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82
한제가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순간 대지가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느릿하게 솟아올랐고 삽시간에 지면에는 하나의 산봉우리가 생겨났다.
그 산봉우리 중턱에는 막 생겨난 동굴도 하나 있었다.
한제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그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타산이 동굴 입구에 앉아 경계를 섰다. 부상이 제법 호전된 타산은 형형한 눈빛으로 경계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제는 자리에 앉은 뒤 체내의 원력을 가동했다. 순간 그의 뒤에 흑백의 음양 도안이 나타나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이 황량한 수련성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영력을 흡수했다.
한제 체내의 원력은 아무런 색도 없는 상태에서 음양의 회전에 따라 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결국 두 갈래로 나뉘더니 흑백의 색을 띠었다.
하얀 기운은 그의 체내에 머물렀고 검은 기운은 몸 밖으로 피어오르면서 한제의 몸은 완벽한 순환을 이루었다.
그때, 우주에서 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붉은 구름을 타고 한제가 있는 수련성으로 돌진한 그는 오른손에 구리거울을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 한 줄기의 붉은 선이 나타나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요빙운의 도 속에서 요빙운 자매를 구하려던 요운이었다.
그의 생김새는 한제가 도 속에서 보았던 당시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그 눈빛만은 훨씬 노련하고 서늘해진 상태였다.
특히 한없이 침착하고 잠잠한 그 눈 깊은 곳에 숨겨진 괴상한 빛이 마치 불꽃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한제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에서는 밝은 빛이 번득였고 몸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검은 기운에 뒤덮여 있었으며, 체내의 원력은 하얀 기운으로 변해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르게 몸속을 맴돌았다.
“도의 경지가 체내에 들어왔다.”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도를 깨달아감에 따라 그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더 명확하게 깨닫고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도의 경지를 체내에 들이는 과정을 이미 겪어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 그가 들인 경지는 생사윤회의 경지였고 이번에는 인과의 경지였을 뿐이다.
한제는 순간이동으로 산봉우리 밖에서 나타났다. 타산이 그림자가 되어 그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한 걸음 내딛은 한제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며 세상에 녹아들었다. 다음 순간 우주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나, 곧바로 다시 사라졌다.
“우선 이원을 찾아 심금(心禁)을 배운다. 도중에 나를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곧장 천벌을 일으켜주지.”
한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본 바가 있기에 그는 예전처럼 천벌이 두렵지는 않았다.
한제는 세상에 녹아든 채 이원이 알려준 길을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이가가 있는 나천성역 남쪽 구역의 파멸성(破滅星)이라는 수련성으로 향했다.
다만 지금의 수준으로는 세상에 녹아든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간간이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잠시 모습을 드러낸 그가 다시 세상에 녹아들려던 찰나, 강력한 위기감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한제는 안색이 살짝 변해 몸을 훌쩍 날렸고 그 순간 그가 방금 전까지 있던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엄청난 충격이 확산됐다.
멀리서 붉은 구름 한 조각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1천 척 떨어진 곳에 응집되었고 이내 한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허목이냐?”
오른손에 구리거울을 쥔 사내가 냉랭한 얼굴로 물었다.
사내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한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시에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내색 없이 뒤로 조금 물러나며 세상에 녹아들려 했다.
허나 그 순간, 사방의 허공이 기이한 힘으로 봉쇄됐다.
한제는 이럴 상황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당황한 기색 없이 무심한 눈길로 상대를 응시했다.
“축지성촌이라… 난 그 신통술을 부릴 수 없지만 네 행적을 짐작할 수는 있다. 이곳은 너를 위해 준비된 곳이다.”
중년 사내의 표정은 차가웠고 목소리는 더욱 서늘했다.
그는 한제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는 손에 들고 있던 구리거울로 빛을 발했다. 그러자 반경 10만 척의 우주가 일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사방은 거울 면과 같은 상태로 변해 있었다.
“흡수!”
중년 남자의 냉랭한 외침과 함께 한제를 포함한 반경 10만 척의 공간이 가루로 변해버리더니 순식간에 그 구리거울로 녹아들었다. 뒤이어 사내는 소맷자락을 휘두르며 저 멀리 나아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에게 한제를 사로잡는 것은 별것도 아닌 일인 듯했다.
혈신자
희미한 기운이 맴도는 가운데 한제의 모습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그의 주위는 흐릿한 기운이 가득했고 타오르는 듯한 힘이 사방팔방에서 응집되었다. 마치 도가니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허나 한제의 눈빛은 침착했다. 그는 곧장 체내에서 하얀 기운으로 변한 원력을 가동하여 몸 밖의 검은 기운과 교차시켰다. 그러자 한제의 몸에서 음양의 도안이 나타나 회전하면서 순식간에 그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
규열(窺涅)!
콰르릉!
그 순간,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제의 머리카락이 마구 나부꼈다. 동시에 그의 체내로부터 엄청난 힘이 솟아올랐다. 이 기운은 음양의 도안이 회전하는 가운데 하나의 회오리가 되어 마치 폭풍처럼 한제의 주위를 매섭게 휩쓸었다.
사방을 가득 메운 짙은 안개는 그 폭풍의 기세에 빠르게 흩어져버렸다.
한제의 두 눈은 해와 달을 품고 있었고 흑백의 기운은 그를 빠르게 맴돌았다. 회오리는 교차된 두 마리의 거대한 용처럼 포효했다.
그때, 우주 공간을 질주하던 중년 사내, 요운의 표정이 급변했다. 허공에 붉은 구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붉은 구름에는 끔찍할 정도로 두려운 힘이 배어 있었다.
“처… 천벌의 구름!”
요운의 눈동자가 졸아들었다.
수천 년 전 이미 정열기 초기에 이르렀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준이 돌연 퇴화하기 시작한 그의 현재 수준은 규열기 중기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수많은 일들을 망각한 상태였다. 특히 수천 년 전 그가 혈신성을 떠나기 전의 모든 기억은 흐릿해져 있었다.
그저 자신이 선조 어르신을 매우 화나게 했고 선조 어르신의 아량으로 겨우 징벌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천 년이 흐르도록 머릿속은 언제나 흐릿했고 수준은 한참 퇴화했다. 그뿐이라면 다행이었겠지만 항상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
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요운은 거의 발작을 일으키다시피 괴로워했고 끔찍한 살의를 느꼈다.
만약 그 살기를 억지로나마 극복하지 않았다면 그는 끝없는 살육을 벌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그런 두통과 충동을 억지로나마 참고 억제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수준이 퇴화함에 따라 고통은 점점 강해졌고 무엇이든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억제하기도 갈수록 힘들어졌다.
그는 은연중에 이 모든 것이 혈신성에서 겪었던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는 당시의 일을 완전히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일찍이 혈신자에게 물어보기도 했으나, 답을 듣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가문의 금지(禁地)에 자신을 가둔 채 폐관수련으로 수준을 복구시키고 광증을 잠재우면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조 어르신으로부터 가문의 금지를 떠나 허목이라는 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선조에게서 허목이라는 자에 관한 정보를 받은 덕에 상대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다.
허나 천벌의 구름을 본 순간, 그의 심신이 바르르 떨렸다. 이때 그가 받은 충격은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느껴지는 것이었다. 마치 그 천벌의 구름이 천적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강렬한 느낌에 그는 강렬한 통증까지 느꼈다.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강하고 또렷한 두통에 요운의 두 눈은 빠르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크아아! 크아아아!”
요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늘과 땅을 울릴 듯 거대한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고 순간 그의 체내에서 강력한 원력 한 줄기가 튀어나왔다.
요운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렸고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는 푸른 정맥이 돋아났다.
그때,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발산됐고 그 너머로 어떤 얼굴이 하나 나타났다.
두 개의 뿔이 달린 그 기이한 얼굴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며 천벌의 구름을 향해 달려들어 소리 없이 포효했다. 그리고 그 포효는 천벌의 구름을 응집시키더니 이내 빠르게 붕괴시켰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붕괴된 천벌의 구름은 더욱 빠른 속도로 다시 응집되어갔다.
눈 깜짝할 순간, 10만 척에 걸친 우주가 붉은 구름으로 가득 찼다. 미친 듯 용솟음치는 그 붉은 구름에서 한 줄기 붉은 번개가 나타나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내리쳤다.
콰르릉!
요운의 얼굴은 더욱 고통에 일그러졌다. 또한, 그의 몸에 나타난 요사스러운 그림자는 곧장 튀어나가 몸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입을 쩍 벌린 그림자는 내리치던 붉은 번개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콰쾅!
그 요사스러운 그림자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부르르 진동하며 거의 무너질 뻔했고 동시에 엄청난 전광의 힘이 그 그림자를 따라 요운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천벌의 천둥번개 중 한 자락은 구리거울 안으로 쳐들어가기까지 했다.
쩌적!
그 순간, 거울에서는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안개로 가득 찬 공간에 있던 한제는 예리한 검처럼 솟구쳐 올랐다. 흑백의 기운으로 형성된 폭풍은 그의 몸 바깥에서 격렬하게 맴돌았다.
“참라결(斬羅訣)!”
한제가 낮게 외친 순간, 주위를 맴돌던 흑백의 기운이 미친 듯이 응집되어 한 줄기 회색 검기를 이루더니 순식간에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요운이 들고 있던 거울이 산산조각 나면서 거대한 충격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 순간, 충격의 파동 안에서 한제가 걸어 나왔다.
요운은 선조의 명령도 잊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끊임없이 고통스런 비명을 흘렸다. 그의 몸 밖에 나타난 1백 척이 넘는 요사스러운 그림자는 천벌의 구름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는 냉랭하게 한제를 바라보았다.
“고요(古妖)!”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고요는 어스름한 눈빛으로 몸을 훌쩍 날려 요운을 말아 쥔 채 뒤로 물러났다. 천벌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모양이었다.
그때, 우주에서 응집된 천벌의 구름에서 돌연 온 우주를 뒤흔들 듯 거대한 소리가 퍼져 나가면서 네 갈래의 번개가 떨어졌다.
그중 두 갈래는 한제를 나머지 두 갈래는 고요를 향해 돌진했다.
두 갈래 번개가 다가오는 순간, 한제는 침착한 얼굴로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를 맴돌던 흑백의 기운이 피어오르면서 음양의 도안을 이루었다.
콰쾅!
첫 번째 번개가 충돌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제가 뒤로 물러나는 사이 음양의 도안은 그 붉은 번개를 흡수했다.
그때, 두 번째 천벌의 번개가 음양의 도안에 떨어지려 했다.
한제는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미간을 통해 원신을 쏘아 보냈다. 다시금 태고의 뇌룡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원신은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