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48
* * *
“……뭐라?”
키트에서 건너온 목소리에 헤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빠지겠다니?”
거인족이 싸움에서 빠진다.
그것은 지금껏 헤라가 해 온 일들을 송두리째 흔드는 소식이었다.
“갑자기 왜!”
-제우스가 다녀갔다.
돌아온 대답에 헤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제우스…… 그이가?”
전 올림포스의 왕이자, 헤라의 남편.
그는 꽤 오랫동안 탑 어디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감옥에서 빠져나온 지도 오래되었지만, 단 한 번도 올림포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제우스였다.
그런데 갑자기 거인들을 찾았다니.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이는 이제 올림포스에 관심이 없는 걸로 아는데?”
-우리도 잘 모른다. 다만, 이 싸움을 시작하면 녀석과도 다시 적이 되는 게 문제다.
“제우스가 겁이 나서 싸움에 빠지겠다? 너희 거인족들이 말이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의 연속이었다.
그래.
제우스가 다시 돌아온 건 그렇다 칠 수 있었다.
한 번 추방되었던 그가, 올림포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돌아온 건 백 번 양보하면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인족들은 달랐다.
올림포스의 삼신은 그들에게 있어서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기간토마키아라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거인족들을 죽이고 그들의 땅을 빼앗은.
그리고 제우스야말로 그런 삼신의 수장과도 같았다.
-녀석은 괴물이 되었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을 만큼.
괴물.
다른 누구도 아닌 기간테스의 말이었다.
거인족들을 믿고 싸움을 시작한 헤라가 당황해 중얼거렸다.
“괴물……?”
제우스를 보지 못한 지 불과 몇 년.
그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기간테스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강해졌단 말일까.
납득이 되지 않았다.
헤라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제우스는 기간토마키아를 멈추지 않으면 거인족의 씨를 말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럴 만한 힘도 가지고 있더군.
제우스가 기간토마키아를 막으려고 한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첫 번째 기간토마키아를 일으켰던 그가 말이다.
-우린 이 싸움에서 빠지겠다. 승산도 없는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
“잠깐, 이봐……!”
통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화면이 꺼진 키트를 보며 몇 번 소리를 지르던 헤라는 멍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이내.
와장창-!
식탁 위에 있는 식기와 접시 따위를 신경질적으로 쳐 내, 방 안을 순식간에 어지럽혔다.
“젠장, 젠장!”
신경질적으로 방 안을 어지럽히는 그녀의 눈빛이 붉게 번뜩였다.
그녀의 눈동자 위로 그토록 증오하던 한 남자의 모습이 비춰졌다.
제우스.
또 제우스였다.
한 번도 그를 사랑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제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우스는 헤라를 통해 헤라클레스를 낳고자 했다. 헤라는 그를 통해 올림포스의 여왕이 되고자 했다.
서로가 원하는 게 있어 손을 잡았지만 헤라는 결국 헤라클레스를 만들지 못했다.
그로 인해 받았던 멸시. 그리고 이어진 무관심.
그리고 그 끝에, 제우스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 온 대업까지 방해하려 하고 있었다.
“아폴론 남매를 활용하시지요.”
휙-.
헤라가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등장하는 어리석은 혼돈은 이제 더 이상 놀랄 거리도 아니었다.
표독스러운 눈과 말로 그녀가 어리석은 혼돈을 찔렀다.
“네놈 말을 듣다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느냐?”
“변수가 생겼다 해서 멈출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으로썬 가지고 있는 최선의 패를 쓸 수밖에요.”
“이……!”
역정을 내려던 헤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선택지는 두 개뿐이었다.
이대로 물러나거나, 아니면 모든 걸 걸고 왕좌를 빼앗거나.
첫 번째 선택지는 절대 사절이었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헤라는 평생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 없었다.
‘거인들 없이도 할 수 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그 둘은 올림포스를 대표하는 하이랭커로, 헤라의 피붙이였다.
그 둘이 함께한다면 판도라가 지키고 있는 왕성을 뚫어 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제우스가 다시 왕좌에 욕심을 낼 리는 없어.’
제우스는 바로 올림포스로 돌아오지 않고 거인들에게로 갔다.
만약 왕좌에 다시 욕심이 생긴 거라면 바로 올림포스로 돌아왔을 터.
아직까지는 제우스만 없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확실히 처리한 거겠지?”
헤라의 물음에 어리석은 혼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답했다.
“절대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겁니다.”
“……좋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제부터는 도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자.”
* * *
태양마차 위.
유원이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 전화를 받았다.
“끝난 거냐?”
-그래.
키트 너머로 들려온 대답.
아름답다 못해 느끼하게까지 한 목소리였다. 언제 들어도 목소리와 행동이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다 싶었다.
새삼 유원은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빨리 끝날 줄이야.
“고맙다. 네가 싸 놓았던 똥이긴 하다만.”
-그냥 고맙다는 말만 했으면 훨씬 듣기 좋았을 텐데 말이지.
“서로 돕고 사는 거지. 이번에는 네가 나를 도울 차례였던 거고.”
-하긴. 다른 녀석은 몰라도 네놈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키트 너머로 들려오는 제우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고양된 것처럼 들렸다.
그토록 원하던 천장 위로 올라선 지금.
제우스의 기분은 아마 날아갈 것만 같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 녀석 짓이냐?
제우스의 물음에 유원은 확신을 가지고 답했다.
“그래.”
-그럼 혼내줘야겠군.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유원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래야겠지.”
어리석은 혼돈이 만든 판에 휘둘린 것도 여기까지였다.
‘이쯤 되면 그 녀석이 둘 수는 뻔하지.’
아마 녀석은 제우스가 거인족을 막은 것도, 헤라클레스가 자신이 판 함정을 깨부순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녀석이 둘 수는 뻔할 터.
‘이번까지다.’
반격의 시작.
그건 단지, 헤라에게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유원은 자신의 다리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단풍을 내려다보았다.
‘곧 만나자고.’
* * *
우르르-.
“서둘러, 어서!”
“헤라께서 앞장서신다!”
“올림포스를 다시 되찾는다!”
랭커와 플레이어들이 무장을 시작했다.
각자 무기를 손에 쥐고, 인원을 점검했다. 헤라의 편에 붙은 하이랭커들은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과 얻게 될 것들을 계산했다.
“저쪽에는 판도라가 있다지?”
“그녀와 아테나는 헤라께서 맡으실 거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도 이쪽에 붙었고…….”
“전력은 우리가 더 위군.”
“이번에 아레스의 밑에 있던 녀석들도 이쪽에 붙었어.”
“그래? 하긴. 잡고 있던 줄이 사라진 녀석들에겐 이번이 최고의 기회일 테지.”
“헤라께서도 아레스를 각별히 아끼셨으니까. 잘됐지.”
이 싸움에서 이긴 후, 새로 올림포스의 왕이 된 헤라와 그의 측근이 된 자신들의 모습에 한껏 고양이 된 랭커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데 아까부터 좀 더운 것 같지 않아?”
“그러고 보니…….”
출정을 위해 모여 있던 랭커들은 하나둘,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리고 이내.
화르르르-!
그들 주위로, 거대한 불의 장벽이 솟아올랐다.
“부, 불이다!”
“누구 짓이지?”
“이 불은 설마……!”
올림포스의 랭커라면 모를 수가 없는 불길이었다.
어렴풋이 황금빛이 섞인, 용암보다도 뜨거운 불꽃의 기둥.
저벅-.
그 기둥 속으로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한 하이랭커가 걸어 들어왔다.
“지금부터 아무도 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아폴론.
태양을 상징하는, 올림포스의 하이랭커 중 한 명.
“이해 좀 해 주라, 모두.”
그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시각.
다른 곳에서도 역시, 아르테미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태양마차의 한가운데.
헤라가 놀라 묻자, 장내가 조용해졌다.
수십 명의 인원을 태운 태양마차였다. 아니, 정확히는 아폴론의 태양마차를 따라 만든 레플리카였다.
태양마차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하늘 한가운데 멈추었다. 갑작스럽게 전해진 소식 때문이었다.
“아폴론이, 아르테미스가…….”
헤라의 신전을 비롯해 몇 군데 나눠져 있던 병력이 가로막혔다.
바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 의해서 말이다.
“내 새끼들이, 날 배신해?”
“아직 다들 무사하답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거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헤라와 함께했던 건 아니었다.
올림포스로 향하던 그때,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함께 움직이자는 헤라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했다.
하데스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바로 움직일 수는 없다는 어수룩한 변명과 함께 말이다.
‘그때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거인족도 없이 이 정도 인원으로 올림포스와 싸운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판도라라도 없다면 모를까, 지금 이 상태로는 승산이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하데스의 죽음 이후, 빈집이라 생각했던 올림포스는 판도라가 지켰다.
거인족의 지원은 제우스에게 가로막혔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는 내부에서 지원을 끊었고, 자신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길 한복판에 정체되어 있었다.
웅, 웅-.
헤라의 키트가 울린 건 그때였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느낌이 드는 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헤라를 지금에 있기까지 한 직감이었다.
그렇게 헤라가 키트로 걸려 온 연락을 받자.
-초면인데 이렇게 인사하네.
처음 듣는 목소리가 키트를 통해 넘어왔다.
-이제 어쩔 생각이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도 없고. 거인족까지 떨어져 나갔는데.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네가 김유원이냐?”
-그래.
“판도라도,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도, 제우스도…… 다 네가 한 거냐?”
-눈치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거기까진 안 갔을 텐데. 조금 아쉬워.
유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판도라, 아폴론, 아르테미스, 제우스.
올림포스를 주름잡는 하이랭커들이 유원의 장기 말이 되어 움직였다.
순간 헤라는 온몸이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이렇게 서 있는 자신의 꼴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녀석에 의해 만들어진 거였다니.
그녀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어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숨겼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할 말이 있으니 연락을 했을 거 아닌가?”
-그 새끼가 그러지? 헤라클레스는 과업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지금쯤 죽었을 거라고.
다 안다는 듯한 말투.
‘그 새끼’가 누구인지, 헤라는 듣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리석은 혼돈.
하데스를 죽이고, 열두 과업을 통해 헤라클레스를 정리해 주겠다고 장담한 녀석.
유원이 그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헤라의 눈동자가 점점 커져 갔다.
-아니야.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전하라더라고. 이제 마지막 과업을 시작할 거라고.
마지막 과업.
지옥에서 가장 위대한 괴물, 케로베로스 왕을 잡는 시험.
하지만 헤라클레스에게는 어쩌면 가장 쉬울지도 모르는 시험이었다.
그리고 그걸 시작했다는 건…….
-목 잘 씻고 있어, 아줌마.
이미 과업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