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74
* * *
오딘과 미미르가 마주 앉았다.
흰머리와 수염이 길게 난 오딘은 눈앞에 타고 있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칼은 잘 받았으려나.”
“잘 받았을 거다. 의미도 이해했을 거고.”
한쪽 눈을 잃은 미미르.
그는 잔뜩 수척해진 얼굴로 말했다.
“너보다 더 똑똑한 녀석이니 말이야.”
“그래도 잘하고 있을지 모르겠군.”
“걱정할 놈을 걱정해라. 다른 녀석도 아니고 김유원인데.”
“하긴, 그 원숭이 하나만 보냈으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김유원과 손오공.
그 둘은 자신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능한 자들이었다.
랭킹이야 오딘이 가장 높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월에 따른 결과일 뿐. 하지만 유원과 손오공은 그 시간을 빠르게 좁혀, 어느새 오딘과 같은 경지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모두는 유원을, 그리고 손오공을 과거로 보내는 데 동의했다.
“그 눈은? 좀 괜찮으냐?”
“오히려 한쪽을 잃고 나니 머리는 더 맑아진 기분이다. 아마 몇 년은 더 깨어 있을 수 있겠어.”
“큰일을 앞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의 귓가로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마아아아아-.
머리를 울리는 끔찍한 소리.
“저놈의 울음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군.”
“그럴 수밖에. 그나저나, 이젠 꽤 가까워졌구먼.”
“슬슬 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거겠지.”
그런 두 사람의 태평한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던 걸까.
저벅-.
오딘의 뒤로 두꺼운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슬슬 긴장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딘의 몸을 다 덮을 만큼 큰 그림자를 가진 덩치는 그들 동료들 중 한 명밖에 없었다.
“헤라클레스.”
“돌아온 건가?”
유원과 손오공을 떠나보낸 후, 줄곧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가 다시 나타났다.
팔이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그는 아우터 갓으로부터 숨어 있기를 거부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자신은 계속 싸우겠다면서.
“슈브 니구라스가 가까이 왔다.”
“알고 있다.”
“우릴 찾고 있는 거다.”
“이미 찾아냈지.”
자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별로 당황하지 않는 두 사람.
그뿐만이 아니었다.
살아남아 있는 다른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평소보다도 훨씬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 헤라클레스는 그들의 결의를 엿보았다.
“싸울 생각이로군.”
“언젠가 결판은 냈어야 했다.”
“몸은? 괜찮은 거냐?”
헤라클레스의 물음에 오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타닥, 타다닥-.
오랫동안 꺼지지 않던 모닥불이 오딘의 눈에 비춰졌다.
화륵-.
붉게 타오르던 불에 보라색이 섞였다. 슈브 니구라스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한 변화였다.
“결판을 내긴 해야지.”
“…….”
오딘의 결심에 헤라클레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슈브 니구라스와 몇 번이나 부딪쳤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산양들을 죽였고, 이제는 싸움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마도 과거로 돌아간 유원도 마찬가지로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를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했다.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한 게 아닌가 해서.
‘조금만 더 애쓰고 있거라.’
꽈악-.
슈브 니구라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며, 헤라클레스는 손안의 곤봉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우리도 그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니.’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돌렸다.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
그걸 위해 이 자리에 꽤 많은 동료들이 모였으니까.
그리고 그중.
“여기서 계속 미적거리고 있을 셈이냐?”
저벅-.
가장 껄끄러운 동료의 등장에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오만한 얼굴을 한 채, 자신들의 뒤에 나타난 남자.
“가자꾸나.”
제우스가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 * *
밤이 끝났다.
11층은 쑥대밭이 됐다. 그리 긴 싸움이 아니었음에도, 도시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고 불바다로 변했다.
유원은 비교적 멀쩡한 건물을 찾았다. 관리국까지는 거리가 너무 머니, 임시로 쉴 곳을 찾은 것이다.
털썩-.
끼릭-.
낡은 침대에 몸을 앉힌 제우스가 힘겹게 고개를 숙였다.
어떤 경우에도 고개를 숙이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였다.
어지간히 지치긴 한 모양.
“계속 싸우러 다닌다더니만.”
쯧쯧,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하데스가 그런 제우스를 내려다보았다.
“계속 이러고 다닌 거로군.”
“잠깐 쉬면 괜찮아집니다. 신경 끄십시오, 형님.”
“그리 숨을 헐떡거려서야 설득력이 영 없구나.”
이렇게 약해진 제우스는 처음이라 말은 그리하면서도 하데스는 은근히 그를 걱정하듯 바라봤다.
“이것 때문이었느냐? 자리를 비운 이유가.”
“이미 확신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대답하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고개를 든 제우스가 하데스의 눈을 노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겨우 찾은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형제 싸움은 나중에 따로 해라. 나 있을 때 말고.”
다시 길바닥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유원이 두 사람을 만류했다.
그러자 잠시 제우스를 노려보던 하데스가 성큼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그 말대로 형제 싸움은 나중에 할 테니, 먼저 볼일을 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하데스가 나선 후.
“날 바로 따라왔나?”
유원은 제우스의 등장에 품고 있던 의문을 꺼내 물었다.
“시커먼 남정네, 뭐 좋다고.”
“아니면 여기 네가 왜 있어?”
“하늘을 따라온 거다. 넌 관심이 없었겠지만, 최근 일 년 동안 계속 그 하늘만 따라다녔다. 마침 그 아래에 네가 있던 것뿐이고.”
“불태우고 있는 거냐.”
“…….”
바로 대답이 없었다.
이 침묵은 긍정이었다. 유원은 한숨을 쉬며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온몸을 흠뻑 적신 땀.
올림포스 부수기 때에도 흘리지 않았던 땀을 이렇게 흘린다. 확실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화륵-.
붉게 변한 눈이 제우스의 몸을 살폈다.
화안금정에 비춰진 제우스의 몸은, 마치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보였다. 말로만 불태우고 있다 말했을 뿐인데, 정말로 그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력이 흐트러지고 있다. 강제로.’
원래 잔뜩 싸우고 난 후면 마력은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제우스는 그러지 않았다.
서서히 흐트러지는 마력과 육체.
마치 산화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이건 다친 게 아니다.’
화안금정으로 확인한 제우스의 상태는 생각보다도 더 심각했다.
‘……사라지는 거지.’
이런 상태에서는 부상을 치료하고 말고 할 게 없다.
제우스는 중요한 전력이었다. 가능하면 그를 살려 가는 쪽이 유리하다.
하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다.’
이 탑의 어디에도 이런 종류의 병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 방법은 유원에게도 없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쓸데없는 생각이다. 네 걱정을 받을 만큼 약하지 않으니 말이야.”
겨우 숨은 골랐는지 제우스는 이마의 땀을 닦아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옷매무새를 다듬는 제우스.
그는 애써 평온한 얼굴로 물었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그 질문에 유원은 잠시 멈칫했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던 유원이 질문에 답했다.
“방향은 너와 다르지 않을 거다.”
“방향?”
“네가 찾던 하늘을 나도 찾을 테니까.”
“난 또. 무슨 다른 생각이 있을까 했더니만.”
생각보다 너무 뻔한 대답이었다. 그 역시 마땅히 다른 길을 찾지 못했지만, 역시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하나 찾을 건 있다.”
유원의 입에서 제우스의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찾아? 뭐를?”
“있다. 그런 게.”
“말해 줄 생각도 없으면서 이야기를 왜 꺼낸 거냐?”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 그리고 이번에는 너와 같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럴 생각도 없다만, 이유가 뭐지?”
“이번엔 판도라와 함께 움직일 거라서 말이지.”
유원의 입에서 언급된 이름에 제우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판도라.
그녀는 자신을 보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 알 텐데도 불구하고 죽이겠다며 달려드는 그녀를 말리는 건, 제아무리 제우스라도 피곤한 일이었다.
하물며 그런 판도라와 동행하는 일이야 꿈도 꾸기 어려웠다.
“함께 오긴 한 모양이군.”
“잠깐 떨어뜨려 놓느라 힘들었다. 칼만 만들 줄 알았더니, 이렇게 싸울 거였으면 함께 올 걸, 그랬어.”
그렇게 어깨를 으쓱여 보인 유원은 조금 진정된 제우스를 보며 물었다.
“하나 뭐 물어봐도 되냐?”
“뭘?”
“판도라에게 네가 줬던 상자 말이다.”
세간에는 ‘판도라의 상자’라 알려져 있던 아이템.
아우터의 힘이 깃들어 있던 상자를 그녀에게 전해 줬던 건,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제우스였다.
“그거, 어디서 난 거냐?”
* * *
-……분명 칭호는 사라졌을 텐데 말이지.
유원의 옆에서 둥둥 떠다니는 검은색의 영혼.
스사노오의 영혼이 불만이라는 듯 시끄럽게 울렸다.
-대체 왜 아직도 난 네놈 옆에 붙어 있는 거지?
처음 그가 유원의 소환수가 되었던 건 ‘죽은 자들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부터였다.
죽은 자들의 왕은 네크로맨서 계열의 플레이어에게는 꿈이나 다름없는 칭호. 본래 스사노오가 가지고 있던 그 칭호를 얻으면서 유원은 그를 자신의 소환수로 두게 됐다.
하지만 지금, 그 칭호는 하데스에게 넘어가 있는 상태.
그런데도 스사노오는 유원의 옆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왜? 희망이라도 품은 거냐? 나한테서 벗어날 수 있다고.”
-굳이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네 녀석 옆에 있으면 싸울 기회가 많은 건 사실이니.
“그런데 왜?”
-이해가 안 돼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죽은 자들의 왕이 사라진 이상, 네크로맨서로서 유원의 능력은 사라져야 정상.
본래 그 칭호의 주인이었기에 스사노오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도 그, 이름의 힘인가 뭔가 하는 것 덕분이냐?
“잘 아네.”
-정말로 그걸 모을 생각인가 보군.
슈브 니구라스. 그리고 툴차와 그로스.
그 외에도 유원은 수많은 아우터 갓들의 이름을 손에 넣었다.
이름을 하나씩 손에 넣을 때마다 백지였던 기억에도 조금씩 색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유원은 이름을 모으는 걸 미룰 수 없었다.
유원은 삯을 치르고 배에서 내렸다. 10층, 무림계로 다시 돌아온 유원은 잠시 머물렀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판도라와 동행을 허락한 것도 그것 때문인가?
걸음을 옮기던 유원에게 스사노오가 질문을 던져왔다.
예리한 질문이었다.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가까이 보이는 숙소를 바라보았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판도라를 혼자 두었던 숙소.
벌써부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들어가면 혼 좀 나겠군.”
-난리가 나겠지.
“그렇겠지, 역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와의 동행은 아마 그리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유원이 가는 길은 대부분 가시밭길이었고, 그 길을 이번엔 그녀와 함께 걷기로 결심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여기 두고 갔던 것도. 그리고 지금부터 함께하게 될 것도.
사실, 어느 쪽을 택하든 그녀에겐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네 말이 맞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
문고리를 잡아당기려던 유원이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난 이름을 모을 생각이다.”
그것은 제우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기도 했다.
슈브 니구라스. 툴차. 그로스.
탑 밖에서 건너온, 아직까지 다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이름들.
그 이름을 한 명의 이름 뒤에, 모두 모으는 것.
“가능하면…… 전부 다.”
그게 바로, 제우스의 질문에 대한 유원의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