곳에서 죽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니면, 다른 어떤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망자의 영혼이 지속적으로 이곳에 공급 되는 것일 수도 있고.
OooOooooOOOoooOOoooOoo.
인간의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지옥의 밑바닥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마치 메아리쳐 울리는 듯한 소리가 모든 이들의 머리 속에 울려 퍼진다.
“…”
그 소리를 듣자 유아는 자신도 모르게 형진의 옷자락을 붙잡고는 몸을 움츠린다. 그제서야 형진은 아차 싶었다. 유아에게는 집행자들처럼 정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괜찮아?”
“네? 아… 괜찮아요. 단지…”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유아의 두 눈은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두려움, 또는 공포라 불리는 감정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유아의 눈에 맺힌 감정은 바로 슬픔과 연민이었다.
“왜 그래?”
“그, 그냥… 갑자기 눈물이…”
“…”
정신 공격에 당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도 이건 이것대로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형진은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고는 미엘을 향해 말했다.
“힘을 좀 드러내는 편이 좋겠어.”
“알았어요.”
미엘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유아를 흘깃 보고는 곧바로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유아가 급히 나서며 말했다.
“잠시만요.”
“왜?”
“저를… 저 안으로 데려다 주세요.”
“뭐?”
갑작스런 유아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순간, 그녀의 몸으로부터 따뜻한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눈으로 보고 피부로 접하는 순간, 마치 따뜻한 봄날의 햇빛의 맞이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형진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물리적인 온도가 올라가서가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따뜻하게 덥혀지는 느낌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면 기적의 성광과도 비슷한,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적이 없었던 새로운 힘이 유아의 몸 안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