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8
008 비혼주의는 결혼으로 완성된다
“애들아, 나 결혼한다.”
짝-!
돌연 태식이가 옆에 있던 진구의 뺨을 때렸다. 평소라면 노발대발하며 핏대를 세웠어야 할 진구가 제 뺨을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와···. 꿈이 아니네?”
“이게 실화라고?”
“미친.”
저마다 못 믿겠다는 듯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 하기야 입장 바꿔보면, 나도 못 믿을 것 같긴 하다.
지금껏 결혼은커녕, 여자친구에 대해서도 말을 꺼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몇 단계나 훌쩍 건너뛰었으니까.
“어떻게 된 거냐? 일단 설명이나 좀 듣자.”
철수가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삼수를 해서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이런 역할을 자주 맡는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세월이 흘러도 이 자식들은 변한 게 없구나 싶어서.
“말 그대로야. 결혼하기로 했어.”
“네가? 언제? 누구랑? 어떻게?”
“하나씩 물어라. 하나씩.”
“네가?”
“······.”
말없이 진구를 노려보자, 녀석이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가벼워졌다.
“뭐, 그렇게 됐다. 결혼식 예정은 아직 안 잡혔고, 상대는 다음에 소개해줄게.”
“예쁘냐?”
“예쁘다.”
“사진은?”
나는 휴대폰에 사진 한 장을 띄웠다. 강바다와 내가 카페에서 함께 찍은 셀카,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줄 용도로 준비한 설정 샷이다.
그를 본 친구들의 눈이 더 없이 커졌다. 그들은 내 얼굴과 휴대폰의 사진을 번갈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일제히 고개를 내저었다.
“범죄자 새끼.”
“뭐?”
“대학도 옛날에 졸업한 놈이 감히 파릇파릇한 신입생을 꼬셔!?”
“저쪽이 연상이야. 두 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떻게 누님을···.”
“야이, 미친놈아.”
키킥-
내 반응에 친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와중에도 녀석들은 강바다의 사진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내놔.”
괜히 부끄러워진 나는 얼른 휴대폰을 뺏어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도 녀석들의 시선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었다.
“야, 하늘아.”
“왜.”
“다음에 떡상할 코인은 뭐라고 생각하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난 죽어도 코인은 안 하는 거 알면서.”
“코인으로 대박 친 거 아니야?”
“그게 뭔···.”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거 전부 명품이잖아. 그리고 이 여자···. 아니, 제수씨도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진구가 눈을 빛냈다.
이 녀석은 평소에는 바보 같은데, 이상한 곳에서 감이 날카롭다. 여러모로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다.
‘가짜 결혼이라는 걸 들킬 수는 없지.’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건 녀석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내막을 알고서도 내 편을 들어줄 거라는 믿음은 있으나, 그 이상은 위험하다.
딱 지금처럼.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이상을 느낄 정도면 충분하다. 여차하면 내 가족 정도는 챙겨줄 의리 깊은 놈들이기도 하고.
“여자친구가 사준 거야.”
“······?”
“내 여자친구가 돈이 좀 많거든.”
“얼마나?”
“음···.”
나는 섣부르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강바다는 얼마나 돈이 많을까. 그녀의 부를 계산할 때 가문의 돈까지 포함해야 하나?
‘아무래도 그건 빼야겠지?’
물려받을 것도 아니니까.
근데 막상 뺀다고 생각해도, 그녀의 정확한 재산이 얼마인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가늠이 안 된다.
최근 행적을 보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기는 한데. 어쨌거나 직접적으로 물어볼 만한 질문은 아니니까.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대충이라도. 어느 정도 감은 올 거 아니야.”
“저기 창밖에 건물들 보여?”
“뭐, 문화의 거리?”
“응.”
내가 가리킨 창문 너머는 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상가였다. 비록 서울은 아니라지만, 수도권임은 틀림없는 곳.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살 수 있을 정도?”
그 정도는 되겠지.
하루 쇼핑으로 억 단위를 쓸 수 있는 사람인데. 내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주식만 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덜그럭-!
철수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트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손까지 벌벌 떠는 모습.
“왜?”
“뭐가.”
“그런 여자가 왜 너를 만나?”
“내가 끝내주게 멋있나 보지.”
“설득력이···. 있군.”
“응?”
당연히 지랄하지 말라는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 이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니들 갑자기 왜 그러냐?”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 하늘이는 학창 시절에도 인기 많았잖아?”
“확실히 여자들의 본능은 다른가 봐. 그때는 그냥 평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꾸며놓으니까 잘생긴 게 확 드러나네.”
“음, 남자로서의 상징도 상당하니까. 처음 목욕탕을 갔을 때는 나도 당황···.”
“제발 닥쳐!”
진지한 얼굴로 헛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니 이놈들 완전히 취했다. 흥미로운 주제라 그런지, 은근히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허나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이 완전히 달아오른 녀석들은 흑역사까지 꺼내 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백장미도 저 중의 절반은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하늘이 좋다고 따라다녔잖아.”
“여기서 그년 이야기가 왜 나와?”
“야, 까놓고 말해서 걔가 뭐가 모자르냐. 얼굴도 예쁘지, 집에 돈도 많지, 공부도 잘하지. 엉?”
“성격이 이상하잖아.”
“···그래, 사실 우리도 좀 무섭긴 했어.”
백장미는 대학교 신입생 때 총학생회를 맡았던 여자다. 그쪽은 아예 대놓고 ‘내가 주인공이요’라고 떠들어대던 사람이고.
외모, 재력,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까지 모두 갖춘 사람이다 보니. 학교 전체에서도 유명인이었으며, 자연스레 평판도 좋았다.
‘그 덕분에 고생했지.’
학창시절에 왕따를 당한 나로서는 대학교에서라도 좀 잘해보자 싶었는데. 그년의 정치질 때문에 완전히 말아먹었다.
나를 쫓아다녔던 이유도 ‘네까짓 게 감히 나를 안 좋아해?’ 같은 이유였겠지. 지금 생각해도 진절머리가 난다.
“니들 아니었으면 대학교도 자퇴했을 거다.”
“그럼그럼. 넌 우리한테 평생 감사해야지.”
“그러니까 괜찮은 정보 좀 알려줘 봐. 형수님께서 너한테만 살짝 귀띔해주신 거 없냐?”
그렇게 말하며 귀를 쫑긋 세우는 진구. 어느샌가 제수씨에서 형수님으로 격상된 강바다였다. 그 모습이 참 재밌었으나.
“인마, 그거 불법이야.”
나는 진구의 말을 일축했다.
공기업이 사내 정보로 불법 땅투기 하고, 검찰이랑 대놓고 손 잡아서 무마시키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불법이 뭐 대수겠냐만.
난 강바다에게 그런 걸 물어본 적도, 물어볼 생각도 없다. 따라서 친구들에게 알려줄 만한 고급 정보도 당연히 모른다.
‘내 선에서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만.’
강바다의 위세를 빌리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또 내가 막상 그렇게 해주려고 해도 이놈들이 먼저 거절할 게 뻔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돈이 얽히면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다는 걸 모를 녀석들이 아니니까.
“아쉽구만, 제수씨 덕 좀 보나 싶었는데.”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라고 카드를 주긴 했다.”
“역시 우리 형수님이 최고라니까!? 안 그러냐, 너희들! 빨리 잔 들어!”
진구가 단숨에 분위기를 띄우며 잔을 들어 올렸다. 역시 알기 쉬운 놈이라니까.
우리는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로 군대나 학창시절 추억을 곱씹거나, 최근에 첫째를 가진 철수에 대해서였다.
“어때, 많이 힘드냐?”
“와이프가 힘들지. 와중에 일도 계속하고 있으니까. 난 집안일 정도만 한다.”
“새끼, 지금이 천국인 줄 알아라.”
“어련하시겠냐.”
철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진구는 학생 때 후배랑 사고 쳐서 곧바로 결혼에 골인했다. 다들 말렸지만, 책임감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라. 벌써 아들이 다섯 살이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냐? 아들이 ‘아빠, 가지마~’ 이러는데. 눈물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퍽이나 그랬겠다. 저번에 네 아들내미가 안 놀아준다고, 술 마시고 펑펑 울던 게 누구더라?”
“···마시자!”
그렇게 테이블 아래에는 빈 술병이 하나둘 늘어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나와 친구들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야아- 하늘아!”
“왜.”
“너 딸 낳으면 우리 애랑 결혼 좀 시켜주라.”
“그게 뭔 개소리야?”
“네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아들 여유가 좀 생길 거 아니야. 솔직히 우리 애만이라도 좀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
진구는 결혼 후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학교를 자퇴했다. 급하게 들어간 직장의 수준이 좋을 리가 없었고, 꽤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이 중에서 가장 열심히 살지만, 그럼에도 가장 빛을 못 보는 친구였기에. 그 말의 무게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진구 이 새끼. 취했네.”
“제정신이거든!?”
“지랄,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내 딸이 먼저다. 하늘아, 우리 와이프 얼굴 알지? 우리 딸도 분명 예쁠 거다. 아들 낳으면 나부터···.”
“그럼 셋째는 내 자식이랑···.”
저들끼리 떠들어대면서 첫째는 진구, 둘째는 철수, 셋째는 태식이의 자식과 결혼하기로 합의하는 친구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안 낳을 건데?”
“너 미쳤냐!?”
“왜! 대체 왜!? 넌 몰라도, 네 형수님 유전자는 대대손손 물려줘야 한다고!”
그야 가짜 결혼이니까.
물론 ‘강바다를 진짜 연인으로 만든다’라는 계획이 성공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애를 낳는 건 힘들지 않을까.
강바다의 생각을 들어본 적은 없으나, 애초에 편하게 살고 싶어서 가짜 결혼을 선택한 건데. 아이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있을 리가.
물론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화제를 살짝 비틀었다.
“아니, 보통 결혼하는 것부터 말리지 않냐? 근데 왜 애부터 낳으라고 니들이 성화야?”
“하늘아. 너 비혼주의였지?”
“그래, 그걸 아는 놈들이 이러기냐?”
“아니, 난 오히려 너 같은 사람일수록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혼주의는 결혼으로 완성되거든.”
“······?”
“결혼해보면 네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푸흡- 콜록콜록!
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직후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얌마! 결혼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데.”
“애가 생기니까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더라.”
“그럼, 당연하지.”
진구를 제외한 두 명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진구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야, 이 의리 없는 새끼들아! 너희 방금 내 말에 공감하고 웃었잖아!?”
“야, 저 새끼 입 막아!”
“죽으려면 혼자 죽어 미친놈아!”
푸하하하-
네 사람의 웃음소리가 술집을 가득 채웠다.
* * *
“···재밌게 놀고 있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침대 위에 드러누운 강바다는 계속 휴대폰을 힐끔거렸다.
김하늘이 친구들이랑 만나고 온다길래 카드도 내줬는데. 꽤 늦은 시간까지 연락도 없고, 결제 문자도 안 왔다.
“아가씨가 먼저 연락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옆에서 시중을 들어온 유모가 조심스레 조언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자그마한 미소가 맺혀있었는데. 강바다를 아주 오랫동안 지켜봤음에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귀여우셔라.’
집에 돌아오면 온종일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강바다. 넌지시 물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고개를 내젓지만,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너무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남자들은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가끔은 확실하게 티를 내줘야 해요.”
“하지만···.”
난 진짜 여자친구가 아닌걸.
강바다는 말을 삼키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리 바빠도 메시지 하나쯤은 해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비지니스 관계인데 뭘 기대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종국에는 별 것 아닌 일로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계약 사항에 넣어 놓을 걸 그랬어.’
한 시간에 한 번 연락하기.
그런 거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김하늘은 자신에 대한 마음이 정말 하나도 없는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우울···.
우웅-!
생각하는 와중에 진동이 울렸다.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강바다는 얼른 휴대폰을 확인했다.
: 바다 씨이~
: [친구들과 찍은 사진]
: 저 이제 칭구드ㄹ 보내고 짖 드러가요!
푸흡-
강바다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코올 냄새가 진득한 메시지를 보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우울한 기분이 싹 사라졌다.
특히 친구들과 찍은 사진은 잔뜩 흔들려서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었지만, 왜인지 환하게 웃고 있는 김하늘의 얼굴만큼은 눈에 쏙 들어왔다.
“연락 오셨나요?”
“응. 근데 아주 엉망진창이야.”
“그런가요?”
“완전. 술은 내 앞에서만 마시라고 해야겠어.”
이렇게 귀여운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면 안 되는데. 영원히 자신만 알고 싶다.
강바다는 다시금 사진을 확인했다. 직후 김하늘의 얼굴이 찍힌 부분만 확대해서 저장했다.
“귀여운 분이시네요.”
“그렇지?”
“네, 무척이나요.”
후훗-
유모의 말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강바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타자를 쳤다.
: 조심히 들어가요.
자신이 보낸 시크한 답장이 심히 만족스러운 강바다. 그녀는 그제야 휴대폰을 밀어두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유모도 얼른 자요.”
“네, 편히 주무십시오.”
소리 없이 물러나는 유모.
홀로 남은 고요한 방 안에서 강바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직도 3일이나 남았네.’
김하늘과 만나기로 약속한 주말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