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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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침공
골치 아픈 길드 창설이 끝났으니 이제는 길드 하우스를 구매할 차례다. 하지만 돈이야 그렇다 쳐도 길드 하우스는 입지 자체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은 좀 더 알아본 다음 정하기로 하고 일단 다시 섬으로 귀환했다.
한편, 식구들이 그렇게 처음으로 엘리시온을 방문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이 될 때까지도 여신은 자신의 집안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새로 생긴 추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진님은 정말로 요리를 잘해요.”
“그, 그런가요.”
“네. 아, 그러고 보니 두 분도 진님이 만든 요리 먹어 보셨죠?”
“그랬… 죠.”
운동선수는 규칙적인 생활이 필수다. 당장 합숙 중인 새름은 물론이고, 부상 때문에 치료와 재활을 하고 있는 아름 역시 그건 마찬가지. 일단 생활 리듬이 깨져 버리면 컨디션 조절에 막대한 차질이 오기 때문에 성적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즐겁게 조잘조잘 떠드는 여신에게 대고 차마 자야 하니까 그만 하라는 식의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직접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몰라도, 추종자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서 볼을 발그레하니 붉힌 채 열심히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여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차마 그만 하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는 것이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얘기가 있긴 하지만,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아름과 새름은 처음부터 보호와 균형의 팬클럽이 될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즈음, 다행히도 엘리시온에서 돌아온 카트린이 여신에게 식사 시간임을 알리기 위해 달려오는 바람에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대화는 마침내 끝을 맺었다.
“두 분 식사는 하셨어요?”
“네? 네… 뭐… 일단은.”
“실은 자려고 준비하던 참이었어요.”
“앗! 죄송해요. 추종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그만…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뭐… 죄송할 것 까지야.”
어쨌든 그렇게 대화를 마친 여신은 카트린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사실 이 공간에는 여신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침대 한켠에 자리를 잡은 채 여신 전용으 쿠션 신세가 되어 있는 하엘은 물론이고, 그 옆에서 열심히 야자수 잎사귀로 만들어진 커다란 부채를 부치고 있던, 사실상 지금까지 존재 자체가 거의 잊혀져 있던 몽마들 역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우우우우…”
“에효오오오오…”
여신이 카트린을 따라 나가자, 두 몽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푸욱 내쉬고 말았다. 부채질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차라리 그런 거라면 이렇게 한숨을 푹푹 내쉬지도 않는다.
“우리도 추종자인데…”
“씨이… 여신님 미워.”
그렇다. 각기 타락의 마야나와 유혹의 로트나라는 이름을 지닌 이 몽마들이 지금 이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존재를 잊은 채 새로운 추종자들에게 빠져 있는 여신의 모습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카트린을 제외한 최초의 추종자들은 바로 이 두 몽마가 되어야 맞다. 하지만 아름과 새름이라는 추종자를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이렇게 어엿한 추종자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신은 물론이고, 그 옆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던 형진조차도.
“이대로는 안 돼.”
“맞아. 이대로는 안 돼.”
“자칫하면 보호와 균형을 모시는 첫 번째 추종자라는 자리가 위태로울지도 몰라.”
“그래. 다른 건 그렇다 쳐도 그 영예로운 자리만큼은 빼앗겨선 안 돼.”
“감히 어디 신입 주제에!”
“맞아! 감히 어디 신입 주제에!”
몽마들은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쥐며 잠시나마 빼앗겨 버린 첫 번째 추종자 자리를 탈환하겠노라고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침대 한켠에 벌렁 누운 채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하엘은 그런 두 몽마의 모습에 한숨을 푸욱 내쉴 뿐이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되었다.
“…”
아름은 협탁 위에 놓여진 접속기의 모습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아름은 여전히 시야 한쪽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팬클럽 아이콘의 모습을 보고는 어제 경험했던 모든 일이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서 눌러달라는 듯이 자꾸만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아이콘의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아름은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미리 정해진 재활 프로그램의 메뉴를 소화하는 일정을 이어갔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마침내 주어진 휴식 시간이 지금이다.
부르르르르.
진동으로 놓아둔 전화기가 울린다. 확인해 보니 동생 새름이다.
-언니?
“응.”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솔직히 좀 무섭다. 게임에서의 일이 현실에까지 이어지다니. 무슨 소설이나 만화도 아니고.
차라리 이 모든 것을 꿈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해버릴 수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조차 없다. 당장 눈앞에서 반짝이고 있는 팬클럽 아이콘을 제외하고서라도, 당장 보호와 균형의 권능이 실제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오늘 수행했던 재활 프로그램 중에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호는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힘이며, 균형은 신체가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도록 만들어주는 힘이다. 보통 사람이라도 이것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을 텐데, 부상을 입어 재활 중인 그녀라면 말할 것도 없는 일.
오죽하면 담당 의사가 다 놀랄 정도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치료기간이 단축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대로라면 올해 6월에 있을 아시아컵에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렵다. 미지의 무언가로부터 전해져 오는 유혹의 손짓이 두렵다. 하지만 욕심이 난다. 조금만 더 좋아지면, 작은 꿈 하나를 이룰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두렵다. 얻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 주어야만 하는 것임을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아아…”
아름이 작게 한숨을 쉬자, 새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니.
“응?”
-일단… 들어가 보자. 그냥 안 들어가고 버틴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아름은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럴 때 보면 새름이가 언니 같다. 항상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자신보다 새름은 뭐든지 시원하게 결정을 내리고 실천을 하는 편이다.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인데도 어째서 이렇게나 다른 걸까.
“알았어. 그럼 바로 들어갈게.”
-응.
아름은 침대에 누워서 접속기를 머리에 썼다. 그리고 헤드폰을 닮은 접속기로부터 전해지는 작은 속삭임 같은 무언가를 들으며 조용히 엘리시온의 세계로 들어갔다.
“언니.”
“미안. 늦었지.”
“아냐. 나도 방금 왔는걸.”
접속과 동시에 새름이를 만날 수 있었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어제 인던 공략이 끝나기가 무섭게 같이 로그아웃을 했으니.
“오늘 어땠어?”
“말도 마. 끝내줬어.”
“그래?”
“응. 민영 선배 알지?”
민영 선배는 국가 대표팀 센터 중 하나로 여자인데도 키가 195나 되는 장신의 선수다. 그녀들보다 2년 선배인데 앞을 가로막으면 정말 거대한 벽과 마주한 듯한 느낌이 절로 들 정도로 압박감이나 존재감이 대단한 선수다.
“알지. 그 선배가 왜?”
“연습 시합하는데, 내가 그 선배 슛을 블록해 버렸어.”
“뭐?”
무려 20센티 가까운 신장 차이다. 그런데 그 격차를 넘어서 슛을 블록해 버리다니. 원래부터도 점프력이나 순발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이건 그냥 어 그래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더구나 상대는 일반인도 아니고 국가 대표가 아닌가.
아름의 놀란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이 새름은 까르르 웃으며 다시 말했다.
“놀랐지? 나도 놀랐어.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
“뭔데?”
“그렇게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 펄펄 날아다녔는데도, 시합이 끝날 때까지 하나도 안 힘들더라. 그냥 기분만 그런 건가 했는데, 스트레칭 해주던 분이 놀라더라니까. 어쩜 그렇게 움직이고서도 이렇게 쌩쌩하냐고.”
“와아…”
두 자매 모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아니, 기계도 그렇게 격하게 움직이고 나면 정비를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보호와 균형은 그런 그들의 몸을 항상 최적의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운동선수에게 있어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권능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문득 새름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아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언니.”
“응.”
“나, 여신님 한번 믿어 볼래.”
“뭐?”
“물론 이건 어떻게 보면 사기인 건지도 몰라. 다른 선수들이 자신만의 힘으로 뛰는 걸 기만하는 일인지도 몰라. 하지만 난 이게 우리들에게 내려진 축복이라고 생각해. 아니, 축복이 아니라 악마의 손짓이라 해도 난 괜찮아. 최고의 선수가 될 수만 있다면, 난 설령 여신님이 사실은 악마라고 해도 그 손을 잡겠어.”
“…”
아름은 새름의 표정을 보고는 이미 그녀가 결단을 내렸음을 알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지금 이 얘기를 하기 위해 게임에 접속하자고 말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름은 아직 망설여진다. 하지만 동생이 이미 그렇게 결정했다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새름이는 그런 아이니까.
“알았어. 그럼 나도 믿을게.”
“정말? 괜찮겠어?”
“그럼. 걱정마. 이래봬도 내가 언니인걸.”
“고마워.”
둘은 쌍둥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운명 공동체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함께 운동을 했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이제 와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두려워서 그 길을 포기하고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손을 잡은 채 눈을 맞추고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이전에 봤던 초고렙이 가만히 박수를 치며 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진이다.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격했습니다. 여신님도 그러시죠?”
“네! 두 분 모두 정말 고마워요!”
사실 형진과 여신은 둘이 접속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이곳으로 왔었지만,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모른 척 둘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여신은 모처럼 얻은 두 명의 추종자가 다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두 자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두 자매가 여신을 믿는 걸 포기하는 쪽을 선택했다면, 여신은 아마 오늘 밤 내내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서, 설마… 다 보신 거에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군요. 일단 이것부터 수락하십시오.”
“네?”
뭔가 싶어서 바라보는데, 문득 메시지 하나가 나타난다.
[길드 ‘타나토노트10’으로부터 가입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이건…”
“길드?”
뜬금없이 이게 뭔가 싶은 표정을 짓는 두 자매를 향해 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네.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두 분이라면 이미 여신의 팬클럽이시니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자격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여신을 믿기로 한 마당이라 아름과 새름은 조심조심 그것을 수락했다.
[‘아르미풀스윙’님이 길드에 가입하셨습니다! 모두 환영해 주세요!] [‘새르미풀스윙’님이 길드에 가입하셨습니다! 모두 환영해 주세요!]그렇게 메시지가 나가자, 갑자기 길드챗이 활성화되며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환영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귀스트라고 합니다.] [부인인 하마란이에요. 잘 오셨어요.] [저는 카트린이라고 해요! 두 분 모두 여신님께 얘기 많이 들었어요! 환영합니다!] [크루그입니다.] [유아라고 해요. 혹시 다치시거나 하셨으면 언제든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할입니다. 하하. 이쪽 세계의 분은 처음… 크흠. 아무튼 환영합니다.]서로 다른 연령대의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갑자기 일제히 환영의 인사를 보내자 두 자매는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실은 길드 하우스를 막 구한 참이라 축하 파티를 하던 중입니다. 두 분도 함께 가시죠.”
“그래요! 진님은 정말 요리 솜씨가 대단하거든요. 두 분도 아마 마음에 드실 거에요.”
요리라…
확실히 던전에서 눈앞의 남자가 건네주었던 요리는 게임에서 맛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한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오죽하면 그 기억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두 자매의 입에 침이 그득하게 고일까.
“그, 그럼…”
“실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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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몽마들아, 미안. 실은 나도 잊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