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10
굉음과 함께 선인과 호랑이의 허상은 비명을 남기고 흩어져 사라졌다.
“크윽!”
백호는 수천 척이나 밀려났고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나 백호 장군은 칠도종의 4대 장군의 일인이다! 이 애송아, 잘 기억해둬라!”
백호 장군은 더는 도망치지 않았다. 비록 오늘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당함만은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작 장군이다!”
곁에서는 주작이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외쳤다.
“이 현무 장군도 있다!”
현무 역시 두 추격자를 노려보며 당당히 가슴을 폈다.
“칠도종? 천우주에 그런 종파도 있었나?”
백면 청년은 고개를 갸웃했다.
“칠도종이라고?”
반면 전씨 청년은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들어본 적이 있다. 허나 분명 매우 오래 전의 종파였지. 칠채선존이라던가? 그런 자가 종주였고 당시 어마어마한 강자였다지. 허나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 장군은 무거운 얼굴로 추격자를 노려보았다.
“종주가 아니라도 우리 칠도종에는 이 선강 대륙을 발칵 뒤집어 놓을 사람이 있다!”
백호가 불쑥 입을 열었다.
“선강 대륙을 뒤집어 놓을 것이라고?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우습기 짝이 없군!”
백면 청년은 피식 웃더니 전씨 청년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세 장군은 끝을 직감하고는 최후의 저항을 할 참이었다. 한데 그때, 어디선가 냉랭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래, 정말 우습구나.”
목소리의 등장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마치 바닷물과 융합되어 있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사방의 바닷물에는 층층의 파문이 일며 사방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그리고 그 파문 속에서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백의백발은 바닷물에 젖지도 않은 상태였다.
한제는 세 장군에게 달려들던 두 명의 녹마주 수련자를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한제!”
세 장군은 전혀 예상치 못한 한제의 등장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제는 그들에게 슬쩍 고개를 끄덕이더니 녹마주의 두 수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전씨 청년의 두 눈은 살기로 번득였다. 그는 한제에게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한제는 그저 공령기 절정 수준의 수련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무런 기색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울 뿐이었다.
‘은닉술이 뛰어난 모양이군. 허나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전씨 청년은 냉소하며 속도를 더욱 높여 이제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친구인 모양인데 황천길 동무를 하나 늘려주지!”
그러나 전씨 청년과 달리 백면 청년은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채 우뚝 멈춰 서더니 오히려 재빨리 물러나기 시작했다.
‘저자의 몸에서 흐르는 피비린내! 이 단해 안에서 엄청난 살육을 벌인 게 분명해!’
백면 청년이 수련한 공법은 피비린내에 매우 민감했는데 덕분에 그는 한제가 나타나자마자 질식할 듯 짙은 피비린내를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황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오른손으로 오른쪽 눈을 가렸다. 그러자 왼쪽 눈동자가 기이하게 회전했는데 그 눈에 비친 한제 주위로는 울부짖는 수천 개의 원혼이 떠다녔다. 단해 안에서 죽인 녹마주 수련자들의 혼이었다.
‘헙!’
이 광경에 기겁한 백면 청년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더욱 빨리 물러났다.
“황천길은 너 혼자 가게 될 것이다.”
한제는 싸늘하게 내뱉더니 전씨 청년을 향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에서 낮은 포효와 함께 검은 기운이 튀어나왔고 꼭두각시 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 속에서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잔인한 미소를 짓던 이사는 곧장 전씨 청년에게로 돌진했다.
청년의 수준은 범상치 않았으나 이사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때문에 이사가 나타난 순간, 전씨 청년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엄청난 위기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그는 기이하게 몸을 비틀더니 재빨리 물러나려 했다.
‘젠장, 대체 어떻게 자신보다 훨씬 강한 꼭두각시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공겁기 초기 수준의 꼭두각시를 부리다니, 저자의 정체가 뭐지?’
전씨 청년은 밀려드는 두려움을 느끼며 도망쳤다. 하지만 이사는 순식간에 청년을 따라잡더니 검은 안개로 휘감았다.
“으아아!”
뒤이어 먹먹한 신음과 함께 피가 터져 나오더니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무렵, 한제를 보자마자 달아난 백면 청년은 한제와 멀어진 상태였다. 이곳을 봉인하고 있는 금제와 융합해 순간이동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 청년을 덤덤하게 바라보던 한제는 가볍게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바닷물 표면에 파문이 응집되더니 거대한 손을 형성해 막 모습을 감추려던 백면 청년을 움켜쥐려 했다.
그 순간, 청년은 들고 있던 부채를 확 펼쳤다. 부채에는 만 마리의 말이 힘차게 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부채가 펼쳐지자 히힝 하는 말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청년 근처의 바닷물에서 말의 허상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그 수가 만 마리에 이르렀다.
콰쾅!
모든 말의 허상이 한꺼번에 거대한 손에 달려들어 충돌하자 바닷물이 진동했다.
이 진동에 거대한 회오리가 생겨나더니 바닷물을 급속도로 휘저었다.
콰르릉!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고 허상의 손과 말의 허상들은 차례차례 사라졌다.
백면 청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금제에 녹아들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 순간, 녹마주 근처 세 개의 거대한 깃발 아래 나타난 청년은 곧장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하얀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두 눈은 공포에 사로잡혀 흔들렸다.
“큰일이오. 전 사형이 죽었소! 천우주에 그런 수련자가 있었단 말인가! 이한제… 이름이 이한제라고 했소! 어서 이 일을 종파에 알려야 해!”
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얼른 닦아내며 말했다.
여인은 손 위의 나침반, 정확히는 그 안에서 번득이는 한제의 하얀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자는 이 금제를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게다가 이미 이 사실을 종파에 알려두었어요. 세 선조께서 운공 대사형과 함께 세 종파의 연합군을 보냈어요. 대사형이 단해를 제련해 반 개의 선단으로 완성하기만 하면 천우주의 장벽은 단숨에 뚫릴 거예요.”
한참 뒤에야 여인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운공 대사형?”
그 이름을 듣자마자 백면 청년의 눈빛에 담긴 두려움은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운공이 누구던가? 동주의 4대 천재 중 하나가 아닌가! 특정 종파가 아니라 녹마주 3대 종파의 공동 소속인 그는 세 종파의 신통술을 모조리 배웠기에 녹마주의 모든 수련자는 그를 대사형으로 모셨다.
“듣기로는 운공 대사형이 몇 년 전 북주(北洲)로 떠나 무봉 대천존 문하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했소. 지금은 그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을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요.”
백면 청년이 흥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 ★ ★
전씨 청년은 단숨에 육신이 무너져 내려 이사에게 흡수당했다. 원신은 한제가 거둔 상태였다.
백호와 현무, 주작 앞에서 한제는 전씨 청년의 원신을 샅샅이 조사했다.
탐색을 마친 그가 원신으로부터 손을 떼자 이사는 혀를 날름거리며 삼키려 했다. 허나 한제가 재빨리 그 원신을 봉인해 거두었다.
“크르르르.”
이사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아직 쓸 데가 있다!”
한제는 이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시선은 덤덤했으나 한편으로는 짙은 살기가 어려 있었다. 그 눈빛에 이사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한제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꼭두각시 이사에게 찍어둔 봉인은 더욱 강화됐고 이사는 한제의 명령에 저항할 수 없었다.
“다들 오랜만이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내 돌아선 한제는 복잡한 표정의 세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포권을 했다.
백호와 주작, 현무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한제, 녹마주가 움직이기 시작했네. 아마도 벼락처럼 끝맺으려 하겠지. 단해에 있던 천우주 수련자들은 대부분 죽었어. 우리는⋯⋯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지⋯⋯.”
현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녹마주에서 천우주에 쳐들어오려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야. 이전에도 몇 차례 이런 적이 있었지. 그때마다 대혼문과 귀일종이 힘을 합쳐 세운 진 덕분에 피해를 막을 수 있었어. 허나 이번에 녹마주에서 단해 안의 수련자들만 노려 공격한 것을 보면 뭔가 방도를 찾은 것이 분명해!”
주작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대혼문이나 귀일종에서는 지금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고 있을 게야.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 이 소식을 전해야 하네!”
백호도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긴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때가 아닌 것 같군. 일단 빠져나간 뒤에 다시 이야기하지.”
한제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소매를 휘둘렀고 해저에 여러 개의 파문을 일으켜 백호를 비롯한 세 사람을 감싼 채 돌진했다.
빠르게 질주하는 동안 이들은 녹마주 수련자들을 몇 차례 맞닥뜨렸지만 그때마다 허상의 화염이 상대를 불태워 없앴다.
첫 번째 만남
시간이 지날수록 녹마주 수련자들을 마주치는 빈도가 줄더니 어느새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