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61
한제는 점점 먼 곳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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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성은 엉망이 된 상태였다.
이제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변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림성은 나천성역에서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였다. 그런 곳이 소멸됐으니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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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천성역 남쪽 성역.
백여 명으로 이루어진 수련자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말없이 질주하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한 여자 수련자도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녀는 묵묵히 일행을 따라 나아가는 중이었다.
젊었을 적에는 미인 소리깨나 들었을 법한 외모였으나, 안타깝게도 얼굴의 흉터가 그 아름다움을 가렸다.
암적색 흉터들은 서로 뒤얽힌 채 균열처럼 남아 있었다. 보통의 법술로는 지울 수 없는 이 흉터들은 여인이 스스로 그은 것들로 하나가 아물면 그 위에 또 상처를 냄으로써 원신에 새겨져 영원히 남을 터였다.
양의의 경계에 머문 그녀에게서는 깊은 피로와 혼란이 느껴졌다.
그녀의 가문은 연맹성역과의 전쟁 중 거의 다 죽어 이제는 몇 명만 남았다. 그녀를 가장 아꼈던 선조 역시 전쟁 중 중상을 입고 연맹성역 주작성에 있는 고신의 땅에서 그녀를 구하려다가 숨을 거두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심한 중상을 입은 채 나천성역으로 돌아왔다. 허나 가문은 이미 분열됐고 남은 가족은 없었다.
여인의 몸으로 전쟁 후 혼란스러워진 나천성역에서 홀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문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젊었고 아름다웠기에 그녀를 탐하는 자들이 많았다. 운해성역 귀원종의 여연비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허나 이 여인은 여연비보다 빠른 결단을 내렸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망가뜨림으로써 자신을 탐하는 시선을 차단한 것이다.
허나 이후로도 그녀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하나였다. 선조처럼 수준이 높고 강한 여자 수련자가 되어 나천성역에 자신만의 세상을 세우는 것.
허나 그 소망과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그녀의 마음에 새겨진 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일찍이 다른 이의 여자가 되어 몸을 바치고 그 대가로 수련을 이어가거나 보호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사람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를 타락시킬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어쩌면 그녀를 이미 잊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녀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 뇌선전에서 보았던 그를 잊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수련자를 이끌고 무너져 내리는 선계에서 나갈 길을 찾던 그를⋯⋯. 또한 그가 뇌선전에서 온 사람과 싸우던 모습을 뇌선 자리를 두고 펼쳐진 전투에서 상대를 물리치던 모습도 잊을 수가 없었다.
8백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억 속 그 사람의 모습은 그녀가 투쟁해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도 했다.
과거의 기억이 연기와 같이 머릿속에서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속한 수련자 무리 전방에 짙은 영기를 발산하는 수련성이 하나 나타났다.
백여 명의 수련자들은 그 앞에 멈춰 섰다. 이들을 이끄는 중년 사내는 고고한 얼굴로 뒤편의 수련자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여인에게 시선이 닿은 순간, 그의 얼굴에는 혐오의 빛이 드러났다.
수련자는 대부분 자신의 육신을 귀하게 여겼다. 육신은 수련의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 여인처럼 흉측한 모습을 한 이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 여인의 수준은 겨우 양의에 불과했고 홀로 돌아다니는 떠돌이 수련자에 불과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그녀를 업신여겼다.
“서자봉, 네가 원신으로 이 수련성의 궤도를 파악해봐라.”
규열기 중기의 중년 사내는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과거 아름다웠던 여인을 탐한 이들 중 하나였다. 허나 오히려 그렇기에 흉측하게 변한 그녀를 볼 때마다 불편함과 혐오감은 더욱 깊어졌다.
수련성을 옮기려면 일단 그 수련성의 궤도를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수련성의 궤도를 파악할 때는 반동이 강력해 원신에 해를 입게 된다.
서자봉은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사자님, 이전 세 개의 수련성 모두 제가 궤도를 파악했습니다. 아직 원신을 미처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니 가능하다면⋯⋯.”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년 사내는 미간을 팩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에 몸을 바르르 떤 서자봉은 입술을 깨물더니 말없이 수련성을 향해 나아갔다.
다른 수련자들은 그런 그녀를 안쓰러워하면서도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1천 년 전만 해도 서가는 나천성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가문이었는데… 그런 가문의 적계 혈통이자 그 아름다웠던 서자봉이 저렇게 될 줄이야⋯⋯.”
“보기 드물게 강인한 여인인데 아쉬울 따름이지.”
“아쉬울 게 뭐 있어? 수련이란 본디 잔혹한 일이야. 큰 전쟁 뒤에는 그녀보다 더 비참하게 살아가게 된 사람이 차고 넘친다고!”
서자봉은 입술을 깨문 채 전방의 영기가 충만한 수련성을 향해 날아갔다. 허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지난 8백간 그녀의 눈물은 모두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천천히 체내의 힘을 발휘한 그녀의 몸에서 부드러운 빛이 발산됐다. 동시에 그녀의 원신 한 갈래가 갈라져 나와 신식이 되더니 누구도 살지 않는 전방의 수련성을 향해 갔다.
곧이어 신식과 수련성이 닿은 순간, 서자봉은 이를 악문 채 신식으로 수련성을 힘껏 밀어냈다.
쾅!
회전하던 수련성은 신식에 떠밀리면서 우뚝 멈춰버렸다. 동시에 강력한 반동이 서자봉의 신식을 강하게 후려쳤다.
“쿨럭!”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낸 서자봉의 신식은 중간에서부터 찢겨 버렸다. 이에 원신이 손상된 서자봉은 하얗게 질린 채로 수백 척을 밀려나갔으나, 그 와중에도 다시 한번 한 줄기 신식으로 그 수련성을 떠밀었다.
콰쾅!
또다시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수련성은 강하게 진동하면서 궤도가 바뀔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반동 역시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져 서자봉의 신식을 또 한 차례 무너뜨렸다.
“큭!”
서자봉의 신식은 또 한 번 마디마디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원신은 중상을 입은 채 그녀의 체내로 돌아갔다. 피를 울컥 토해낸 서자봉은 육신이 덜덜 떨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고 안색은 잿빛으로 변한 상태였다.
“쓸모없는 쓰레기 같으니!”
차게 코웃음을 친 뇌선전의 사자는 앞으로 한 걸음 나와 서자봉을 그대로 지나치더니 소매를 휘둘러 수련성을 향해 신식을 쏘아 보냈다.
콰쾅!
수련성은 크게 진동하더니 까마득한 세월 동안 따라왔던 궤도에서 벗어났다.
“수련성을 옮겨!”
중년 사내는 두 손을 뻗어 그 수련성을 단단히 붙잡은 채 외쳤다.
백여 명의 수련자가 곧장 다가와 번득이는 은색 실을 수련성과 연결해 거대한 그물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내 그 그물로 뒤덮인 수련성을 동시에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때 한 노인이 서자봉의 곁을 스쳐 가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저물대에서 단약 한 병을 꺼내 얼른 건넸다.
“서자 도우, 나도 그때 자네와 같이 뇌의 선계에 있었다네.”
노인은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떠나갔다.
약병을 건네받은 서자봉의 눈빛이 감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병에는 진귀한 단약이 들어 있었다.
재빨리 단약을 삼키니 체내의 부상은 빠르게 회복됐다. 지난 8백 년 동안 살아남은 서가 사람들이나 벗들보다 지금처럼 한제 덕분에 뇌의 선계에서 살아나온 도우들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서자봉의 삶은 더 힘들고 고달팠을 것이 분명했다.
“뭘 멍하니 서 있어? 얼른 와서 수련성을 옮기지 않고! 쓰레기는 어쩔 수 없는 쓰레기라니까.”
뇌선전의 사자가 냉소했다.
“사자님, 서 도우도 뇌선전 사람입니다. 수준은 낮으나 신분은 저희와 다를 바 없지요. 아직 부상에서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렇게 질책만 하십니까? 잠시 쉬게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금 전 서자봉에게 단약을 건넨 노인이 다소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중년 사내가 번득이는 눈으로 노인을 노려보았다.
“내가 하는 일에 네놈의 간섭 따위는 필요치 않다!”
규열기 초기에 불과한 노인은 중년 사내의 번득이는 눈빛을 마주한 순간 엄청난 압박감에 가슴이 먹먹했다. 허나 그럼에도 노인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쳐들더니 냉소했다.
“서 도우가 당시 그를 마음에 품었던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감히 이러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중년 사내의 두 눈에서는 전보다 더 거칠고 험악한 빛이 번득였다. 심신도 바르르 진동했다. 그 역시 노인이 말하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또한 그가 보였던 모습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그자는 고작 양의의 수준에 불과했으나 그럼에도 그 앞에서는 불손한 모습을 보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특히나 연맹성역과의 전쟁에서 보인 놀라운 모습 앞에 자신은 미물만도 못한 존재임을 중년 사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떠났다. 이미 죽었을지도…”
중년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이 그 말을 끊어들었다.
“돌아온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 말에 중년 사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허나 이내 차게 코웃음을 치며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쓸데없이 말이 많구나! 서자봉, 너도 어서 수련성을 옮겨라!”
노인은 중년 사내를 한 번 노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자봉 또한 치료를 멈추고 이를 악물고는 신식으로 은색 실을 만들어 수련성에 연결했다.
허나 그 무렵, 중년 사내의 안색은 어두워져 있었다. 노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돌아온다면 어쩌시겠습니까!”
흐릿한 눈물
백여 명의 수련자들은 수련성을 끌고 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