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9
유원은 터벅터벅 안전지대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 황당한 광경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뭐, 뭐야 저거?”
“잡을 수 있던 거였어?”
“그런 거면…….”
사람들의 시선이 어스 웜을 짓밟아 죽인 유원에 이어, 사방에 널려 있는 사람들의 시체 조각들을 훑었다.
만약 어스 웜이 사냥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면, 저 안전지대 밖에서 죽어 간 수천 명의 사람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유원아-!”
그때, 유원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무리 사이에서 김명훈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 갔던 거냐?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연기에 꽤 소질이 있는 녀석이다 싶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 하나 떨리지 않고 어제까지만 해도 두들겨 패던 후배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다니.
아무래도 지금은 유원과 친분을 과시하는 쪽이 자신에게 이득이라 판단한 것이리라.
유원은 김명훈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경계와 두려움, 그리고 기대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었다.
뒤이어 유원의 시선은 안전지대 가장자리, 투명한 벽에 적혀 있는 숫자로 향했다.
[1427 / 1500]정원이 1500명.
1427명이면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숫자였다.
게다가…….
“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들.”
유원은 사람들 손에 쥐어져 있는, 편의점이나 햄버거집 같은 곳에서 가지고 온 듯한 식량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길 건너서 가지고 온 건가?”
안전지대와 가장 가까운 편의점의 거리는 약 20미터 남짓.
아무래도 저들이 먹고 있는 식량은 안전지대 바깥에서 운반해 온 물건인 듯했다.
“어쩔 수 없었어.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도 모르고, 3번과 4번 튜토리얼은 분명 지금보다 더 위험할 테니까.”
“그래서 식량이 필요했다…… 이 말이군.”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이제 2번 튜토리얼은 3분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아까의 소란은 아마, 2번 튜토리얼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남은 식량을 보급해 와야 한다는 주장이었던 모양이었다.
“보급조는 저쪽인가?”
유원은 비교적 작은 덩치의, 소극적이고 움츠려져 있는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군.”
주황색 안전지대에 있던, 죽을 뻔했던 사람들.
그것이 바로 식량을 보급해 안전지대로 돌아온 사람들의 정체였다.
“그래서 바깥으로 다시 떠밀었나? 식량을 보급해 오라고?”
“원래라면 죽었을 사람들이니까.”
맞는 말이었다.
원래였다면 죽었을 사람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살았을 사람들이 결정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원래 죽었을 사람들이니까, 목숨을 걸고 식량을 가져와라?”
유원은 김명훈의 눈을 바라보았다.
“계산이 이상한데?”
유원의 눈빛에 김명훈은 몸을 움찔 떨었다.
그저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것뿐인데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이 알던 유원이 아닌 것 같았다.
김명훈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있던 무리가 보였다.
없던 용기가 생겨났다.
김명훈은 다시금 유원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너도 적응 못했나 보네.”
“적응?”
“여기가 아직도 예전 같은 말랑말랑한 세계인 줄 알아? 법과 도덕이 깔린, 그런 세계 같냐고?”
김명훈은 그렇게 묻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시선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김명훈의 말에 대한 동의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짓에 대한 합리화이기도 했다.
세상이 변했으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이 바로, 저 ‘소수’의 사람들을 안전지대 바깥으로 내몰았다.
“유원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겁해져라. 비겁해지고, 이기적이 되어야 해. 이건 선배가 아닌 인간으로서 충고하는 거야.”
“적응이라…….”
유원은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하니 자신이 김명훈 같은 코흘리개에게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2번 튜토리얼이 종료되었습니다.] [안전 구역 내 모든 참가자에게 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인벤토리 주머니를 획득하였습니다.] [사망 시, 보유 인벤토리 주머니가 소멸됩니다.]툭-.
모두의 머리 위로는 크로스백 형태의 작은 가방이 떨어졌다. 유원은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주워들며 입을 열었다.
“살아남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 딱히 관여하거나 충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말이야.”
[3번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선’은 넘지 마라. 그게 뭐든.”
모호한 종류의 경고였다.
유원은 그 ‘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제대로 이야기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유원은 그 말을 끝으로 김명훈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은 모두가 다음 튜토리얼의 내용에 집중할 때였다.
[구역 내 괴물을 사냥해 50개의 정수를 습득하십시오.] [70시간 후,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 [제한 시간 초과 시 해당 구역이 파괴됩니다.] [제한 시간 : 72 : 00 : 00]우웅, 웅-.
안전지대가 있는 거리 한복판, 저 멀리 끝으로 반투명한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0 / 50]50.
3번 튜토리얼의 참가자들이 구해야 하는 정수의 개수였다.
반투명한 색은 아마도 아직까지 게이트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저기가…… 통로인가?”
50개의 정수를 모으면 다음 튜토리얼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아마도 저기가 다음 튜토리얼 구역으로 이동하는 통로인 모양이었다.
그 통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50개의 정수를 모아야 하는 것이고.
꽤 심플한 미션이었다.
그렇게 튜토리얼의 설명을 듣게 된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꼭 게임 같네…….”
몬스터를 사냥해 아이템을 모아라.
게임을 조금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받아봤을 퀘스트였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현실에서 하려고 하니, 결코 간단한 게 아니었다.
“저, 저기!”
“좀비? 저, 저거 좀비 아니야?”
거리 한복판에 몇 마리의 좀비가 보였다.
분명 1번 튜토리얼이 끝나고 나서 사라진 것으로 보였는데.
좀비만이 아니었다.
길 곳곳에 이름 모를 괴물들이 돌아다녔다. 거대한 거미도 있었고, 털이 송곳처럼 곤두선 돼지도 있었다.
건물의 벽면에는 사람의 팔뚝만 한 크기의 지네가 기어 다니기도 했다.
“으, 으으…….”
“세상이 온통…….”
이 세상은 이미 온통 던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누군가가 바닥을 보고는 외쳤다.
“안전지대는 무사해요!”
“지, 진짜!”
그 환호성에 유원은 혀를 찼다.
“……쯧.”
아마 저 환호성을 지른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 3번 튜토리얼의 목적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사냥’에 있었다.
50개의 정수.
그것을 모아야지만 다음 튜토리얼로 넘어갈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당장 안전지대에 안심하기만 해서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유원아!”
김명훈이 유원을 붙잡았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안전지대 밖으로 반쯤 발을 걸친 유원이 고개를 돌렸다. 유원은 할 말 있으면 귀찮으니 어서 하라는 표정이었다.
“같이 하는 건 어떠냐? 너도 동료가 있으면 편하지 않겠어?”
김명훈은 그렇게 말하며 유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것으로 그가 유원에게 손을 내민 건 두 번째였다.
2번 튜토리얼의 시작 때 한 번, 그리고 3번 튜토리얼에서 한 번.
유원은 그 손을 물끄러미 보다 대답했다.
“하루도 안 지난 것 같은데, 그새 까먹었나?”
“뭐?”
김명훈은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짓다 곧 얼굴을 와락 구겼다.
“살고 싶으면 남 옆에 빌붙으려 하지 말고, 저기 가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까불지 말고.”
2번 튜토리얼이 시작되기 직전.
유원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일그러지는 김명훈의 표정.
까먹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표정으로 충분했다.
“기억하나 보네.”
유원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안전지대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방 돌아왔다가 다시 사라지는 유원의 뒷모습을 보며 김명훈은 으득 이를 갈았다.
“새끼가, 허세는…….”
유원은 이미 2번 튜토리얼에서부터 안전지대 바깥을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바깥에 괴물들이 널려 있긴 하지만 아마 그는 혼자서도 안전할 것이다.
‘저놈들을 잡고 정수인가 뭔가를 모아야 한다고?’
김명훈은 바깥에 있는 괴물들을 둘러보았다.
여러 종류의 괴물들이 있었다.
이번 튜토리얼은 다른 때와는 달리, 도망치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저들을 잡고 50개의 아이템을 모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미션.
“50개라…….”
아마 참가자 전원에게 주어진 이 가방은 구슬을 모으기 위한 용도로 주어진 것이리라.
김명훈은 잠시 가방과 안전지대 바깥의 괴물들을 번갈아보았다.
그러고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다들, 들었지요?”
김명훈은 올라온 입꼬리를 내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미션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괴물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겁을 먹은 것이었고, 하나는 싸움에 대한 각오를 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다들 알 겁니다.”
김명훈은 칼을 꺼내 들었다.
“한 번, 잘해 봅시다.”
* * *
유원은 또다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하는 김명훈의 등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영악하고 선동적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바뀌어 버린 세계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잔혹해지고, 이기적으로 바뀐다. 어쩌면 김명훈의 변화는 그리 특별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게 더 자연스러운 변화지.’
그렇기에 유원은 김명훈과 같은 자들과 일일이 충돌할 생각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모두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뭐…….’
저벅-.
유원은 지하철역 아래로 내려갔다.
‘3번 튜토리얼이 끝나면 마주칠 일도 없을 거고.’
지익-.
유원은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 거꾸로 들었다.
쏴아아-.
가방에서 쏟아진 구슬이 새로 얻은 인벤토리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 개수가 족히 100개 이상은 됨직했다.
[마나의 정수] [132 / 50]3번 튜토리얼에 진입해서일까?
인벤토리 주머니 안에 들어간 구슬, 정수의 개수가 표시되었다.
유원은 가방을 바닥에 버리고는 인벤토리 주머니를 허리에 걸쳤다.
‘2번 튜토리얼에서부터 정수를 얻을 수 있던 건 운이 좋았어.’
마나의 정수는 3번 튜토리얼의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2번 튜토리얼에 나온 웜들에게서도 역시 정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유원은 2번 튜토리얼이 종료될 때까지 웜들을 사냥하고, 정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유원의 사냥 속도는 빨랐다.
이미 하루 동안 얻은 정수의 개수만 해도 튜토리얼의 통과 조건을 훨씬 넘어 있는 상태.
지금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유원은 4번 튜토리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 개쯤은 모을 수 있으려나.”
유원은 고작 130개의 정수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크르르르-.
시릭, 식-.
3번 튜토리얼이 시작되고, 지하철역 안쪽은 또 다른 형태의 던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스 웜뿐만이 아니라 좀비와 이끼거미, 지하뱀까지.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모여 있었다.
지하철은 역시나 홍대 구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던전이었다.
“많기도 하네.”
처음 던전에 들어온 사람을 향한 환영인사일까?
급속도로 모여드는 괴물들을 본 유원이 중얼거렸다.
“……다시 해볼까.”
쉬익, 쏴아아-.
유원은 손을 들어 올렸다.
주위에 퍼져 있던 마나가 유원의 마나와 뒤섞여 손바닥 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력 스탯 30.
그리고 ‘마나의 주인’의 숙련도는 0.5퍼센트.
처음 시도했을 때에 비하면 스탯이 4개가 오르고, 스킬의 숙련도가 조금 올랐을 뿐이지만…….
쉬릭, 쉬리릭-.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불안정하던 마나의 구체가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이나 집중했을까.
[‘마나포’를 완성하였습니다.] [‘마나포’가 스킬로 등록됩니다.]유원의 손 위에서, 완전한 형태의 마나포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