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60
그 목소리와 함께 향가의 선조가 몸부림을 치듯 몸을 일으켜 앉았다.
비쩍 마른 몸, 썩어 문드러진 살점. 남은 것이라고는 시커먼 피와 살뿐인 몸뚱이. 향가 선조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전 죽어 푹 썩어버린 시체 같았다.
그의 몸에 달린 혈관들은 살점에 묻힌 채 아등바등 살아보려는 듯 꿈틀거렸고 가슴팍에는 수많은 혈관으로 뒤엉킨, 주먹만 한 암적색 심장이 달려 있었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지만 그 심장에서 발산되는 것은 생기가 아니라 짙은 죽음의 기운이었다.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자의 강력한 기운이 거대한 회오리를 이루었다. 죽음의 기운을 대동한 회오리에서는 혼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났는데 회오리에 담긴 수많은 혼백의 포효 같았다.
동시에 분노와 두려움이 담긴 향가 선조의 눈빛이 한제를 향했다.
허나 한제는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균열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 그 회오리로 향했다. 그러자 회오리는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났다. 감히 한제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없어 밀려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가오는 한제를 바라보는 향가 선조의 두 눈에 담긴 두려움이 더욱 짙어졌고 이어서 오른손을 들어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발산되던 죽음의 기운이 즉시 거꾸로 회전하면서 칠석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운을 생기로 전환하는 방법인 칠석술 아래 그의 썩어 문드러진 육신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허나 한제는 칠석술이 완전히 마무리되기도 전에 달려들며 오른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펑! 펑!
“끄아악!”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향가 선조의 두 팔이 무너져 내리면서 썩어버린 살점과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향가 선조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하게 물러나 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허나 그가 수십 척도 물러나기 전에 한제가 서늘한 눈으로 다시 한번 손가락을 뻗었다.
콰쾅!
짧은 굉음과 함께 향가 선조의 썩은 두 다리가 동시에 터져버렸고 그의 몸은 거대한 흡입력으로 한제에게 끌려갔다.
어찌해볼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사지를 잃은 향가 선조는 어느새 한제의 손에 머리를 붙들린 상태였다.
한제는 과거의 원한을 따지지도 않고 곧장 체내 원력을 가동해 수혼술을 발휘했다.
“감히 나를 죽이려 하다니! 우리 향가는 원고 시대 동림가로부터 갈라져 나온 지파다! 또한 나는 동림가의 방계 혈통이야! 그런 동림태를 네가 감히 죽이겠다는 것이냐!”
향가 선조는 두 눈이 두려움으로 물든 와중에도 한제가 수혼술을 발휘하자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넌 동림성을 파괴하고 수많은 수련자들을 죽였다. 동림가의 선포를 어긴 넌 절대 편안히 죽지 못할 것이다! 너뿐만 아니라 네 벗들까지 흔적도 없이 소멸될 것이야!”
“시끄럽군.”
한제가 덤덤한 목소리로 툭 내뱉은 순간, 향가 선조의 몸뚱이는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머리만 남았다.
한데 향가 선조의 머리를 손에 쥔 채 수혼술을 발휘하던 한제가 돌연 고개를 들어 균열 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제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수많은 금빛이 사방으로 빠르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이어서 금색의 거대한 문 하나가 나타났다.
문에는 두 개의 오래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나의 성씨를 나타내는 문자였다. 아주 오래전, 심지어는 4대 성역이 갈라지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가문의 성이었다.
동림!
문이 열리면서 금빛이 쏟아져 나왔고 그 안에서 키가 수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금색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색 갑옷을 입은 거인으로 허상이 아니라 실체 같았다.
“동림성을 파괴한 죄! 이 수련성의 수련자들을 죽인 죄! 동림가의 사람을 다치게 한 죄! 세 가지 죄를 벌하기 위해서는 9대를 멸해야 할 것이다!”
금색 갑옷 거인은 포효하듯 외치며 오른손을 맹렬히 치켜들었다. 순간 번득이는 금빛이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검으로 변하더니 곧장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말도 참 많군. 내 일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 죽을 것이다!”
한제가 차게 내뱉으며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향가 선조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동시에 한제는 훌쩍 몸을 날리며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도고의 힘과 두 가지 본원이 합쳐져 형성된 힘이 순식간에 거대한 검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붉은 검이 나타나 돌진했다.
꽈광!
충돌의 순간, 금검(金劍)은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산산이 조각났다. 심지어 금색 갑옷을 입은 거인 역시 바르르 떨면서 거대한 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허나 붉은 검이 곧장 달려들어 그 거대한 몸을 꿰뚫었다.
콰쾅!
“크아악!”
거인의 체내에서 금빛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그는 거대한 검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한데 거인이 무너져 내렸을 때 거대한 문 아래로 금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다소 창백한 노인은 피를 한 움큼 토했는데 무척 놀란 눈빛이었다. 그는 환신술(幻神術)이 파괴되면서 어쩔 수 없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한제는 허공에 떠올라 덤덤한 얼굴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수준은 당시의 영동상인처럼 세 번째 단계에 반걸음 정도 들어선 상태였다.
“오늘은 이미 충분히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가보겠다. 날 막을 텐가?”
한제는 뒷짐을 진 채 일대종사와 같은 기세로 말했다.
금색 도포의 노인은 복잡한 시선으로 한제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내 포권을 하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귀하를 막을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허나 우리 동림성 사람들을 죽이고 동림성을 파괴함으로써 동림족의 선포를 어겼으니 저로서는 이 일을 장로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했다. 만약 동림성의 수련자들이 가로막지만 않았어도 그들을 죽일 일도 없었다.
“그들이 먼저 날 공격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한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말은 눈앞의 노인이 아니라 그 뒤의 금색 문을 향한 것이었다.
그 말을 남긴 한제는 한 걸음 성큼 나아가 파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크윽!”
한제가 떠난 뒤, 금색 도포의 노인은 더 이상 내상을 참아내지 못하고 연거푸 몇 번이나 피를 토했다. 그의 가슴은 이미 피로 흠뻑 물들어 있었고 안색은 매우 창백했다. 한제의 손짓 한 번과 붉은 검에 중상을 입고 죽음 직전에 이르렀던 기억을 떠올리니 간담이 서늘했다.
그때 등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일렁이는 빛의 파문과 함께 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마찬가지로 금색 도포를 중년 사내였다.
“어찌 공격하지 않았나?”
금색 도포의 노인은 가슴팍을 누른 채 몸을 돌려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선조께서 폐관수련 전에 말씀하셨지. 동림성이 파괴되면 우리 동림가는 다시 세상에 나타날 것이고 그것은 동림가에 재난이 될 것이라고⋯⋯. 게다가 저자는 이미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 내게 경고까지 했어.”
중년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제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자네와 내가 함께 공격했다 해도 저자를 묶어둘 수는 없었을 거야. 난 기이한 공법 덕분에 자네가 느끼지 못했을 기운을 느꼈네. 저자의 몸에서 두 강자의 기운이 느껴졌어. 좀 전에 보인 모습은 저자가 가진 능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해. 그러니 내가 어찌 나설 수 있었겠나? 가세. 이제 우리 부족은 많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자네와 나 둘만 깨어났으니⋯⋯.”
한데 말을 잇던 중년 사내가 급변한 얼굴로 노인과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반쯤 열린 문 안에서는 놀랄만 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 순간 희색이 돌더니 곧장 문 안으로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진 그곳에는 금색 대문만이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문 너머는 그 밖과는 다른, 얼음으로 뒤덮인 세계였다. 심지어 하늘의 구름마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둥둥 떠 있는 조각난 대륙들 아래로는 날카로운 검 같은 거대한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그중 중앙의 암석 조각 위에는 한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매우 아름답지만 서늘함이 느껴지는 여인의 몸은 이 암석 조각과 함께 얼음으로 봉해져 있었다.
여인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미간에서는 반점이 하나둘씩 나타나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고신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금색 도포를 입은 두 수련자가 다가와 공손히 섰다.
“신 장로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은 얼굴에 떠오르는 격앙된 표정을 애써 억누르며 입을 모아 외쳤다.
과거의 아름다운 꿈
여인은 당시의 모은미보다도 아름다워,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게다가 그녀에게서는 뛰어난 기상도 느껴졌다.
두 눈에는 우주가 담겨 있어 그 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다가는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쩌적 소리와 함께 그녀를 봉인하고 있던 얼음 조각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녀와 그녀가 있는 암석 조각을 뒤덮은 얼음층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인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미간에서 반점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면서 강력한 고신의 힘을 발산했고 이 힘은 곧바로 그녀의 온몸에 녹아들었다.
한참 뒤 여인은 두 눈을 번득이며 일견 유약해 보이는 손으로 허공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져 사방을 진동시켰다.
그 순간, 여인의 미간에서 회전하던 반점이 멈추더니 일곱 개의 보라색 별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7성급 고신.
여인이 고신의 모습으로 나타남에 따라 일목자가 왜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망월을 쫓았는지, 어째서 향가의 선조가 한제의 생기를 빨아들였는지가 밝혀진 셈이다. 향가의 선조가 빨아들인 생기는 다름 아닌 고신의 생기였던 것이다.
한제는 이런 사실을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나천성역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동안 절반 정도는 알아낸 상태였다.
향가 선조의 기억에 따르면 사실 그가 한제의 생기를 흡수한 것은 본디 자신을 위해서였다. 당시 한제는 본체와 융합하기 전이었으나 그럼에도 영혼의 연계를 통해 느껴지는 본체의 생기는 탐났기 때문이다.
허나 그가 생기를 다 빨아들이고 한제를 죽이려 한 그때, 원고 동림가에서 한 줄기 신식을 보내왔다. 향가 선조는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제는 수혼술을 통해 이런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파악한 상태였다. 이어서 그는 당시 일목자의 행동들을 떠올리며 몇 가지 사항을 추측했다.
‘원고 동림가⋯⋯.’
한제는 저 멀리 뒤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가문에 고신이 있다! 허나 그 고신이 원래부터 고신이었는지, 아니면 당시의 나처럼 계승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
한제는 시선을 거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쨌든 난 이미 경고했다.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자 이제 다음 일을 하러 가볼 시간이군. 요가 혈신자!’
한제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혈신자는 당시 나를 죽이겠다고 추격해왔다. 청수 사형이 아니었더라면 내 분신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겠지. 나를 죽이려 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게다가 혈신자의 체내에는 고요가 있지. 마침 지금 내 고요 분신에게 필요해. 그리고 그때는 요가의 여인에게 약속하지 못했지만 꿈에서 약속하면서 인과를 남겼으니 이제 그 인과를 마무리해야 할 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