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88
“10년의 시간을 주겠다. 이 세상의 일반인들로부터 각종 원한의 기운을 모아오도록 해라. 많을수록 좋다. 만약 네가 날 만족시킨다면 이 수련성에 내가 있는 한 너희 가문은 대대로 번성할 것이다. 가거라.”
한제는 말을 마친 뒤 소매를 휘둘렀다.
장신해는 미친 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빽빽한 구름과 안개로 가려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산 아래였다.
좀 전의 일이 꿈처럼 느껴진 장신해는 미간을 더듬어본 후 온몸을 짙게 채운 생기를 느끼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는 산봉우리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흥분한 기색이 어린 눈으로 몸을 돌려 황급히 떠나갔다.
한편, 장신해를 보낸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저물대에서 존혼번을 꺼냈다. 거대한 깃발은 한제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바위에 꽂혔다. 이어 그 안에서 혼백들이 튀어나와 산봉우리를 맴돌았다. 세 개의 주요 혼백도 사방으로 녹아들었고 순식간에 온 산봉우리에는 짙고 검은 안개가 드리웠다.
한제가 오른손을 뒤로 휘두르자 곧장 거대한 힘이 그의 손가락에서 발산되어 산봉우리 내부로 떨어졌다.
펑! 펑!
폭발음이 연달아 들리더니 삽시간에 거대한 동굴 하나가 생겨났다.
한제가 오른손 검지를 휘두르자 보일 듯 말 듯한 낙인이 담긴 한 줄기 선결이 동굴 입구 위의 바위에 찍혔다.
모든 작업을 마친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신식을 펼쳐 다시 청령성을 훑었다. 이번에는 그저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언을 보내기 위한 신식이었다.
“오늘부터 이곳은 나의 수련성이다! 횡운산 봉우리로부터 1만 리 안을 금지(禁地)로 정할 것이니 그 누구도 방해치 말라.”
한제의 전언은 엄청난 위엄을 품은 천둥처럼 온 청령성 하늘과 모든 수련자들의 귀에 울려 퍼졌다. 그 전언을 들은 모든 수련자들의 낯빛은 크게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이의를 표하지는 못했다. 온 수련성에 전언을 퍼뜨릴 정도의 수련자라면 자신들이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한제는 청령성의 주인이었다. 혈성 안에서 생사의 모든 권리를 장악하고 있는 혈조처럼, 천운성 안에서 지존의 신분인 천운자처럼.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5년이 지났다. 그 동안 청령성의 모든 수련자들은 수준을 막론하고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장신해는 한참 고민한 끝에 한제의 명을 모든 수련자 가문에 공개했다. 그리고 장가는 한제의 사자 신분을 갖게 됐다.
5년 동안 수련자들은 각각의 지역으로 떠나 일반인들의 체내에 존재하는 원한의 기운을 모아왔다. 허나 청령성에 그토록 많은 일반인이 살고 있음에도 필요한 원한의 기운 중 4할도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약속한 시간의 반이 지나자 장신해는 초조해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최대로 속도를 내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자신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일반인 세상에서 끊임없이 그 원한의 기운을 모았고 장가 사람들도 응기기 5단계 이상에 이르기만 하면 모두 파견됐다.
한편 이 5년 동안 한제는 줄곧 횡운산 봉우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법보를 제련했다.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원신에 넣어둔, 산과 강이 그려진 병풍이었다. 심하게 파손된 이 병풍은 한제의 원신 안에서 전광과 융합되면서 끊임없이 복원되는 중이었다. 선계의 바위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홍접의 남색 장미와 결합된 왕관은 오랫동안 연구해도 결국 파악하지 못했다.
한제는 이 법보들을 자신이 본 세 번째 단계의 방향과 맞게 제련했다.
이어서 곤극 채찍을 꺼내 들었다. 이 곤극 채찍의 신통력에 담긴 단점 때문에 이전까지 그리 중히 여기지 않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곤극 채찍은 날카로움으로 따지면 선검이나 굽은 칼만 못 하고 방어력으로 따지자면 존혼번과 산수도 병풍만 못 하며, 신통력으로 따지자면 선계의 바위나 사신차만 못 하다. 허나 곤극 채찍은 내가 가진 모든 법보 중 유일하게 내가 보았던 세 번째 방향을 포함한 물건이다! 정말로 기이한 일이야.”
한제는 곤극 채찍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채찍은 무척 평범해 보였지만 당시 천귀(天鬼)는 이 채찍질 한 번에 거의 흩어져 버렸다. 이를 통해 한제는 이 채찍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신을 뽑아내는 것은 본원의 도에 부합하지. 인과로 말할 것 같으면 본체를 인으로 원신을 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 물건은 인과의 길 중 과에 속하는 도구다.”
한제는 밝은 눈빛을 번득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경지는 생사윤회의 도에서 점차 인과의 도로 전환되고 있었다. 이 도는 너무나 커서 그가 파악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지금 나의 깨달음으로는 아직 인과의 경지를 실질화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곤극 채찍으로 인과의 경지를 응결시키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거야. 그 정도면 뇌의 선계를 돌아다니는 데 무리는 없겠지.”
잠시 침묵하던 한제는 눈을 번득이면서 곤극 채찍을 들어 짝 소리가 나도록 휘둘렀다. 채찍 소리가 귀에 박히면서 심신을 뒤흔드는 듯했다.
“너를 내 경지를 의탁하는 법기로 삼겠다.”
한제는 기이하게 번득이는 눈으로 채찍을 두 무릎 위에 올려놓더니 눈을 감고 집중해 제련을 시작했다. 법보에 경지를 녹여 넣으려면 심신의 연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 ★
몇 번의 계절이 오고 가면서 어느덧 3년이 흘렀다.
한제가 이 청령성에 머문 지도 8년째였다. 지난 8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청령성 수련자 중 장신해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한제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횡운봉의 주인과 청령성의 선조라는 칭호는 모든 수련자의 마음에 갈수록 깊게 남았다. 특히나 횡운봉 밖에 드리운 시커멓고 빽빽한 검은 안개를 볼 때면 그들은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물론 감히 그 검은 안개 속으로 파고들어 청령성의 선조에게 도전하려 한 수련자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로 검은 안개에 삼켜졌고 곧이어 그 안개 속에서는 서글픈 곡성이 들려왔다. 그 곡성은 다른 수련자들에게 감히 이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았다.
허나 한제는 길을 잃고 그 안에 들어선 자들까지 죽이지는 않았다. 존혼번 안에 담긴 한제의 신식은 안개 속에 발을 들인 자가 길을 잃고 어쩌다 들어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을 품고 들어온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인과의 경지를 의탁한 법기(法器)
지난 3년 동안 한제는 온 정신을 기울여 법보를 제련했는데 그를 성가시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허이국이었다. 허이국은 한제의 저물대에 걸려 있는 봉인을 풀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성가시게 굴었다.
그러던 중, 한제의 두 무릎 위에 놓인 곤극 채찍이 마침내 경지와 융합했다. 신식으로 조종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했고 인과의 경지에 융합한 뒤 변화가 생겨 위력 또한 전보다 더욱 강해진 상태였다.
한데 바로 그때, 그 감격스러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한제 이 녀석아! 아직도 이 허이국을 내보내주지 않을 작정이냐? 내가 지금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아느냐? 걱정 마라, 절대 너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 둘의 주종관계만 바꾸면 된다.”
허이국의 목소리는 시끄러웠고 그 안에 담긴 패기 또한 거슬렸다.
한제는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기에 참아왔는데 허이국은 이를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착각한 탓에 갈수록 오만방자해지고 있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저물대를 두드리고 차갑게 외쳤다.
“닥쳐!”
“어허, 감히 이 할아비한테 그런 말을! 한제야, 네가 지금 상황 판단이 잘 안 되는 모양이구나. 난 이미 더 이상 그 옛날의 허이국이 아니라니까.”
허이국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저물대 안에서 한 덩어리의 검은 안개가 솟아올랐다. 그 안개에서는 날카로운 검기가 발산됐으며,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들어 허공의 안개와 융합하더니 허이국이 나타났다.
허이국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광소하며 크게 외쳤다.
“크하하하! 드디어 이날이 왔구나! 하하하! 하늘도 날 버린 게 아니었어! 드디어 나왔다!”
한제는 말없이 냉랭한 눈으로 그런 허이국을 바라보았다.
한참 후에야 웃음을 멈춘 허이국은 한제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훌쩍 몸을 날려 한 자루의 큰 검으로 변했다.
선검과 모습이 똑같은 그 검은 검기를 내뿜으며 한제에게 돌격해왔는데 그 검기에는 놀라울 정도의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한제는 여전히 냉랭한 눈으로 허이국이 코앞으로 달려들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두 무릎에 놓여 있던 곤극 채찍이 움직이더니 기이한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었고 1천 척 안에 있는 바위들을 전부 그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 바위로부터 뿜어져 나온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력한 힘은 1천 척 안을 완전히 단절시킨 채 모든 것을 붕괴시킬 것 같은 위엄을 내보였다.
“헛!”
그 위엄을 느낀 허이국은 놀란 듯 헛숨을 들이켰고 그 순간 검의 형태가 불안정해졌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더욱 짙은 검기를 내뿜으면서 곤극 채찍의 위엄에 저항하려 했다.
그때, 한제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이 세상의 일 중 인과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과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
쫙!
곤극 채찍이 크게 휘둘러졌다.
콰광!
이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곤극 채찍은 꼬리와 머리가 맞물려 완벽한 원을 이루었고 허이국은 그 원 안에 떨어져 순식간에 와해됐다.
“과는 곧 모든 인의 본원이니라.”
한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검이 무너져 내린 것은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짙은 검은색 안개가 된 검 안에서 드러난 허이국의 얼굴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주인님, 주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딱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허이국은 곧바로 애걸했다. 그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애처로웠다.
한제는 여전히 서늘한 눈빛으로 곤극 채찍으로 이루어진 원 안을 들여다보았다. 허이국은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검은 안개가 되어 있었다.
“네 원고 시대의 검기는 나로 인해 얻은 것이니 그 결과 역시 나의 것이다.”
자신의 본체인 검은 안개가 흩어져 사라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것을 알아차린 허이국은 덜컥 겁을 집어먹고는 다시금 애걸복걸했다.
“주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당시에 주인님께서 저를 마혼으로 제련하지 않으셨다면 저도 이러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이 역시 인과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급하게 말을 잇던 허이국은 자신이 곧 완전히 흩어져 사라질 것임을 직감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후회뿐이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 당시 이한제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허이국아, 허이국아, 어쩌자고 그리 방자하게 군 것이냐! 상대는 마혼인 나보다도 더 악랄한 자인데…’
허이국은 스스로의 뺨이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데 한제가 피식 미소를 짓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네 인과지, 내 인과가 아니다.”
곤극 채찍으로 이루어진 원이 약간 허술해진다 싶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곤극 채찍은 경지에 녹아들어 더 이상 형태를 가지지 못했다. 경지와 마찬가지로 보이지는 않고 느껴지기만 할 뿐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거의 흩어져버릴 뻔했던 허이국은 곧장 뒤로 물러나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방금 전까지 곤극 채찍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에게는 좀 전과 같은 패기는커녕 비굴함만이 남아 있었다.
“주인님의 신통력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실 이 허이국은 주인님께 신통력을 확인해볼 기회를 드리기 위해 그리했던 겁니다. 주인님, 주인님에 대한 이 허이국의 충심은 굳건합니다.”
한제는 허이국을 슥 훑어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