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64
00764 173. 미라지 코어 =========================
아무리 훌륭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현상을 실제로 보고 확인하고 계측하는 것이 사고 실험이나 수학적 모델보다 확실할 수 밖에 없는 법이다. 특히나 광속의 돌파나 워프 버블과 같은 현상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실험이나 관측을 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방금 전에 공개된 데이터만으로도 그들이 파고 있던 이론을 수십 단계는 더 진일보시킬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모든 것을 구현하는 미라지 코어의 중심부로 들어가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 모든 것을 구현한 것이 인간의 손길이 아닌 신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허탈해질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들은 엔지니어가 아닌 물리학자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주를 관통하는 거대한 진리를 어떻게 찾아내서 밝혀내고 증명할 것인가일 뿐, 그것을 활용해 구현하는 방법은 별개의 문제다. 아니, 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진리를 찾아내어 그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만들어내도록 할 수 있다면 그건 한편으로는 인간의 사고 능력이 신을 넘어섰다는 증명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기꺼워한다면 몰라도, 허탈해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어쩌면 신의 권능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고 발현되는지 그 원리를 찾겠다고 덤벼드는 학자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현실화된다면, 모든 지적 생명체가 신과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어디까지나 권능의 메커니즘이 밝혀진다는 전제하의 얘기겠지만.
“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십시오.”
“저 데이터를 쓸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조건 같은 건 묻지도 않는 학자들의 모습에 형진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미라지 코어가 자사의 사원들에게 행하고 있는 지원이나 복지에 대한 일은 이미 유명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형진은 물론이고 그 밑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조차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화폐 가치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개발이나 연구에 소요되는 비용을 제외한 대부분을 소속된 인원들의 지원과 복지에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실현된 워프 항법 등은 단순히 외우주를 항해하는 수단으로만 끝나는 얘기가 아니다. 그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던 우주라는 공간의 신비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어쩐지 순서가 반대가 되어 버린 것 같지만, 워프 과정 중에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공간의 수축과 팽창은 물론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음의 에너지 밀도를 실증하고 생성 원리를 규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노벨 물리학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뿐인가.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이 아닌 드넓은 우주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면, 지금까지는 관측하지 못한 여러 가지 현상들을 좀 더 쉽고 간단하게 접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이들과는 출발선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곳에 모인 학자들이 바보라서 형진이 내민 떡밥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덥석 무는 것이 아니다. 그럴 만 하니까, 그런 거라고나 할까.
“감사합니다. 미라지 코어에서 여러분이 원하시는 결과를 얻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학자들의 영입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연구소나 유명 학자들에 대한 지원이 이 일을 계기로 완전히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채 며칠이 되지도 않아서 몇몇 기업과 대학, 그리고 연구소들이 간판을 바꾸어 달기 시작했다. 원래의 이름 자체가 바뀌지는 않더라도, 자신들이 미라지 코어의 산하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간판만 바뀐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조용히 진행되고 있던 각 연구들에 대한 지원이 노골적으로 퍼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느 틈에?”
어떻게 보면 현대의 기술 개발이나 연구는 개발비를 얼마나 쏟아 붓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퍼부어지는 금액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줄줄 새버리는 경우도 많지만, 충분한 연구 개발비 지원이 없으면 그만큼 뒤쳐질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자국의 유명 대학이나 연구소들이 순식간에 간판을 바꾸어 달기 시작하자, 각국 정부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미 알맹이들은 미라지 코어가 쏙 빼먹은 뒤. 뿐인가. 포섭에서 누락된 학자들 역시 자신들의 연구를 지원해 달라며 미라지 코어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미라지 코어가 지원하지 않는 학자는 삼류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할 정도다. 실제로 연구는 않고 간판만 건 채 이름값만으로 먹고 사는 교수들의 대부분이 문전 박대를 당했다.
단순히 연구자들을 끌어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들 가족에 대한 철저한 시큐리티 서비스 역시 동시에 진행되었다. 실제로 몇몇 정부에서 미라지 코어에 포섭된 학자를 강제 구인해서 정보를 캐려는 시도를 벌이다가, 긴급히 출동한 미라지 코어의 보안팀에 의해 저지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통 기업이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봐야 국가 권력에는 저항하기 힘들다.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국가 권력이 기업을 괴롭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라지 코어는 단호했다.
“망명하십시오.”
“네? 어디로…”
“미라지 코어로. 물론 가족들까지 전부. 함께 일하는 연구원은 물론이고, 기타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탄압받을 것이 확실한 친지까지. 미라지 코어가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아, 물론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나 사용하시던 설비 같은 것도 전부 포함입니다.”
“…”
모처럼 제대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나 싶었다. 연구를 해야 할 시간보다 지원금을 타내기 위한 술자리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가에 대한 충성이니 뭐니 하는 것을 들먹이며 끼어드는 정부의 작태가 달가울 까닭이 있을까.
“이미 당신은 미라지 코어의 가족입니다. 가족의 가족 또한 가족인 것은 당연한 일이죠.”
친근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는 형진의 모습에 학자는 결국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어느 한 국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자국 인력의 보호라는 미명하에 움직이던 몇몇 국가의 정부들은 하루아침에 당사자는 물론이고 연구소에 속한 인력 대부분이 사라져 버리자 그대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거지? 어디로 간 거야?”
“이건 국권 침해입니다. 당장 미라지 코어에 대한 자산 동결을 실행하고 관계자의 출국을 막아야 합니다.”
몇몇 국가들은 그나마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손을 떼었지만, 자국 내에 마련되어진 미라지 코어의 설비와 인력을 인질 삼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그와 같은 발표가 나오기가 무섭게, 해당국에 자리 잡은 미라지 코어의 지사에 속한 설비와 인력 역시 한 순간에 증발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뭐야. 어디로 사라진 거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남은 것이라고는 지사가 사용하던 건물 하나 뿐. 물론 건물의 가치도 만만한 건 아니지만, 이래서는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다.
“멍청한 놈들. 미라지 코어가 죽음의 천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간혹 피가 머리에 몰리면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지요. 특히나 의사 결정이 수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의 경우 이런 비이성적인 상황 판단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쯧쯧.”
혀를 차고 있기는 해도 미국 대통령의 속내 역시 그리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손을 쓰지 못하고 있을 뿐, 실제로 미라지 코어에 의해 포섭된 연구소나 대학, 기업들의 많은 수가 미국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국가들에서는 이 모든 것이 미국의 세계 장악 음모라는 식의 얘기까지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가장 속이 쓰린 것은 뻔히 자기 집 안에서 딴 살림을 차리기 시작한 미라지 코어의 모습을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미국 쪽이었다.
하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늘호의 항해 이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나사가 한순간에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고, 부양 자동차를 비롯한 새로운 탈것의 등장은 항공과 자동차, 선박 같은 산업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뿐인가. 그 모든 기술을 기반으로 한 군수 산업 역시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세계의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의 중공업이 뿌리마저 휘청거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미라지 코어가 기술 협력을 제안한 덕분에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인질이 잡힌 형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들이 손을 쓴다면 그 모든 기업들 역시 간판을 바꾸어 달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미국 대통령이 뭐라 한 마디 하지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는 건 결국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종된 학자와 그 가족들의 위치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 있다면 몰라도 그들 대부분이 이미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버린 상황이니 무슨 수로 찾겠는가. 실종된 연구원들 가운데는 각국의 정보원들 역시 소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이 속한 곳에 연락을 취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어이가 없군. 다른 나라의 얼간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쪽에서도 전혀 자취를 찾지 못하고 있다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국의 첩보 능력은 세계 최강이다. 중앙 정보국이 잇단 스캔들로 인해 그 위세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미국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첩보기관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미국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실종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그 모두가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미라지 코어에서 대중에 공개하지 않은 기술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보고를 하면서도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내용이다. 첩보 기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던가. 이런 식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추측을 입에 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를 물어오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다.
“초광속 항행이 성공한 마당이니,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조차 없어졌다는 건가.”
지구 안에서라면 제 아무리 미라지 코어라도 각국 정부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른 항성계로 가버리면 그것도 얘기가 달라진다. 우주 전체에 비한다면, 지구 따위는 작은 티끌에 불과한 작은 땅덩어리. 그곳을 벗어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어쩌면 과거에 해군을 갖추지 못한 나라가 강대한 해군력을 갖춘 국가에게 손조차 쓸 수 없었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러한 세력이 기존에 국가라는 틀을 갖추고 있던 곳이 아니라는 것일 뿐.
이렇게 되자 각국의 수뇌부들 가운데 몇몇은 지금까지의 국가관이라는 것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까지처럼 지구라는 영역에만 몰두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열린 G20 회의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거론되기에 이른다.
이른바 국제 연합을 확장시킨 세계 정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나오기로 한 건가.”
사실 세계 정부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인간이 그 정도로 성숙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면, 세상에 전쟁이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종교, 민족, 문화 등 넘어서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것이 간단하게 성사될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수세기가 지나도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식의 논의가 나오게 된 것은 각국 정부가 미라지 코어를 그만큼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역사를 봐도 내부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던 세력들이 일치단결하는 경우는 그들 각각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강력한 적의 등장이 있을 때뿐이니까.
“어쩐지 악역이 된 기분인 걸. 이런 때는 역시 지구본을 바라보며 큭큭거리고 웃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 형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희망과 생명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변태까지는 참아주겠지만, 내 남자가 그런 유치한 짓을 하는 건 좀 그런데.”
그녀의 말에 형진은 피식 웃었다.
“오호, 변태는 얼마든지 참아주겠다는 얘기야?”
“말이 그렇다는 거야. 꺄악! 어딜 만지는 거야!”
“글쎄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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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점심 먹고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