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98
청림 역시 창백한 얼굴로 몸을 훌쩍 날려 우주 어딘가로 돌진했다.
“이건 원고 선역의 기운! 원고 선역이 돌아왔다! 홍삼자 남운자 청수, 함께 원고 선인들을 맞이하도록 하지!”
네 사람은 긴 빛을 그리며 우주로 향했다.
그 아래로 계내 수련자들 사이로 선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지난 사흘 동안 주작성에서 옮겨온 조각상이었다. 덕분에 이 조각상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뭇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터였다.
청림 등은 선계를 둘러싼 은하수 밖으로 튀어나가 십자 형태로 모여든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청수와 청림의 눈빛에는 공손한 빛이 드러났다. 감히 불손한 모습을 보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원고 선인은 그들에게 신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사도환만은 선계에 남아 죽일 듯한 눈으로 하늘을 노려보았다. 한제에게서 진실을 전해 들은 그는 원고 선역의 골짜기에 조금의 경외심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함과 혼란, 분노가 느껴질 뿐이었다.
“크아아아!”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지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십자로 모인 골짜기가 완전히 벌어졌다. 그리고 그 틈으로 사방에서 흡수된 빛이 기다란 벽돌 같은 덩어리 형태로 나타났다. 뒤이어 또 하나의 빛 덩어리가 나타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수백 개에 달하는 빛 덩어리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나타난 빛 덩어리들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곡차곡 쌓이면서 허공에 붕 떠 있는 거대한 계단을 이루었다.
이어서 골짜기 안에서는 온몸으로 금빛을 발산하는 인영들이 나타났다. 눈부신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낸 수십 개의 인영이 휙 하고 튀어나왔다.
“마침내 자유다!”
“우리가 돌아왔다!”
우렁찬 포효에 가까운 소리가 수십 개의 금빛 인영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이들은 모두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운은 동부 안에서 태어난 수련자의 기운과는 분명 달랐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골짜기 안에서는 계속해서 금빛을 발하는 선인들이 튀어나왔다.
그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청림 등은 신중한 표정으로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금빛에 휩싸여 있었다. 홍삼자와 남운자는 심지어 포권까지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격앙된 표정의 청림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금빛 인영을 향해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봉계 지존의 제자 청림, 원고 선인을 뵙습니다!”
하지만 원고 선인들은 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청림 등의 곁을 휙 스쳐 가 곧장 새로운 선계를 향해 달려들었다.
“향불! 향불이다! 향불의 기운이 진하지는 않지만 갈증은 해소할 수 있겠어!”
“하하하! 깨어나자마자 향불을 대령받을 줄은 몰랐군! 봉계 지존의 제자라고 했나? 훌륭하다! 하하하!”
선인들은 환호하며 새로운 선계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청림을 비롯한 네 사람은 반쯤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청수는 두 눈으로 붉은 빛을 번득이며 살육의 본원을 순식간에 온몸에 응집했다. 계내에는 그의 딸이 있고 새로운 선계는 그를 비롯한 모든 계내 수련자가 직접 세운, 자신들의 집이었다.
그런 공간을 파괴하려고 드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지 가만둘 수 없었다.
청수는 전방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이에 홍삼자와 남운자 역시 흠칫 놀라더니 정신을 차렸고 잠시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돌진했다.
그때까지도 청림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갈등은 다른 이들과 달리 매우 컸다. 그러나 수십 명의 선인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은하수에 만들어낸 거대한 틈 너머로 수만 명의 계내 수련자들이 두려움에 질린 모습을 본 순간, 그 역시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돌진했다.
“멈추게! 이곳은 우리 계내의 선계⋯⋯.”
허나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수십 명의 선인 중 일고여덟 명이 고개를 홱 돌리며 위협적인 금빛 눈을 번득였다. 동시에 그들은 청림을 비롯한 네 사람을 향해 크게 손을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선인 혈맥의 힘이 담긴 금빛 폭풍이 네 사람을 휩쓸었다. 청림과 홍삼자 남운자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겁도 없구나! 감히 선인들이 향불을 흡수하려는 것을 방해하려 들다니!”
한 선인이 냉소했다. 그 목소리에서는 무궁무진한 거만함이 느껴졌다.
화살
금빛 폭풍에 담긴 선인 혈맥의 힘은 계내 수련자들에게 마치 천적을 마주한 듯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 청림과 홍삼자 남운자는 진동하는 심신을 끌어안은 채 일제히 물러났다.
단 한 사람, 혈맥의 힘을 가진 청수만은 이 폭풍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곧장 금빛 폭풍에서 튀어나오더니 강력한 살육의 기운을 쏘아 보냈다.
허나 이미 늦은 것인지 선두의 십여 명은 이미 선계 상공에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계내 수련자들의 모습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중 몇몇은 수만 명의 계내 수련자들이 저항할 수 없도록 혈맥의 힘을 발휘해 대지를 압박했다. 그 와중에 선인 하나는 곧장 소하성역 여자 수련자를 붙잡더니 흡수하려 했다.
그때였다.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신식을 뻗던 어느 원고 선인의 웃음이 뚝 멈췄고 두 눈이 불룩 튀어나왔다. 마치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공포를 맞닥뜨린 듯 그는 이내 달달 떨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선인들은 일제히 흠칫 놀라고 말았다. 소하성역 여자 수련자를 흡수하려던 선인 역시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의 조각상이야! 이곳에 그의 조각상이 있다!”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새로운 선계에 들어온 수십 명의 선인들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그리고 신식을 뻗어 저 멀리 산봉우리 위의 조각상을 확인한 그들은 찬 숨을 들이마셨다.
여자 수련자를 흡수하려던 선인 역시 그녀가 도망치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듯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그자의 조각상이… 어찌 이곳에…?”
수십 명의 선인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떨었다. 3년 전 원고 선역에 나타났던 화살의 위엄을 그들이 잊었을 리 없었다.
한편,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도환은 곧장 손을 휘둘러 옥패를 하나 소환했다. 3년 전 주작성에서 술잔을 나누던 한제가 동부의 진실을 알려주고 떠나기 전에 준 옥패였다. 한제는 원고 선인이 강림하는 날 그들이 선계에 난입해 계내 수련자들을 해치려 하거든 곧장 이 옥패를 깨부수라고 해준 바 있다.
사도환은 소환한 옥패를 곧장 움켜쥐어 깨부수었다. 그 순간, 한제의 기운 한 줄기가 옥패 안에서 폭발하듯 발산됐다.
이곳에 난입한 선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그 기운이 나타난 순간, 선인들은 황급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하늘이 왜곡되듯 일렁이더니 한 사람의 모습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백발백의의 한제였다. 옥패에서 흘러나온 신식이 그의 모습을 허상으로 형성한 것이다. 허상인데도 불구하고 두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작, 현무, 청룡, 백호! 이것이 너희들이 말한 약속인가!”
한제는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며 새로운 선계 상공의 선인들을 노려보았다.
“꺼져라!”
그 목소리와 함께 피어오른 한 줄기 살육의 기운에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난 선인들은 창백하게 질려 재빨리 선계를 빠져나갔다.
그때,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옷을 입은 청룡이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수십 명의 선인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선계를 향해 포권을 했다.
“교육이 엄격하지 못했던 모양이군. 이해해주기 바라네. 이 일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가를 치르지. 다행히 사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니 이만 화를 푸시게나. 우리 원고 선역 선인은 계내의 수련자를 한 명도 죽이지 않을 것이네!”
한편 계외 태고 성신.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으로 서늘한 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그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이미 예상하고 사도환에게 한 줄기 신식을 남긴 옥패를 주었던 것이다.
선계에 난입했던 원고 선인들이 부리나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한제는 막 입을 열려다가 순간 굳어진 얼굴로 먼 곳을 내다보았다. 그러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벌떡 일어나 먼 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본디 하나였던 원고 선역은 후에 둘로 분열되어 각각 계내와 계외에 자리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연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계내 원고 선역이 열린 순간 계외의 원고 선역 역시 함께 열린 것이다.
계내와는 진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계외 태고 성신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은 이 격변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장존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가 바로 이 순간 한제의 계획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런! 이광의 화살로 계외의 원고 선역을 파괴하려 하는 것인가! 저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이곳이 동부계에 불과하다는 사실까지도!’
표정이 급변한 장존은 곧장 몸을 날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제 주위에 신식을 고정해두었던 모든 태고 성신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거의 동시에 한제의 꿍꿍이를 눈치챈 것이다.
한제는 전속력을 발휘했다. 태고 성신의 중앙에 있었기에 눈 깜짝할 사이 어디에라도 도착할 수 있었다.
우주에 녹아들었던 그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곳은 거대한 균열이 빽빽한 어느 성역이었다. 이 성역의 셀 수 없이 많은 균열에서는 콰쾅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제가 나타난 순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이는 이 성역에는 거대한 틈이 하나 나타났고 그 안에서 원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금빛 인영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원고 선인들이었다.
이들은 칠도종의 제자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이 따르는 존재는 칠채도존이 아니라 선비, 그중에서도 칠채선존이 위기의 순간 살기 위해 버린 그의 아내였다.
만약 이들이 그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면 나머지 선비의 통제에 따랐을 리 없었다. 이들은 당시 동부 안에서 벌어진 전쟁의 이유 중 하나이자 선비들의 마지막 필살기였다.
한제의 목적을 확인한 일곱 번째 선비는 급변한 표정으로 곧장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세 번째 선비 역시 떨리는 심신을 안고 빠르게 움직였다.
한편, 밖으로 나온 금빛 인영들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자신들을 기다리던, 백발백의의 수련자를 마주치게 됐다. 수준이 높긴 하지만 자신들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자였기에 선인들은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흥분에 겨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나왔다!”
“4대 장군도 모습을 드러내겠군! 그들을 죽이고 도통(道統)을 얻어 새로운 칠도종을 건설하자!”
“이 동부계의 모든 생명도 소멸시켜 이 동부를 새롭게 열자!”
고함을 지르며 튀어나오던 선인 중 하나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 곁에 이르더니 낮게 호통을 쳤다.
“이 녀석은 운도 나쁘군. 하필 지금, 여기 있다니. 내 너를 흡수해 향불로 삼아주마!”
그 순간,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서는 금빛이 번득였다.
“선강 대륙의 평범한 수련자 주제에 감히 스스로를 선인이라 칭하는가!”
한제의 눈에서 번득이는, 선인의 불멸체로 이루어진 핏방울과 융합된 금빛에는 지극히 순수한 선인 혈맥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 빛이 번득인 순간, 그에게 달려들던 선인은 흠칫 놀라더니 곧장 물러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뛰쳐나올 것처럼 두방망이질 쳤다.
“너, 넌 누구냐?”
한제는 대답 대신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이광의 활을 소환하더니 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겼다.
웅-!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에 화살이 매겨진 순간,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우주가 진동했다. 뒤로 물러나던 선인은 한제의 손에 들린 활에서 익숙함을 느끼고는 더욱 충격에 휩싸였다.
“저⋯⋯ 저것은!”
그는 활을 알아본 순간 표정이 급변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덜덜 떨며 후퇴했다.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들고 있는 저 활은 자신의 고향인 선강 대륙의 수많은 이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은 이광의 활이 아니던가!
그 선인의 머릿속에는 오직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다른 선인들도 한제의 손에 들린 활을 확인하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이광의 활!”
“이광의 활이다!”
선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원고 선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광의 활은 악몽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이 아무리 재빨리 움직여봐야 이광의 활 앞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장존도 불가능한 일이 그들에게 가능할 리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