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regressed RAW novel - Chapter 49
나는 회귀했다 49
민정수석은 이휘의 대답을 듣고 감동했는지 약간 떨리는 어조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무기는 뒤탈 없는 물건으로. 국정원에 있는 모든 정보를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이휘는 전화를 끊었다. 머리끝까지 돌던 피가 심장어림에서 용솟음치며 들끓는 느낌이 들었다.
“알렉세이.”
부름을 들은 알렉세이가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이휘가 말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올 거야. 너희는 그쪽을 호위해.”
알렉세이의 눈이 커졌다.
“그쪽을 노릴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맞아. 우리 일을 방해하려 들 거야. 날 찾아오는 게 아니라 애꿎은 대선물산을 뒤흔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미친놈이 아닌 이상….”
“미친놈이야.”
“….”
알렉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하지만 PMC 용병들만으론 힘들 거야. 그들은 지키는 것에 특화된 자들이다. 심지어 실전경험도 현저히 부족해. 그들을 데리고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들은 백업멤버야.”
“그럼…?”
“바로 헤드를 친다.”
“유리를?”
“그래.”
이휘는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유리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자야. 모든 인맥은 비즈니스로 연결되어 있지. 그래서 더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자신이 무너졌을 때, 주위 사람 누구에게도 의리를 기대할 수 없을 거다.”
“한 가지는 알고 가라. 유리는 치밀하다. 결코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아.”
“잃을 게 많은 놈이니까. 하지만 놈의 가장 큰 패착은 나에 대해 모른다는 거야. 내가 어디까지 선을 넘을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런 치밀한 자일수록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지.”
“내가 너에 대해 보고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거냐?”
“그랬으면 유리가 일을 이렇게 어렵게 풀었겠어? 널 시켜서 날 제거하려 들었겠지.”
“음, 내가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고.”
“넌 유리를 두려워하잖아.”
“두렵진 않아.”
알렉세이가 정색했지만 이휘는 무시하고 덧붙였다.
“놈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면 너와 네 가족을 위해서라도 날 선택하지 않았을 거야. 너도 알란도. 놈이 얼마나 치밀하고 잔혹한지 알고 있으니까. 아닌가?”
“….”
“아직 유리 다예프는 너희가 배신한 걸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배신을 가정하고 작전을 짰을 뿐이야. 너희와 너희 가족들을 위해 이번 작전에서 뺀 거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
알렉세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 감동한 모양이다.
피식 웃은 이휘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다.
전생에 가족을 두고 작전을 나갈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하다.
지금 죽으면 잃는 것은 돈뿐이겠지만 전생에 자신이 죽으면 아내와 아이는 단 둘이 남게 됐을 것이다. 이휘에게는 그게 훨씬 더 두려운 일이었다.
꽈악.
주먹을 말아 쥔 이휘는 당장에라도 날뛰려는 심장을 잠재웠다. 어느 때보다 이성을 배제한 채 차갑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의 자신은 전생의 자신이 아니었다. 그 시절의 감각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음을 부인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번 일은 충분히 지금껏 이룬 모든 것을 걸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승부사 기질 때문이 아니다.
다 잃을 것을 각오한 것은 이번 일이 성공리에 끝났을 때 모든 걸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관계.
대선물산의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감사.
이 모든 걸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도박이다. 전생의 자신은 이러한 대가도 없이 오직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감, 군인으로서의 의무감만으로 사선을 달리지 않았던가?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어마어마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국을 위해 뭔가를 했을 때 곧바로 얻을 수 있는 영예가 말이다.
***
“러시아인 셋은 남겨둘 거야.”
러시아로 향한다는 이휘의 말을 들은 방준수는 눈을 치켜떴다.
“설마 너….”
“그래.”
“그러다 진짜 죽을지도 몰라. 지난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몇 번이나 위험했잖아.”
이휘는 쓰게 웃었다. 방준수는 이런 싸움이 익숙지 않다. 반면에 자신은 이런 싸움이 너무나 익숙했다. 어쩌면 지금 자신이 이런 위험한 싸움을 마다치 않으며 목적을 세운 것도 전생에 그렇게 키워졌고, 그렇게 세뇌 받은 영향인지도 모른다.
전생에선 자신이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인맥과 자본을 품게 됐고, 손도 댈 수 없었던 조국의 미래를 바꿀 힘을 손에 넣었으니까.
이미 미래를 바꿨다는 것에서 얻은 자신감이 있고, 통상적인 방법만으론 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전생의 경험이 대담성이 되었다.
한 번 살아본 인생에 대해 미련이 없고, 책임질 가족 역시 없다는 것도 그가 대의를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이유였다. 한 번 살아봤거나, 꿈꿔본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마치 지나간 연애과정을 반복하는 것만큼 두렵고 막막한 일이었으니까.
이휘는 이런 생각을 간결하게 둘러댔다.
“이미 저쪽이 선을 넘은 이상 한 걸음 물러서는 쪽이 죽는 싸움이 된 거야.”
방준수가 그답지 않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대담한 놈이라도 아직 십대 소년이다. 이런 녀석이 어떻게 그 거친 사채시장에서 큰 손이 됐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마 전생에선 매 순간 꽤나 두려웠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거나 화려하던 것들은 가까이서 보면 꼭 이런 평범함을 간직하고 있다.
방준수도 마찬가지였다.
이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사업은 예정된 대로 진행돼야 해. 내가 돌아올 때까지 미국에서 오는 창업주들을 잡아둬. 형만 믿을게. 할 수 있지?”
“넌… 철인이냐.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냐.”
중얼거린 방준수가 전혀 무섭지 않은 표정으로 노려보며 덧붙였다.
“너 죽으면 내가 다 꿀꺽한다. 잊지 마.”
이휘가 피식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팁 좀 주자면 꿀꺽하기 전에 내가 죽었는지 확인은 꼭 해야 될 거야. 나중에라도 내가 알면 형을 가만 두지 않을 거니까.”
“말을 해도 꼭 무섭게 말해요. 야, 걱정하는 사람보고 할 소리야?”
“아니, 남편 죽으면 보험금 타가려는 꽃뱀 같은 표정이라서.”
“…에휴, 됐다.”
방준수는 몸을 돌리더니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캐리어를 마저 다 싼 이휘는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이제 대선물산 사무실로 가야한다. 아마 전직 PMC 용병, 그중에도 제법 노련한 전투원이었을 정대선이 정예멤버를 뽑아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알렉세이는 운전하는 내내 말이 없다가 대선물산 사무실 앞에서 이휘를 내려준 뒤 짤막하게 말했다.
“조심해라.”
이휘가 멈칫했다.
“왜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지? 꼭 사망플레그 뜬 느낌인데.”
“….”
“걱정 마. 미국 애들 경호 잘하고.”
“만약의 만약까지 대비하지.”
“알란 말 잘 들어.”
“알란?”
“그래. 걔가 너보다 똑똑하거든.”
“크흠.”
알렉세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피식 웃은 이휘는 대선물산 사무실로 들어갔다. 처음 봤을 때보다 10평은 널찍해진 사무실에는 정대선 외에도 일곱 명의 특수부대 출신 전직 PMC 용병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발치에는 저마다 꽉꽉 찬 캐리어가 있었다.
이휘가 그들을 훑는 사이 정대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선이 닿는 한 최고의 실력을 가진 레전드들이야.”
뭐, 전장에서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실력이야 그때그때 다르지만 적응력 뛰어나고, 임기응변 확실하고, 생존률 높은 것만은 확실한 이들이다.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크라이나로 가서 구출작전을 할 거에요.”
그가 알기로 유리 다예프가 우크라이나에 심어둔 자들은 많지 않다. 실력도 별로고 충성심도 그리 깊지 않다. 돈을 주니 명령을 따르지만 어디 숨었는지만 안다면 그리 힘든 상대가 아닐 것이다.
“주소는 문자로 보냈습니다. 확인하세요.”
다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문자를 확인했다.
그때 정대선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우리만 보낼 것처럼 얘기하지?”
역시 날카롭다.
“저는 러시아로 갈 거에요.”
“러시아?”
“혼자 움직이는 편이 눈에 안 띕니다. 문자에 적힌 주소로 가서 인질 구출해주세요. 유리 다예프의 안가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니지.”
정대선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만 하자. 너무 위험하다.”
“유리 다예프는 구 소련권 나라들에 안가를 두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달아날 수 있게끔… 하지만 러시아와 사이가 안 좋은 우크라이나 안가에는 병력이 많지 않아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얘기가 아니잖아?”
“저도 마찬가지에요.”
“뭐가?”
“그자는 치밀한 자에요. 가장 가까운 부하도 못 믿습니다. 지금 같이 큰 일을 저질렀을 땐 혼자 숨죠. 우리가 절대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할 테니까.”
분명하다.
오죽하면 전자기기도 다 떼어놓고 위성으로도 찾을 수 없는 지역으로 숨는다.
숨어서 지켜보는 거다.
상대가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그래도 러시아에 어마어마한 정보망을 가진 유리 다예프를 제거하기 위해 혼자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긴 매한가지겠지만 그건 이휘를 몰랐을 때 얘기다.
이휘는 유리 다예프의 머릿속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들여다보고 있으며 그의 정보망까지 세세히 알고 있다. 아마 최고의 정보력을 가졌다는 CIA도 이휘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터였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던 정대선이 물었다.
“제거할 생각이군.”
“네.”
이휘는 부정하지 않았다.
정대선이 물었다.
“후환은?”
“없을 거에요. 그가 죽은지도 모를 겁니다. 실종됐다고 여기겠죠. 우리한테서 완벽히 숨는다는 건 자기 부하, 친구들도 어디 숨었는지 모르게끔 종적을 감춘다는 뜻이니까.”
“그 정보를 어디서 구했는지 그런 건 다녀와서 얘기하기로 하고… 자신 있는 거냐?”
“네.”
“꼭 죽여야 하는 거고.”
“그자는 우리 직원들의 목숨을 저당 잡았습니다. 앞으로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자에요. 이런 자를 살려두면 그게 바로 후환이 됩니다.”
“넌….”
정대선은 말을 멈췄다. 처음 아들이 후배 녀석이라고 데려왔을 때부터 이상한 놈이었다. 이상해도 그냥 이상한 게 아니라, 가면 갈수록 괴물처럼 보이던 녀석이다. 그런데 지금은 괴물이 아니라 살인기계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이 순간 세계 7대 불가사의보다 이휘에 대해서 더 궁금했다.
아마 이휘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삼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때론 현실이 소설보다 더 믿기 어려운 법.
인생 짬밥으로, 혹은 전쟁터에서 그 같은 기적과 비극을 겪어봤던 정대선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PMC 용병들의 눈매가 일그러지거나 커졌다.
미쳤냐는 눈치다.
그러나 해명은 정대선의 몫이지, 이휘의 몫이 아니었다. 이미 이들 역시 이휘가 얼마 전 했던 기자회견으로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여기진 않을 터.
이휘는 짧게 말했다.
“살아남으세요.”
“약속하지. 너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다.”
정 위험하면 도망치란 뜻이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전우애가 흘렀다.
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위험해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겁니다. 한국에 오면 정부에서 보호해주든 뭐든 해주겠죠.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
이휘는 그가 질문이 많지 않은 게 너무 편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공항까진 같이 가야하니까. 침묵이 흐르고. 정대선은 할 말 다한 이휘가 왜 안 가나 쳐다보는데, 이휘가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출국 시간 비슷하니까 저 공항까지 좀 바라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