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Blood Disciple RAW novel - Chapter 6
6화 제1장 인외(人外)(6)
밤의 뒷골목.
천위가 걸었다.
깜깜했다.
혼탁한 꿈에 시달린 천위는, 어둠의 품에서 안식을 찾으려 했다.
낮보다 밤이 좋았다. 언제나 그랬다.
햇빛은 너무 뜨거웠다.
양(陽)이 넘치는 여름 낮에는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무공을 익혔으면서도 해를 많이 보지 않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피부가 투명했다. 자세히 보면 혈관이 보일 정도였다.
입술은 붉었다. 얼굴이 하얘서 더 도드라져 보였다. 연지를 발랐다고 해도 믿겠다.
속눈썹이 길고 눈매가 유려했다.
눈동자엔 달빛처럼 그윽한 광채를 품고 있었다. 코가 높고 얼굴이 작았다. 귀족적인 외모를 지녔다.
때는 축시였다.
별빛들이 그를 반겼다. 새파란 하늘은 왠지 허전했다. 별들은 편견 없는 군중 같았다. 그가 무엇이라도 개의치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적 없는 밤거리는 그래서 더욱 아늑했다.
적막을 깨고, 먼 곳 밤새들과 발밑 풀벌레들이 말을 걸었다. 완전한 고요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았다.
정처 없는 것처럼 발을 옮겨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담벼락이 낮아졌다. 도시 외곽엔 버려진 집들이 많았다. 거리에도 집에도 사람이 없는 동네였다.
“이게 전부?”
“그렇소.”
“이 정도로는 부족한데.”
어둠 깊은 곳, 아무도 오지 않을 음산한 장원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위는 천천히 접근했다. 발밑에서는 미세한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상주 전력의 인원수와 유동 전력 순찰도까지 가져왔소. 평소 장주의 동선은 여기 있고, 주요 무인들의 분포는 이렇게 되오.”
“통천도 무공 구결은?”
“그건 말씀이 없으셨지 않았소?”
“그게 가장 중요한데.”
“무엇보다, 내가 그걸 어찌 빼 올 수 있단 말이오?”
“방법이야 알아서 찾으면 될 일이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불가능하다면 할 수 없지.”
스르릉.
금속이 서늘하게 마찰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집에 검을 뽑을 때 나는 소리였다.
가시거리에 다다른 천위는 두 사람을 보았다. 한 남자는 검은 문사복에 장신구처럼 생긴 짧은 패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체격이 좋았으나, 정작 칼을 뽑지도 못했다. 사태파악이 아직 안 된 모양이었다. 당황한 얼굴로 물러나며 왼손으로 도갑을 잡고, 오른손으로 칼자루만 쥐고 있었다.
“검은 왜 뽑은 게요?”
“왜 뽑았겠나?”
“아니, 세상에 이런 법도가 어디 있소?”
“배신자가 법도를 입에 담다니.”
“누가 배신자란 말이오!”
“여기 자네 말고 누가 또 있어?”
“애초에 당신네들이 협박을 하여……!”
“충성심이 깊었으면 버텼어야지. 협박이 대수일까.”
“힘없는 가족들이 볼모로 잡혔는데 내가 무슨 수로 버틸 수 있겠소!”
“자네 가족들은 진즉에 풀려났네.”
“뭐요?”
그때서야 깨달았다.
차앙!
남자가 칼을 뽑았다. 두터운 대감도였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으로!”
“자네가 일만 잘해 왔으면 이럴 필요가 없었겠지. 너무 억울하게 생각 말게. 그래도 가족들은 무사하지 않나? 그저 자네가 가족 대신 죽는 것뿐일세.”
패검 끝에서 달빛이 부서졌다.
검날은 짧고 얇았지만, 충분히 날카로웠다.
더 이상은 문답이 무용하다.
대감도가 먼저 휘둘러졌다.
후우웅!
바람 가르는 소리가 사납다.
흑의 문사가 가볍게 패검을 뻗었다.
따앙!
훨씬 더 큰 대감도가 일검에 튕겨 나갔다. 앞이 비었다.
피슛!
대감도 남자가 대경하여 몸을 뺐다.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남자의 가슴팍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얕았나?”
문사복 남자의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대감도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큰 문파의 일원이었다. 적어도 이 산서 땅에서는 무시받고 산 적이 없었다. 이를 악물고 자세를 잡았다. 진각을 세게 밟고 다시 한번 대감도를 휘둘렀다.
쩌엉!
무거운 대감도가 가벼운 패검에 가로막혔다.
힘으로 밀쳐내려 해도 패검이 버텨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공력의 차이다.
대감도 남자는 패배를 직감했고, 직감은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치이이잉!
문사복 남자가 손목을 틀었다. 날과 날이 비껴나 미끄러진다. 칼날과 검날 사이에서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힘을 쓰던 대감도 남자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했다.
문사복의 남자는 움직임이 빠르고 정교했다. 자세가 무너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촤악!
패검 검날이 이두근을 베어냈다.
“크윽!”
대감도는 무거웠다. 다친 근육으로 쉽게 다룰 중량이 아니었다. 급히 잡아당기던 칼끝이 크게 흔들렸다.
푸욱!
그걸로 끝이다.
뾰족한 패검이 대감도 남자의 목 밑에 박혔다.
피슈슛!
문사복 남자가 검을 뽑으며 피가 튈세라 큰 걸음으로 물러났다.
“크윽, 끄르륵.”
쇄골 사이 움푹 파인 곳이 뻥 뚫렸다.
구멍에서 피가 솟구쳤다. 입에서도 선혈이 험악하게 흘러나왔다.
“아프겠군. 고통 없이 죽이려 했건만.”
대감도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미 기도까지 피가 다 차버렸다. 숨이 막혀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래졌다.
꾸웅!
체격이 좋은 만큼 쓰러지는 소리도 묵직했다.
문사복 남자는 죽은 자를 오래 내려다보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고, 어둠을 향해 물었다.
“구경은 잘 했나?”
들켰다.
문사복이 땅을 박찼다.
신법이 기민했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천위가 황급히 달빛 아래 공터로 몸을 날렸다.
문사복은 이미 등 뒤다.
패검이 바람을 뚫었다.
쐐액!
위험했다.
신법만 빠른 게 아니었다. 검 끝도 충분히 빨랐다.
천위가 몸을 틀었다.
스가각!
검 끝이 어깨를 훑었다. 피가 튀었다. 뼈까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통증이 뒤늦게 밀려들었다.
쉬익!
문사복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파공음이 더 얇아졌다.
찌르기다.
천위가 다급히 물러났다.
같은 곳을 노려온다.
대감도 남자를 죽인 것처럼 목젖 밑으로 검 끝이 들어왔다.
핏!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완전하지 않았다. 천위의 목덜미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곧바로 피가 흘렀다.
“잘도 피하는군.”
문사복의 말투는 칭찬과 조롱 사이의 중간쯤에 있었다.
그가 다시 달려들었다.
쇄애애액!
문사복의 패검은 사나웠다.
천위는 반격하지 못했다.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데, 일보, 일보가 위태로웠다.
촤아악!
다시 한번 옷깃이 찢어지고 살갗이 갈라졌다. 이번엔 깊다. 흩뿌려지는 붉은 피가 깜깜한 밤에도 선연했다.
쉬익! 스각!
속절없다.
무공 격차가 너무 뚜렸했다.
문사복은 천위보다 빨랐고, 강했다.
천위는 저항하지 못했다. 뒤로 물러나며 치명상만을 겨우겨우 면할 뿐이었다. 뚫리고 베인 상처가 계속 늘어갔다.
후두둑!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급소에 검이 박히는 것은 면했지만, 상처가 너무 많았다. 검상이 열 개가 넘는다. 천위에겐 몸을 빼서 지혈할 여유도 없었다. 출혈만으로도 이미 위험하다. 그대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텅! 쉬이익!
그럼에도 천위는 잘 피했다.
패검 검날이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움직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다. 다리에도 검상을 입었지만, 느려지지 않았다.
쉬쉭! 파라라락.
또다.
확실히 생명선을 잡았는데, 벗어났다.
마침내, 문사복은 느꼈다.
이상하다는 것을.
저만큼 검상을 입고, 이만큼 버티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사복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진즉에 죽었어야 하지만 죽지 않는 상대는, 피를 쏟으면서도 목과 심장만큼은 확실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무섭게 거리를 좁히며 공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사람의 숨을 끊는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목을 따거나 심장을 찌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몸과 몸이 붙을만큼 가까워졌다.
이번엔 상대도 반응하지 못했다.
거리를 삭제하고 중하단을 노린다. 검 끝이 천위의 복부를 파고 들었다.
푸욱!
확실히 들어갔다. 우측 옆구리부터 근육을 뚫고 들어가 내장과 혈관을 찢었다. 손맛이 분명했다. 창백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도 확인했다.
이건 치명상이다.
문사복은 확신했다.
그러나 천위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말했다.
“다 봤다. 빠르지만 섬세하지 못하더군.”
“뭐라고?”
툭.
천위의 왼손이 문사복의 팔꿈치에 닿았다.
그저 가볍게 건드렸을 뿐이다.
문사복의 팔이 기이한 각도로 뒤틀렸다. 손아귀가 활짝 펼쳐져 검자루를 놓쳤다.
“엇!?”
문사복은 방심했고, 당황했다.
몸이 이만큼 붙은 것부터가 실수였다.
천위는 문사복보다 느리다. 게다가 맨손이다. 보법 투로로 거리를 두고 검의 간격으로 계속 공격했으면 천위에겐 영영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빡!
천위의 오른발이 문사복의 왼쪽 발목을 휩쓸었다. 문사복의 몸이 휘청, 땅으로 기울어졌다. 공력 차이와 신체 능력, 모든 것을 무시하는 일격이었다.
꿍!
무릎을 꿇고 넘어진다.
둘 다 별것 아닌 일격이었지만, 문사복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런 공격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만큼 피를 흘리고, 옆구리가 뚫려 내장까지 찢겼으면, 꿈쩍 못하는 것은 문사복이 아니라 천위여야 했다.
“어떻게… 조문을……?”
“다 봤다니까.”
마비가 오래가지 않을 것을 안다.
문사복은 방심했지만, 천위는 아니었다.
곧바로 패검 검 자루를 쥐고 빠르게 뽑아 들었다.
촤아아악.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건 정말 깊이 들어왔다. 등쪽에 붙어 있는 신장까지 박혔다. 큰 혈관도 몇 개나 파열되었다.
등허리 전체가 저릿저릿했다.
검날을 뽑은 구멍으로 피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
보통 인간이라면, 일 다경이면 심장이 멈출 거다. 일 다경도 길다. 반 다경 안에 사경을 헤맬 것이다.
보통이라면.
인간이라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부, 불가능……!”
문사복은 말까지 더듬었다.
가능하지 않음은, 한 가지가 아니다.
검상을 그렇게 입고도 멀쩡히 움직이는 것.
상대가 되지 않았으면서 조문을 봤다는 것.
저만큼 피를 쏟고도 눈 뜨고 서 있다는 것.
문사복이 무슨 생각을 하든, 천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가와 그대로 패검을 내리찍었다.
푹.
패검이 문사복의 목에 박혔다.
문사복이 대감도를 죽일 때 찔렀던 곳과 같은 위치였다.
“끄르르륵.”
목숨을 잃을 때까지 문사복의 두 눈엔 경악만 가득했다. 피가 흘러나와 땅을 적셨다. 천위가 얼굴을 찌푸리며 옷 앞섬으로 코를 막았다.
그가 생명이 사라져가는 문사복 앞에 주저 앉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처럼, 미간을 있는 대로 좁히며 문사복의 가슴팍을 뒤졌다. 대감도 남자로부터 받은 서간이 손가락에 걸렸다.
천위가 재빨리 서간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피 냄새가 사위에 가득했다.
그가 흘린 피는 괜찮았다. 대감도와 문사복이 문제였다.
천위는 지체없이 뒤로 물러났다.
시간이 촉박했다. 여기 있기도 싫었다.
다행히도 몇 놈이 근처에 대기 중이다. 시체 처리는 그들에게 맡기면 된다.
천위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피를 그만큼 흘리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달빛 그림자가 어둠에 섞여든다.
밤이 반갑게 그를 집어삼켰다.
천위는, 그렇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