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09
한제는 자신이 과연 무슨 경지를 깨닫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전혀 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일주일 후, 서도는 다시 한제의 가게를 찾았다. 매우 귀한 느낌의 중년 남자와 함께였다. 그는 서도와 함께 공손하게 가게로 들어와서는 신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철퍼덕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꿇어앉아 한제를 향해 바닥에 이마를 세 번 찧었다.
한제는 그 사람을 훑어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사람이 서도의 주인, 즉 주무태가 죽이려고 했던 세자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 세자는 하늘에서 내린 귀한 사람이었지만 한제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인간이었다. 약간의 수련을 받긴 했지만 축기에도 이르지 못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였다.
세자는 머리를 다 찧은 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저물대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서도와 함께 한제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물러났다.
한제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두 사람이 떠난 지 한참 후에야 조각하고 있던 나무토막에서 눈을 떼고 세자가 놓고 간 저물대를 신식으로 살폈다. 그 안에는 대량의 영석이 들어 있었다.
영석이 들어 있는 저물대를 아무렇게나 한쪽에 던져둔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대문 앞에는 오래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 앉아 하늘을 구경하며 햇살을 즐기던 한제는 그 빛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지금의 생활이 퍽 마음에 들었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다면 온 가족이 이 가게에서 살았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 ★ ★
5년이 지나갔다.
대우의 아버지는 결국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대장간 앞에는 하얀 천이 내걸렸고 그 안에서는 애달픈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제는 가게 앞에서 맞은편의 대장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20년 전 자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던 그 호쾌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호쾌한 남자가 가게를 넓힐 자금을 빌리기 위해 어렵사리 말을 꺼내던 모습이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한제는 그의 집에서 몇 번이나 식사를 했는지, 얼마나 많은 술을 먹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돌고 도는 천도는 한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생로병사는 그가 깨달은 천도의 일부였다. 하늘의 뜻을 거슬러 상대의 수명을 몇 년 더 늘려준들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거스른 행동 때문에 더 안 좋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산은 수련자로서 그 자체가 이미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제는 그의 영혼을 뽑아 새로운 생명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대우의 아비는 수련자가 아니었다.
한제는 가게 앞에 서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에는 언젠가부터 검은색 꽃잎이 달린 꽃이 한 송이 들려 있었다. 이 꽃은 인간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령단(驅靈丹)을 만드는 재료 중 하나였다.
일반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혼이 완전히 흩어지지 않았을 때에 이 꽃은 그 영혼을 응결시킬 수 있다. 그러면 그 영혼은 윤회의 흐름 속에서 더 많은 힘을 얻어 더 좋은 환경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돌고 도는 천도
한제는 비틀거리며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우의 숙부와 고모들이 슬픈 얼굴로 서 있었다. 깊은 슬픔이 대장간 전체에 드리워져 있었다.
시신은 대장간 뒤뜰 방에 있는 관에 얌전히 누워 있었고 대우와 그의 아내가 그 옆에 꿇어앉아 있었다. 대우는 어찌나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 옆에는 대우의 어머니가 애통한 눈으로 관에 누운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깊은 절망이 가득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한제는 이 부부 사이의 정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았다.
한제가 들어가자 이웃들과 대우의 숙부들이 일어섰다. 이 일대에서 한제는 이미 상당히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대우의 어머니는 한제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위로한 한제는 향을 건네받은 뒤 불을 붙여 고인을 추모했다.
그가 시신을 향해 절을 하자 순간 바깥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신에서 느릿하게 피어오른 검은색 기운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더니 대우 아비의 모습을 이루었다. 그를 품고 있는 시신은 너무나 차가웠고 얼굴은 창백했다. 온몸이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멍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한제에게 닿았다. 사방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오직 한제만이 흑백의 구분이 뚜렷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은 꽃을 가루로 만들어 천천히 뿌렸다. 일반인은 볼 수 없는 빛으로 변한 꽃가루는 대우 아버지의 영혼에 떨어졌다. 그는 더 이상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한제를 향한 그의 눈에 감격한 빛이 어렸다.
이제야 그는 20년간 이웃해 살았던 자신의 동생 같은 자가 일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허공에 떠 있는 그는 꿇어 엎드리더니 한제를 향해 머리를 몇 번 찧었다.
그리고는 못내 아쉽다는 눈으로 자신의 아내와 대우를 한 번 바라보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향해 계단을 걷듯 올라갔다.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간 그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그때, 어린 목소리가 한쪽 구석에서 들려왔다.
“아빠, 엄마! 나 할아버지를 봤어요!”
대우의 아이였다. 이제 9살이 된 아이는 놀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코를 찡그리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제는 관 안에 창백하게 굳어 있는 시신을 보았다. 지난 20년간 그는 매해 마다 변화를 겪으며 장년에서 노인으로 바뀌어갔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
‘돌고 도는 천도에서 벗어날 수는 없구나.’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대우의 어미를 바라보았다. 당시에는 서른에 불과했던 여인이 지금 쉰이 넘었다. 그녀의 몸에는 지난 20년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제의 시선은 다시 대우에게로 옮아갔다. 20년 전 그의 가게 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씩씩하게 말을 걸었던 꼬마는 지금 완연한 성인이 되어 아내와 아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임종을 맞고 있었다.
마치 작은 나무가 20년 동안 비바람과 여름의 햇살을 겪으면서 천천히 자라나 한겨울 추위와 태풍도 견딜 수 있는 커다란 나무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 한제는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점점 더 깊어졌다. 일반인으로 살아온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생각만 해오던 천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언제 대장간을 떠나 자신의 가게 화롯가에 앉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텅 빈 머릿속에는 오직 단 하나의 생각만이 존재했다.
대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대우는 지난 20년간 한제와 매일 접촉했다. 한제의 머릿속에는 변화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한제는 점차 무형의 힘이 세 사람의 몸에 드리우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의 존재는 대우의 부모를 조금씩 늙어가게 했으며, 대우를 점점 자라나게 했다.
한제는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두 눈에는 형용할 수 없는 빛이 번득였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이 하늘로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몸은 가게를 벗어나 점점 더 높은 곳에 이르고 있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와중에 한제는 수많은 일반인들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모두 그 힘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심지어 풀과 나무, 꽃을 비롯한 만물에도 그 힘은 존재했다. 말하자면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었다.
이 힘은 하늘에서 기인했다. 한제는 무의식적으로 그 힘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천천히, 한제는 자신이 점점 더 높은 곳에 이르고 있음을 느꼈다. 발아래 펼쳐진 수도는 갈수록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제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황토색 별이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그 힘의 근원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힘이 온 별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제는 본래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직 등화원에게 복수하기 위해 4백 년간 칼을 갈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는 강직하기도 했다. 작고 나약한 일개 수련자에서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고집과 강직함으로 한제는 그 힘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완전히 본능에 따르고 있었다.
그의 몸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갔지만 그가 그 황토색 별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때, 갑자기 멀리서 거대한 유성 같은 돌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 돌 위에는 백발의 노인 하나가 올라앉아 있었다.
노인은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한제 옆으로 다가왔다.
“이 버려진 수련성에 이렇게 깊은 깨달음을 얻은 수련자가 있다니. 하지만 넌 겨우 원영기 수준에 불과하니 화신기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지나친 탐욕을 부리지는 말거라. 천도를 계속 탐구하려 해봐야 천년만년 걸려도 그 근원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전에 네 육신이 썩어버리겠지. 잘 생각해본 것이냐?”
한제는 흠칫 놀라며 노인을 올려다봤다. 노인은 허허 웃으며 한제를 자세히 살폈다.
“이 천운자가 오늘 아주 좋은 연을 맺었구나. 만약 그 버려진 수련성에서 나올 수 있다면 천운성(天運星)에서 날 찾아라. 그럼 널 수련생으로 받아 1백 년 동안 가르쳐줄 테니까!”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한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제는 자신의 몸이 거대한 힘에 세차게 밀리는 것을 느꼈다.
보이지도 않던 수도가 손톱만 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그의 몸은 수도 서쪽의 거리에 있는 자신의 가게로 돌아와 있었다.
눈을 번쩍 떴을 때, 한제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땀에서 비리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축기 이후 이렇게 냄새나는 땀을 모공으로 배출한 것은 손에 꼽았다.
한제의 눈에 밝은 빛이 번득였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목재 하나를 들어 빠르게 조각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나무 부스러기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조각을 하는 동안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한제가 오른손에 들었던 조각칼을 내려놓았을 때, 그의 앞에는 백운종의 그 푸른 옷의 노인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 조각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조용히 그 조각을 들여다보던 한제는 한참 뒤 그것을 중년 문인과 노파 조각이 있는 선반에 나란히 얹어놓았다.
작업을 마친 그는 몸을 일으켜 뒤뜰로 나갔다. 그곳에서 몸을 한 번 깨끗이 씻은 그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가게 안으로 돌아왔다.
천도의 깨달음으로 그의 경지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원영기 중기에서 곧장 원영기 후기 절정에 이르게 됐다. 이제 화신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좀 전의 일을 떠올린 한제는 약간 두려워졌다. 만약 스스로를 천운자라 칭한 그 노인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그 변화막측하고 신비로운 천도를 찾다가 그 굴레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천도를 깨닫는 것은 분명 쉽고 편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 위험도 많았다. 한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화신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천도에 대한 한제의 이해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였다. 그는 자신이 곧 화신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그는 푸른 옷의 노인이 보인 세월의 경지를 조각으로 새기는 데 성공했다. 노인의 경지는 돌고 도는 천도를 모방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천도를 깨달은 한제가 보기에 푸른 옷의 노인이 보인 세월의 경지는 천도의 흉내일 뿐, 진정한 천도는 아니었다. 이 돌고 도는 천도는 화신기 수련자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금 한제의 머릿속에는 한 폭의 별 그림이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천운자가 남긴 것으로 주작성에 비해 몇 배는 더 큰 별이었다. 그 별은 천운자가 사는 천운성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가는 것은 지금 한제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마음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그는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천도를 깨달았던 그 순간의 일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 ★ ★
또다시 10년이 흘러 한제가 이 거리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는 이미 완연한 노인이 되어 머리가 온통 희었으며 얼굴에는 깊고 진한 주름이 더 늘어 있었다.
대우의 어미는 슬픔으로 인한 병이 깊어져 7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제 대장간은 온전히 대우에게 달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가정을 지켰고 아내를 사랑했으며, 이미 장성한 아이에게는 매일 대장간 일을 배우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사람만 달라졌을 뿐, 30년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3년 전, 대우의 아들 증소우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수련자가 제자로 받아들여 백운종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해, 자신을 제자로 받아준 수련자에게 증문탁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이 신선을 쫓아 수련을 하러 떠났다는 사실에 대해 대우는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다.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그 이야기를 꺼내놓는 통에 곧 동네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증문탁이 수련자의 길을 따르게 된 일에 대해 한제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일찍이 소우가 어렸을 때부터 한제는 그 아이에게 신선의 영맥이 흐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자질은 당시의 한제보다 몇 배는 뛰어났다.
한제가 수도에서 일반인의 삶을 사는 동안 유일하게 계속해서 접촉해온 것은 대우네 가족뿐이었다. 때문에 한제는 소우가 어렸을 때부터 종종 그에게 체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단약을 복용시켰다. 덕분에 소우의 자질은 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었으니 백운종 수련자의 눈에 든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백운종 수련자는 비록 결단기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를 몰래 살펴본 한제는 그의 천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상태였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손대주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