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14
분신으로 절대무신 14화
6장. 죽음
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일은 다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추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논만 40마지기에 10마지기의 밭을 소유하게 된 장일이었으니 정신이 없었다. 물론, 그의 땅에서 일하는 소작(小作) 가구가 다섯 가구나 된다지만, 수확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다행이라면 그에게 땅을 팔아준 촌장과 유지들이 사람을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품앗이를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번 수확물의 절반을 그들이 가져가기로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일이 올해 가지게 될 수확량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올해는 풍년에 가까워서 30가마는 넘을 듯 보였다.
-사아아악! 사악!
낫질 한 번에 고개를 숙인 벼들이 후두둑 하면 쓰러졌다.
평생 농사만 한 농부의 손길은 그처럼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하는 장일 동안 그 못지않았다.
“군에서 농사만 했나? 어찌 저리 잘한대.”
“그럴 리가 있겄어. 듣기로는 군에서 크게 공을 세워 왔다고 하던데.”
“정말?”
“정이 엄마 말에 그렇다고 하더라고. 아니면 이처럼 큰 땅을 어찌 사겄어. 다 나라에서 공을 세워 받은 보상금 아니여.”
“그 말이 정말이면 올해는 그 호랑말코 같은 관리들이 설치지 않겄어.”
촌장과 유지들이 대부분의 마을의 세금을 내기는 하지만, 소작농이나 작은 논밭을 가진 마을 사람들도 적잖이 내야 했다.
나라에 바칠 세금과 별개로 관리에게 내야 하는 발품비가 매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제 그 부분에서 조금은 나아질 수 있어 보였다.
그리 생각이 들자 사람들로서는 장일이 호의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본래 사람 심보가 친척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이다.
그러니 장일의 이런 성공에 질투와 시기가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혜택을 적잖이 자신도 보게 된다면 그 생각은 또 이처럼 달라지게 마련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리 생각하거나 말거나 장일은 점차 익숙해지는 낫질에 빠져들었다.
평소 쓰지 않는 부위의 근육을 쓰다 보니 뻐근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장일은 이 시간이 좋기만 했다.
‘이걸로는 우리 가족 배불리 먹을 밥을 짓고, 이거는 장이, 다미가 좋아하는 떡을 만들고, 이거는 아버지가 좋아했던 술을 빚어보자. 그러고도 남을 테니 이건 어머니와 다숙이가 좋아하던 꽃신이라도 한 켤레 더 사다 줄까?’
그러면 가족들이 저 길가의 꽃처럼 예쁜 웃음을 보여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장일은 힘든 줄을 몰랐다.
“장일아! 니네 어머니 오셨다. 먹고 해레이.”
그렇게 정신없이 수확을 거두던 그는 저 멀리서 들리는 마을 아저씨 목소리에 그제야 허리를 폈다.
뻐근한 허리가 비명을 질렀지만 장일은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그간 살이 올라 볼이 통통해진 동생들이 함박웃음을 지어댔으며, 마을 사람들의 말에 수줍은 미소를 짓는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네! 갑니다.”
그리 소리치던 장일의 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잠시 후,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가 저 청명한 가을하늘에 닿을 듯 울려 퍼졌다.
* * *
두 번째 겪게 된 죽음은 처음 겪었던 죽음과는 달랐다.
나는 그제야 내가 얻었던 권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 거기서 뭐 하세요?”
나무 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던 장일은 그 목소리에 새삼 시간이 빨리도 흘러간다고 생각이 들었다.
병아리처럼 자신을 따라다니기 바빴던 딸이 이제 현숙한 중년의 부인이 되었으니, 그 세월의 흐름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휘익!
장일은 5장 높이의 커다란 나무에서 한걸음에 내려왔고, 딸은 그런 장일에게 다가와 책망했다.
“오늘 유 사형 장문인 취임식이라는 것 모르지 않으실 텐데,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아직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지 않았느냐?”
억울하다는 장일에 딸은 어이없어하는 눈빛을 보였다.
“무슨 남의 문파 행사 오셨어요? 우리 쪽 일이에요. 거기다 초대한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괜히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딸에게 혼이 나갈 듯 야단을 맞게 된 장일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럴 걸 알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장일은 이 여장부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딸을 보며 도대체 누구를 닮은 것인지 매번 궁금했다.
현숙하기 그지없는 부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향적인 성향인 그 자신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 씨 쪽 사람이겠지.’
이제 요나라를 넘어 천하팔대세가 중 하나가 된 고씨세가는 그만큼 사람이 많았으니, 그의 딸도 그럴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사문에 돌아온 장일은 먼저 이번에 장문인으로 올라가게 된 유태를 만났다.
유태는 그의 사형을 이어 장문인을 지냈던 오승의 대제자로 그 자질은 장일 못지않다고 소문났었던 이였다.
실제로 혈교를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한 현 칠존에 준하다는 오왕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장일이 찾아오자 그저 송구스럽다는 태도를 보였다.
“오셨습니까? 사매를 말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휴. 아니다. 내가 내 딸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사위의 장문 취임식에 신경을 쓰는 게 맞지.”
“……죄송합니다.”
다시 사죄하는 그에 장일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물었다.
“그보다 승이는 어디 갔느냐?”
“아마도 사조님을 뵈러 가셨을 것입니다.”
20년 전에 죽은 문추가 살아 있을 리 없으니, 그 무덤가에 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장일은 자신도 제대로 된 제자를 하나 둘 것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끝내 제자를 두지 않았던 것은, 굳이 매화이십사수검법이 아니어도 사문에 그 못지않은 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바로 청풍십삼식이 그것이다.
정확히는 청풍십삼식에서 활검을 깨우친 장일이 남긴 두 개의 검법서 때문이다.
유운검법과 자하검법이 그것이다.
이 중 유운검법은 청풍십삼식에 비하면 격이 떨어진 검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절정의 검법인 것은 틀림없었으나, 그 안에 담긴 무리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장일이 이 유운검법을 창시한 뒤부터 천검문의 모든 제자들은 이 유운검법을 우선 익혔다.
그리고 그 뒤에 청풍십삼식을 다루었는데, 그에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 유운검법은 청풍십삼식을 보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법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청풍십삼식을 창시한 문강의 부족한 부분의 일부를 검법서로 만든 게 유운검법이라고 보면 되었다.
당연히 유운검법을 완성한 자가 청풍십삼식을 다루면 그 위력은 비교가 되질 않는다.
능히 대문파의 비전 무공과도 비교가 될 정도다.
하지만 진짜는 자하검법이었다.
유운검법과 청풍십삼식을 모두 대성해야만 익힐 수 있는 자하검법은 장일의 매화이십사수검법과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문강에 의해 만들어져 장일이 손을 대 다시 격이 높아진 매화이십사수검법은 과거 장일을 검존으로 올라가게 만들 정도였다.
이를 생각하면 자하검법이 얼마나 대단한 검법인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활검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매화이십사수검법처럼 수많은 실전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검의 격도 비슷한데, 그 부작용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장일로서는 매화이십사수검법을 남기는 것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소성까지야 어찌 이룬다고 해도, 그 이후부터는 웬만한 심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야 자칫 마인이 탄생할 수 있는 검법이기 때문이다.
장일은 그 때문인지 잠시 아쉬워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장문 취임식에 대한 행사는 삼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날에 취임이 된 뒤, 그를 축하하러 온 이들을 대접하다 보니 어느새 3일이 지난 것이다.
장일은 첫날에만 참석한 뒤, 다음 날부터는 딸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번잡한 것이 싫다기보다는 최근 들어 떠오르는 무리가 손에 잡힐 듯 안 잡혔기 때문이다.
-휘이익. 휘익! 사아아아악!
오랫동안 손에서 떨어뜨렸던 검을 다시 손에 쥐었을 정도였다. 장일은 그렇게 며칠을 검을 풀어내다 어느 순간 검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허상이 되어 사라져 버리니, 자신이 뭘 쫓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보통은 이럴 경우 다음을 기약하게 마련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며칠 동안 검을 잡았을 만큼 쉬이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제 곧 끝이 날 것이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본래 그가 이룬 경지를 생각한다면 최소 20년은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나, 문제는 혈마대전에서 입은 상처다.
정확히는 그 상처를 통해 혈마가 남긴 마기 때문이다.
혈마독이라 불리는 그것은 생각보다 지독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만약 장일이 활검을 깨우치지 못했다면, 그의 사형보다도 일찍 그가 죽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살아남았던 구존이 칠존이 된 것은 그들이 이 혈마독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장일은 활검을 얻어 40년을 넘게 더 살았으니 이만하면 만족한 삶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구나. 넘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려 했기 때문일까?”
죽음의 순간이 급격히 다가오는 것을 느낀 장일은 서둘러 움직였다.
지금으로서는 문파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으니, 가까운 동굴에 그 마지막을 보낼 생각이다.
다행히 괜찮은 동굴 하나를 발견한 장일은 오면서 주운 돌 몇 개와 나뭇가지를 입구 쪽에 툭툭 내려놓았다.
-스스슥.
혈마대전 때 연을 맺은 만통존자에게 배운 주술이었다.
과연 급히 펼쳤음에도 주술 자체가 신묘한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운무가 일더니 동굴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장일은 자신의 검과 이십사수검법이 담긴 검법서, 그리고 약왕가의 소환단과 같은 영약 네 알 등을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부좌를 틀고 마지막 운기행공을 행했다.
그의 숨이 점차 길어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끊어지려는 듯하더니 이후 다시는 숨을 잇지 못하게 되었다.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그에게 시스템이 모습을 보였다.
“?!!!”
추수가 끝이 난 지 얼마 되지 쌀쌀해진 날씨에 겨울 준비를 시작하던 장일은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했다.
과거의 장일이 죽은 뒤에 이어진 그 괴상한 형태에 쓰인 글 때문이었다.
“음!”
그렇게 놀라 눈을 떴을 때, 놀랍게도 그 괴상한 그것은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그의 시야에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