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회군 그리고 결단 (1)
태건을 대신해 육진군의 지휘를 맡은 이하륜은 줄곧 종성의 행영이 아닌 경흥부에 머물렀다. 콜칸의 여산과 어지미 부락이 영토로 편입됨에 따라 부쩍 늘어난 동북방 영토 때문이다. 그로 인해 육진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경흥이 이제 중간 지점에 자리하게 된 셈이었다.
겨우내 이라대의 동량개 부락이나 노토 부락, 훈춘 부락 이북 지역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은 덕분에 이하륜은 내정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음력 2월이 되자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여진족 정황을 살피던 오도리 부족 등의 와르카 계열 번호 출신 정찰병들이 다소 심각한 정보를 계속 전해 오기 시작했다.
이하륜의 부장 역할을 하는 김무정 대대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이하륜에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저들이 하나로 연합한 듯합니다. 겨울 동안 서로 오가며 긴밀히 관계를 맺은 것 같지 않습니까?”
“내 생각도 그래요. 동북부의 여산군 어지미 부락 위쪽부터 시작해 서남쪽 끝 노토 부락까지 일관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죠. 수이푼, 남둘루, 니마차에 노토와 이라대까지 연합한 모양새이니. 게다가 와르카와 워지가 연합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와르카와 워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상식에 속한 일이었다.
“다들 우리를 위협 요인이라 판단했나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콜칸 전체가 우리에게 복속되어 아예 사라졌고, 남둘루도 세력의 사분지 일 정도를 잃은 셈이니까. 그러니 다들 다음은 자기 차례라 생각했겠죠. 노토와 이라대는 우리의 보복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을 테고.”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동북쪽 어지미 부락 쪽이야 귀부한 콜칸 세력과 우리 주둔군이 험한 산세에 의지하면 지켜 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또 우리 수군이 계속 보급을 맡아 주고 있으니, 먼 거리에 따른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테고.”
현재 수군은 어지미 부락과 조산보를 계속 오가며 어지미 주둔군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이하륜은 말을 하다 말고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안춘 부락은 바로 남둘루에게 다시 넘어가겠죠? 안춘 부락 출신 포로가 많지 않으니까.”
안춘군을 설치할 계획을 이미 세워 두었으나, 너무 멀어 여전히 안춘 부락에 주둔군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온성 부근으로 남둘루 주력군이 들어올 예정이니 거기도 위험하고. 그 세력의 수장이 민안도바얀이라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남둘루에서 아주 세력이 큰 자이죠.”
“그자가 허제평과 집지평, 회파동과 대동 일대에서 야인 장정을 선발 중이라고 했으니 지금쯤 병력이 꽤 늘었을 것 같은데.”
허제평과 집지평은 가야하 하류 지역에 있는 땅이고, 회파동과 대동은 온성 바로 북쪽의 두만강 건너편 지역으로, 모두 남둘루 인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다. 지난해 가을, 온성을 침범한 야인들이 바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자들이었다.
훈춘 부락의 번보코와 마찬가지로 남둘루 4대 추장 중 하나인 민안도바얀은 북쪽에서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두만강 유역까지 남하한 다음, 추가로 모병을 진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동량개 부락의 이라대가 니마차와 연합군을 결성 중이니, 저들은 종성을 노릴 테고. 노토는 당연히 회령이고.”
“그럼 모두 얼마나 많은 인원이 몰려올까요?”
“팔천을 훌쩍 넘을 것 같은데요? 아니, 만까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우리 군의 두 배를 넘어가는군요.”
김무정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현재 5천 병력이 남쪽으로 파견 나가 있어 육진에 남은 병력은 7천 5백 정도였다. 이들 중 각지에 흩어져 수비에 전념하고 있는 경흥부 소속 병력을 빼면 대략 4천으로, 이들만으로 온성과 종성, 회령, 무산진 등을 지켜 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야인 연합군에 비해 현저히 열세에 놓여있음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북병사 영감이 회군해야 할 것 같죠?”
“예.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이번 봄은 니탕개의 난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습니다.”
“음, 그 얘길 들으니 소름이 다 돋네요.”
약 10년 전, 무려 3만여 여진족 병력이 침략해 왔던 니탕개의 난은 조선 조정을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어쩌면 그 사건 때문에 지금 가용한 여진족 병력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하륜은 김무정의 의견에 일단 동의했지만, 꺼림칙한 부분이 있어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0년이나 지났으니 꽤 많이 회복했을 겁니다. 더구나 니마차와 남둘루 같은 심처 야인 집단까지 합세한 상황이라면… 어쩌면 일만이란 숫자조차 너무 안일한 가정일 수도 있겠네요. 어휴! 안 되겠다. 바로 실행에 옮깁시다.”
이하륜은 즉시 붓을 들어 태건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 *
외침의 기운이 짙어지자 무관들이 다시 바빠졌지만, 문관들은 태건의 지침에 따라 내정 관련 사업을 차근차근 진척시켜 나갔다.
교육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허균도 기관장 원대장 장봉수와 함께 학교 설립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었다.
방적기가 면사를 생산하기 시작한 사건은 경흥부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덕산동 공방촌은 이제 구경꾼들로 북적거렸고, 다들 증기기관과 하륜방적기를 화제로 삼았다.
방적기와 증기기관이 불러일으킨 충격은 묘하게도 교육열로 전이되었다. 저런 놀라운 기계 만드는 법을 배우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출세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 이유는 태건이 관리의 등용 문턱을 크게 낮춘 데다, 교육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글만 깨우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배우면 출세할 수 있다’는 단순 명료한 명제를 태건이 꾸준히 주민들에게 각인시켰고, 그 효과가 이렇게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교육 정책 담당자인 허균 역시 증기기관을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더욱 자기의 임무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럼 기계공장학교 입지로 조산만 공방촌 근처가 좋을까요?”
“그게 낫겠습니다. 제철공장학교와 병기공장학교도 그곳에 설립될 예정이니까요.”
허균의 질문에 장봉수는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공장학교는 곧 장인을 키워 내는 학교였다. 그러므로 학교에 다니면서 스승인 장인들의 일을 거들며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는, 다 자란 청소년 혹은 청년을 학생으로 뽑을 예정이었다.
조산만 공방촌 부근에 설립될 제철공장학교와 기계공장학교, 병기공장학교에 이어, 현재 덕산동 공방촌 내에서 요업학교 설립이 추진되고 있었다. 요업은 곧 도자기와 벽돌, 기와는 물론 유리까지 포함되는 기술이라, 그 입지로 덕산동 공방촌이 제격이었다.
이들 이외에도 팔지령 부근에 조선공장학교를, 훈춘 국사당동에 광무학교를 설립해 각기 조선장과 광산 전문가를 키워 낼 예정이었다.
태건은 공장학교를 미래의 공업고등학교 정도로 생각했다. 물론 이들 학교가 대학교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었다.
“정원은 어떻게 할까요?”
“오십 명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우리 기계장 수가 겨우 열 명이라.”
기계장은 이번에 이하륜 및 홍은과 함께 작업하면서 탄생한 직업군이다 보니, 장봉수가 말한 열 명이 전부였다.
“그게 좋겠네요. 문제는 다른 과목을 가르칠 교관인데.”
공장학교에서는 전문기술 이외에 조선어와 수학, 과학, 사회 등 초등교육과정도 같이 가르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현재 장인들도 경흥사범학교를 다니며 틈틈이 이들 교과를 이수하고 있었다.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예. 솔직히… 없어요. 있더라도 이제 아이들 교육에 먼저 투입되어야 할 형편이라. 서당이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부모들 조바심이 못 말릴 수준입니다.”
육진과 강외 지역에도 서당 훈장 정도의 학식이 있는 자들이 몇몇 있다 보니, 부모들은 어린 자식을 서당에 보내려 했다. 그러나 서당 교육은 태건의 방침상, 아이들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 우리 장인들이 직접 가르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도 요즘 공부에 맛을 들였으니까요. 다들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더이다. 나도 마찬가지요. 더구나 공부해야 우리 장인도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요. 허허!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허균은 현재 사범학교에서 가르치는 과정이 기초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곧바로 장봉수의 제안에 동의했다.
* * *
함경도 영흥부의 용흥강 북쪽 건너편에 자리한 장흥사 지역.
가토 기요마사 군을 기세 좋게 추격하던 조선군은 용흥강이 나타나자 비로소 움직임을 멈췄다.
“쳇! 좋다 말았군. 놈들이 강에 의지해 진을 칠 줄이야.”
함경도 관찰사 윤영은 조선군이 진군을 멈추고 진지를 구축하는 모습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간 함흥과 정평을 차례로 거침없이 탈환해 오며 느꼈던, 그 신났던 행보가 이제 돌부리에 걸려 멈추게 된 것이다.
“이제 병사들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잠시 전열을 정비한 다음, 강 건너 적을 상대할 계책을 짜 봐야지요. 날도 조금 풀렸으니, 조금만 쉬면 금방 회복될 거요.”
마치 전장을 오래 누비고 다닌 노장처럼 행동하는 윤영이 같잖게 느껴지자, 원희가 살짝 쏘아붙였다. 그간 윤영은 병사의 사기와 보급품을 챙길 여유조차 주지 않고 과도하게 서둘렀다. 그로 인해 장수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른 상황이었다.
“적들이 곧 저절로 물러날 겁니다. 그러니 쉬면서 조금 기다리시죠.”
태건이 점잖게 타이르듯 말하자, 윤영의 눈이 반짝하고 빛을 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
“그렇습니다.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했고, 소서행장 군은 계속 패주 중이니 가등청정 또한 일단 남쪽으로 군을 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북병사의 말이 참으로 타당합니다. 소서행장 군이 한양 쪽으로 계속 밀려 내려가고 있다고 하니, 가등도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남쪽으로 군을 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방향이지요. 한양 쪽이 될지, 아니면 강원도 관동 지방 해안을 따라 남하할지.”
“그러면 정말 좋겠군.”
“대감! 왜군 진영이 비어 있답니다. 정찰병이 방금 돌아왔습니다.”
밖에서 병사들을 지휘해 진지 구축에 힘쓰던 병마우후 정현룡이 군막 안으로 들어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깜짝 놀란 윤영이 대답을 재촉하자, 정현룡은 정찰병을 지휘부 막사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본 대로 고하라!”
“예. 가서 자세히 보니, 온통 허수아비와 깃발만 읍성 여장에 잔뜩 세워져 있었습니다. 남문도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 읍성 주민에게 물어보니, 왜군은 한참 전에 떠났답니다.”
“왜적의 뒤를 쫓는 자들이 있나?”
“예. 지금 동료들이 한창 쫓고 있습니다. 곧 돌아와 적군의 위치를 고할 겁니다.”
보고를 마친 정찰병이 군막을 나가자, 원희가 태건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오?”
“일단 안변까지 물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다음에 상황 봐서 갈 곳을 정하겠죠.”
“그렇겠지. 후군도 안변에 있다고 하니.”
안변 이야기가 나오자 윤영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왕자들도 거기 있지 않나?”
함경도 방면군 수뇌부는 아직 순화군과 오천태의 탈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태건은 원희와 윤영을 번갈아 보며 제안했다.
“소장이 당장 별동 부대를 이끌고 추격하겠습니다.”
“쉬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윤영이 이죽거리며 물었다.
“저들은 지금 약탈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그것부터 막아야죠. 왜군이 물러난 걸 안 이상,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저들도 약탈을 멈추고 도주하는데 집중할 겁니다.”
“뭐, 그렇다면야…….”
윤영은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원희도 즉시 동의했다.
“그게 좋겠소.”
“예.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태건은 바로 인사를 하고 군막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