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9
* * *
꽈득, 까드득-.
식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수십 개의 거대한 이빨은 오로치의 비늘과 가죽을 아주 손쉽게 꿰뚫었다. 마치 연한 두부처럼, 오로치의 몸뚱이는 이빨이 닿자마자 녹아내렸다.
슈리는 더 이상 그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유원을 보며 물었다.
“혹시…… 저것도 자네가 가진 능력인가?”
오로치의 시체를 먹어치우는 존재에게서는 특별한 마나나 살기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상만 아니라면 딱히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그것을 경계했다.
끝없는 노력과 인내로 랭커가 되고, 단련하고, 관리자의 신임을 얻어 시험 감독관이 된 그녀는 만 년에 가까운 시간을 존재해 왔다.
겉으로 보이는 젊고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랭커들 가운데에서도 그녀의 나이는 고령에 속했다.
하지만 그런 긴 시간 동안에도 저런 존재는 본 적이 없었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맞으면 맞고, 비슷하면 비슷한 거지, 비슷한 것 같다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유원의 대답에 슈리는 미간을 좁히며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오로치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어쨌거나 유원이 말린 이상, 그녀는 더 이상 저것을 공격할 수 없었다.
시험의 과제에 임해 오로치의 머리를 쓰러뜨린 건 유원이었다. 당연히 그 오로치의 시체를 어떻게 쓸지에 대한 권한도 유원에게 있었다.
쩝, 쩝-.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유원은 처음에 비해 조금 더 크게 떠진 눈들을 보며 물었다.
“배부르냐?”
[‘?의 알’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의 알’이 노래를 부릅니다.]저렇게 괴상망측하고 무섭게 생긴 녀석이, 대답하는 건 꼭 어린아이 같다.
메시지를 통해 전달된 알의 목소리.
유원은 그것을 통해 저것이 자신이 지닌 알임을 확인했다.
“……그럼 됐다.”
스으으으-.
스륵-.
안개가 사라지듯 걷히는 어둠과 그 속에 박혀 있던 눈들이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 눈동자들은 만족한 듯 감기고 있었다.
유원은 혹시나 싶어 인벤토리 속 알을 확인했다.
미미하긴 하지만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만큼 커진 알.
[?의 알]# ?의 알이다. 누구의 알인지, 무엇이 나올지, 어떻게 해야 부화할지 모두 알 수 없다.
# 부화율 : 13.58%
줄곧 멈춰 있던 부화율이 올랐다.
그동안은 어떻게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단서가 생겨난 것이다.
“이제 뭔지 좀 알았나?”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한 발짝 떨어져 있던 슈리가 다가와 물었다.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조금은.”
“조금은이라…….”
다 안다는 건 아니었다.
슈리는 다시 평화로워진 콜로세움을 바라보았다.
콜로세움은 고요하지만 한바탕 폭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고작 1층의 플레이어를 만 년을 살아온 랭커인 그녀가 이해할 수 없었다.
복잡해진 머릿속.
슈리는 다시 유원을 돌아보았다.
“사실 난, 자네를 손오공의 다음이라고 생각했네.”
대단한 칭찬이었다.
그 하이랭커 손오공과 비교되다니.
게다가 그녀는 유원을 손오공의 후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슈리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젠…… 잘 모르겠군.”
천계, 그리고 제천대성.
그 둘과 엮기에 유원이 마지막에 보여 준 능력은 연관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천계에서 그처럼 불길해 보이는 힘을 숨기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어쨌든 비밀이 많아 보이네만, 여기서 있던 일은 일체 발설하지 않을 걸세. 발설할 생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
“다행이군요.”
“더 높은 곳에서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하지.”
슈리는 유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유원은 앞으로 내민 그녀의 손을 잠시 응시했다.
‘여전하네.’
시험을 통과한 참가자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버릇은.
고지식하지만 올곧으며, 강하고 아름다운 전사.
유원은 마지막 싸움에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그녀의 모습을 기억했다.
유원은 그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반가웠습니다.”
* * *
10층 아래쪽의 시험들 중, 콜로세움의 시험은 튜토리얼을 끝내고 탑에 올라온 플레이어의 기량을 가늠하는 시험으로 유명했다.
콜로세움의 시험은 20단계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그 시험은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갈 때마다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통과한 단계에 따라 랭킹이 매겨진다.
보통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1단계를 통과하고, 겨우 2단계까지 공략한다.
조금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는 5단계 이상을, 10단계 이상을 통과한 플레이어는 랭커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런 콜로세움의 기록들 중.
[1위 : 손오공 – 19Round]손오공의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싸움’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존재.
무한히 늘어나는 거대한 봉을 휘두르며 천둥과 구름을 다스리며, 하늘을 지배한다고 알려진 랭커.
그런 손오공의 기록이 약 천 년 만에 깨어졌다.
[1위 : 김유원 – 20Round]김유원.
튜토리얼의 기록을 갈아치운 신규 플레이어.
그는 화려한 데뷔에 이어, 또다시 탑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놀라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한 번 기록을 갈아치웠다면 또다시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겠나.
하지만 이걸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대단한 녀석이 들어왔네.”
튜토리얼의 기록이 깨어진 건, 특별한 요행이나 우연 따위가 아니란 것이다.
“슈퍼 루킨가?”
“몇십 년만 지나면 랭커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손오공 같은 괴물이 또 들어왔어?”
“순혈인가? 어디 출신이야?”
“지구? 거긴 어디야?”
“아무도 몰라?”
지금까지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던 여러 랭커들이, 플레이어들이, 길드들이 이름을 기억했다.
김유원.
탑의 하늘을 장식할 별의 후보가 나타났다.
* * *
한 달이 흘렀다.
헤파이스토스는 공방 안으로 들어온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왔냐?”
유원의 방문.
고개를 끄덕인 유원은 떼인 돈 받으러 온 것처럼 뻔뻔한 투로 대답했다.
“맡긴 거 찾으러 왔습니다.”
“돈도 안 내는 놈이 말하는 본새 하고는. 거기 있어라. 곧 끝나니까.”
유원은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뜨거운 화로 앞에 앉았다. 헤파이스토스는 언제나처럼 담금질과 망치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공방은 더웠다.
아니, 뜨거웠다.
보통의 플레이어들은 견디기 힘들 만큼.
이곳은 화력이 부족한 옛날의 허름한 공방이 아니었다.
치이-.
헤파이스토스는 뜨겁게 달궈진 갑옷을 두들기다 그것을 찬 물에 담갔다. 뜨거운 공방에서 묵직한 망치를 쉬지 않고 두들기느라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막 유원을 돌아봤는데.
‘응?’
이상했다.
그리 오래 된 건 아니라지만 유원은 땀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너 뭐냐?”
“예?”
“안 덥냐?”
유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덥습니다.”
대답과는 달리 유원은 땀을 흘리지 않았다.
체질에 따라 더위에 상관없이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지만 이 정도 열기면 표정이라도 찡그려져야 정상이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신기한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대체 불에 대한 저항력이 얼마나 높은 걸까.
한동안 유원의 반응을 살피던 헤파이스토스는 한쪽에 걸어 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이제 다음 층이 10층이냐?”
“네. 이제 막 시험을 통과하고 내려온 길입니다.”
“이번엔 꽤 오래 걸렸구나. 열흘 만이더냐?”
열흘.
유원이 9층의 시험을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20일 동안, 유원은 순식간에 8층까지의 시험을 통과했다. 그렇게 올라간 층이 9층.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올라간 것치고 이번 9층의 시험은 꽤 걸린 편이었다.
“아시잖습니까. 9층의 시험이 무엇인지.”
“오래돼서 가물가물하긴 한데, 미궁의 길을 찾는 거였나?”
미궁.
그것은 탑의 9층이 부여하는 시험이었다. 수십, 수백 개의 길로 나누어진 끝없는 미로 속에서 여러 방식을 동원해 길을 찾는 시험이었다.
“그렇다 해도 열흘은 너무 긴데?”
보통 실력 있는 플레이어는 9층의 미궁을 돌파하는 데 사흘, 길게는 닷새 정도가 걸렸다.
열흘이면 꽤 긴 시간. 만약 유원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가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면 형편없다 여겼을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던 게냐?”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유원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웃음기 섞인 표정에 헤파이스토스는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재차 물었다.
“얼른 대답해라. 의뢰한 물건 받고 싶거든.”
“물건 가지고 협박하깁니까?”
“얼른.”
헤파이스토스의 재촉.
애초에 비밀로 할 생각도 없었기에 유원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새 길을 개척했습니다. 그것‘들’을 찾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새 길.
헤파이스토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미궁의?”
“예.”
“애초에 정해진 길도 없던 것을, 새로운 길이라니?”
영문 모를 소리였다.
미궁은 정해진 길이 존재하지 않기에 미궁이라 불린다. 미궁의 범위는 넓고, 누군가는 영영 길을 찾지 못하고 그곳을 떠돌거나 시험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곳의 길을 개척하다니.
게다가…….
“그리고 방금, ‘들’이라고 했냐?”
유원은 새로운 길을 이야기할 때, 하나가 아닌 여럿처럼 이야기했다.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탈출구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잖습니까? 하나일 수도, 여럿일 수도 있는 거죠.”
“그걸 만들었다고?”
“네. 애초에 그것들은 개척되지 않았을 뿐, 틀린 길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헤파이스토스는 어이없어하다 곧 입을 다물었다.
계속 물어도 결국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탈출구를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어차피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헤파이스토스는 랭커였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미궁을 탈출하고 시험을 통과해 탑을 오른 자.
하층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해서 좋을 게 없었다.
“다음에 올라오는 놈들만 좋은 짓이군.”
칭찬에 인색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헤파이스토스도 알고 있었다.
새로운 길의 개척.
탑은 항상 ‘최초’와 ‘완벽’과 같이 주어진 시험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여러 부분을 통해 보상을 달리했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손쉽게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보상은 덜할 수밖에 없다. 반면, 유원은 지금껏 누구도 개척해 내지 못한 길을 개척해 시험을 통과했다.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 또한 기존보다 더 나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네놈이 어떤 식으로 시험을 치를지가 궁금할 지경이다.”
“다음에 또 와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것도 그럼 다음 시험에 필요한 거냐?”
헤파이스토스는 그렇게 물으며 한쪽에 아무렇게나 대충 걸어 둔 검을 집어 들었다.
“많은 무기를 만들어 봤지만 나도 이런 건 처음 만들어 본다. 마나 전도율이 뛰어난 게 아니라…….”
스칵-.
칼집 속에서 뽑혀져 나온 검.
온갖 탁한 물질이 뒤섞인 졸작을 바라보는 헤파이스토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반대로 최악인 무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