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534)
534.
스릉-!
비하르의 단검을 뽑은 레오가 물끄러미 검신을 바라보았다.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레오가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삭-!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드웨노의 작품이다.
그런 만큼 수 천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단검은 무구로서의 본질을 잊지 않고 있었다.
몇 번 허공에 검을 휘두른 레오가 다시 손에 쥐어진 검을 바라보았다.
‘착각이 아니었어.’
조금 전 아주 찰나의 시간.
분명 비하르의 단검은 무언가에 반응했다.
그와 동시에 비하르의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단검은 조용할 뿐이었다.
레오가 말없이 단검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똑똑-
“레오 도령, 들어가도 되나요?”
“들어와.”
벌컥-
첸 시아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방 가운데 우두커니 선 채로 서 있는 레오를 발견하고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옷 안 갈아입으세요?”
레오는 여전히 루니아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레오가 팔짱을 끼며 태연하게 말했다.
세이룬의 하얀 교복을 입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는 레오의 얼굴 앞으로 순백의 하얀 머리카락이 쏟아졌다.
변장을 위해 마법으로 기른 머리카락이 눈처럼 반짝였다.
거기에 더해 새하얀 피부.
당장에라도 타오를 듯한 붉은색 눈동자가 평소 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레오 도령은 미소년이라 그렇게 꾸며 놓으니 자태가 고우시네요.”
그렇게 말하며 첸 시아가 레오의 뒤로 다가가 머리카락을 땋았다.
“뭐 하냐?”
“땋은 머리카락도 어울릴 것 같아서요.”
그 말에 레오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마법으로 아공간을 연 레오가 바지를 꺼내 입었다.
헐렁하고 긴 바지 끈을 묶은 레오가 치마를 벗어 침대 위에 던졌다.
그다음 교복 상의를 벗어 침대 위에 던졌다.
교복 아래에 숨겨져 있던 탄탄한 근육과 복근이 드러난다.
어깨를 주무른 레오가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오러를 운용했다.
우득! 우드득! 우득! 우득!
전신에서 뼛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레오의 체격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원래 체격으로 돌아온 레오가 기지개를 쭉 키며 중얼거렸다.
“더럽게 아프네.”
레오의 투덜거림에 첸 시아가 감탄했다.
“조금 전에도 느꼈지만, 엄청 신기하네요. 오러로 골격 자체를 바꾸다니. 레오 도령이 만든 오러 스킬인가요?”
“내가 이런 쓸데없는 걸 만들 것 같아?”
“그럼?”
“우리 중 이런 걸 만들만한 녀석은 하나뿐이지.”
“드웨노님?”
“정답.”
‘진정한 아름다움은 육체의 시간을 초월해야 하는 법! 마법과 환상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모습 따윈 필요 없다! 그랬기에 오러를 이용해 육체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이 기술을 만들었지!’
“그 영감의 변태적인 사상에서 시작된 기술이었지. 문제는 익히기 어려워서 아무나 섣부르게 못 익힌다는 점이지만.”
“흐응.”
레오는 드웨노의 오러 스킬을 이용해 몇 년 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체격이 루니아와 비슷한 시절로 돌아간 덕분에 별 위화감 없이 루니아의 교복을 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첸 시아는 손재주가 좋아 에이란의 옷을 자신에게 맞게 고쳤다.
“그거, 저도 배울 수 있나요?”
“당연하지 너라면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걸? 왜?”
“익혀두면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아서요.”
“그럴 필요 있나? 지금도 1학년이랑 같이 있으면 네가 더 어려 보이는데.”
“그 말 지금 제가 어린애 같아 보인다는 거죠?”
눈을 가늘게 뜬 첸 시아가 레오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쑤셨다.
그런 첸 시아를 보며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동안이란 뜻이야.”
“십대가 동안이 어디 있어요? 동안이?”
첼시랑 또래로 보인다고 놀림 받는 첸 시아로서는 달갑지 않은 말이다.
레오는 그런 첸 시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이마를 문지르던 첸 시아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획 돌렸다.
“삐졌냐?”
“몰라요.”
새침하게 반응을 하는 첸 시아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 봐. 너랑 상담할 게 있으니까.”
“저랑요?”
첸 시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가 의자를 끌어와 앉자 첸 시아가 레오의 방에 있는 침대에 앉았다.
그런 첸 시아에게 레오가 비하르의 단검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내가 비하르에게 선물했던 단검이야.”
“아…….”
선조가 사용했던 단검이라는 말에 첸 시아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그리고 엘던에 들어서는 순간 이 단검이 반응을 했어. 짧지만 비하르의 기운도 느꼈지. 그 부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
레오의 물음에 첸 시아가 잠시 생각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비하르님이 돌아가신 건 베르키아님과의 싸움 때문이었죠?”
“그래.”
원래라면 샨 제국과 에르사르 가문은 원수지간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샨 제국의 특성상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비하르님은 베르키아님께 원한이 있을까요?”
“내가 아는 비하르라면 없을 거야.”
레오의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대신 안타깝게 여겼겠지.”
“그것도 미련의 일부분이죠.”
첸 시아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베르키아님이 이곳에 계신다고 가정했을 때. 레오 도령의 영령술이 발동된 게 아닐까요?”
“네 생각도 그래?”
“네.”
레오도 영령술에 대해서 깊게 아는 것은 없다.
물론 어지간한 소환사보다는 깊게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령술사로서의 능력이 없었던 레오였기에 깊게 파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시나스의 영령술 능력이 각성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영령술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정령술을 다룰 수 있는 첸 시아 역시 레오와 함께 영령술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레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일단 일전에 루나님을 불러오신 적이 있으니까요.”
첸 시아의 말을 듣고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검을 들어 올렸다.
“지금 불러 보실 건가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레오가 영력을 일으켰다.
우웅-!
레오의 영력을 흡수한 비하르의 단검이 공명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만약 비하르가 영령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난 녀석에게 무슨 말을 전해야 할까?’
끝내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한 제자를 꾸짖어야 할까?
아니면 평생을 세계를 위해 자기를 헌신한 제자를 칭찬해야 할까?
‘아니면…… 베르키아를 막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녀석을 위로해야 할까?’
레오가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비하르의 단검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번쩍-!
비하르의 단검이 밝은 빛을 터트렸다.
레오가 손에서 놓자 단검이 허공에 떴다.
주변에는 레오의 영력으로 그려진 계약진이 생성되어 있었다.
계약진은 이내 단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툭-!
비하르의 단검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
“…….”
레오와 첸 시아는 침묵하며 단검을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없는데요?”
첸 시아가 단검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더니 손가락으로 쿡쿡- 단검을 찔러보았다.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그걸 본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다? 분명 비하르의 기운이었는데?”
첸 시아가 조심스럽게 단검을 들어 올렸다.
단검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레오 도령, 여기.”
첸 시아가 쪼르르 레오 앞에 다가가 단검을 건넸다.
그 단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오가 말했다.
“그건 이제 네 거야.”
“네?”
“네 선조 거잖아.”
레오는 윗옷을 입으며 말했다.
“단검술은 쓸 수 있잖아?”
“쓸 수야 있죠. 살기가 짙어져서 문제지만요.”
“그걸 통제하는 훈련을 해.”
“네.”
힘차게 대답한 첸 시아가 비하르의 단검을 조심스럽게 갈무리했다.
옷을 다 입은 레오가 말했다.
“루니아와 에이란은?”
“두 사람은 엘던의 의회에 갔어요. 세이룬의 거물들이다 보니 눈도장을 찍어야 할 것 같다면서요.”
“우리는 안 가도 되나?”
“루니아 양 말로는 자기들만 가면 될 것 같다고 했어요. 도시의 탐문을 부탁드린대요.”
“그래?”
코트를 입은 레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이 오기 시작했다.
“그럼 탐문을 해볼까?”
“네!”
레오와 첸 시아가 숙소를 빠져나갔다.
***
휘오오오오.
“푸헤취!”
늦은 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 닥쳤다.
건물을 빠져나온 루니아가 붉은색 눈을 치켜뜨며 뒤를 돌아보았다.
루니아와 에이란이 빠져나온 건물은 말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인 궁궐이었다.
다른 종족이었다면 그 화려함에 감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엘프는 단아함을 미학으로 삼는 종족.
그렇기에 전통을 중시하는 엘프라면 사치스러운 궁궐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건물은 그중에서도 전통을 부르짖은 순혈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다.
‘다른 종족 궁궐은 천박하다면서 그렇게 욕해대더니! 정작 자기들은!’
루니아가 얼굴을 팍 죽였다.
“왜 우리가 오자마자 엘던의 늙다리들 비위나 맞춰야 하는 거야!”
루니아가 씨근덕거리자 에이란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도시를 자유롭게 조사하기 위해선 말이죠.”
“진짜! 2학년 1학기로 돌아간 기분이네!”
루니아가 씩씩거렸다.
“파티에도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겠죠?”
“……그래야겠지.”
루니아가 얼굴을 감싸 쥘 때였다.
콰아앙-!
갑자기 들려온 폭발 소리에 루니아와 에이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눈보라가 치는 와중에도 무너진 성벽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걸 본 루니아와 에이란의 얼굴이 굳었다.
“습격?”
“설마 타르타로스의 공격?”
느닷없는 테러에 가까운 무자비한 공격.
두 소녀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마족의 소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망설이지 않고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빨리! 빨리!”
“순혈회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빨리!”
폭발한 성벽을 넘어 창고를 털고 있는 이들을 본 루니아와 에이란이 입을 떡 벌렸다.
“에, 엘프?”
복면을 쓰고 도적질을 하고 있는 엘프들을 보며 루니아가 생각했다.
‘이 도시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엘프가 엘프를 털다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렇게 루니아가 경악할 때.
“웬놈이냐!”
“순혈회의 앞잡이냐!”
주변을 경계하던 검을 쥔 엘프들이 빠르게 루니아와 에이란을 포위했다.
“루니아 양.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기는.”
루니아의 얼굴이 굳었다.
“얌전하게 당할 수는 없잖아, 제압해!”
“넵!”
***
레오와 첸 시아는 늦은 시간 거리에서 탐문을 계속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굉장히 부유한 도시네요.”
첸 시아의 말대로였다.
거리를 오가는 엘프들은 척 보기에도 부유해 보였다.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두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마법사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마나로 짠 천, ‘마나 클로스’를 입고 있었다.
최고급 마나 클로스는 영웅 사관 학교에서 교복으로 쓰이는 옷감이다.
그런 마나 클로스로 지은 옷을 거리를 오가는 모든 이들이 입고 있다.
그랬기에 얇은 옷을 입고도 추위에서 멀쩡했다.
최고급 마나 클로스는 인간 사회에서는 웬만한 귀족들도 접하기 힘든 물건이다.
레오 일행이 자리를 잡은 곳이 부유층이 사는 거리가 아니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 도시가 얼마나 부유한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굉장히 사치스럽네요. 제가 아는 엘프들과는 조금 다른데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 도시는 겉으로는 굉장히 번듯해 보였다.
거리는 굉장히 깨끗했다.
온 국민이 별의 마법사인 만큼 마법과 연관된 상점이 가득 있다.
거리를 오가는 이들 역시 마법사의 풍모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모든 엘프가 하나같이 자신을 뽐낼 수 있는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다.
얼굴에는 ‘특권층’이라는 인식이 가득했다.
게다가 밤이 되면 거리 전체가 돌변했다.
낮까지 마법을 탐구하던 구도자의 거리는 온데간데없이 모두 술집으로 변모했다.
거리 전체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레오는 깨달았다.
‘이 도시는 본질적으로 바르하르룬과 같아.’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었다.
레오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왜인지 모를 악취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의 베르키아라면 이 도시를 보는 순간 불태웠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 도시는 멀쩡했다.
레오가 고민하는 사이.
“일단 좀 더 조사해볼까요?”
“그래. 일단은 좀 흩어질까?”
“네. 쭉 같이 움직였으니 이제는 나뉘어서 도시를 탐문해 봐요.”
낮에는 주로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도시에 이상한 일이 없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모든 엘프가 웃는 얼굴로 엘런은 평화롭다는 답만을 해왔다.
하지만 밤이라면 어떨까?
‘술도 마시면 조금 달라지겠지.’
레오와 헤어진 첸 시아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거리를 걸을 때였다.
콰아앙-!
멀리서 들려온 작은 폭음 소리에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폭발 소리?’
소리가 들린 쪽으로 첸 시아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예쁜 흑발이네.”
“……!”
뒤에서 들려온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첸 시아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사라락-
차가운 손이 첸 시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도 첸 시아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에는 생기가 없었다.
첸 시아의 몸이 덜덜 떨렸다.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은 이내 첸 시아의 뾰족한 귀에 닿았다.
사아-
그 순간, 레오의 마법이 풀렸다.
손의 주인이 첸 시아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자신을 보게만들었다.
첸 시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이 내리는 밤하늘 아래 서 있는 이를 올려다보았다.
“비하르의 후손은 여전하구나.”
그리움이 깃든 목소리.
눈에는 지독한 슬픔과 사죄를 담고 있었다.
첸 시아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엘프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베르…… 키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