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
백호의 입가를 타고 흐른 침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백호가 긴 포효와 함께 한제를 덮쳐 왔다.
한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낭떠러지로 뛰어내렸다.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절벽 옆으로 자라난 나뭇가지에 부딪히며 한제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힘없이 부러지는 바람에 순식간에 낭떠러지 중간까지 이르렀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한제는 부모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친척들이 비웃는 소리까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때 한제는 갑자기 무언가가 엄청난 힘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고 그대로 절벽 사이의 작은 동굴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동굴 벽에 바짝 들러붙었다. 정신이 혼미했지만 그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힘은 천천히 사라졌고 한제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한제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입고 있는 옷은 나뭇가지에 걸려 누더기가 되었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특히 오른쪽 어깨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곧 어깨가 점점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고통이 물밀 듯이 몰려왔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뼈가 부러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주변을 살펴보니 지금 있는 곳은 그리 크지 않은 자연 동굴인 듯했다. 햇살이 동구 입구를 비추었고 곳곳에 새와 짐승의 시체와 뼈가 널려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한제는 뒤쪽 벽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구멍을 발견했는데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한제는 방금 전 자신을 끌어당긴 힘이 이 구멍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검은 구멍은 일정한 규칙도 없이 불시에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바닥의 시체와 뼈들은 자신처럼 이곳으로 빨려 들어와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한제는 어깨의 통증을 참아내며 구멍 근처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때 갑자기 땅에 흩어진 짐승의 시체와 뼈들이 움직이더니 그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기가 좀 큰 뼈는 그대로 벽에 달라붙어 구멍을 막았다.
한제는 재빨리 몸을 굴려 구석으로 피했다.
‘저 작은 구멍에서 이토록 엄청난 힘이 나오다니!’
그러는 와중에도 빨아 당기는 힘은 여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늘을 날던 새가 빠른 속도로 동굴로 빨려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쳤다. 순간 피가 사방으로 튀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검은 구멍의 힘이 사라졌다.
한제는 놀란 얼굴로 바닥에 널브러진 새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2각쯤 지났을 무렵, 검은 구멍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그러한 움직임이 반복되자 한제는 그제야 규칙을 알아냈다. 검은 구멍은 반 시진 가량 계속 빨아 당기다 멈췄고 그리고 2각이 지나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제는 검은 구멍의 빨아들이는 힘이 사라졌을 때 구멍의 입구를 살펴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검은 구멍 아래로는 끝없이 우거진 숲과 험준한 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어깨를 다친 한제는 그곳을 내려갈 방법이 없었다. 수십 장까지 이어지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간 그대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올 때 챙겼던 짐 보따리는 낭떠러지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무엇보다 먹는 게 가장 문제였다.
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갔는지 벌써 하늘이 어두워졌다.
한제는 잠시 생각한 끝에 구멍의 힘이 사라졌을 때 재빨리 그 구멍이 있는 벽 모서리로 다가가 붙었다. 그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고 어깨는 이미 통증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었다.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자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여기 이렇게 박혀있다간 죽는 것밖에 없겠어. 그렇다고 뛰어내릴 수도 없고. 이러다 굶어 죽… 아…”
그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동굴 벽에 부딪혀 피범벅이 된 새의 사체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 물었다. 순간 피비린내가 덮쳐왔으나 억지로 삼켜버렸다. 뱃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천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제는 순식간에 반을 먹어치웠다. 구역질이 올라왔으나 재빨리 몸을 일으켜 크게 숨을 들이마셔 올라오는 구역질을 억지로 삼켰다.
먹다 남은 새의 사체를 한쪽으로 내던진 한제는 벽에 기대 앉아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부모님과 넷째 작은아버지, 친척들이 조롱하던 모습 그리고 대산파에서 검은 옷의 중년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던 냉혹한 눈빛까지 떠올랐다.
한제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조금 전 내던진 반쯤 남은 새의 시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별 의미 없이 한 행동이었으나, 이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새의 시체에 주먹만 한 붉은 구슬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구슬을 끄집어냈다.
‘새에서 왜 구슬이 나온 거지?’
한제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마을 서당에서 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책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동물의 몸에서 불로불사라고도 불리는, 석주(石珠)라는 보물이 생겨난다고 쓰여 있었다. 사람이 그 보물을 먹으면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고 장수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지가 잘려나가도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한제는 그 이야기를 읽고 그저 웃어넘겼다. 하지만 선인이라는 것도 얼마 전까지는 허구라 여겼으나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한제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만약에 이 구슬이 진짜 그 석주라면 그걸 먹는 순간 모든 상처가 다 낫는 것은 물론, 여길 떠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대산파의 시험에서도 합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석주는 너무 단단해 과연 먹을 수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한제는 일단 입고 있던 옷으로 석주를 깨끗이 닦아냈다.
석주는 회색이었고 표면에 구름 다섯개가 그려져 있었다. 보아하니 꽤 오래된 것인 듯했다. 한제는 석주를 입에 가져가 깨물어 보기도 다시 만져보기도 하고 상처에 대 보기도 하였지만 어떤 영향도 몸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한제, 대체 무슨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거냐. 세상에 그런 물건이 어디 있겠어? 그리고 그런 보물이 갑자기 날아든 새의 뱃속에 있다니, 말도 안 되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으려니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노곤함이 밀려오자 한제는 구슬을 바닥에 대충 내려둔 채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미 가을이었다. 밤이면 제법 쌀쌀했고 특히 산속은 더욱 그러했다. 한제는 잠결에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밤은 지나갔다.
절벽 아래로
다음 날 아침 밝은 햇살이 동굴을 비추었다. 그런데 그때 천장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이 구슬 위로 떨어졌다. 그러더니 구슬을 타고 옆에 있던 뼛조각으로 흘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깨는 여전히 부어있었다. 상태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한제는 실의에 빠진 채 바닥에 주저 앉아있었다.
“평생 이곳에 갇혀 살아야 할 운명인가?”
혼자 중얼거리던 한제의 눈에 뼛조각 위로 떨어진 이슬 한 방울이 들어왔다. 순간 갈증이 밀려온 한제는 조심스레 뼛조각을 집어 들어 고인 이슬을 혀로 핥았다. 물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그리고 갑자기 온몸에 온기가 돌면서 편안해졌고 어깨에서 미세한 자극이 느껴지더니 부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확실히 부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한제는 혹시나 싶어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이슬이 고인 뼛조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에 포기하려던 순간, 한제는 구슬 표면에 미세하게 이슬이 맺힌 것을 보았다. 순간, 방금 전 이슬이 고여 있던 뼛조각과 구슬과 맞닿아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조심스레 구슬을 집어 들어 어깨에 문질렀다. 구슬 표면에 묻어 있던 이슬이 어깨에 닿자 차갑고 청량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는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어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한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깨의 부기가 더 가라앉은 것이다. 팔을 휘둘러보니 아주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거 진짜 석주잖아!”
한제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 ★ ★
며칠이 지났다. 배가 고플 때면 새와 짐승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그동안 그의 일과 대부분은 석주에 이슬이 맺히면 새의 두개골에 이슬을 모으거나 어깨에 문지르는 것뿐이었다.
며칠 지나자 제법 많은 이슬이 모였다.
그날, 한제는 수일간 모아두었던 이슬을 미리 찢어둔 자신의 옷에 골고루 뿌린 후 석주를 그 위에 놓고 감싸 목에 건 다음, 힘껏 묶어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검은 구멍에서 빨아들이는 힘이 잠깐 사라진 틈을 타 옷을 찢어 한쪽은 동굴의 석괴에 묶고 반대쪽은 자기 허리에 묶은 다음 조심스럽게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10장쯤 내려갔을 때, 갑자기 손이 미끄러지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다행히도 허리에 묶어둔 옷 덕에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으나 옷의 중간 부분이 좀 찢어졌고 그 바람에 허공에서 그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닥까지 족히 20여 장은 될 듯했다.
그는 한손으로 허공의 나뭇가지를 나머지 한손으로는 허리에 묶인 옷을 잡았다.
그리고 어렵사리 허리에 묶인 옷을 나뭇가지에 묶은 후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놓았다. 그때부터는 한층 조심스레 움직였다.
한참 뒤에야 절벽에 도달한 그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데 옷으로 만든 밧줄이 너무 짧아, 절벽의 끝이 1장쯤 남았을 때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제는 이를 악물고 뛰어내렸다.
한데 그가 뛰어내리자 원인 모를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주변의 나뭇가지 들을 꺾어버릴 만큼 강력했다.
바람을 뚫고 발끝이 땅에 닿은 순간, 한제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굴렀다.
바닥의 돌들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워 한제는 몸 여기저기가 찢어지며 피가 철철 흘렀다. 특히 오른쪽 다리는 뼈가 훤히 보일만큼 상처가 심각했다.
구르는 것을 멈추자 긴장이 조금 풀리며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힘겹게 석주를 감싼 천을 입에 물고 빨았다.
미리 뿌려둔 이슬이 입에 들어가자 고통이 조금이나마 가셨다. 한제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은 다음 떨리는 두 손으로 석주를 감싼 천을 있는 힘껏 비틀어 짰다.
이슬 몇 방울이 오른쪽 다리의 상처 위에 떨어지자 조금씩 고통이 가셨다.
한데 그때 멀리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한제야, 어디 있느냐?”
한제는 흠칫 놀라며 귀를 기울였다. 분명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환청인 줄 알았으나, 몇 번이나 반복해 들은 후에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저 여기 있습니다!”
한제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자 곧 멀리서부터 무지개 하나가 내려와 위쪽 절벽에서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대산파의 장 씨가 한제의 아버지를 안고 인상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이상재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끌어안았다.
“한제, 이놈아.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이냐? 정녕 죽으려고 한 것이냐? 네놈이 이러면 나와 네 어미는 어찌 살아가라는 것이냐?”
한제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는 자신이 목숨을 끊으려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지금 꼴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장 씨는 한제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들어 위에 옷으로 만든 밧줄을 발견했다. 그는 몇 번 뛰어오르더니 금방 구멍 입구 근처에 도달했다. 그때 갑자기 검은 구멍에서 빨아들이는 힘이 나타났고 장 씨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늘이 도와 아드님의 자살을 막은 것 같군요. 우선 문파로 돌아가 장로님의 결정에 따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장 씨가 다가와 말하더니 한제 부자의 손을 잡았다. 얼마 후, 그들은 대산파의 산봉우리 아래에 도착해 돌계단을 올랐다.
다시 그곳을 오르는 한제의 마음은 복잡했다. 사람들은 경멸의 눈빛으로 그를 힐끔거렸다. 장 씨는 그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몇 마디를 했다. 상대방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왕 찾아서 데려왔으니 손님방으로 데리고 가서 어머니와 만나게 하시게.”
손님방에서 기다리던 한제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한제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제가 집을 나간 후 부모님은 곧바로 넷째 작은아버지를 찾았다. 그들은 이산의 아버지인 이상훈을 찾아갔으나 이들에게 앙심이 남아 있던 그는 도와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들은 대산파에 찾아가 도움을 청한 것이다.
처음 대산파에서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허나 한제가 집을 나간 이유가 자신들의 시험에 불합격했기 때문이니 혹여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들에게도 좋지 않은 소문이 생길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대산파는 함께 한제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한제가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곧 누군가가 탕약을 들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얼른 탕약을 받아 들고 감사 인사를 한 후 아들에게 먹였다. 역시나 선인들이 만든 탕약이라 그런지 효과가 금세 나타났다. 이내 고통이 많이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