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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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업을 마친 한제의 얼굴은 한층 진지해졌다. 칼집에 떠오른 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두 손으로 결인한 그는 한 줄기의 푸른색 영기를 토해냈다. 그 영기가 닿자 칼집 안에서 푸른색 불꽃이 일며 이글이글 타올랐다. 허나 그 불꽃은 뜨겁기는 커녕 사방의 온도를 급격하게 떨어뜨리며 서늘한 한기를 몰고 왔다.
한제는 신중하게 그 차가운 불을 통제하여 정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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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천천히 흘러 또다시 사흘이 흘렀다.
시음종 밖의 평원. 양유재는 마치 유성처럼 착지했다가 순간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음종 안, 그의 수련지였다. 양유재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내내 그는 속으로 다른 세 마도 문파와의 연합을 통한 이익과 손해를 계산했다.
백 년 전 역외 전장에 참여할 자격을 경쟁하는 시합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마도였지만 이번에는 흑천이 있는 정도 현도종이 참가해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것이 어느 쪽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이마를 짚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흑천 그 자식, 제거해버릴 수 없어?”
거친 목소리가 양유재의 몸속에서 흘러나왔다.
“그 자식의 수준이 원영기 중기라고는 하지만 이미 절정에 이르러 있어. 운이 좋으면 백 년 안에 후기에 진입해서 3성 수련국의 고수가 되겠지. 내가 네 몸을 완전히 차지하고 난 뒤라면 그런 녀석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양유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참 후에야 오른손을 한 번 흔들어 옥패 하나를 소환했다. 이 옥패는 비취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위에 피와 같은 색으로 아주 작고 가늘게 그려진 상징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77번에서 99번 사이의 동굴에 있는 축기 제자들은 36번 동굴로 모이도록.”
양유재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 구석에 며칠 째 봉인되어 있는 백치를 바라보다가 뭔가 결심한 듯, 다른 옥패를 꺼내 이마에 잠시 올려놓았다가 내던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목용은 두 눈을 뜨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3년 전에 축기 초기를 돌파해서 다행이군. 덕분에 87번에서 72번 동굴로 이동했으니까. 그러지 않았다면 이번에 꼼짝없이 목숨을 잃었을 거야.”
순간 푸른색 연기가 조용히 그의 앞에 나타나 하나의 옥패 모양을 이루었다.
깜짝 놀란 목용은 그것을 신식으로 훑어보고는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두 말 않고 몸을 돌려 한제가 수련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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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한제가 머물고 있는 동굴에 이르렀다. 입구는 봉인되어 있었다. 목용은 입구를 누르며 영기를 살짝 내뿜어 몇 번 흔든 뒤 소리쳤다.
“스승님, 시조님께서 축기 수준의 제자들을 36번 동굴로 부르셨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목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방금 양유재가 그에게 전한 내용으로 미루어 한제는 그다지 예쁨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시조는 이전에도 그를 단단히 감시하라고 특별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가?
물론 목용은 그런 사실들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때, 봉쇄되어 있던 동굴 입구가 양쪽으로 천천히 열렸고 한제가 피곤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목용은 한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스승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한제는 그 질문에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짙은 남색의 옥패를 내밀며 말했다.
“안내해주게.”
목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제가 속으로 차갑게 비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지난 며칠간 정복 작업을 지속한 끝에 이제 칼집의 5분의 4에 해당하는 위치까지 비검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되면서, 비검의 위력도 상당히 강해졌다. 따라서 한제는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생겼다.
많은 동굴을 지나치며 앞으로 한참 나아간 끝에 두 사람은 거대한 동굴에 이르렀다. 그 안에 우뚝 솟은 16개의 석주 위에는 각각 푸른색 불덩어리가 넘실대고 있었다. 어스름한 빛이 가득한 이곳에는 음산한 기운이 충만했다.
동굴에는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 그들 뒤에는 관이 하나씩 떠 있었는데 저마다 모습은 달라도 모두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풍겼다.
한제를 안내한 목용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이곳을 떠나갔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직감한 그는 재빨리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그럴수록 의혹은 더욱 커졌다. 이곳에 있는 자 대부분은 막 축기에 진입한 수준이었고 이상하게도 모두 잔뜩 굳어 있었으며, 전혀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축기 중기에 이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축기 후기에 이른 사람은 세 명이었다.
한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16개의 불덩어리들이 꺼지면서 양유재의 모습이 기척도 없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가 나타난 순간, 한제는 다른 제자들의 눈이 타오르는 듯 번득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유재의 시선이 사람들을 훑었다. 그러다가 한제에게 시선이 닿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백 년에 한 번 역외 전장이 열린다. 그곳에 참가할 자격을 얻으려면 정도 문파와 경쟁을 해야 한다. 이번 경쟁에는 관례대로 결단기,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는 참여할 수 없다. 잠시 후 너희는 다른 마도 종파의 제자들이 모일 곳으로 전송될 것이다. 그곳에 도착한 뒤 우리 시음종의 대표는 두진이 맡는다. 두진, 앞으로.”
검은색 옷의 중년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축기 후기 수준인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이미 결단기 경계에 이른 상태였다.
“이건 역외 전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영패다. 네가 맡아 보관하도록. 이번 경쟁의 목표는 상대의 영패를 빼앗는 것이다. 또한 마도의 다른 세 문파도 조심해야 한다. 다섯 명을 죽이면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으니.”
양유재는 말을 마친 뒤 두진이라는 남자에게 영패 하나를 던졌다. 그리고 세 개의 옥패를 꺼내들더니, 차가운 눈으로 한제를 응시했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양유재를 마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영혼의 한 조각을 뽑아내 옥패에 봉인했다. 그러지 않은 사람은 너 하나뿐이지.”
양유재는 느릿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한제는 말없이 혀끝을 깨물어 피를 한 움큼 뱉어낸 뒤 오른손으로 이마를 눌렀다. 순간 노란색 빛이 번쩍이더니 뱉어낸 피가 한곳으로 모여들어 금빛의 피 구슬을 이루었다.
이는 영혼의 조각을 뽑아내는 것으로 일전에 양유재가 그에게 준 짙은 푸른색의 옥패에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한제가 금빛의 피 구슬을 집어 들자 금빛 무지개가 뻗어 나와 양유재의 손에 들린 옥패 중 하나에 쏘아졌다. 양유재는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한제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상대가 이렇게 쉽게 굴복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원래 그는 한제가 반항하면 곧장 그를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상대를 제물이나 몸을 의탁할 시체로 삼을 생각은 더는 없었다. 그가 보기에 한제는 수련하고 있는 공법이 뛰어나다고 쳐도 자질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다른 제물이나 시체 중에는 더 자질이 뛰어난 자가 많았다. 그는 이미 신체를 빼앗을 대상을 백치로 결정한 상태였다.
양유재는 한제를 훑어본 뒤 소매를 휘둘렀다. 순간 동굴이 크게 진동하며 원형의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시커먼 어둠으로 들어찬 그 안쪽에서 강한 흡인력이 일고 있었다.
양유재는 모든 사람의 영혼이 봉인된 세 개의 옥패를 축기 후기의 세 사람에게 넘겼다.
한제는 의혹이 더욱 짙어졌으나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축기 후기의 세 사람을 기억해두었다. 한제의 영혼이 봉인된 옥패는 이제 그들 손에 들려 있었다.
“들어가라.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양유재가 덤덤하게 말했다.
두진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뒤 가장 먼저 거대한 문 안으로 들어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제도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다른 자들을 따라 거대한 문 안으로 들어섰다.
강도 (1)
모두가 떠난 뒤, 동굴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유재, 저 중에는 그 녀석의 피와 살도 있다. 시체들이 그 피와 살을 흡수하면 그 힘이 폭발적으로 높아져, 그들은 곧장 결단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럼 역외 전장에 참여할 자격은 간단하게 손에 넣을 수 있어.”
양유재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한제 체내의 음한기는 굉장히 순수해. 분명 그 녀석의 몸에 뭔가 비밀이 있는 거야. 몇 년 전만 됐더라도 조사해봤겠지만 이제 난 3개월도 살지 못해. 역외 전장이 시작되는 날이 바로 내 몸을 완전히 뺏기는 날이지. 그러니 그런 것들은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이미 그를 제물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니 차라리 그를 시체로 만들어 다른 시체들에 힘을 더하게 하는 편이 나아.”
양유재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찰, 백치를 결단기 수준으로 올려줘. 그 녀석은 내 제물이 될 거야. 그리고 역외 전장이 열리면 나를 도와 적당한 시체를 하나 찾아줬으면 좋겠군. 대신 내가 이상한 숲으로 가서 지작 대인이 오태우를 삼키도록 돕지.”
그가 말을 마치자 거친 목소리의 주인은 미친 듯이 웃으며 그의 제안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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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명곡(決明谷)은 조나라의 남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계곡이 굉장히 넓었다. 심지어 숲과 개울도 몇 개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백 년에 한 번씩 역외 전장에 참여할 자격을 경쟁하는 장소인 이곳은 항상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골짜기 안의 한 공터에 갑자기 거대한 문이 나타나더니 각자 관을 하나씩 가진 사람들이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걸어 나오자 거대한 문은 점점 빛의 결정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가장 끝에 서 있던 축기 후기 수준의 세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며, 두 말 않고 손에 쥐고 있던 옥패를 으스러뜨리려고 했다.
줄곧 자신의 영혼이 든 옥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주시하고 있던 한제는 그 세 사람이 옥패를 눌러 으스러뜨리려고 한 순간 두 말 않고 녹색 검을 토해냈다. 이어 녹색 검이 번쩍이며 예리하게 상대의 목을 노렸다.
녹색 검이 나타나자마자 주위의 한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이 비검은 혈련술을 통해 한제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황천승규결의 수련으로 한제 체내의 영력에 변화가 생긴 뒤 역시 변화를 겪은 상태였다. 덕분에 비검에서는 어느새 극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비검에서 흐르는 한기는 그 기세가 굉장해 사방의 풀과 꽃들을 스치는 동시에 얼어붙게 만들어 버렸고 옆에 있던 축기 초기의 수련자들조차 순간 몸을 뻣뻣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들의 피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속도로 결정화되어 갔다.
한제의 영혼이 든 옥패를 들고 있던 자는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녹색의 비검이 그의 앞에서 자취를 감출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그는 다급하게 방어용 법보를 꺼내들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비검은 상대의 10척 앞에 나타났다가 녹색 빛을 번쩍이며, 그의 목구멍을 관통했다. 피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그 시체가 쓰러지기도 전에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자신의 영혼이 담겨 있는 그 옥패를 잡아채 저물대에 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때 남은 축기 후기의 두 수련자는 이미 옥패를 부순 상태였다. 분홍색의 연기가 부서진 옥패로부터 피어오르더니, 마치 성난 파도처럼 고리 모양으로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갔다.
시음종 제자들이 시체를 넣어둔 관들이 하나하나 터져 분홍색 연기로 흩어지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그 관 안에서는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관 안에 있는 누군가가 손톱으로 관을 긁는 소리 같았다. 반면 그 관의 주인들은 모두 무슨 술법에 걸리기라도 한 듯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